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97년에 쓰여진 글입니다. 역시 원래는 책으로 묶어내려던 기획의 일부였으나 사정상 발표되지 못하고 묻혀있던 글입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훨씬 더 많이 알려지고 상황도 많이 변했지만 특히 레게의 역사에 관련되는 부분은 여전히 유익하다고 생각됩니다. [weiv]에서는 4회에 걸쳐서 이 글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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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the matter with the black men? (Fugees, “Vocab”)

투팍 샤쿠르 Tupac Shakur가 죽은 지 꼭 반년만에, 항간에는 그의 살해에 배후로 지목되던 이스트코스트의 라이벌 “악명높은” 비아이지 Notorious B.I.G.가 역시 총에 맞아 죽었다. 언론들은 즉각 이에 주목했고, 뿌리깊은 이스트-웨스트코스트 갱스터 랩 진영 간의 갈등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랩의 종말을 점치고 있다. [뉴스위크 Newsweek]에 “갱스터를 위한 장송곡”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는 이런 경향을 대표할 만한데, 그것은 1990년대 들어 랩 음악계의 패권을 장악한 갱스터 랩의 추문을 낱낱이 들춰내면서, 결국 갱단과 연루된 음반계 거물들이 뮤지션의 죽음으로 단단히 한몫 챙기고 있다고 고발한다. 미국 사회 주류의 시선에서 랩 음악에 던지는 마지막 충고는 간단하다. “음조를 낮추게 되면 돈은 잃게 될지 모르나 사람의 생명만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이 “죽기 싫으면 목소리를 낮춰”라는 위협으로 들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위협은 단순히 몇몇 갱스터 랩 진영에만 해당되지는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도 든다. 많은 랩 음악이 목소리 높여 사회를 고발하고 비난하는 내용을 직간접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갱스터가 랩의 전부는 아니지만,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것이 랩의 주류로 부상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1995년 쿨리오의 히트곡 “Gansta’s Paradise”이라는 제목이 보여주듯이.

잘 알려져 있다시피 힙합은 1970년대 말~1980년대에 걸쳐 탄생하고 성장한 미국 흑인 게토 지역의 청소년 문화이고, 랩은 게토 흑인들의 민속 음악 folk music 인 셈이다. 게토는 빈곤과 각종 범죄의 온상이고, 갱스터의 서식지다. 그래서 갱스터가 랩에서 주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찌 보면 그것이 정확한 현실의 반영 — 자신들의 솔직하고 진실한 삶의 얘기를 담는다는 점에서 —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게토의 삶이 과연 갱단의 삶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보는 것은 결국 모든 ‘깜둥이’를 범죄자나 거지 취급하는 보수적 백인들, 혹은 더욱 어이없게도 이런 백인들을 그대로 준거 모델로 삼는 아시아계 상점 주인들의 시각일 것이다. 이미 상업화되어버린 갱스터를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랩 음악에 가능태로서, 혹은 현실태로서 존재한다고 믿는 이유 중 하나는, 여전히 굴종, 차별, 소외, 빈곤, 범죄 등과 마주하고 있는 흑인적 삶이 이들로 하여금 대안적인 문화적, 음악적 형식을 추구하게끔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대안’이 꼭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숨어 있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저 유명한 노래, 로버타 플랙 Roberta Flack 의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를 힙합 비트로 약간은 장난스럽게 불러제낀 푸지스 Fugees를 불러와 보자. 그들은 과연 갱스터를 넘어선 랩-힙합의 대안일 수 있을까?

Some seek stardom, but they forget Harlem?

20010319123521-fugees_score사진설명 : 푸지스, [The Score].
푸지스를 단번에 수퍼스타로 밀어올린 “Killing Me Softly…”만을 듣는다면, 이들이 단지 반짝하다 지는 힙합 그룹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으니까. 그러나 그들의 두 번째 히트곡 “Ready or not”의 첫 소절만 들어도 그런 생각은 싹 달아나버린다. 노래를 부르는 로린 “엘 부기” 힐 Lauryn “L-Boogie” Hill의 카리스마적인 목소리는 받아들일 ‘준비됐건 말건’ 듣는 이를 압도한다. 많은 이들이 푸지스의 놀라운 성공 비결을 로린의 목소리에 돌리는 것도 무리가 아님은 분명하다. 명문 콜롬비아 대학 재학생에다가 [시스터 액트 II]라는 영화를 통해서도 얼굴이 알려진 이 재주꾼에게 솔로로 데뷔하라는 주위의 유혹이 쏟아졌으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이 가는 일이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그녀는 아마도 면면히 내려오는 흑인 여가수의 전통에 1990년대의 디바 diva로 이름을 남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곡들이 수록된 앨범 [The Score]가 밀리언 셀링을 기록하면서 이런 압력은 더욱 거세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푸지스의 성공은 겉으로 두드러지는 로린의 목소리에만 의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The Score]는 지금까지 나온 그 어느 랩-힙합 앨범보다도 다양하고 풍부한 음악적 경향들을 아우르고 있으며,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샘플링과 리믹스의 뛰어난 활용이다. 예컨대 “Fu-gee-La”는 백인 소울 가수 티나 마리 Teena Marie의 발라드 곡인 “Ooh La La La”의 샘플링을 기초로 하여 두 개의 힙합 버전과 한 개의 덥 dub 버전을 만들어내고 있다. 마지막 덥 버전의 믹스를 담당한 것은,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자메이카 레게/덥의 장인들인 슬라이 던바 Sly Dunbar와 로비 셰익스피어 Robbie Shakespear다. “Zealot”은 샘플링된 두왑 doo-wop 스타일의 코러스를 깔고 있으며, “The Beast”에서는 덥 풍의 딜레이 걸린 사운드와 짧게 끊는 스크래치, 반대로 길게 늘어지는 베이스라인 등이 기존의 힙합 리듬에 덧씌워져서 훨씬 훵키한 느낌을 주고 있다. 또한 앨범과 동명곡인 “The Score”에서는 앨범에 수록된 거의 전곡을 다시 샘플링해서 리믹스하는 재치를 보이고 있다.

두 남성 멤버, 와이클레프 “클레프” 진 Wyclef “Clef” Jean과 프라카즈렐 “프라스” 미첼 Prakazrel “Pras” Michel의 역할은 단순한 백업 래핑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프로듀스를 책임지고 있는 클레프는 음악적 리더인 동시에 뛰어난 기타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퍼블릭 에니미와 섀기 Shaggy를 반반쯤 섞어놓은 듯한 프라스의 랩에서는 자메이카 음악의 느낌이 그 독특한 억양과 함께 전달된다.

이들의 데뷔 앨범 [Blunted On Reality]은 음악적으로는 [The Score]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준 바 있다. 같은 레이블(러프하우스 Ruffhouse) 소속인 사이프러스 힐 Cypress Hill의 프로듀서인 조 “도살자” 니콜로 Joe “the Butcher” Nicolo가 매스터링에 참여하기도 한 이 앨범은 2집에 비해 훨씬 빠르고 훵키한 리듬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며(“Nappy Heads”, “Boof baf”), 프리스타일 랩[주1]의 활용으로 길거리 음악 본연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Freestyle Interlude”). 목사의 아들로 자라서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기타를 잡아온 클레프는 “Vocab”의 전반부에서 오직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힙합 리프(?)를 만들어나간다. 로린이 숨도 쉬지 않고 20여 초간 속사포처럼 랩을 쏘아대는 “Some Seek Stardom”이나, 그밖에도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재즈, 소울, 레게 사운드의 적절한 삽입은 2집의 성공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님을 입증한다. 사실, 뉴저지 출신인 이들은 이미 웨스트코스트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서 상당히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Louis Armstrong said, “Oh, what a wonderful world!”
But what the fuck was so wonderful?

20010319123522-fugees1사진설명 : 푸지스, [Bluted on Reality].
뉴욕에서 인디 레이블을 경영하면서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인 캐롤 쿠퍼 Carol Cooper라는 평론가는 뉴저지 게토의 힙합 씬을 “뉴욕만큼 문화적으로 강렬하지도 않았고, 필라델피아나 디트로이트, 오클랜드, 워싱턴만큼 문화적으로 응집적이지도 않았다. 따라서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아노미와 소외의 정서를 생산했다”고 이야기한다. 뉴저지 씬의 힙합 뮤지션들은 갱스터보다는 컬리지 랩 쪽으로 분류되는데, 퀸 라티파 Queen Latifah와 노티 바이 네이쳐 Naughty By Nature는 “의식적 현실” 랩이라는 독자적인 조류를 만들어냈고, 피엠 돈 P.M. Dawn은 흑인의 시대정신에 랩이 일부로서 포함될 것을 추구하면서 랩에 영적인 담론 spiritual discourse을 주입하려 했다. 또, 우리에겐 비교적 생소하지만 푸어 라이쳐스 티처스 Poor Righteous Teachers나 수어사이드 파씨 Suicide Posse 등은 이슬람교, 라스타파리아니즘, 아프리카 중심주의 이데올로기 등을 랩 음악과 결합시키려는 시도를 보였다.

이런 뉴저지 씬의 경향은 아프리카 밤바타 Afrika Bambaataa에서부터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 Arrested Development로 이어지는 컬리지/스피리추얼 랩의 흐름과 일맥상통하는데, 이와 관련해서 쿠퍼는 “자유롭게 떠도는 흑인의 ‘세계정신'”이 랩이 지닌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집단적 상상력을 사로잡아서 흑인 공동체에 새로운 능동적 힘을 부여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그것은 198-90년대 들어 새로이 나타난 흑인 운동의 흐름과도 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루이스 패러칸[주2]과 ‘백만인 행진 Million Man Marc’으로 상징되는 이 운동은 결코 간단히 좋다 나쁘다로 치부해버릴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을 지닌 것이지만, 랩 음악과 관련해서 갖는 의미는 명확하다. 게토 흑인들의 삶 속에는 경찰, 총싸움, 마약거래 등 부정적인 측면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지향적이건 ‘정신적, 영적’이건 간에, 대안적인 랩이 꾸준히 청중을 확보하며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흑인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긍정적, 능동적 힘 덕분이었다.

푸지스는 뉴저지 씬으로부터 이런 컬리지/스피리추얼 랩의 일반적 성향을 이어받고 있는 한편, 또 나름의 특별한 측면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잘 알다시피 푸지스란 이름은 피난민을 뜻하는 ‘refugee’로부터 나온 것이다(그래서 그들은 그 이름 뒤에 피난민 캠프 refugee camp라는 이름을 덧붙인다). 클레프와 프라스가 피난온 아이티 난민의 자손이라는 것은 이런 이름을 지은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들의 음악을 점점 ‘맛이 가고’ 있는 갱스터 랩의 억압적 지배로부터 피난민 캠프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이들은 단순히 흑백 대립의 문제가 아니라 흑인 사회 내부의 문제, 특히 그들이 몸소 체험한 아이티나 자메이카 계 흑인에 대한 흑인 내부의 차별 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이중의 피난민인 셈이다. 1집의 “Da Kid From Haiti Interlude”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겪었던 차별의 경험(“에이, 너 X같은 아이티놈이잖아… 미안해 난 아이티놈들관 말 안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이들의 응답은 피난민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가사에서 드러내고 음악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마게돈이 온다/넌 곧 그러리란 걸 안다/난 총을 곁에 두고 때가 되면 달려갈 거다/바빌론 편에 선 애들이 너처럼 앞에 나서려 한다/넌 자이온 산 편에 서 있다는 걸 안다”(“The Beast”)고 노래할 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게 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수많은 길거리 은어다. 그것들은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암호다… 가사에서 우리는 몇몇 심각한 문제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 밴드와 랩,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 놀라게 된다. (클레프 인터뷰)

아마게돈, 바빌론, 자이온…이들은 라스타의 어휘를 빌어서 1990년대 미국 사회의 암울함과 흑인들의 희망을 노래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버팔로 병사'[주3]로 칭하며, 자신들의 작업실을 밥 말리의 터프 공 Tuff Gong 스튜디오에 비유하고, 그의 “No Woman No Cry”를 1990년대의 음악으로 부활시킨다.

I refugee from Guantanamo Bay

푸지스가 자메이카 음악을 도입함으로써 피난민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1집의 “Temple”같은 순수한 루츠 레게 넘버의 삽입으로부터 2집 앨범의 전반적인 덥 리믹스로 발전해 나간다. 음악뿐만 아니라 가사의 내용도 1집의 직설적이고 즉흥적인 거리의 외침으로부터 좀더 라스타적이고 심각하며 진지한 내용으로 변했다. 쿠퍼가 푸지스의 [The Score]를 밥 말리의 [Exodus]에 비유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갱스터 랩으로부터의 피난민들이 힙합 이외의 가장 주요한 음악적 원천으로 레게를 선택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선 이들이 레게의 고향인 자메이카 인근에 위치한 카리브해의 아이티 출신이라는 점이 그 첫번째 이유다. 두번째로는, 이들은 성장하면서 프랭키 크로커 Frankie Crocker, 레드 얼러트 Red Alert, 미스터 매직 Mr. Magic등 80년대를 풍미한 흑인 라디오 방송 DJ들의 강력한 영향 하에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들도 뒤에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레드 얼러트는 랩과 레게를 믹스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크로커는 블루스에서 블론디에 이르는 광범위한 청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푸지스가 보여주는 랩과 레게의 결합, 더 나아가 소울, 재즈, 훵크 등 다양한 흑인음악 장르와의 결합은 이런 성장과정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레게 그 자체, 그리고 여타 자메이카 음악들이 지닌 혁명적 에너지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밥 말리를 비롯한 몇몇 레게 뮤지션들의 음악이 ‘혁명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메리카 대제국의 변방 식민지에서 태동한 민속음악이 어떻게 ‘본토’ 대중음악계를 뒤흔들어놓을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일은 그 자체로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미국식 대중음악이 지배하는 우리의 경우를 돌아보는 데도 어쩌면 도움이 될 지 모른다. 미국 이스트코스트의 피난민 캠프로부터 출발한 우리의 첫 여정은 우선 카리브 해를 향해 가서, 자메이카 음악의 뿌리와 그 전개 과정을 찾아가는 일이 될 것이다. 19970222 | 김필호 [email protected]

주1) 프리스타일 랩 freestyle rap: 거리문화로서 랩의 원형으로, 길거리에서 흑인들끼리 주고받는 말싸움에서 유래했다. “프리스타일이란 MC가 자신의 머리 속에서 곧바로 가사를 흘러나오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즉흥적이며 자연발생적이고, 오직 가장 창조적인 래퍼들만이 잘 할 수 있다. 그것은 MC들 간의 일종의 경합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훌륭한 프리스타일을 뱉어내기 위해서는 뛰어난 재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MC가 준비태세로 긴장을 유지하게끔 도와주기도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연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비공식적인 랩 사전 The Totally Unofficial Rap Dictionary, http://www.sci.kun.nl/thalia/rapdict/)

주2) 루이스 패러칸 Louis Farrakhan(1933~): 흑인 분리주의 운동 조직인 이슬람 네이션 Islam Nation의 지도자. 말콤 엑스(Malcolm X)의 맹렬한 유산의 후계자인 동시에, 말콤 엑스가 깨뜨리려 했다가 암살당한 이슬람 네이션 신앙의 지지자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종 분리주의자로서, 그는 길거리의 진실성과 흑인 민족주의를 동성애자들과 유태인들 및 낙태, 미혼모에 대한 우익적 공격과 결합시킨다. 1995년 12월 그가 중심이 되어 조직한 워싱턴 DC의 ‘백만인 행진’에는 수십만이 참여해서 미국 흑인들의 단결과 ‘가족의 가치’에 대한 충성을 확증했다.

주3) 버팔로 병사 Buffalo Soldier: 밥 말리의 유작 히트곡. 아프리카 노예를 선조로 한 흑인 병사가 결국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인디언들을 죽여야 한다는 딜레마를 노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