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크박스의 철학

 주크박스의 철학-히트곡 | 페테르 센디 지음
고혜선, 윤철기 옮김 (문학동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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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표지의 홍보 문구에 꽂혀 책을 펼쳤다면 예상과 다른 내용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 ‘히트곡,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영혼의 노래’와 ‘왜 그 멜로디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귓가에 맴도는가?’라는 메인 카피는, 이 시대에 유행하는 대중음악의 속성을 과학적 철학에 근거하여 분석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스스로 밝히듯, 저자 페테르 센디는 풍부한 산업적·통계학적·음악이론적 자료를 들어 히트곡의 비밀을 밝히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책은 소위 ‘탈근대 철학자’라 불리는 이들이 예술 작품 혹은 상품을 바라보던 관점을 히트곡이라는 현대적 매개체에 덧씌워 철학적 ‘놀이’를 감행하는 “농담, 재담, 말장난”(p.113)에 가깝다. 히트곡에 대한 언어유희를 시작하기 위해 저자가 불러오는 그럴듯한 용어는 ‘귀벌레’다. 귀벌레란 “우리를 놔주지 않고 잠에서 깨어날 때도 입에서 맴”돌게 하는 “바이러스”이며,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제임스 켈러리스 교수에 따르면 “숙주의 기억에서 자양분을 얻어 생명을 유지”하는 “곡조”(p.1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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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자는 그 귀벌레를 철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분석하는가? 정확히 말하자면, ‘탈근대적으로’ 분석한다. 탈근대 철학의 주요 방법론이자 때로는 그 자체가 곧 개념이 되기도 하는 비유(比喩)를 통해, 각종 단어와 문장, 의미 단위들은 끊임없이 미끄러지거나 탈주한다. 들뢰즈와 데리다, 벤야민 등의 예술 이론 혹은 그들의 스타일에 적을 두고 한 편의 ‘문학작품’을 완결 짓는 데 가장 큰 욕망을 드러내는 일군의 지식인들처럼, 이 책 또한 ‘철학을 필요로 하는 (현대)예술’에 관한 해설서라기보다는 ‘예술을 필요로 하는 탈근대 철학’의 존재론적 자의식으로 다가온다.

‘비평은 작품을 스스로 말함에 이르게 한다’는 벤야민의 비평론을 사용하기 위해 저자는 역시나 마르크스의 상품 개념을 끌어온다. 그리고 “일정한 노동 시간과 일정한 노동 조직의 산물 또는 표현”인 사물을 그것의 생산관계 혹은 사회적 관계와 격리시킨 자본주의의 물신성을 개탄했던 마르크스의 의도는, 그렇게 더욱 문학적으로 변모한다.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의 거리를 설명하고자 ‘상품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이라고 가정한 마르크스의 문장 속 상품들은, 결국 그렇게 진짜로 말을 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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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전개되는 페테르 센디의 이야기는, 고전적 인식론에 대한 강박적 거부와 플라톤 이후의 ‘재현’에 대한 경멸, 확실성에 반대하기 위한 불확실성의 강조 등을 문자로나마 충실히 실현해 온 들뢰즈주의자들의 그것처럼, ‘폼 나게, 그러나 재미없게’ 이루어진다. 저자는 “어떤 이유와 동기에서 히트곡들이 불리고,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가 생산되는지를”(p.27) 사고하기 위해 몇몇 영화와 음악 들을 예로 들어 알레고리적으로 신나게 ‘재영토화’하고 ‘탈영토화’해댄다. “히트곡, 이 진일보한 자본주의의 중대한 발명품은 상투성 속에서 끊임없이 유일함을 주조해낸다”(p.120)는 식의 동어반복을 곁들여가면서.

책은,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을 히트곡이라는 현대적이고 새로워 보이는 이슈에 적용한 결과다. 그러므로 음악에 대한 관념론적이고도 메타적인 사고 과정을 경험해보고 싶은 이에겐 흥미로운 시간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히트곡의 탄생이 각 시대 또는 특정 시기에 유행하는 문화적 환경으로 비롯된다는 유물론적 입장에서 좀 더 깊이 있는 논의를 듣고자 하는 이들에겐 그다지 매력적인 시간이 될 것 같진 않다. 내 경우는 후자였다. | 김영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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