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016050957-book2오늘날의 대중 문화는 영화와 음악으로 집약된다. 그리고 영화와 음악은 ‘대중’ 문화로서, 때로는 대중 ‘문화’로서의 성격을 부여받는데, 이는 산물과 평가로 결정된다. 때문에 하향 평준화 혹은 ‘고급’ 문화에 대한 상반 개념으로서 설정된 ‘대중’ 문화가 아닌, 대중 ‘문화’로서의 지향성은 곧 개론서를 위시한 학술 서적의 등장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영화가 기술이 아닌 학문의 영역으로 포함되면서 증가한 것 중에 하나는 무수한 관련 서적의 출간이었다. 다시 말해서 관련 서적의 출간은 곧 그 영역의 ‘문화化’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와 음악, 두 장르는 혼합과 독립의 엇갈림을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평등한 것 같지는 않다. 특히나 국내에서 발간된 음악에 관한 책들을 살펴보면 저으기 실망스럽기까지 하는데, 단순한 앨범 소개에 그치는 명반 100선이라든가 동떨어진 현실감과 예시를 가지고 쓰여진 사회 문화 진단 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벼움’은 가치의 하락과 무관심을 불러올 수 있으며 ‘대중’ 문화 속에 빠져 들어가 스스로의 궤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와 비교할수록 더욱 더 초라한 현실이다. 1998년에 발간된 [입 닥치고 춤이나 춰](신현준 외 지음, 한나래)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면서 쓰여진 자기 반성적인 책이다. 제목에서 풍기는 경박함과는 달리 머리말에서부터 모호하면서도 강경한 저자의 의도가 드러나는 본 책은, 중층적이면서도 은유적인 글쓰기로 대중과 문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총체적인 음악의 가치 상승을 유도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 이야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음악에 의한 현상과, 현상에 의한 음악의 연계성과 상호 영향력을 주지시키기에 가능하다. 저자의 이러한 인식론은 전작 [얼트 문화와 록 음악]에서도 적용되었던 터라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이외에도 기존의 것들과 비교해 볼 때 두드러진 장점 서너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시대적 흐름을 포착한 시안력(時眼力)이다. 세계적으로 유행한 테크노는 재즈에 이은 또 하나의 거품 현상이라는 국내 지적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것은 프로디지의 앨범 차트 1위 등극과 더불어 테크노에 대한 매스 미디어의 몰이해와 상업성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번지기 시작했고, 티끌이 태산처럼 부풀려지기도 했다. 게다가 세기말적 정서는 또 다른 곡해를 가능하게 했다. 이는 곧 테크노가 어느 날 문득 하늘에서 떨어진 음악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고질적인 단순 진단은 한국 대중 음악을 어설픈 테크노로까지 이끌었으며 각종 리믹스 앨범이 테크노의 전부인 양 선전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때까지 테크노에 관한 서적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본 책은 테크노의 거품 인기에 편승한 얄팍한 상술을 바탕으로 날조된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유행하는 테크노의 거품을 잠재우고 음악으로서의 현상과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한 책이었던 것이다. 어떤 장르가 주류로 등장하게 되면 그 장르에 관한 관심도 동반적으로 상승하게 되는데, 테크노에 관한 책이 거의 전무한 국내 상황에서 유일하게 등장했다는 점에서 저자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차치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미흡한 점은 포괄적인 역사적 시각의 부재라는 사실이다. 표지에서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현재와 미래”라고 전제하듯 전체적으로 프로토 테크노보다는 디트로이트 테크노에 집중되어 있다. 이로 인하여 테크노는 1980년대에 성장한 음악이라는 인상을 주며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일렉트로니카로 제한하는 단절성을 유발한다. 이는 과거를 누락시킨 원인으로 무게중심을 잃고 그 역사를 1980년대에 한정시켜 규명하려는 집착처럼 느껴진다. 때문에 언급은 되었지만 보다 많이 논의되어야 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는 일련의 음반과 아티스트들–예를 들면 크라프트베르크, 캔, 탠저린 드림, 브라이언 이노, 클라우스 슐츠, 장 미셸 자르, 로버트 플립, 하워드 존스, 나아가 허비 행콕까지–을 아우르는 연대기적 구성이 아쉽다. 2부에 등장하는 일렉트로니카 아티스트들을 살펴보아도 모두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등장한 ‘짧은’ 연륜의 뮤지션들뿐이다.

두 번째는 단순한 앨범이나 아티스트 소개가 아닌 진정성(authenticity)을 위한 깊이 있는 분석과 고찰이다. 비록 테크노를 거시적이기보다는 미시적 관점에서 일렉트로니카로 한정하긴 했지만 그만큼 미세한 규명을 펼치고 있다. 책의 구성은 테크노의 다양성을 위시하여 일렉트로니카, 엠비언트, 하드코어, 드럼 앤 베이스, 트립합, 인더스트리얼 그리고 포스트 록 등 세세한 분석을 시도한다. 그리고 국내에서 미처 라이센스화 되지 못한 앨범들–에이펙스 트윈, 스테레오 랩, FSOL, 레프트필드–을 소개하는 창구 역할도 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테크노의 단순성은 해체되고 음악으로의 진정성은 가중된다. 하지만 이점에 있어서도 진정성을 고려한 나머지 기초 개념의 인식이라는 전제 하에 소소한 내용을 미처 설명하지 않고 지나간다. 이는 곧 초보자가 다가서기에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를테면 점층적인 구성이기보다는 처음부터 하이 레벨로 시작하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순수한 매니아를 테크노와 멀어지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본 책의 의도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마치 논문 같은 어투로, 결말은 모호하게 열려져 있다.

다음의 특징은 다양한 자료들이다. 사진과 더불어 언급된 아티스트는 참고서적으로 충분히 활용될 만하다. 말미에 실린 아티스트 소사전은 많은 아티스트와 그들의 대표작, 그리고 발매년도를 알 수 있어 참고하기에 유용하다. 그러나 여기서도 한가지, 색인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데이터베이스의 활용을 유도하지 못한 점이 못내 거슬린다.

그렇지만 본 책은 학문적인 자세를 견지하느라 대중적인 장르를 비대중적으로 서술하는 오류를 범하여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그리고 이는 각종 음악 장르가 걸려지지 않고 전문 용어들이 ‘생짜’로 나오면서 현학적인 인상을 풍기는 동시에 구체적인 국내 음악 현실과 접속하지 못하는 단점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음악과의 거리감을 만들고 현실감이 떨어진, 적응이 아닌 단순한 보고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밖에도 책의 1, 2부는 순화되지 않은 용어와 다소 장황한 해설이 자연스러운 연결에 부담을 주고, 서론과 결론 부분은 의견과 고찰로 이루어졌지만 글의 전개에 비하여 내용이 짧다. 그러나 문체에 익숙해진다면 내용은 매번 다르게 읽혀지는 다양성을 갖고 있어 한번 읽고 말 책이 아닌, 언제나 곁에 두고 참고하기에 충분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국내에서 읽을 만한 테크노 서적을 찾는다면, 아직은 [입 닥치고 춤이나 춰]밖에 없어 보인다. 국내 음악 서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선구적인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20000714 | 신주희 [email protected]

목차
1. 머리말
2. 서론: 대중 음악과 테크놀로지
3. 현대의 이교도들의 절규와 황홀
4. 대양 위의 사이키델리아 혹은 일렉트로닉 음악의 전위주의
5. 도심 지하실의 어둡고 냉혹한 사운드
6. 돌연변이 시대를 위한 힙합의 돌연변이
7. 후기 산업 시대에 대한 전자 음향의 테러
8. `노 에이지`를 위한 복고적 미래주의
9. 일렉트로니카 아티스트들
10. 결론: 음악, 테크놀로지, 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