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016050747-book1대중음악을 일상의 갑갑한 삶으로부터 위안을 받기 위한 ‘필수재’로 간주할 것이냐, 미학적 즐거움을 찾아 취향을 형성하는 ‘문화재(cultural goods)’로 간주할 것인가는 때로 양자택일해야 할 문제다. 이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더라도 행동으로 드러나는 문제다. 음악 듣기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인 평론가의 선택은 당연히 후자다. 박준흠의 첫 저서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도 마찬가지다. 서문에 스스로 ‘작가주의’라는 말을 명시하면서 음악인들의 ‘일부’를 연예인이 아니라 예술인으로 ‘발굴과 재평가’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신중현과 한대수로 시작하여 산울림과 들국화를 거쳐… (중간 생략)… 최근의 인디 밴드에 이르기까지. 책의 제목이 다소 모호하게 느껴진다면, “대중음악인을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는 이땅에서 저땅으로부터 영향받았지만 진지하다고 간주되는 예술적 음악을 창조하고 연주한다는 것은”이라고 부연드린다. 물론 저자의 의도와 어긋난다면 정중히 사과드린다.

‘박준흠 리스트’에 포함된 뮤지션들 대부분은 넓은 의미에서 ‘록 음악’과 연관된 존재들이므로 저자의 관점은 ‘아주 새로운’ 관점은 아니다. ‘한국 록 계보 세우기(혹은 뿌리찾기)’는 계간지 [리뷰] 등에서 몇 년 전부터 추구한 바 있다. 물론 책의 저자가 이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한 예로 저자는 서문에서 [리뷰]를 명시적으로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필-logy”에 반발하고 있다), 내게는 ‘사소한 차이’로 느껴진다. ‘큰 차이’라면 좀처럼 맺어지지 않는 ‘결실’을 그가 마침내 이루어냈다는 점이다. 잡지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모아서 엮어냈다는 점은 불문에 부치고 싶다(한국 출판계에서 이는 그다지 흠이 아니다).

책의 형식은 평론집이라기 보다는 뮤지션의 전기(biography)와 디스코그래피(discography)를 곁들인 ‘인터뷰집’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가치는 2차적 연구의 성과에 있기 보다는 1차 자료의 충실한 정리에 있다. 자신이 좋아했지만 멀리만 있어 보였던 음악인들의 육성을 듣는 듯한 느낌은 이 책의 최대 매력일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데이터 베이스 구축”이라는 저자의 필생의 목표를 위한 정지작업으로서도 적격이다.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음반 자료를 정리한 작업으로는 당분간 이 책을 능가할 업적이 나오기 힘들어 보인다. 모르겠다. [리뷰]에서 준비하고 있지만 감감무소식인 책이 나온다면 평가가 바뀔지도…

결국 문제삼을 일이라고는 그가 전제하고 있는 관점의 정당함(혹은 부당함)밖에 없다. 두 가지만 지적하자. 저자는 머리말에서 한국 대중음악(혹은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 부족을 질타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아이러니가 없지 않다. 여기 실린 음악인들 중 대부분은 당대에 ‘미국 문화(혹은 영국 문화)의 추종자’라고 평가받던 인물들이고, 실제로 이들이 추구한 음악의 기원이 영미에 있는 것도 분명하다. 뮤지션들 뿐만 아니라 여기 실린 국내 음악인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진 팬들도 ‘외국’ 음악에 익숙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이라는 단어가 음악인의 국제법적 국적 이상의 문화적 정체성을 말한다면, 한국과 외국(혹은 우리와 남)을 이분할 것이 아니라 영미의 대중음악(넓은 의미의 팝 음악)의 지구적 전개 속에서 국지적 수용(및 대응)이라는 시각이 저자의 의도에도 더 적합하지 않을까.

또 하나는 ‘작가’ 혹은 ‘아티스트’라는 용어다. 저자는 ‘작가주의’를 명확히 정의하고 있지 않으므로 인터뷰의 질문에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추측컨대 저자는 작가나 아티스트를 ‘예술적 창조력을 질식시키는 산업적.경제적 힘을 극복.초월하는 존재’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대중’ 음악에서 아티스트를 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서양의 고전 예술에서의 정의를 되풀이한다는 ‘보편화된’ 지적이 있다(실제로 저자는 산업적.경제적 제도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질문하지 않는 듯하다). 차라리 대중 예술인(popular artist)란 ‘산업적.경제적 힘과의 게임 속에서 부단히 승패를 거듭하는 존재’로 정의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주요 대상인 음반(주로 앨범)이 에술품이자 공산품이고, 음악인이 장인(匠人)이자 기사(技士)라면, 이 책이 채택하고 있는 관점은 일면적으로 보인다.

나에게 마땅한 대안을 똑부러지게 제시할 능력은 없지만, 한국에서 ‘가치있는 대중음악’의 역사를 정리하는 방식 중에서 이 책의 저자가 택한 방식이 유일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별 말이 아니라 저자가 ‘그건 당신의 특수하게 형성된 취향일 뿐이야’라는 반응에 어떻게 답변할까 궁금하다는 뜻이다. ‘그래 맞아. 이건 나의 특수한 취향이야. 어때서?’라고 말하는 것이 90년대적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문체로 보건대 이렇게 가볍게 답할 것 같지는 않다. 궁금해 하다가 나는 옆길로 새서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 음악 매니아가 ‘외국’ 음악 매니아보다 훨씬 더 골수 매니아 아닐까? 19990815 | 신현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