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 벌거벗은 댄스 리듬

“당신은 노래의 저작권을 가질 수 있지만, 리듬의 저작권을 가질 수는 없다.”
(더모트 허시, 자메이카 프로듀서)

스카 1세대의 사운드 시스템으로부터 점차 독립하기 시작한 레게 프로듀서들은 새로운 리듬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음악 생산 방식을 실험하기도 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놀라운 혁신이 일어났는데, 그 장본인은 듀크 레이드의 사운드 시스템에서 일하던 킹 터비 King Tubby였다. 그의 역할은 매스터 커터 master cutter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당시 사운드 시스템에서 쓰던 아세테이트로 만든 1회용 음반을 커팅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 아세테이트 음반을 ‘덥 판 dub plate’라고 불렀는데, 거기다가 녹음한 보컬과 기악의 음원들을 갖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는 몇 개의 스카 곡을 믹싱하다가 갑자기 연주를 줄여버리고 보컬만을 들리게 하다가는 곧 또 그 반대로 하는 등 보컬과 연주 트랙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밀었다 당겼다하고, 베이스와 트레블 노브를 멋대로 조작해서 원래 녹음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곡을 만들어냈다. “덥은 뼈다귀가 드러난 것과 같다. 리듬이 연주되고, 베이스라인은 물론 과도하게 강조된다. 그것은 그저 벌거벗겨진 댄스 리듬이다.”(더모트 허시)

20010319022744-kingtubby사진설명 : 새로운 음악 방법론, 덥을 ‘발견’한 킹 터비.
덥은 ‘버전’을 만들어내는데 아주 편리한 방식이었다. 킹 터비가 첫 번째 덥 레코드를 만들어낸 뒤, 곧 다른 프로듀서들도 이런 덥을 갖고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60년대 말에 이르러서 버니 리가 만든 모든 싱글의 B면은 A면과 같은 곡의 덥 버전으로 채워졌다.

이처럼 덥은 애당초 스튜디오의 믹싱 테크놀로지로부터 탄생했고, 레코딩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서 더욱 폭넓은 실험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24트랙 레코딩의 개발과 더불어, 리 페리와 조 깁스 Joe Gibbs 같은 프로듀서는 덥을 프리 재즈와 비슷해질 정도로까지 밀고 나갔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덥은 음악 장르가 아니라 음악 제작의 방법론이다. 그리고 이 방법론은 사실 듀크 레이드나 프린스 버스터같은 1세대 스카의 사운드 시스템 DJ들에서 연원한다. 연주 사이사이로 자신들의 캐치프레이즈와 사설을 집어넣고 때로는 즉석에서 리버브나 딜레이를 걸기도 했던 DJ들의 버릇이 레코딩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힘입어 음악 생산 방식으로 승격된 것이다. 전자 테크놀로지와 디지틀 레코딩, 그리고 자메이카 음악의 국제적 확산은 스카-레게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전반으로 덥이라는 방법론을 확산시켰으며, 특히 DJ들의 음악이라는 점에서 공통의 뿌리를 갖는 힙합, 테크노, 하우스 등의 장르들과 잡종교배되면서 그 자체가 마치 하나의 장르인 것처럼 자리잡았다. 일종의 전자음악으로 장르화된 덥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겠다. 즉 사운드 삭감에 의한 아프로-카리비언 사이키델릭 뮤직. 프로듀서가 자메이카 레게 경험의 중심이 되어, 그 뼈대가 되는 베이스와 드럼을 조명하기 위해 사운드에 청각적 X 레이를 투사한다. 보컬은 드물게 등장하고, 다른 악기들은 극적으로 불쑥불쑥 들락날락하며, 사운드 이펙트(딜레이, 리버브)가 거의 무작위적인 것처럼 추가된다.

덥은 전형적으로 테크놀로지의 ‘이상한’ 사용, 즉 테크놀로지의 하위문화적인 변용(이름을 만들어보자면 테크노 하위문화 techno-subculture)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이버펑크[주18]와 같은 경우도 이에 해당할 텐데, 정규교육을 통해 체계적 지식이나 숙련으로서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를 위해 열광적으로 빠져들게 됨으로써 실천적으로 익히게 되는 기술인 것이다. 당연히 여기에는 체계화된 기성의 코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제멋대로의 실험과 뜻밖의 결과들이 발생하고, 혁신의 가능성이 훨씬 폭넓어지는 것이다.

또한 이런 테크노 서브컬처는 테크놀로지를 뒷받침할 만한 장비들이 ‘정상적으로’ 공급되지 않는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기술적 자원이 부족한 자메이카의 경우, 모든 것들은 지속적으로 재활용되었다. 그것은 리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노래의 반주 트랙은 악기 솔로나 DJ의 랩에 깔리는 반주에도 마찬가지로 잘 봉사할 수 있었고, 그리고 나서 다시 더빙되었다.”(스티브 배로) 그래서, 악조건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정치적 아티스트’: DJ

20010319022744-bigyouth첨단의 테크놀로지가 매우 자주 아프리카 ‘루츠’ 문화와 결합되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덥과 떼놓을 수 없는 음악 형식은 토크오버 혹은 토스팅 toasting이다. 이는 쉽게 말하면 DJ들이 늘어놓는 사설인데, 트리니다드의 칼린다 등 아프리카로부터 영향받은 보스트 송 boast song의 전통에 놓여있으며, 아메리카의 랩도 이와 마찬가지다. 토크오버 역시 킹 터비에 의해 하나의 음악형식으로 정착하게 된다. 70년 그가 발굴한 최초의 토크오버 DJ인 유 로이 U Roy가 등장하는데, 그의 기묘하게 중얼거리는 독백은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뒤이어 아이 로이 I Roy, 프린스 재즈보 Prince Jazzbo 등의 토크오버 아티스트들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인기도와 중요성이라는 면에서 이들보다 한참 앞서있는 이는 빅 유쓰 Big Youth였다. 앞서 루드 보이 문화와 관련해서 잠깐 언급한 바 있지만, 빅 유쓰는 라스타주의의 영향을 받은 청소년들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 그는 파투아와 라스타의 어휘를 사용하는데, 특히 ‘두려움의 대상’으로서 라스타라는 자신감과 허세를 표현하는 드레드 dread를 강조한다. 빅 유쓰의 보컬이 지닌 불길한 톤은 아이티 그리오트 그룹의 시를 연상시키며, 가사는 사회적 불평등과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한다. 이해하기 편하게 랩 뮤지션들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빅 유쓰는 퍼블릭 에니미와 아프리카 밤바타를 합쳐놓은 듯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Big Youth “S.90 Skank”

방법론의 혁신과 더불어 리듬의 변화도 이루어졌다. 웨일러스처럼 국제 무대로 진출한 레게 음악이 백인 청중에 호소할 수 있도록 속도를 빨리 해서 리믹스된 반면, 자메이카에서는 느리고 무거운 리듬이 여전히 인기를 끌었다. 악화되는 사회정치적 배경을 반영이라도 하듯 리듬은 점점 더 느려지고 위협적으로 되면서 74년 경에 이르면 로커스 rockers라는 새로운 리듬이 발생하게 된다. 베이스는 좀더 강력하게 증폭되면서 실험적으로 되고, 드러밍 패턴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세션 전문 뮤지션이었던 슬라이 던바(드럼)와 로비 셰익스피어(베이스)가 이 리듬을 창시했으며, 이들은 이후 프로듀스까지 겸하면서 7~80년대 자메이카 음악의 주요 축을 담당한다.

그러나 70년대는 자메이카 레게에 위기가 닥친 시기였다. 사회주의 정당인 PNP People’s National Party와 친미적인 자메이카 노동당 JLP 간의 정치적 대립은 길거리에서의 충돌로 이어졌고, 게토의 삶은 점점 위험해져만 갔다. 게다가 통행금지령이 떨어지면서 자메이카 음악의 핵인 사운드 시스템의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게토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정치적 상황과 삶의 조건에 대한 DJ들의 수다를 듣는 것을 정부에서 그냥 놔두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70년대 말에 이르러 자메이카에서는 새로운 프로듀서들과 뮤지션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콕슨 도드의 시스템 출신인 링컨 ‘슈가’ 미노트 Lincoln “Sugar” Minot는 그 자신이 자메이카와 영국에서 성공한 가수이기도 하면서, 프로덕션을 설립해서 게토로부터 재능있는 인재를 발굴해냈다. 80년대 버전 레게에 붙은 ‘댄스홀’이라는 새로운 명칭은 그와 그의 프로덕션 출신 가수들에게 처음 부여된 것이다.(물론 이때까지의 댄스홀 음악이란 말 그대로 사운드 시스템이라는 댄스홀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말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슬라이와 로비는 그레고리 아이작스 Gregory Isaacs라는 80년대의 대표적 솔로 가수를 발굴해냈고, 블랙 우후루 Black Uhuru 등의 프로듀스와 리듬 섹션을 담당했으며, 아일랜드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덥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Black Uhuru “Guess Who’s Coming to Dinner”

그 외에도, 자메이카와 영국 자메이칸 공동체에서는 다양한 레게의 스타일들이 풍성하게 자라났다. 예컨대 옐로우맨 Yellowman과 이커 마우스 Eek a Mouse 같은 자메이카 DJ들은 친미보수적 정권을 비난하는 정치적인 토크오버를 하다가, 이것이 탄압당하자 전자의 경우는 적나라한 성적 가사를, 후자의 경우는 어린애들 만화처럼 유치찬란하고 아무 내용없는 가사를 토크오버에 담았는데, 이것이 슬랙 스타일 Slack style이다. 대처리즘 지배하의 80년대 영국에서는, 한편으로 랭킹 앤 Ranking Ann이라는 전투적 여성 토크오버 아티스트가 출현해서 억압적 정부를 강도높게 비난하는 “경찰 법안을 없애라 Kill the police bill”[주19]를 부른 반면, 다른 편에서는 러버스 록 Lover’s rock이라고 불리는 소울-레게 퓨전의 아무 생각없는 사랑노래 스타일이 인기를 얻기도 했다.

제 2차 자메이칸 침공

하지만 또 하나의 ‘자메이칸 침공’이 이루어지는 데는 또다른 리듬의 혁신이 필요했다. 그것이야말로 자메이카 음악의 스타일을 구획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혁신은 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테크놀로지의 ‘이상한’ 사용으로부터 탄생했다. 85년 프로듀서 킹 재미 King Jammy와 엔지니어 바비 ‘디지틀’ 딕슨 Bobby “Digital” Dixon은 변변한 히트곡 하나 없었던 무명가수 웨인 스미스 Wayne Smith의 “Under Me Sleng Teng”을 만들었고, 이 곡에 쓰인 리듬은 모든 것을 뒤바꿔놓았다. “끊임없고 최면적인 2 음표의 드론 베이스라인, 4-4의 도발적인 금속성 드럼 비트”가 프로그래밍 된 곳은 최신의 신디사이저가 아니라 지금으로 보면 거의 장난감 수준의 싸구려 카시오 키보드였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댄스홀 혹은 라가 ragga의 탄생이다.

Wayne Smith “Under Me Sleng Teng”

20010319022908-bujubanton사진설명 : 초기 ‘댄스홀’로 인기를 끈 부주 반튼
댄스홀의 스타일이 완성되는 데에는 토크오버 스타일의 변화 또한 동반되었다. 역시 킹 재미가 프로듀스한 윈스턴 릴리 Winston Riley의 “경보를 울려 Ring the alarm”는 윙윙거리는 금속성의 보컬을 마치 샘플링한 기계적 사운드처럼 반복하는 독특한 토크오버가 나타났고, 이는 곧 수많은 댄스홀 아티스트들에 의해 모방되었다. 부주 반튼 Buju Banton, 샤바 랭크스 Shabba Ranks 등이 이 새로운 음악의 총아로 등장했다.

댄스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다소간 엇갈리기도 한다. “한편으로 이 음악은 완전히 테크놀로지적이며, 다른 한편 리듬은 더욱더 자메이카적이다…사용된 테크놀로지의 정도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더욱 루츠해지며 상당히 나이든 청중들과도 공명하는데, 이는 그들이 자메이카 농촌에서 처음 들었던 것으로 반향해가기 때문이다.”(린튼 존슨) “댄스홀은 전통적인 ‘루츠 레게’와 일련의 음악적, 문화적인 관련을 갖지만 독자적 장르다. 그 도발성 및 뻔뻔스런 인위성은 루츠 레게의 농촌적인 쾌활함과는 크랙 crack(환각성이 매우 높도록 정제된 코카인)과 마리화나의 차이 만큼이나 다르다.”(롭 케너 Rob Kenner, 평론가) 하지만 댄스홀에 관해 대부분 동의하는 바는, 그것이 테크놀로지 및 아메리카 힙합과 관련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70년대 자메이카의 덥과 토크오버는 80년대 아메리카의 랩/힙합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물론 양자는 힙합을 다룰 때 언급했던 DJ 쿨 허크라는 ‘인맥’으로 이어져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두 음악은 기본적인 음악적 방법론 면에서 굉장히 비슷하다. 우선 둘 다 기본적으로 DJ로부터 출발했다는 점, 레코딩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컷 앤 믹스를 주요한 방법으로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아프리카의 구전 口傳 음악전통을 따른다는 점이 그렇다. 사회적 배경도 마찬가지다. 둘 다 흑인성을 강조하며, 대도시의 흑인 게토에서 탄생했고, 독특한 하위문화, 정치적 불온함, 범죄와의 관련 등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차이도 그에 못지 않게 있다. 우선 레게 리듬과 힙합 브레이크비트가 분명히 다르며, 힙합은 샘플링을 컷 앤 믹스의 주요한 방법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음악생산의 배치 면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덥이 프로듀서/엔지니어에 의해 믹스되고 DJ가 토크오버를 담당하는 반면, 힙합에서는 DJ가 음악을 믹스하고 랩은 MC가 맡는다. 덥/토크오버가 녹음 스튜디오와 디스코텍에서 탄생했다면 랩/힙합은 길거리 파티에서 나왔다. 물론 토크오버와 랩 사이에도 스타일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레게와 힙합은 레게와 펑크보다는 훨씬 친화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댄스홀의 경우는 과격한 가사 내용과 스타일 면에서도 힙합, 특히 갱스터 랩/힙합과의 친화성을 뚜렷이 보여준다.

Shaggy “Oh Carolina”

따라서 댄스홀은 힙합과 광범하게 융합되면서 미국 시장을 점령해 들어갔다. 샤바 랭크스는 80년대 말부터 미국 대도시의 힙합 청중들을 끌어들였고, 그의 미국 시장 첫 앨범에는 에디 머피 Eddie Murphy, KRS 원, 퀸 라티파 등이 참여했다. 92년 부주 반튼의 “붐 바이 바이 Boom bye bye”[주20]를 필두로 댄스홀이 미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슬라이 던바와 같이 눈치빠르고 재능있는 프로듀서는 힙합 리듬을 절묘하게 결합시키면서 샤카 데무스 앤 플라이어스 Chaka Demus & Pliers의 “Murder she wrote”를 세계적으로 히트시켰다.

90년대 초중반, 댄스홀이 불러일으킨 ‘제 2차 자메이칸 침공’의 파고는 계속 이어졌다. 92년 샤바 랭크스의 “Mr. Loverman”이 차트 3위에 오른 데 이어, 93년 초 섀기의 “오 캐롤라이나” 버전은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 같은 해에는 ‘댄스홀의 바닐라 아이스 Vanilla Ice’라고 불리는 스노우 Snow라는 백인 청년이 놀랄 만큼 완벽한 파투아 억양의 토크오버를 힙합 비트에 실은 “Informer”로 빌보드 싱글차트 연 7주 정상에 올랐다. 94년 이니 카모제 Ini Kamoze의 “Here comes the hotstepper”, 그리고 리바이스 청바지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더더욱 유명해진 섀기의 “Booombastic” 역시 차트 정상에 올라 댄스홀의 지배를 이어갔다. 19970222 | 김필호 [email protected]

[하략]

주18) 사이버펑크와 라스타주의: 문학 장르로서 ‘사이버펑크’의 대표작인 윌리엄 깁슨 William Gibson의 [뉴로맨서 Neuromancer]에는 우주 공간에 자신들의 ‘시온’을 건설한 미래의 라스타주의자들이 등장한다. “터널 전체에 계속적인 음악이 들리고 있었다. 음악의 종류는 ‘덥’이라는 것인데, 디지틀 부호로 입력시켜 놓은 팝음악의 방대한 데이터 가운데서 엮어 만든 관능적인 모자이크였다.”

주19) “경찰 법안을 없애라” 가사: 이 경찰 법안이 법률이 되면/거리에서 우리는 순전히 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지/미국처럼 이 경찰들을 무장시키면/넌 순수한 학살을 보게 될거야

주20) 반튼의 이 곡은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왜냐하면 그 내용이 동성애자를 처단해야 한다는 ‘과격한’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호모들은 도망쳐야 해/아니면 머리에 총알이 박힐 테니깐”). 이 때문에 댄스홀 음악, 더 나아가 라스타주의의 영향으로 자메이카에 만연한 동성애공포증이 사회문제시되었다. 샤바 랭크스도 이 논쟁에서 “당신이 전능한 신의 법칙을 어긴다면, 십자가에 못박혀 마땅하다”는 말로 문제를 가중시켰다. 한편 배드 브레인스의 H.R.조차도 성전환 수술에 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신이 내리신 것은 그대로 놔두는 편이 좋다”는 말로 답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