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 스테이지(Summer Stage) 2000’이란?

센트랄 파크(Central Park)는 찾아 갈 때마다 매번 사람을 감탄하게 만드는 곳이다. 맨해튼의 고층빌딩 숲 한 복판에 자리잡은 이 공원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 거대한 규모와 광활한 녹지, 그리고 수많은 인파, 특히 롤러 블레이드와 사이클을 즐기는 많은 수의 젊은이들로 늘 사람을 압도한다. (그들을 볼 때마다 더 늙기 전에 이 공원에서 폼잡고 롤러 블레이드 한번 타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건 그 때뿐이다.)

매년 여름 뉴욕 센트럴 파크의 명물, ‘서머 스테이지’의 포스터.

하지만 직접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이 공원의 여러 곳에서 연중 진행되는 다양한 이벤트들을 관람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 공원에서 펼쳐지는 행사 중 가장 명물은 역시 매년 여름 공원의 동쪽 입구 한켠에 마련된 야외공연장에서 펼쳐지는 ‘서머 스테이지(Summer Stage)’ 공연이다. 이 행사는 일주일에 3-4회씩, 해마다 6월 중순에서 8월 중순까지 두 달간 진행되는 보기 드문 대형 ‘무료’ 공연이다. 락, 팝, 재즈, 클래식까지 아우르는 이 이벤트는 86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각 장르의 수많은 스타급 뮤지션들이 이 공연을 거쳐갔다.

특히 올해는 15주년과 2000년이라는 두 가지 명분이 겹치는 시점인지라, ‘서머 스테이지 2000’은 그 규모나 내용 면에서 사상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두 달간 진행되는 40여 회의 공연에 나서는 뮤지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가히 ‘월드 뮤직(world music) 페스티발’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Indigo Girls, Widespread Panic, Joan Jett, Mary Lou Lord, Randy Newman, Jeff Healy Band, Chic, R. L. Burnside, Common, DJ Jazzy Jeff, Joddy Watley, Rahzel 같은 미국을 대표하는 실력파 스타 뮤지션들도 있고, Roni Size와 Reprazent, Tricky, Lamb 같은 영국의 국제적인 일렉트로니카 스타들도 있다. 하지만 그 이외의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유럽(영국 이외의), 아프리카, 남미와 카리브, 중동과 동남아시아에서 날아온 뮤지션들이며 그들의 음악 역시 실로 온갖 장르를 포괄하고 있다. 라틴 살사(Latin salsa), 라틴 하우스(Latin house), 삼바(samba)와 보사노바(bossanova), 올드 스쿨 레게(old school reggae), 댄스홀(dancehall), 메렝게(merengue), 티벳 불교나 아프리카 토속의 챈트(chant)와 리듬들, 각종 동남아시아와 중동의 전통음악에서부터 뉴펀들랜드의 셀틱 포크(celtic folk)와 2세기 유럽의 무슬림 스페인음악(Muslim Spanish music)까지…

월드 뮤직(world music) 혹은 하이브리드 뮤직(hybrid music)

무엇보다 눈여겨볼 점은 상당수의 뮤지션들의 민족정체성이나 그 음악적 특성들이 지극히 다면적이고 복합적이라는 점이다. 가령 유럽에서 건너온 뮤지션들이라 해도 상당수는 자신의 민족적 기원(ethnicity)이 아프리카나 아시아인 경우가 많고(즉 자신의 부모의 출생지가 비유럽지역이거나, 혹은 자신이 그쪽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지금은 유럽으로 건너와 활동하고 있는 경우), 그들이 다루는 음악 역시 영미권의 대중음악 장르와 자신의 민족성을 감지할 수 있는 토착 음악 장르간의 ‘하이브리드 음악(hybrid music)’이 대부분이다. 이는 미국 내에서 남미나 카리브 출신, 혹은 그쪽에 뿌리를 둔 뮤지션들이 역시 하이브리드 음악으로 현재 미국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현상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따라서 이번 ‘서머 스테이지 2000’의 출연진의 면면을 훑어보면, 특히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는 소위 ‘월드 뮤직(world music)’의 현재의 지형을 읽을 수가 있다. Femi Kuti나 Nuyorican Soul은 이미 [weiv]를 통해 소개되었으니 제외한다 하더라도, 가령 Zuc103은 암스테르담을 배경으로 활동하는 브라질리안 뮤직 그룹이고, Chae I Sabbah는 알제리 출신의 미국인으로 북미와 아랍의 사운드를 결합한 음악을 들려준다. 이스라엘 출신의 Ex-Centric Sound System은 일렉트로니카와 가나의 챈트가 결합된 사운드이고, DJ State of Bangal는 소위 브리티시-아시안 뮤직의 전형인 타블라앤베이스(tabla’n’bass)와 브레이크비트(breakbeats)의 결합을 들려준다. Ravi Shanker의 딸, Anoushka는 시타르(sitar)와 일렉트로니카가 결합된 새로운 사운드를 주도하고 있다. 한편 새로운 동남아 뮤직 씬을 주도하는 DJ Siraikis가 뉴욕 출신 뮤지션으로서 무대에 서게 되며, 맘보(mambo), 라틴 재즈(Latin Jazz), 아프로-큐반(Afro-Cuban) 리듬이 결합된 사운드로 한참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Chico O’Farrill Afro-Cuban Big Band 역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월드 뮤직 혹은 하이브리드 뮤직들의 내부적인 결합요소들을 살펴본다면 어느 누구나 공통적으로 이들 음악이 영미권을 중심으로, 혹은 거기서 파생된 다양한 흑인음악 장르들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로 대부분의 월드 뮤직은 힙합이나 레게, 소울과 R&B에 남미의 리듬,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사운드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음악들이다. 물론 일렉트로니카의 다양한 장르들이 결합된 확장된 사운드들도 있지만 말이다. (요즘 한참 잘 나가는 아프리카 출신의 뮤지션들(이번 출연진 중에는 Femi Kuti나, Fela Kuti의 드러머 출신 Tony Allen)이 아프리카의 토착음악과 미국흑인(아프리칸-아메리칸) 대중음악 장르들이 결합된 음악을 한다는 점은, 흑인문화와 음악의 기나긴 역사를 살펴볼 때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은가?)

그 상업적 메커니즘이나 음모(?)를 떠나 실로 지구화(globalization)의 거대한 흐름은 경제, 정치, 문화, 어느 것 할 것 없이 ‘트랜스내셔널리즘(transnationalism)’과 ‘다이아스포라(diaspora)’라는 새로운 현상을 최근 10여 년간 주도해 왔으며, 특히 대중음악은 ‘월드 뮤직’이라는 브랜드네임 하에 그러한 변화를 단박에 감지할 수 있는 척도의 역할을 지금까지 수행해 왔다. 따라서 이번 ‘서머 스테이지 2000’ 공연은 실로 현재의 월드 뮤직의 흐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첫 번째 공연 : 흑인 록 그리고 백인 힙합

마음 같아서는 매일 센트럴 파크에 죽치고 앉아서 모든 공연들을 여름 내내 보고 싶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불가능한 일이고 결국 7월중에 두 차례 공연장을 찾기로 하고 신중하게 공연 날짜를 선택하였다. 일단 7월 초순에 먼저 맛보기로 공연장을 처음으로 찾아갔다. 사실 이날의 출연진은 Fantastic Plastic Machine(FPM), Persuasions, DJ Swamp, 그리고 Fishbone이었으므로 소위 월드 뮤직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뮤지션들이다. 하지만 일단 출연진들이 모두 미국 내에서 알려진 유명 뮤지션들이고, FPM을 제외하면 흑인 뮤지션들과 흑인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고 (특히 DJ Swamp와 Fishbone은 기회가 되면 한번쯤 꼭 봐야된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인지라), 더욱이 공짜로 이런 패키지 공연을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어 결국 굳은 결심 하에 이날 공연을 보러가게 되었다.

한 마디로 이 날의 공연은 기대치만큼은 충족시켜주는, 나름대로 재미있고 알찬 공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일본 댄스팝 디제잉(Djing)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필자로서는 FPM의 오프닝 디제잉은 별로 재미가 없었지만, 뒤이어 나온 흑인 4인조 할아버지 아카펠라 그룹 Persuasions의 공연, 특히 Frank Zappa의 곡을 아카펠라로 리메이크한 곡들은 분위기를 띄우기에 충분하였다. (그들은 올해, 이 Frank Zappa 리메이크곡들로 앨범도 이미 발매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DJ Swamp. 사실 X-ecutioners, Mix Master Mike, Kid Koala, Cut Chemist 등의 라이브에 익숙해진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진 못 했지만, 이 백인 디제이는 Beck의 DJ답게 나름대로 출중한 턴테이블 테크닉과 사운드 믹싱 능력을 선보였다. 특히 중간에 몇 곡은 직접 랩을 하면서 디제잉을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흑백음악의 경계는 어디까지? DJ Swamp(왼쪽), Fishbone의 공연 장면.

2000. 7. 8. Live at ‘Summer Stage 2000’ DJ Swamp , Fishbone

하지만 이날 대부분의 관객들(상당수가 백인들)이 이 공연장을 찾은 이유는 Fishbone 때문이었다. 이 노장 흑인 록 그룹(이들의 이름을 Living Colour 등과 대등하게 나열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은 특유의 사회비판과 유머감각이 결합된 가사와 재치 있고 활기 있는 무대 매너, 탁월한 연주능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스카훵크, 메탈, 훵크, 브라스 사운드, 힙합이 자유스럽게 결합된 그들의 신나는 사운드는 RHCP나 Mighty Mighty Bosstones 등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확실히 그들의 음악에는 흑인음악 특유의 아우라가 짙게 녹아들어 있었다. 하여튼 열광적인 관중들의 환호 속에 이들의 앵콜 공연을 끝으로 장장 3시간 여의 이날 공연은 막을 내렸다.

흑인이 하는 록음악(Fishbone), 백인이 하는 힙합(DJ Swamp)은 흑인음악의 영역이 어떤 식으로 현재 확장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샘플들이다. 하지만 이날 공연이 무료공연임에도 불구하고, 흑인관객들은 별로 눈에 뜨이지 않았다.

두 번째 공연 : 아프리카 월드 뮤직

일주일 후 두 번째로 찾아간 ‘서머 스테이지 2000’은 소위 아프리카 특집 월드 뮤직 공연이 있었던 날이었다. 출연진은 U-Cef, Amadou et Mariam, Frederic Galliano, 그리고 Les Nubians. 이날의 공연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월드 뮤직이 구체적으로 현재 어떤 지점에까지 이르렀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지난 번 Fishbone 공연때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 날은 미리 가서 줄서서 일찍 들어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을 여유 있게 관찰하였다. (필자는 항상 공연을 보러 가면 그 공연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찾아오는가를 가장 먼저 살핀다). 사실 흑인 랩/힙합 공연을 제외하면 지금껏 보러간 대부분의 공연은 백인들이 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해왔다. 물론 앞서 보았던 DJ Swamp같은 백인 힙합 뮤지션이나 Fishbone같은 흑인 록밴드의 공연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날 공연장을 찾은 관객의 거의 30-40%는 흑인 젊은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외모나 언어, 행동 스타일 등으로 보아 대부분이 아프리칸-아메리칸 흑인들이라기 보다는 아프리카나 카리브, 그리고 유럽에서 건너온 흑인들 같았다. 사실 이날 공연이 아프리카 뮤지션 혹은 아프리카 전통음악과 관련된 월드 뮤직을 내용으로 하고 있고, 미국에서 이러한 음악 장르의 수용 층의 상당수가 미국 이외 지역 출신의 흑인 이민들, 혹은 그들의 1.5세대 혹은 2세대라고 볼 때, 이런 관객구성은 충분히 예측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현재 뉴욕의 흑인인구 중 30% 이상이 미국출신의 흑인(아프리칸-아메리칸)이 아닌, 다른 지역과 국가 출신의 이민이거나 이민 1.5세대 혹은 2세대 흑인들이다. 사실 이들 흑인과 아프리칸-아메리칸 흑인과의 관계, 혹은 백인들과의 3자간 관계, 연관된 대중문화와 대중음악 수용양상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굉장히 복잡한 결과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힙합 음악과 문화의 수용과 관계된 이들 이민 흑인 1.5세대와 2세대의 새로운 반응양상은 민족성, 인종주의의 문제와 관련하여 상당히 흥미로운 문제들을 제공하고 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usline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모로코계 영국인 디제이 U-Cef의 퍼커션 연주 장면

관객들이 자리를 거의 메우기 시작할 무렵 먼저 U-Cef가 나와서 오프닝 디제잉을 시작하였다. U-Cef는 모로코계 영국인 디제이이다. 그는 이날 공연이 미국 데뷔공연이었는데, 이 공연을 시작으로 미국 동부 클럽 순회공연을 예정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런던의 클럽 씬에서는 널리 이름을 알리고 있는 디제이이다. 소문대로 드럼앤베이스 사운드를 바탕으로 모로코 전통 챈트와 멜로디를 결합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선보였다. 특히 중간에는 튀니지 출신의 여성 싱어가 나와서 그의 디제잉에 맞춰 챈트와 노래를 들려주었는데, 이는 무척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사실 이러한 일렉트로니카 음악과 아프리카 출신의 챈터(chanter)나 싱어의 라이브연주의 결합은 이미 유럽에서는 월드 뮤직의 대표적인 스타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이다). 마지막 곡에서는 직접 퍼커션 연주까지 하면서 50여분간의 ‘모로칸 드럼앤베이스(Moroccan drum’n’bass)’공연이 끝이 나고, 10여분간의 휴식 후 Amadou et Mariam이 무대에 나왔다.

2000. 7. 16. Live at ‘Summer Stage 2000’ U-Cef, Amadou et Mariam

말리 출신 혼성 듀오 Amadou & Mariam의 공연 모습

Amadou et Mariam은 남녀 혼성 듀오로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뮤지션들이다. 앞선 U-Cef가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출신으로 다소간의 유럽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면, 이들은 전형적인 아프리칸 흑인들이다. 이들은 맹인들인데, 맹인학교에서 처음 만나서 음악을 하기로 결심을 하였으며, 현재 프랑스를 근거로 월드 뮤직 시장에 앨범을 내놓고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통적인 말리 의상을 변형한 옷차림으로(우리로 치면 개량한복 같은 것이다), 백인들로 구성된 백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올라 Mariam은 노래를, Amadou는 기타와 노래실력을 들려주었는데, 블루스와 재즈, 말리 특유의 전통 화성의 멜로디와 리듬, 그리고 유럽의 감성이 결합된 곡들을 연주하였다. 이는 아프리카 전통음악과 유럽의 아우라, 그리고 미국의 기본적인 흑인음악 장르들이 결합된 대표적인 월드 뮤직 스타일의 곡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필자의 취향에는 그다지 맞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를 정겨움을 주는 무대였다.

프랑스 흑인음악계의 최고 스타 Les Nubians(좌우 양편의 두 여성)과 백밴드.

다음 무대는 예정대로라면 Frederic Galliano의 순서인데, 공항에서의 교통체증으로 공연장 도착이 지연되면서, 마지막에 나오기로 되어 있는 오늘의 메인 뮤지션인 Les Nubians가 먼저 공연을 하게 되었다. Les Nubians는 이날 출연하는 뮤지션들 중 미국에서 현재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이미 2년 전에 미국 시장에 [Princesses Nubiennes](1998)라는 앨범도 이미 발매한 상태이고 현재 월드 뮤직 씬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뮤지션들 중의 하나이다. 이들 여성 자매는 카메룬계 프랑스인들로서 프랑스 흑인음악과 힙합 씬에서는 이미 최고의 스타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하여튼 이들은 이날 무대에서 자신들의 백밴드와 함께 그루브감이 넘치는 노래들과 열정적인 무대(특히 춤 실력)를 선보였는데, 소문대로 힙합과 R&B, 재즈와 프랑스적 감성이 결합된 깔끔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미국에서 이들은 처음 소개될 때부터 Sade나 Soul II Soul과 비교되어 왔었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후자 쪽의 사운드와 더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그들의 음악이 프렌치 힙합의 대표주자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2000. 7. 16. Live at ‘Summer Stage 2000’ Les Nubians, Frederic Galliano

아프리카 음악과 일렉트로니카의 새로운 실험을 보여준 프레데릭 갈리아노(왼쪽)와 세네갈 출신 챈터.

마지막은 Frederic Galliano가 장식하였는데, Les Nubians의 메인 공연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관객들이 고스란히 남아서 그의 공연을 지켜보았다. Galliano는 프랑스의 백인 일렉트로니카 디제이이다. 그의 음악이 월드 뮤직 시장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일렉트로니카와 아프리칸 리듬과 챈트, 재즈를 결합한 특유의 사운드 때문이다. 그의 라이브는 다양한 아프리카 뮤지션들과 함께 하는 힘있는 연주로 유명한데, 아니나 다를까 이 날 공연에서 그는 세네갈 출신의 각종 아프리카 전통 타악기와 멜로디 악기 주자들, 아프리카 댄서, 그리고 남녀 챈터와 함께 라이브를 진행하였다. U-Cef의 음악이 드럼앤베이스의 큰 틀을 벗어나지 못 하는데 비해, Galliano의 음악은 보다 실험적이며 일렉트로니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특히 신들린 듯한 세네갈 챈터의 챈트와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독특한 아프리카 전통 비트의 결합은 50여분간 정신을 빼놓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Galliano를 끝으로 드디어 이 날의 공연은 막을 내렸다. 무더운 날씨에 땡볕에서 보는 공연은 때론 고통일 수도 있지만, 실력있는 뮤지션들의 열정적인 공연은 충분히 더위를 (비록 일시적이긴 하지만)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전철에 오르니 이미 시간은 저녁 7시가 되어 있었다. (이날 공연이 자그만치 4시간이 넘도록 진행되었다고 생각하니, 무료 공연장에 와서 돈을 벌고 가는 것 같아, 정말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비바 아프리카(viva Africa) 혹은 비바 유럽(viva Europe)?

앞서도 말했지만 월드 뮤직은 현재 부정할 수 없는 대중음악과 음악산업의 거대한 흐름이다. 한국에서는 왜곡된 형태로 월드 뮤직이라는 이름 하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활동하는 팝음악 스타들(특히 라틴팝 계통의)이 소개되고 있지만, 사실 이는 현재의 월드 뮤직 씬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다.

미국에서는 남미와 카리브 출신, 혹은 그쪽 민족성에 바탕한 뮤지션들의 하이브리드 음악들이, 그리고 유럽에서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근간한 하이브리드 음악들이 월드음악이라는 이름 하에 세력을 확장해 왔으며, 바야흐로 이제는 양자 모두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하고 있다. 이번 ‘서머 스테이지 2000’은 이러한 현재의 월드 뮤직 시장의 확대된 지구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음악적으로 볼 때, 다양한 흑인음악의 장르들과 현재 유행하는 일렉트로니카 장르들, 그리고 각 민족과 지역의 전통(물론 전통이 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어쨌든 ‘전통의 재창조’ 운운하는 논의는 일단 다음으로 미루자)음악들의 결합은 온갖 조합을 통해 실로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하이브리드 장르들을 양산하고 있으며, 이번 공연은 그 과정의 일면을 보여주었다는 점만으로도 흥미만점의 이벤트였다.

바야흐로 우리가 유지해왔던 기존의 대중음악을 나누는 장르 개념들이 더 이상 무의미한 시대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도래했는지 모른다. 아니, 그런 기존의 용어들을 통한 규정방식이 오히려 앞으로의 대중음악의 발전, 혹은 전개과정에 지금 현재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다양한 하이브리드 뮤직들을 억지로 ‘이건 힙합과 일렉트로니카와 아프로-비트의 결합이야’ 식으로 무리하게 정의하는 건 음악을 창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동시에 음악을 듣는 청중들 입장에서도 이는 정말 짜증스러운 일이다.) 물론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순수한’ 영미권 출신의 백인뮤지션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음악이 영미권의 리듬과 화성의 규칙에서 일탈된다는 이유로, 이들 모두를 ‘월드 뮤직’이라는 너무도 모호하고 포괄적인 한 단어로 규합하는 것 또한 억지임에 분명하다.

아무리 음반산업의 전략 어쩌고 하는 얘기를 건너뛰고 그저 (이 흥미로운) 음악들만 듣고 즐기며 넘어가려 해도 뭔가 찜찜하게 남는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의심거리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왜 이들 아프리카 출신 뮤지션들과 그들의 음악은, 식민지 시대에 자신의 모국을 지배했던 유럽의 나라들(가령 프랑스와 카메룬의 관계처럼)에 둥지를 틀고 걔네 나라 음반회사들의 프로모션 하에 세상에 나와야만 하는가? 뮤지션과 음반회사 간의 매니지먼트 결합방식 뿐 아니라, 뮤지션들간의 결합방식, 심지어 음악 장르들간의 결합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월드 뮤직 씬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과거 식민시대의 사회문화적, 경제적 지배-피지배관계의 환영을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고 말하면 이건 필자가 마음이 너무 비뚤어져서인가? 20000719 | 양재영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