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게의 탄생: 카리브해의 불꽃

레게 음악의 고향을 찾아 카리브해로 떠나는 여정의 길잡이는 이미 펑크 및 영국 노동계급 하위문화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는 않은 문화연구자 딕 헵디지 Dick Hebdige가 맡을 것이다. 그는 자메이카를 중심으로 한 카리브해 음악의 기원과 역사, 그 파급력을 꼼꼼하고 세밀하게 추적한다. 그에 따르면, 레게 음악에 투영되어 있는 자메이카의 모습은 두가지다. 하나는 하얀 백사장과 파란 아열대의 하늘이 펼쳐진 카리브의 해변이다. 이는 동화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해적과 보물의 나라라는 이미지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의 빈민굴에서 펼쳐지는 현실이다. 밥 말리가 “콘크리트 정글”이라고 노래한 그곳은 뉴욕의 할렘에 못지않는,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지독한 흑인들의 게토다.

20010319124407-cutnmix사진설명: 딕 헵디지의 레게 연구서, [cut’n’mix](1990).
어느 것이 진실인가? 진실은 두 이미지 다 레게 음악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레게는 햇살이 내리쬐는 바캉스 해변에서도, 햇빛보다 더한 열기를 내뿜는 아스팔트 위를 가로지르는 깜둥이들의 지프차 속에서도 다 잘 어울린다. 심지어 그것은 때론 ‘반란의 음악’, 우리 식대로 표현하자면 ‘운동가요’이기도 하다. 해변을 무대로 한 여름 상품의 광고 배경음악으로 쓰기에 딱 알맞은 빅 마운틴 Big Mountain의 “Ooh Baby, I Love Your Way”나, 닌자맨 Ninjaman과 커티 랭크스 Cutty Ranks가 서로 군비경쟁이라도 하듯이 더욱 더 살벌한 가사를 내뱉는 것이나, 밥 말리가 “Get up, Stand up”에서 “네 권리를 위해 일어나/투쟁을 포기하지 마”라고 외치는 것이나 모두 치카치카하는 특유의 백비트가 들어간 레게 리듬에 얹혀있는 것이다.

헵디지의 간단한 요약에 따르면, 카리브해 연안 음악의 음악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개별적인 목소리보다는 집합적, 집단적 목소리가 우위에 서며, 둘째, 리듬, 특히 리듬의 반복이 일차적인 중요성을 갖고, 셋째, 기악 연주가 살아있는 인간의 목소리와 공통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아프리카로부터 유래한 다양한 지역의 흑인음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레게의 경우 중요한 것은 버전 version이라는 개념이다. 오늘날 레게뿐만 아니라 힙합, 하우스 등 다양한 흑인음악 및 그 변종들에서 나타나는 동일한 곡에 대한 여러 개의 버전은 레게의 전통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다양한 버전은 앞서 말한 리듬 및 반복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또한 고정성을 거부한다는 측면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헵디지는 그것이 절대성, 최종성이 존재하지 않는 음악에서의 민주적 원리라고까지 주장한다. 다소의 과장이 엿보이긴 하지만, 그럴듯한 해석의 버전이다. 무엇보다 버전이 중요한 것은 동일한 곡을 다양한 음악양식들을 빌어와서 새로운 문맥에 위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다는 데 있다(새로운 “의미”라고 말하기 꺼려진다면 대신 새로운 ‘감수성’ 혹은 ‘신체적/비신체적 효과’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뒤에 테크놀로지적인 혁신에 의해 본격화될 자메이카 스타일 컷 앤 믹스의 기본 바탕이 된다. 어떻게 보면 레게 그 자체가 카리브해 연안 지역 대중음악의 최근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뿌리

“아메리카 흑인 음악에 아프리카 전통을 포용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아프리카 중심주의라는 관념이 거의 없을 시절에, 자메이카에서는 문화적 뿌리에 매달려야 한다는 라스타파리안적 요소가 존재했다.” – 크리스 블랙웰 Chris Blackwell, 아일랜드 레코드 사장 혹은 자메이카 음악의 흡혈귀

카리브해 연안 지역의 대중음악은 그 기원이 노예의 음악이란 점에서 아메리카-유럽 흑인음악과 동일하다. 서인도제도에 흑인 노예들이 수입된 것은 1600년대 들어 사탕수수 재배가 본격화되면서 였는데, 이들 노예의 역사는 곧 저항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저항은 아메리카 흑인들과는 달리 노예제 철폐와 더불어 백인들의 식민지배 철폐를 이중의 목표로 삼는 것이었다. 마룬[주4]으로부터 시작된 이들의 기나긴 저항은 1804년 이 지역 최초의 흑인 공화국인 아이티의 독립, 그리고 1831년 자메이카 노예제 폐지, 1962년 자메이카 독립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역사책에서 더 자세히 찾아볼 수 있을 것이므로 이 정도로 줄이겠지만,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그것은 이들이 노예제 및 백인 식민권력에 대한 이중의 투쟁 속에서 매우 독특한 아프리카 지향적 문화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는 순수 아프리카 문화가 아니라, 식민 지배자였던 유럽인들의 문화와 필연적으로 교배된 것일 수밖에 없었으며, 거기서부터 이 지역 특유의 새로운 문화적, 사회적 정체성이 탄생했다(이를 좀더 넓은 의미에서의 컷 앤 믹스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이 지역의 대중음악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음악적, 언어적, 종교적, 사회적, 문학적 요소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지고 두드러졌던 요소는 언어와 종교였다. 파투아 patois라 불리는 이들의 언어는 영어의 아프리카적 변용으로, 영어와 아프리카 토속언어를 혼용했던 초기 노예들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파투아는 그 독특한 억양으로 말미암아 내용을 못 알아듣더라도 쉽게 식별할 수 있다. 또한 단순히 음성적인 특성에서만이 아니라 구문과 문법 면에서도 원산지 영어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뒤에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종교로 유명한 것은 바로 부두 Voodoo교인데, 이는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아프리카 토속 종교인 것이 아니라 , 다른 카리브해 연안 지역들에 비해 유럽문화로부터 덜 영향받았던 — 따라서 아프리카로부터 좀더 영향을 많이 받았던 — 아이티[주5]에서 발생한 것이다.

트리니다드의 음악: 스틸 밴드와 칼립소

이런 문화적인 움직임이 음악의 형태로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쿠바와 트리니다드 Trinidad에서부터였다. 쿠바는 아프리카 리듬에 스페인 음악의 선율을 얹은 룸바 rumba로 유명하지만, 더 주목할 만한 것은 트리니다드의 카니발 전통이다. 이제 잠시 눈길을 돌려 트리니다드 노예들의 카니발 현장으로 가 보자.

플랜테이션 농장의 노예노동으로 단련된 근육을 과시하는 흑인 젊은이들이 손마다 몽둥이를 들고 두 패로 나뉘어 눈을 부라리며 마주보고 서 있다. 바야흐로 몽둥이싸움 stick-fighting의 시작인 것이다. 이런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양 패거리의 맨 앞에 선 두 사내는 잔뜩 뻐기며 노래와 사설을 주고 받는다. 이 둘은 각 패의 지도자격인 빅 파피 big pappies(우리말로 하면 대부)이고,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칼린다 calinda로 자기과시와 상대방에 대한 모욕으로 가득찬 것이다. 들고 선 몽둥이는 지금은 타악기를 두드리는 데 쓰이지만, 칼린다가 끝나면 곧 타격의 대상은 북의 가죽에서 상대방의 살가죽으로 바뀔 것이다.

원래 트리니다드 카니발의 기원은 부유한 프랑스인들의 축제였지만, 프랑스 식민통치로부터 독립을 얻은 다음부터 그것은 해방된 노예들이 자유를 기념하는 축제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백인 지배계급들은 이 카니발에서 특히 불온하고 폭력적인 요소인 몽둥이싸움을 억압하고 제지하려 했다. 그 결과 이 전통은 슬럼으로 숨어들었다가 북-장죽 밴드 tambour-bamboo band라는 형식으로 카니발에 재등장했다. 그러나 유사시엔 언제든 무기로 돌변할 수 있는 타악기는 당국의 의심의 눈초리를 받다 또다시 금지당했다. 그렇게 되자 카니발에서 리듬 섹션의 공백이 발생했으며, 이는 1937년 스틸 밴드 steel band의 등장에 의해 극적으로 타개되었다. “강철의 오케스트라”라고 불린 이 밴드는 양동이, 쓰레기통, 프라이팬, 석유통 등으로 새로운 리듬 섹션을 창조해냈다. 카니발은 2차 대전 동안 슬럼 지구에서 명맥을 유지했는데, 그 와중에도 이 새로운 리듬 파트의 발전은 지속되었으며, 그중 프라이팬을 든 팬맨 panmen이 밴드의 지도자로 자리잡았다. 팬맨은 몽둥이싸움의 빅 파피와 같은 터프가이의 이미지를 여전히 지니고 있었다.

리듬이야말로 아프리카 음악적 전통의 핵심이자 전세계 피억압 흑인들의 저항과 자유를 환기시키는 근본 요소라는 점은 이미 여러 사람들에 의해 지적된 바 있다. 하지만 악기와 무기를 오가며 지배권력의 억압으로부터 탈주의 선을 그려내는 트리니다드 카니발의 광경이야말로 리듬의 혁명성에 대한 완벽한 예증이라 하겠다.

스틸 밴드와 마찬가지로 카니발의 몽둥이싸움에서 유래한 칼립소는 명칭에서부터 칼린다를 연상시킨다. 칼린다의 후예답게 자기과시 및 상대방에 대한 모욕을 주 내용으로 한 가사는 점점 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주제에 접근하면서 외설적이고 신성모독적인 가사로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발전했다. 레게와 마찬가지로 칼립소도 밝고 명랑한 리듬 속에 사회에 대한 적의를 표현하는 묘한 아이러니를 보여주었지만 30년대 이후 칼립소가 국제적 인기를 타고, 62년 트리니다드가 독립하면서 사회비판적 전통은 많이 쇠퇴했다.

스틸 밴드와 칼립소로 대표되는 트리니다드의 음악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메이카의 레게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사회비판적이고 저항적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뽐내는 듯하고 거만한 허세를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또 대도시 슬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자메이카와 트리니다드를 결정적으로 달라지게 만드는 것은 바로 라스타파리안주의 Rastafarianism (라스타주의)다.

라스타: 종교와 정치

20010319124407-rastafari사진설명 : 자메이카, 레게, 아프리카를이어주는 정신적 축이 바로 라스타주의다.
라스타주의는 종교적 컬트인 동시에, 북중미 흑인 인권 운동과 관련된 이데올로기적, 사상적 흐름이기도 하다. 라스타주의를 상징하는 두 인물은 하일레 셀라시에 Haile Selassie와 마커스 가비 Marcus Garvey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셀라시에는 에티오피아 황제로서 라스타주의자(라스타)들의 종교적 숭배의 아이콘이었다. 다른 한편 마커스 가비는 그리오츠로부터 이어지는 아프리카 중심주의의 사상적 전통을 흑인운동의 이데올로기로 끌어올리고, 만국 흑인 진보 연합 Universal Negro Improvement Association(UNIA)이라는 운동조직을 결성하여 활동한 운동가였다.[주6] “흑인의 성서”라고 불리는 성스러운 피비 the Holy Piby를 통해 드러나는 라스타주의의 종교적 측면은 그 정치적, 사회운동적 측면으로서 UNIA가 내세운 아프리카 회귀 운동과 융합되어 거의 일체를 이룬다. “군주는 이집트 밖으로 나올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곧 하느님을 향해 자기 손을 뻗칠 것이다.”(시편 68장) “에티오피아, 우리 조상들의 땅이여!”(마커스 가비) “아프리카를 보라, 흑인 왕의 즉위식이다. 그는 구세주가 될 것이다.”(제임스 모리스 웹 James Morris Webb, 라스타 예언자)

최초의 라스타 노래들은 기본적이고 전통적인 찬송가들로서, 피비로부터 취한 것들이다. 밥 말리를 낳은 웨일러스 The Wailers도 초기에는 이런 찬송가들을 레게풍으로 녹음하기도 했다(예를 들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Amen” 같은 곡). 레게풍 리듬이 교회 찬송가에 도입된 반면, 성서에서 사용되는 어휘, 우화, 상징들이 레게 안으로 들어와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다. 바빌론/시온은 각각 아메리카-유럽에 지배당하는 자본주의적, 상업적 세계로서 “이승의 지옥”인 자메이카와, 그에 반하는 이상향이자 순수한 자연적 세계로서 아프리카(특히 에티오피아)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아마게돈, 엑소더스 등은 바빌론 세계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시온의 땅을 향해 떠나려 하는 라스타들의 목표, 꿈, 희망을 표현하는 것으로 변했다.

가비의 야심찬 국제적 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훨씬 더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띤 몇몇 라스타 예언자들에 의해 라스타주의는 종교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 비로소 자메이카 민중들 사이에 강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알콜, 담배, 육류 및 생선류를 금지하고 심지어 소금 같은 일반적인 조미료도 금지하는 대신, 그들은 ‘간자 ganja’라고 부르는 마리화나를 “지혜의 풀”로 부르면서 종교적 관습으로 즐겨 피웠다. “신은 소떼를 기르기 위해 목초를 만들고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한 약초[간자]를 만들어서, 대지로부터 음식이 생기도록 했다.”(시편 104장 14절)

라스타의 상징이자 그 외모를 특징짓는 땋은 머리(드레드록 dreadlock) 또한 그들의 금기와 관련된다. 라스타 교리에 따르면 어떤 류의 신체 절단도 금지되어 있으며, 이는 머리카락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빗질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드레드록은 그들이 자르지도 못하는 긴 머리를 간수하는 방법이었다.

라스타주의자들 사이에는 에티오피아와 아프리카적 뿌리에 대한 공통의 관심이 있지만, 이것이 공식적인 교회나 지도자로 구체화되지는 않는다는 묘한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이런 조직적 느슨함이야말로 라스타주의의 특성인 동시에 힘이다. 그들은 개인성 individuality을 무엇보다도 존중하며, 이것이 각자의 신념이나 의견 충돌을 막아주는 융통성을 발휘한다. ‘우리’라고 할 때 ‘we’를 쓰는 대신 ‘I and I’라고 쓰는 독특한 파투아 어법은 이를 표현해주는 한 예다.

“자메이카인들은 개인성을 유지해왔다. 세계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매우 조직화된 사회에 살고 있을 때 이는 매우 매력적이다. 자메이카인은 일종의 자연적 반란자, 시스템에 대한 반란자이며, 이는 항상 대중들에게 호소력이 있다.”(크리스 블랙웰)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 라스타주의는 자메이카 하층 계급, 특히 킹스턴 게토에서 많은 추종자를 획득했으며, 점차 자메이카 정부와 긴장관계에 놓이면서 전투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특히 간자의 합법화 요구를 둘러싼 투쟁).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라스타주의는 점점 번성해서 60년대 말에는 중간계급, 특히 10대 남성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기에 이르고, 화가, 조각가, 시인 등 수많은 라스타 예술가들을 배출했다.[주7]

레게, 흑인 왕의 음악

“레게는 세상에 라스타주의를 전파하는 메시지다.” – 라스 마이클 Ras. Michael, 레게 가수

20010319124543-bobmarley사진설명 : 레게의 왕, 밥 말리.
하지만 무엇보다도 라스타주의와 직접 연관되어 일체를 이루는 것은 레게 음악이다. 레게라는 말 자체가 왕을 의미하는 라틴어 Regis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레게의 명칭 그 자체를 놓고도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하지만 명칭의 기원은 비교적 분명한데, 그것은 메이탈스 the Maytals의 1968년 히트 싱글 “Do the Reggay”에서 유래했다. 밥 말리 자신의 주장처럼 그것이 “왕의 음악”인지, 아니면 다른 몇몇이 주장하듯 매춘을 의미하는 킹스턴 거리 속어인 “streggae”의 변용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자메이카 대중음악이 애초부터 강한 종교적 성격[주8]을 띠고 있었으며, 따라서 종교로서 라스타주의와 60년대 이후 자메이카 대중음악으로서 레게가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관이 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앞서 잠깐 언급했다시피, 아메리카 흑인음악과 마찬가지로 자메이카 흑인음악도 아프리카 전통의식과 기독교 예배의식의 묘한 혼합으로부터 탄생했다. 예배와 설교시에 주고 받는 말들의 리듬은 토크 오버 talk over라는 방식으로 레게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보면 라스타주의와 레게로 대표되는 자메이카의 대중문화가 철저하게 컷 앤 믹스의 방식으로 구성되고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컷 앤 믹스의 두 가지 주요 원천은 기독교 신앙체계 및 의식과 아프리카 중심주의 사상 및 전통의식이다. 그로부터 탄생한 것은 바로 라스타라는 새로운 주체성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의 고찰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빼먹고 있다. 그것은 자메이카 대중음악을 단순한 종교음악의 파생물이 아니도록 만드는 또하나의 원천이다. 여기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잠시 또 한 가지 레게의 용어를 둘러싼 약간의 혼란을 짚고 넘어가 보자.

지금까지 사용한 레게라는 명칭은 60년대 이후 자메이카 대중음악을 통칭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제 레게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며 언급할 스카, 록스테디, 댄스홀 등은 모두 이런 의미에서 레게에 포함되는 일종의 장르들이다. 하지만 또한 레게는 스카와 록스테디 이후 70년대 들어 리듬의 변화와 더불어 밥 말리 등에 의해 자메이카 대중음악이 국제적으로 히트하던 당시의 음악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스카와 레게, 록스테디와 레게 등등은 서로 다른 음악이 아니라, 동일한 레게 음악의 여러 버전들이다. 각각의 용어는 리듬의 차별성에서 기인하며,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리듬의 변화야말로 자메이카 대중음악의 시기 및 장르를 구분해주는 핵심적인 요소다. 19970222 | 김필호 [email protected]

주4) 마룬 maroon: 17세기 중엽 스페인 지배자들로부터 해방된 흑인 노예들이 영국 크롬웰의 침공이 시작되자 바르바도스 Barbados 등의 산악지대로 숨어들어 만들었던 저항적 공동체. 마룬은 스페인어로 ‘휘어잡을 수 없음’을 뜻하는 cimarron의 변형이다.

주5) 그리오츠 Griots: 1804년 이후 유럽 출신 엘리트 흑인들이 아이티를 지배하면서 카톨릭을 공식 종교로 만들자, 이에 반발한 흑인 작가 및 예술가들이 결성한 모임. 그리오츠는 아프리카 유산에 대한 자부심을 고양시키는 작업에 착수했지만, 이는 현실에 기반한 것이라기보다는 유럽인들의 비난에 맞대응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신화화한 측면이 강했다.

주6) 마커스 가비(1887-1940): 뉴욕 할렘에 근거지를 둔 최초의 중요한 아메리카 흑인 민족주의 운동을 조직한 카리스마적 흑인 지도자. ‘아프리카로 돌아가자’를 슬로건으로 한 그의 운동은 고향인 자메이카에서부터 시작되었으나, 호응을 얻지 못하자 미국으로 건너가 UNIA를 조직한다. 스스로를 “흑인 모세”라고 칭한 그의 흑인 분리주의 및 인종적 순수주의 이데올로기는 1920년 할렘의 리버티 홀에서 열린 UNIA 국제 회의를 통해 절정에 달하지만, 몇 가지 사기 및 협잡 행위로 그와 UNIA 핵심 멤버들이 유죄판결을 받은 뒤 급속도로 쇠퇴하고, 결국은 추방되어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주7) 라스타주의의 번성: “자메이카인 10명중 6명은 라스타다.”(새뮤얼 브라운 Samuel Brown, 라스타 시인-정치가). 이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오늘날 자메이카 성인 중 대략 65%, 21세 이하 인구중 80%는 정규적으로 간자를 피운다고 한다.

주8) 기독교, 레게, 라스타주의: “교회는 보컬 스타일과 가사 면에서 레게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많은 라스타 송이 찬송가로부터 나왔다. 따라서 레게를 통해 라스타파리아니즘이 수용될 수 있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사실 라스타파리아니즘의 확산은 전적으로 레게에 빚지고 있다.” (린튼 퀘지 존슨 Linton Kwesi Johnson, 영국 출신 라스타 시인, 레게-시 뮤지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