박수영은 검은 테의 안경 속으로 빛나는 또렷한 눈망울이 인상적인 30대 초반의 청년이다. 그는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진짜’ 인디 밴드(indie band) 씨임의 리더다(발음대로 쓰겠다. seam을 ‘심’으로, soul을 ‘솔’로, thrash를 ‘스래시’로 표기하는 엉터리 외국어 표기법을 조속히 개정하라!). 그의 음악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자. 알 만한 사람은 이미 알 테고,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얘기해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을 테니까.

20001018102513-seamsyp‘선진국의 록 밴드’와 ‘후진국의 록 평론가’의 관계란 ‘짝사랑’ 밖에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중학교 때 P모 밴드가 소속된 음반사에 팬 레터를 보냈던 일은 가슴깊이 묻어둘 일이지 이런 데서 까발리고 설레발칠 일은 아니다(물론 답장은 없었다). 수영과 개인적 친분을 갖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두 가지 특수한 조건이 작용한다. 하나는 그가 한국인 이민 2세대라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씨임이 ‘진정한’ 인디 밴드(indie band)이기 때문이다. 내가 씨임의 이름과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1995년 아시아계 인디 밴드들의 곡을 모은 음반 [Ear of the Dragon]에서 “Hey Latasha”라는 곡을 들으면서부터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주 뛰어나다는 생각보다는 ‘동양인들도 록을 할 수 있다’는 정도로 다가왔기 때문에 솔직히 큰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오히려 빅토르 초이와 추이 지엔처럼 ‘후진국(?)’에 반강제로 이주한 코리안 다이애스포라(disapora)에 더많은 관심이 갔다. 세계 최강국에 ‘잘 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민을 결심한 사람들에 대한 나의 느낌은 그리 좋지 않았다. 개인적 경험이 많이 작용한 것이긴 하지만.

하지만 몇 년 뒤부터 씨임의 정규 음반을 하나 둘 찾아 듣기 시작하면서 묘한 느낌이 찾아왔다. 그 묘한 느낌이 무엇인가는 아직도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수영과 개인적으로 접촉한 것은 작년 늦가을 한 페스티벌에 씨임을 초청하면서부터다.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쫄딱 망했다. 물론 수영이 먼저 (성)기완([email protected])이를 통해 ‘한국에 와서 연주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해서 추진된 것이긴 했지만 너무 민망했다. [한겨레]가 공연 장소를 잘못 보도해서 그런 거라고 엉뚱한 데 화풀이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정작 그들은 전혀 괘념치 않았다. 주최 측이라는 곳에서 비행기삯만 조금 보태주었을 뿐 개런티 한 푼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 뒤로도 며칠동안 같이 지내면서 지켜봤던 그들의 모습은 시종 ‘쿨(cool)’했다. ‘냉랭하고 세련되었다’는 뜻이 아니라(이건 콩글리시다) 이지적이면서도 정감있다는 뜻이다. 공연의 흥행보다 인간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은 직업적 록 밴드라기 보다는 ‘문화운동 단체’에 가깝다는 착각까지 들었으니까.

그때 나는 ‘인디(indie)’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재삼 반추하게 되었다. 씨임의 멤버들과 관계자들은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주말과 휴일에 공연을 다니고 여가를 쪼개어 레코딩을 해왔다. 국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DJ인 배 모씨가 “왜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개인적 삶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라는 수영의 답변이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 옆에서 (이)승호(미국명 John Lee)가 “수영에게 반짝이 바지만 입혀놓으면 인터내셔널 스타다”라는 기지어린 말도 기억난다. 이번에도 수영은 한국 공연을 앞두고 “흥분된다(excited)”는 표현을 쓰면서 한국 공연이 좋은 것은 “언어장벽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인간적으로 접촉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20001018102513-seam22그가 한국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대해 ‘한 핏줄이 어쩌구’하는 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일이다. 그는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니까. 하지만 그가 표상하는 ‘미국’은 주류 미국의 이미지와는 ‘다른’ 것이다. 이런 ‘다른’ 이미지를 백인이나 흑인이 아닌 ‘에스닉 코리안’이 표상할 때 그건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른 한편 그들은 ‘한국인끼리 뭉쳐 사는’ 주류 한인 사회의 성원들과도 다르다. 그들의 작은 성공이란 것도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뼈빠지게 일해서 거둔 경제적 성공’이 아니라,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를 직시하고 다민족 사회이자 인종차별 사회에서 몸으로 부대끼면서 거둔 문화적 성공이다. 박수영이 야후(yahoo)의 설립자 제리 양(Jerry Yang)과 더불어 아시안계 미국인들의 우상이라는 보도는 솔직히 긴가민가하지만 사실이었다.

작년에 [weiv]와 가졌던 서면 인터뷰에서 박수영은 미국 사회에 대해 “무자비한 자본주의(ruthless capitalism)”라는 표현을 썼다. 이어 무자비한 자본주의는 “다른 발전된 나라들(developed countries; 이른바 ‘선진국’으로 번역하는 그 단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썼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가 ‘발전된 나라’의 예로 프랑스, 일본과 더불어 한국을 포함시키면서 나의 ‘검열’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가 한국 사회를 잘 모른다고 단정지었고, 그래서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한국’은 삭제하자”고 제안하여 결국은 관철시켰다. 자신의 정서가 ‘han(恨)’이라는 표현도 내 취향이 아니라서(김수희와 조용필과 샤크라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의역’해서 게재했다.

이 일 때문에 직접 만났을 때 가벼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빈곤선(poverty line) 이하에서 사는 사람이 미국이 훨씬 많다고 주장했고, 나는 한국이 미국보다 빈곤선 자체가 낮다고 우겨댔던 기억이 있다. 영어 실력이 짧은 내가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이 “Is it because of black people?”이라고 내가 묻자(이 바보같은 질문은 ‘빈곤선 이하에 사는 흑인이 많기 때문인가?’라는 뜻이었다), 수영은 “No, it’s because of rich white people”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논쟁이라기보다는 유머가 섞인 가벼운 설전이었다. 수영이나 씨임의 멤버들이 사회주의자거나 무정부주의자인 것도 아니다. ‘주의자’나 ‘파(波)’라기 보다는 생활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표현할 줄 아는 퍼스낼리티의 소유자들이었다고나 할까…

그걸 보면 나는 아직도 매우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방금 언급한 해프닝도 ‘정치경제학 연구자’라는 나의 전력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정치경제학은 학술 이론이기 이전에 정치 강령이었고, 거기에 따르면 한국은 ‘개발도상국’이거나 ‘(신)식민지’이어야 했으므로. 하지만 이제 나는 한국이 ‘발전된 나라(인터넷 산업의 양대 선진국?)’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기로 했다. 정치경제학 세미나 자리만 아니라면 말이다. ‘미국처럼 발전되는’ 게 인구의 20% 정도는 완전히 깡통을 차고(대부분은 ‘유색’ 인종일 것이다. 한국의 경우 동남아인?), 1%만 벤츠와 전세기를 굴리고, 나머지는 헉헉 대면서 살아가는 것이라면 말이다.

이번에 그가 다시 온다고 한다. 지난번에는 다큐멘터리 소재로 다루면 어떻겠냐고 몇몇 TV 방송사에 전화와 팩스를 돌려봤다. 그 중 하나는 빅토르 초이와 추이 지엔을 취재한 적도 있던 곳이었는데, 내가 수영과 씨임에 대해 소개하자 “빅토르 초이와 최건은 그곳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것이기 때문에 다루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곤 더 이상 연락은 없었다. 하긴 지금은 ‘인간시대’가 아니라 ‘성공시대’니까. 그래서 ‘많이 왔으면 좋겠다’는 그때의 바램이 이번에는 ‘와야 할 사람만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다. 물론 씨임이 ‘우리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제’도 부탁하고 싶다. 나 역시 특별히 그에 대해 무슨 ‘소유권’같은 걸 주장하려는 생각은 없다. 단지, 그들을 보면 좋을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램이 있었다. 그래서 B모 약국 라디오 광고 같지만, ‘6월 3-4일 종로 5가 연강홀에 오면 그를 만날 수 있다’는 말로 글을 마친다. 20000515 | 신현준 [email protected]

* 이 글은 [씨네 21]에 게재될 글의 ‘expanded version’입니다.

관련 글
한 ‘코리안 아메리칸’ 경계인의 예술과 삶: 심(Seam)의 박수영 – vol.1/no.6 [199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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