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018101727-headsparks필자는 작년에 ‘소란 99’ 공연을 위해 한국에 온 씸과 동행하면서 말로 잘 설명하기 힘든 감흥을 느꼈었다. 그들에게 미국의 자본주의와 잠재적인 인종주의에 대한 격렬한 반감이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그들 특유의 ‘조용한 분노’의 원천임을 여러 번 넌지시 암시받을 수 있었다. 또한 자신들의 잃어버린 뿌리에 대한 어떤 동경 비슷한 것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게 미묘한 감정의 교감을 통해 전해져 왔다. 그들의 진지함과 자신감, 그리고 알 수 없는 상실감들이 나의 가슴을 저미게 만들었다. 그들의 그런 느낌들을 내가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해가 갔다. 아마도 그들에게도 나의 ‘이해’에 얽힌 미묘한 감정들이 전해졌을 것이다. 시종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마음을 열어놓은 상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통이 오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국에서의 공연이 (관객 유치의 차원에서 보자면) 그리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공연 캐리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공연 경험이 되었다”는 리더 박수영의 술회는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끼게 한 점이 없지 않다.

그 때가 늦가을이었다. 다시 계절은 두 번을 돌아봄이 되었다. 해는 바뀌어 서기 이천년이 되었다. 씸의 [Headsparks]를 플레이어를 걸고 특유의 담담한 기타 톤을 들으니 문득 그들이 그리워진다. [Headsparks]는 1991년에 녹음되었고 1992년에 나온 심의 데뷔 앨범이다. 한국에서 발매되는 라이센스 [Headsparks]에는 이들의 대표적인 EP인 [Kernel]의 수록곡들이 합쳐져 있다는 점이 수집가들의 구미를 당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번 라이센스는 [Headsparks]와 [Kernel]의 합본이다. 한국 팬들을 위한 특별한 배려로 이러한 조합이 성사되었다.

데뷔 앨범 발매 당시의 라인 업은 박수영(보컬, 기타), 렉시 미첼(베이스), 맥 맥코건(드럼), 이렇게 트리오다. “New Year’s”에서는 제니퍼 워커가 백그라운드 보컬을, “Shame”에서는 사라 섀넌이 메인 보컬을 도와주었다. 이 앨범에서 우리는 이후에 나온 심의 앨범에서 접할 수 있는 특유의 깊이감을 강렬하고 거칠은 톤으로,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보다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보컬 라인을 강렬한 기타 톤의 번지는 듯한 사운드 밑에 묻어 두는 방법은 지금보다 더 급진적이다. 그래서 보컬 라인의 느낌들이 기타 라인과 특이한 혼융의 상태에 놓인다. 씸에게 특이한 점은 슈게이징 밴드들의 내면적인 사운드 구사방식을 분노와 분출의 톤과 어울리게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이후 씸만의 독특한 ‘슬로우코어’라는 스타일의 근간이기도 하다. 후에 포스트록적인 접근법을 통해 씸의 선구적 록 스타일이 본격적으로 꽃피우는데 그 때는 이미 1990년대 후반이다. 씸이 이미 [Headsparks] 같은 앨범을 통해서 1990년대 초반에 닦아 놓은 스타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씸의 음악이 전위적인 난해함 속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음악은 심플하고 강렬한 ‘ass-kicking rock’n’roll’이다. 씸의 음악은 처음 들을 때 약간 난해한 부분이 있지만(진행 방식이라든가, 보컬 라인의 흐름이라든가, 사운드의 구사 같은 점에서), 그러한 점이 씸의 음악을 어렵게 만들지 않는다. 탁, 들으면 그들의 마음이 사운드를 통해 전해지는 심플한 록이다. 그 점이 씸의 음악을 듣는 묘미이다. 어려움과 쉬움이 사실은 하나라는 점이 그들의 음악을 통해 발견된다. 쉽게 뚫고 나가는 강한 톤의 록이면서 그 가운데 진지함과 도도한 느낌의 줏대를 세워놓고 있는 음악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씸의 음악 스타일이 198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이다. 그것은 EP [Kernel]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 미국 인디 록의 광범위한 스펙트럼 속에서도 공통으로 발견되는 로-파이(lo-fi)적 패턴을 이미 씸은 80년대 말에 구축해 놓고 있었다. [Headsparks/Kernel]을 통해 우리는 그 사운드의 진화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20000515 | 성기완 [email protected]

* 이 글은 [Headsparks/Kernel] 라이센스 앨범 라이너 노트입니다.

수록곡
1. Decatur
2. Grain
3. Sky City
4. Pins and Needles
5. Feather
6. Atari
7. King Rice
8. New Year’s
9. Shame
10. Granny 9x
11. Kernal
12. Sweet Pea
13. Shame (kernal remix version)
14. Driving the Dynamic Tr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