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025051531-roots로린 힐(Lauryn Hill) 공연 날을 놓치는 바람에, 대타로 선택하게 된 건 루츠(Roots)의 콘서트였다. 힙합의 본토에서 맛보는 힙합의 맛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힙합 공연장에는 흑인들이 얼마나 올까 하는 새로운 궁금증이 도졌다. 뉴욕 맨허튼 시내를 다니다보면 까만 얼굴들이 절반은 되는데, 콘서트 장이나 클럽에만 가면 대다수의 하얀 얼굴에, 소수의 누런 얼굴 사이에서 흑인들은 가물에 콩나듯 보이는 정도였다. 흑인들이 소위 문화를 향유할 생활 수준이 못 되어서인지, 흑인들의 음악이 아닌 록이나 포크 공연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여하튼 힙합 공연에 가보면 흑인문화라는 게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루츠의 공연이 있는 날 오후에는 할렘을 방문했다. 힙합 공연을 보는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라고 하면 좀 심했나? 여하튼 맨허튼 남쪽의 NYU 근처에서 북쪽 할렘가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최첨단 유행과 유명 브랜드는 다 모여 있다는 5번가와 앰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브로드웨이를 스쳐 지나 한참을 북쪽으로 간다. 어느 새 버스의 승객들은 백인에서 흑인으로 교체된다. 버스 안에 흑인이 아닌 자는 나 혼자뿐이었다(운전기사 아저씨도 흑인이었다). 뉴요커인척 하고 거리를 쏘다닌 지 일주일이 넘었건만, 이런 인종 구성비는 첨이었다. 그 사실을 느낀 순간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할렘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여행 가이드 책에 나와있는 125번가 표지판이 보이자, 나는 잽싸게 내렸다. 4차선 대로인 125번가는 그냥 평범한 상업 거리였다. 그 거리를 따라 아폴로 극장, 할렘 미술관, 레코드 가게, 옷가게, 노점 책방, 노점 화방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노점 책방과 노점 화방들에는 생전 첨 보는 책들과 그림들이 눈길을 끌었다. ‘최초의 인류는 흑인이었다.’ ‘흑인의 파워’ 등등의 제목만으로도 흑인의 정체성, 자부심이 주제임을 알 수 있는 책들과 온통 흑인들만이 모델인 그림들이 팔려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코드 가게의 앨범들도 역시 흑인 음악 일색이었다. 가스펠, 힙합, 블루스, 재즈 기타 등등. 거리의 이름까지 ‘말콤 엑스’ 가와 ‘마틴 루터 킹’ 거리였다. 푸하, 내가 그때까지 시간을 보내던 뉴욕이 아니라, 마치 흑인들의 왕국으로 잠입해 들었다. 할렘에서의 산책을 무사히 마친 후 헤머스타인볼룸 공연장으로 가기 위한 버스를 탔다.

펜실베니아 스테이션 길 건너편에 있는 헤머스타인볼룸 공연장은 무도장으로 쓰였던 것이라고 한다. 까마득히 높은 천장과, 벽면에 그려진 19세기 풍의 벽화들. 그런데도 건물은 지은 지 10년 이상 되어 보이지도 않았다. 꽤 큰 무도장이었던지 우리가 서 있던 입구 가까운 쪽에선 무대 위 사람들의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 공연장을 채우던 관객들 중 역시 가장 많은 인종은 백인들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힙합 공연은 꽤 다양한 인종 구성비를 자랑했다. 절반 정도의 백인들, 나머지 절반 중 삼분의 이는 넘었던 흑인들, 그리고 동양인들. 아무래도 공연이란 건 문화를 향유할 ‘여유’를 가장 많이 소유한 자들의 것인가 보다. 한편으로 힙합의 미래 역시 재즈와 같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루츠 공연에 앞서 마시(Macy)와 갱스타(Gangstarr)의 공연이 있었다. 마시는 최근 두번째 앨범을 낸 힙합, 소울, 레게, 휭크를 믹스한 음악을 하는 여가수라고 하는데, 그다지 끌리지는 않았다. 갱스타(구루 guru와 DJ 프리미어 DJ Premier)는 재즈와 힙합의 크로스오버 작업으로 알려진 존경받는 팀이다. 구루의 [재즈마타즈(Jazzmatazz)]를 아주 감동적으로 들었던 나로선 은근히 갱스타의 공연은 기대했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자, 나를 반긴 건 음악이 아니라, 지독한 마리화나 냄새였다. 에어컨 빵빵한 그 큰 공연장에서 서있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던 냄새. 정말 싫었다. 싫은 건 둘째치고라도, 무대 위 공연을 하나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마리화나 냄새를 피해 공연장 밖을 들락날락거리다가, 스태프에게 제지당해 다시 못 들어갈 뻔하기도 했다. 결국 기억에 남았던 건 앞뒤에서 공격해오던 마리화나 냄새뿐, 정작 공연은 거의 기억에 남지 않았다. 갱스타가 의외로 재즈와는 무관해 보이는 이름 그대로의 ‘갱스터’ 랩 분위기였다는 것과 루츠가 정말 힙합 ‘밴드’였다는 특이한 사실이 눈에 띄었던 걸 제외하고는. (그 공연을 본 며칠 후 반스 앤 노블 서점에서 본 한 음악 잡지에서 루츠는 기타, 베이스, 드럼의 라인업을 선택했던 힙합팀에다, 그 주 힙합 차트 1위에도 올랐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그런 줄 알았으면 코를 막고서라도 음악에 귀기울여볼걸. 쯔읍.)

공연이 한창 막바지에 접어들자, 마리화나에 취해 공연장 이곳저곳의 구석구석에 널브러져있는 눈 풀린 애들이 눈에 띄었다. 정말 애들이다. 기껏해야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나이들이었으니. 마리화나를 피워보기는커녕 구경도 못해 본 나지만, 그때까지 마리화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힙합이든, 록 공연이든 공연장에서 망가지는 것, 스트레스 푸는 것을 마리화나로 아무렇지 않게 연결시킬 수 있는 이곳 문화와, 마리화나 안 피워도 술 안 마셔도 꼭 그런 것처럼 망가지는 한국과의 차이는 컸다. 솔직히 아무리 좋은 공연이어도 이렇게 마리화나를 피워댄다면 정말 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냄새가 너무 숨막히기도 했지만, 왠지 모를 낯선 거부감, 이질감까지 느껴졌다. 미국에 산 지 어언 10년을 바라보는 나의 친구는 자신은 마리화나를 안 피워도 그런 그들의 문화가 이해된다고 했다. 뉴욕이라는 미국의 대도시는 일상에서의 일탈에 꽤 엄격한 편이라나? 이들에게 일탈은 하위문화 공연장에서나 허용된 것이라나? 그리고 내게 그것에 대한 너그러운 이해의 마음을 가져줄 것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왜 나는 여전히 불쾌했을까? 문화적 차이에 대해 굉장히(?) 너그러운 편이라고 자부해왔던 나인데,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20001025051531-choi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던 또 하나의 공연이 있다. 센트럴 파크 서머 스테이지의 최건 공연. 센트럴 파크 서머 스테이지는 우리나라로 치면, 예술의 전당 무료 공연이라고 할까. 여름 시즌인 6월부터 8월말까지 주말마다 지속되는 여름 음악 축제로, 러셔스 잭슨(Luscious Jackson) 이나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Jon spencer Blues Explosion) 같은 밴드도 서지만, 외국 뮤지션 초청 공연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축제였다. 내가 간 8월 첫째 주에는 파키스탄 전통 음악을 하는 악단과, 중국 록의 할아버지(?) 최건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었다. 뉴욕에 와서까지 최건의 공연을 보게 될 줄을 상상도 못했기에, 왠지 설레이는 마음이었다. 센트럴 파크 중앙 쯤에 조촐하게(?) 마련된 공연장엔 중국계 미국인들과, 파키스탄계 미국인들로 가득했다. 물론 소수의 비아시아계도 있었고.

민속 음악답게 별 변화없는 가락과 연주로 일관하는 파키스탄 전통 음악 공연이 2시간 가량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끝날 듯 끝날 듯하던 파키스탄 음악 공연이 끝나지 않자, 기다리던 중국인들 일부가 최건의 얼굴이 그려진 피켓을 들고 ‘추이 잰’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따라하며 공연을 방해하던(?), 관객의 압도적 다수였던 중국인들. 내 바로 앞자리에 있던 소수파인 파키스탄 청년과 그의 백인 친구들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정말 중국인들이 심하긴 심하다고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들도 한소리씩 했다. 그 잠시동안은 에쓰닉 컬처(ethic culture)의 배타적 성격을 피부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꿋꿋한 파키스탄 공연이 끝나고, 우리 앞의 소수파들도 같이 사라지고 난 후 등장한 최건 아저씨는 변함없이 섹시하고 열정적이었다. 공연을 보는 우리도 무척 즐겁고 신이 났지만, 작년과는 느낌이 무척 달랐다.

작년 봄밤 베이징 CD 카페에서 보았던 최건의 공연은 무척 국제적이고(?) 감동적이었는데, 뜨거운 여름 한낮 뉴욕의 한복판에서 이루어진 최건의 공연은 민족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최건 노래 속의 중국 민요 가락을 연주하는 장다리 피리 소리는 더욱 애절하게 느껴졌다. 최건의 중국어 랩 역시 랩이라기보다는 이국적인 외침같았다. 한편 베이징에서와 마찬가지로 뉴욕에서도 최건에 대한 집착과 애정(“일무소유”라는 노래에 대한 집착과 애정)이 가장 강한 사람들은 30대 중국인들인 듯했다. 아이를 데리고 부부동반으로 혹은 혼자서 온 그들은, 일무소유를 가슴 뭉클하게 따라부르던 베이징의 중국 사람들과 많이 닮아 보였다. 아마 그들은 대부분 80년대 후반 미국으로 유학 혹은 이민온 세대들일 것이다. 그들은 그 이전에 미국으로 온, 혹은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들과는 다른 개인사적 경험(오히려 소위 우리 나라의 386세대와 비슷한 경험인 천안문 사건)을 했을터이니 역시 당연한 건가? 그렇다면 나의 최건에 대한 애정은 무엇때문일까? 설마 최건 아저씨가 조선족이라서는 아니겠지. 나는 작년 중국에서 최건과의 인터뷰 후 ‘저 사람은 중국 대륙의 감성을 가지고 중국 록을 하는 중국 사람이야, 인간에겐 소위 핏줄이라는 것보다, 어느 나라에서 어떤 문화 속에서 자랐느냐가 더 중요해’라고 결론내렸었는데… 그래서 소위 외국에서 산 한국계 외국인들에게 한국인일 것을 강요하는 이상한 민족주의는 아주 글러먹은 거라고 결론 내렸었는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든 최건 공연을 보고 난 후, 유유자적 센트럴 파크를 구경하던 우리들은 의외의 특별한 이벤트를 보았다. 센트럴 파크 분수 앞 광장에서 벌어지는 타악기와 춤 퍼포먼스에서 사물놀이와 아프리카 타악이 번갈아 가며 연주되고 있었다. 신명나는 사물놀이와 관능적인 아프리카 타악 연주 사이의 거부감이나 적대감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아주 잘 어울려 보였다.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윤기가 흐르는 피부와 근육을 가진 몇 명의 춤꾼들이 연주에 맞춘 춤판(퍼포먼스?)을 벌이면서 구경꾼들을 춤의 세계로 이끌어 내고 있었다. 우리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 공연을 보았다. 한국 나이트 클럽에선 모두 똑같은 춤을 추고, 자신이 추는 좀 다른 춤을 신기하다는 듯이 구경하던 게 불만이었다던 재미 교포 친구는 서슴없이 그 춤판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번갈아 가며 연주되던 사물놀이와 아프리카 타악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판 안에서 놀기 시작했다. 각인각색의 춤까지 어우러져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지구상의 모든 인종과 민족들이 모여산다는 뉴욕의 에쓰닉 컬처 속에서 벌어진 음악 공연들은 많은 상념을 떠오르게 했다. 할렘의 제국(?)이 존재했기에(그것인 흑인들의 삶에는 행이든 불행이든) 힙합은 탄생할 수 있었고 머나먼 동쪽 나라까지 정복할 수 있었다. 그처럼 에쓰닉 컬처에서 비롯된 음악은 때로는 취향의 통합(정복)을 이루기도 한다. 한편으로 때로는 에쓰닉 컬처에서 비롯된 것은 정체성의 강요 혹은 적대를 낳기도 한다. 인종, 민족, 국가, 성, 모든 것들이 단순치 않다. 문화에 그것들이 뒤엉켜 들어 있어 무엇이 좋고 나쁜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게 한다. 때로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해 아름답게 조화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차이들’은 호기심과 신선함을 불러일으키고 에너지를 북돋워 주며, 다른 어떤 ‘차이들’은 거부감과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결국 다시 취향의 문제로 돌아가는 건가? ‘차이들’에 대한 의문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굴러간다. 19991015 | 송여주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