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v]의 이번 기획은 ‘지역의 음악 씬’이다. 보통 한국의 ‘인디 록’은 ‘홍대 앞’이라는 공간과 연관되어 사용되지만, 이미 다른 지역에서도 다양한 음악적 실천들이 수시로 벌어졌고, 또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인디 록이란 홍대 안에 있는 게 아니라 홍대 앞으로 집중된 결과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서울 이외의 도시와 그 음악적 경험과 실천 들을 포괄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이번에는 1980-1990년대에 ‘메탈의 도시’라고 불렸던 인천과 부산을 비롯해, 대전과 제주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다. 이외의 다른 지역들도 차차 정리하도록 애쓸 것이니, 지역 음악 씬에 대한 글을 쓰고 싶거나 정보를 제공할 분들은 연락을 부탁드린다. 이를 통해 지역 씬과 음악 팬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차우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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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시 | Demo (1999)

 

1998년 즈음의 이야기. 어느 날 대전에 아우성(지금의 퍼지덕)이라는 라이브 클럽이 생겼고, 그곳에서 조그만 공연이 있다고 했다. 나는 개인적인 일로 슬럼프에 단단히 빠져 몇 달간을 집에 틀어박혀 지내던 중이었다. 갑자기 나가고 싶었다. 우선 깨끗이 면도를 하고, 삔으로 긴 머리를 틀어 올리고, 입술을 빨갛게 칠했다. 한쪽 어깨가 흘러내리는 티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다. 그러고는 몇 달 만에 외출다운 외출을 했다. 자신이 데이빗 보위나 브라이언 몰코처럼 보이길 원하면서.

아우성은 중구청 근방의 설탕수박이라는 유명한 클럽 근처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썰렁한 공연을 보면서 줄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몇 병 마신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후부터 종종 그 꼬라지를 하고서 중구청 일대를 돌아다니곤 했다.

그때가 대전 다운타운의 부흥기였던 듯싶다. 나름대로 예술적인 분위기와 의욕이 부풀고 있었다. 친구들을 모아, 아우성에서 레이브 파티를 주최하기도 했다. 지금은 [GQ]에서 에디터로 있는 우철이 형이 디제잉을 맡아주었다. 나는 우철이 형이 원맨 체제로 찍은 [Grabbag]이라는 조야한 잡지를 보고 홀딱 반해서 그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번인가 그에게 재밌는 일을 벌여보자고 꼬드겼지만, 그는 대전 바닥에서 일을 벌이는 건 사양하겠다고 했다. 대전은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얌전한 곳이었기 때문에 이미 실패를 많이 겪어봤던 것이다.

코코어나 허클베리 핀 같은, 당시 언더그라운드의 슈퍼밴드들이 종종 아우성에서 공연을 하곤 했다. 관객도 꽤 들었다. 그래봤자 클럽 측이나 밴드 측이나 남는 건 없었지만. 그냥 하루 노는 것뿐이었다. 아마 사장이었던 지수 아저씨는 허리 꽤나 휘었을 것이다. 가장 큰 실패는 언니네 이발관이었다. 공연에 갔었던 우철이 형 얘기로는 관객이 알바누나 포함 네 명이었다던가. 그래도 성의 있고 즐겁게 공연을 해주었다고 했다.

그때 중구청 쪽에는 바와 클럽 들이 우후죽순으로 성행하고 있었다. 딱 기억나는 곳이 새벽 네 시에 가도 자리가 없던 말보로맨과, 옥수수라는 게이바(미혜 누나를 처음 본 게 여기였던가. 왠지 보고 싶은 사람.), 그리고 뒤늦게 생긴 비스켓이라는 라이브 클럽도 있었다. 아우성에는 그나마 근보 형이 죽치고 있었지만, 비스켓은 공연이 없는 날에는 정말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새로 생긴 클럽에서 친구들과 레이브 파티를 벌였는데, 며칠 후에 가보니 거짓말처럼 문을 닫기도 했다.

한 번은 비스켓에서 지수 아저씨와 근보 형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아마도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나 그런 풍의 슈게이징 음악을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아마추어 밴드로 보이는 무리가 수줍게 오더니 음악을 바꿔 달라며 잉위 맘스틴을 신청했다. 그런데 그 애들이 자리로 돌아가자 사람들이 모의라도 한 듯 소리 내어 웃는 것이었다. ‘쟤들은 얼마나 이 음악이 졸렸겠어.’ 이런 식의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약간의 실망을 하고 그들과 잘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아했던 곳은 설탕수박이었다. 외국인들도 많이 왔고 워낙 유명한 곳이기도 했지만, 젠 체 없고 소모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최신 유행 가요부터 조용필, 이글스, 블러 등 신나는 곡이면 따지지 않고 틀어댔다. 그저 왁자지껄 춤추고 마실 뿐이었다. 거의 출근하다시피 할 때도 있었다. 그곳에서 여자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문 닫을 때까지 놀다가 사장님과 해장국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은행동 으능정이 거리 끝 쪽에 룩스라는 이름의, 대전 밴드들 위주의 클럽도 생겼다. 누나와 누나의 남자친구가 속해 있던 밴드의 공연을 계기로 들렀다가 매주 가게 됐다. (누나의 밴드명은 빠가밴드에서 개명한 송충이였다.) 여러 밴드들이 공연했지만 그다지 기억나는 밴드는 없다. 마침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 뜨던 때라 펑크그룹들이 많았다. 실력은 다들 형편없었지만, 분위기는 꽤 좋았다. 송충이 빼고 기억나는 밴드는 정통 하드록을 했던 실력파 그룹 락신(이 밴드는 나중에 보컬을 바꾸고 하드코어 그룹으로 개종했는데, 그 보컬이 대전 락사모를 운영하던 내 친구의 애인에게 찝쩍댔다가 둘이 싸우기도 했다. 그 락사모 친구는 평생 음악을 하겠다고 공언하곤 했지만, 지금은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한 달 뒤 애 아빠가 된다.)이 있고, 또 한 밴드는 룩스의 간판 밴드였던 그룹 시다. 나는 그룹 시의 팬이었고 룩스에 가는 이유는 사실상 그 친구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룹 시는 브릿삘의 음악을 하는 삼인조 밴드였는데, ‘안녕하세요, 발라드 그룹 시입니다.’라고 유머 있게 인사하면 함성이 나오곤 했다. 꽃도 자주 받았고 당시 그 바닥에선 상당한 인기를 누리던 밴드였다. 내 또래들이었지만 사적으로 그닥 친하지는 않았다. 데모 씨디를 제작한다길래 연습실에 놀러가기도 했는데, 누나의 남자친구가 프로듀싱을 해주고 있었다. 연습실에서 숨죽여가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조악하게 녹음한 것치고는 소리가 꽤 잘 나왔다. 그때 받아두었던 데모 씨디는 언젠가 잃어버렸고, 최근 친구에게 복사 씨디를 얻어 MP3로 구워놨는데 아직도 가끔 듣는다.

한 달 전쯤에는 그룹 시의 베이스였던 기석이와 연이 닿아서 같이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이 친구들도 한때는 군대도 다 같이 다녀오고 같이 제대해서 쭉 음악을 하겠다고 했건만, 보컬 겸 기타였던 재웅이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드럼 치던 성호는 하와이에 있고, 기석이는 호주에서 띵가띵가 하다가 최근 한국으로 날라 왔다고 한다.

이하늘 동생이 운영하던 아폴로라는 힙합클럽도 기억난다. 레이브파티라고 해서 갔다가 손님이 다섯밖에 없는 어이없는 경험을 한 뒤로는 가지 않았다. 곧 문 닫겠지 싶었다. 최근에 그 클럽에서 놀던 친구를 하나 알게 됐는데, 들어보니 그쪽 사람들도 궂은일 겪으며 클럽을 운영해서 45RPM 등 잘나가는 힙합그룹을 여럿 배출했다고 한다.

그러다 나는 몇 년간 대전을 떠나게 되었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더 이상 음악에도 클럽에도 관심이 없어져 있었다.

p.s. 세월의 풍파로 틀린 기억들이 있을 수 있음.

info. 이 글은 [weiv] 김영진 에디터의 친구  故 김동석 군의 홈페이지에서 2006년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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