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전반에 대한 디제이 씬의 광범위한 영향과 스타 디제이들의 출현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테크노 혹은 힙합 클럽문화에서는 스타급 디제이들이 속속 등장해왔으며, 이들 중 몇몇은 이미 클럽을 떠나 라이브 공연장을 휘젓고 다니는 스타 뮤지션들이 되었다. 유럽에 비해 늦어지긴 했지만, 미국 또한 이와 비슷한 현상을 특히 최근 1~2년 사이에 경험하고 있다. 맨해튼 거리에 걸린 대형 광고판에서 켈빈 클레인 진을 선전하고 있는 모비(Moby)나, [….Entroducing]으로 몇 년 전 우리를 충격으로 몰고 갔었던 디제이 섀도(DJ Shadow)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을 휩쓸고 미국으로 되돌아와 이제 미국의 간판 디제이, 스타 뮤지션들이 되었다. 이들의 뒤를 잇는 인기 디제이들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고, 유럽과 일본에서 건너온 출중한 기량의 디제이들이 지금 미국의 클럽과 공연장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모습은 미국 디제이 씬의 현재의 흥청거림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디제이(DJ) 씬과 턴테이블리즘(Turntablism)

사실 디제이 음악이라는 것은 일종의 음악적 테크닉, 그리고 방법과 관련하여 명명된 장르인지라, 디제잉(DJing)을 적용하는 어떠한 음악 장르들도 포괄할 수 있는 음악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디제이 음악은, ‘턴테이블리즘’, ‘사운드 믹싱(sound mixing)과 샘플링(sampling)’, ‘컷앤페이스트(cut’n’paste)’, ‘스크래칭(scratching)’과 같은 단어들을 핵심에 두는 음악들, 즉 힙합과 테크노를 비롯한 각종 변종, 혼성 댄스음악 장르들에 여전히 천착하고 있다. 가령 앞서 언급한 모비가 미국 테크노 씬을 대표하는 디제이라면(물론 이제는 더 이상 아니라고 반박해도 할 말이 없지만), 디제이 섀도는 힙합 씬, 특히 추상적이고 실험적인 앱스트랙트(abstract) 혹은 익스페리멘탈(experimental) 힙합 씬을 대표하는 미국의 뮤지션이다. 여기서 후자 쪽의 사운드를 억지로 정리해보자면, 이는 기본적으로 올드 스쿨(old school) 흑인 힙합의 비트와 아우라를 근간으로, 재즈를 비롯한 온갖 소리와 비트들의 잡종교배와 실험에 집착하는 음악이다. 이 앱스트랙트 힙합 씬에서는 ‘턴테이블리즘’이라는 단어가 그 사운드의 질과 뮤지션(디제이)의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물론 앞서 언급한 ‘사운드믹싱과 샘플링’, 컷앤페이스트’, ‘스크래칭’과 같은 단어들도 ‘턴테이블리즘’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표현을 통해 규합될 수 있다).

4개의 턴테이블을 종횡무진하며 연주하는 키드 코알라.

현재 미국에서 이러한 추상적 힙합 씬을 대표하는 스타, 혹은 턴테이블리즘의 대명사는 누구일까? 디제이 섀도 이외에도, 믹스 마스터 마이크(Mix Master Mike), 쥬라식 5(Jurassic 5)의 컷케미스트(Cut Chemist), 봄 힙합(Bomb HipHop) 레이블의 디제이 파우스트(DJ Faust)나 디제이 쇼티(DJ Shortee)도 언급할 수 있고, 혹은 턴테이블 테크닉의 달인들로 짜여진 익스큐셔너스(X-Ecutioners)같은 그룹도 있다. 재밌는 것은 익스큐셔너스같은 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이들 디제이들은 흑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들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이들 백인 디제이들은 힙합에서 테크닉적인 요소들을 극단적으로 차용해 오로지 턴테이블 테크닉의 한계에만 도전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따라서 누구의 테크닉이 더 빠르고 특출하냐가 현재의 턴테이블리즘 씬 내에서의 서열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듯하다. 그러니 멤씨잉(MCing)과 디제잉(DJing)의 고른 조합을 강조하는 흑인 힙합 씬의 한 켠에서 이러한 추상적 힙합은 힙합이 아니라고 단칼에 규정해버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키드 코알라: 커펄 터널 신드롬(Carpal Tunnel Syndrome)

서두가 길어졌는데, 어쨌든 현재의 미국 턴테이블리즘 씬에서 혜성처럼 떠오르고 있는 스타는 단연 캐나다 출신의 키드 코알라(Kid Koala)이다. 사실 그의 정규 데뷔앨범이 나온 지는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의 명성은 이미 2년 전부터 미국 힙합 씬과 댄스뮤직 씬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약관 21세의 나이인 1996년 영국의 앱스트랙트 힙합 레이블, 닌자 튠(Ninja Tune)의 대장 매트 블랙(Matt Black)(콜드컷(Cold Cut)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에게 발탁되어, 1년 후 이 레이블의 연중 정기행사인 스텔스 투어(Stealth Tour)에서 가공할 턴테이블 테크닉을 보여주면서 단숨에 최고의 턴테이블 테크니션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얘기나, 그의 공연을 보지 못한 사람들도 그의 초창기 4 트랙 믹스 테이프, [스크래치크래챠래챠치(Scratchcratcharatchatch)] 를 구해 듣고는 다들 뻑 갔다는 얘기는 이미 전설이 되었다. 따라서 그의 정규앨범을 많은 팬들이 2년여 동안 목이 빠져라 기다려왔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신기의 테크닉만을 오로지 기대했던 사람들은 아마 그의 이번 정규 데뷔 앨범 [커펄 터널 신드롬(Carpal Tunnel Syndrome)](이미 그는 2년 전에 닌자 튠의 컴필레이션 앨범, [훵쿵퓨젼(Funkungfusion)]에 같은 제목으로 마니 마크(Money Mark)와의 듀엣 곡을 실은 적이 있는데, 이 제목은 원래 ‘스크래치 디제이의 만성적인 손목 질병’을 의미한다)에 다소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는 이 앨범에서 믹스 마스터 마이크 식의 무자비한 스크래칭보다는, 다양한 기존 소리들의 재치있는 믹싱, 예측 불가의 비트의 지속적인 변형, 순간순간 짧게 빛나는 스크래칭, 특유의 유머감각의 결합을 통해 보다 실험적이고 추상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는 단순히 자신을 기계적인 테크니션으로만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에 대해 아마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고, 따라서 이 앨범은 그의 전방위적인 능력을 보여주려는 치밀한 계산과 노력의 결실로 보여진다. 개인적으로, 이 38분 짜리 시디는 창조적인 브리꼴라주(bricolage)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턴테이블리즘의 마스터피스라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부록으로 들어있는 자신이 직접 그린 두터운 만화책(익살맞게도 키드 코알라는 이 만화책의 공짜 부록으로 시디를 끼워 넣었다고 앨범 부클릿에 태연히 써놓았다)과 시디 안에 내장된 컴퓨터게임도 아주 재밌다.)

키드 코알라(Kid Koala) in NYC

어쨌든 그는 그의 앨범에 대한 다소간의 논란 속에 현재 정규 투어를 진행하고 있으며 5월초에 드디어 뉴욕을 찾아왔다. 그의 공연을 보러가면서 나의 궁금증은, 따라서 과연 그가 소문대로 여전히 ‘무지막지한 턴테이블 테크닉을 보여주는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인지, 아니면 이번 앨범을 기점으로 보다 ‘절제되고 닌자 튠의 전형에 가까운 앱스트랙트 힙합 뮤지션’으로 변신하였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성급히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이 공연에서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공연장인 보워리 볼룸(Bowery Ballroom)(전에 데이 마잇 비 자이언츠(They Might Be Giants) 공연을 봤던 곳)은 예상대로 만원이었는데, 의외로 동양계 관객들이 많았다. 사실 최근에 봤던 공연들에서 동양계 관객들을 보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날 공연장에 몰려든 동양계 관객들을 보면서, 이런 쪽 음악에는 동양계 팬들이 많다는 소문이 전혀 근거 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흑인 관객은 정말 한 명도 찾기 힘들었다(동시에 이런 쪽 힙합은 뮤지션들뿐 아니라 팬들 중에도 흑인이 드물다는 낭설 역시 뜬소문만은 아니었나 보다). [뉴욕 타임스] 등 유수한 언론사들에서 취재도 오고, 디제이처럼 보이는 젊은 친구들도 많이들 찾아온 것 같았지만, 정작 공연 전에 공연장 입구에서 들락날락 거리는 키드 코알라를 알아보는 사람은 공연담당자들 밖에 없었다. 자그마한 키에 평범한 옷차림을 한, 동안의 동양계 청년이 키드 코알라라고 아마 짐작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밴드와 함께 공연하고 있는 키드 코알라(우).

괜히 아는척하고 이야기나 건네 볼까 고민하고 있는데, 아시안 계통의 아줌마, 아저씨 5~6명이 공연장 안으로 들어와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물론 입석 공연장이다). 이들은 키드 코알라의 가족들이었는데(관객석에서 아는 친구들과 놀고 있던 키드 코알라랑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야기의 내용을 들어보니 직계 가족임에 틀림없었다), 가족들이나 키드 코알라의 생김새로 보아 그는 언론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전형적인 중국계(캐나다인)라기 보다 동남아 계통으로 보였다.

8시 30분이 되자 객석에서 놀고 있던 키드 코알라도 무대 뒤로 들어갔고, 아니나 다를까 오프닝 뮤지션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 위에는 디제이 데크들(6개의 턴테이블과 톤암(tone-arms), 믹서, 페이더(faders)가 조합된)이 전면 좌우에 마련되어 있었고 뒤쪽에는 기타와 베이스, 드럼과 퍼쿠션이 준비되어 있었는데(이는 의외였다. 디제이 공연에 웬 밴드 악기들? 물론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썰렁한 분위기 속에 2명의 남성과 1명의 여성 백인 디제이가 무대에 등장하여 드디어 판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이들 세 명은 번갈아 가면서 혹은 다 함께 4개의 턴테이블의 연주를 진행하였는데, 전형적인 힙합 비트의 사운드믹싱에 역시 전형적인 스크래칭 테크닉들을 보여주었다. 지겨워질 무렵 래퍼(역시 백인)가 나와서 함께 공연을 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키드 코알라가 곡 중간에 나와서 이들을 소개하였다. 그런데 글쎄, 이들 세 명의 디제이 중 한 명이 그 유명한 컷 케미스트(Cut Chemist)가 아닌가? 그제야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연주 모습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는데, 역시 편견이 작용했는지 셋 중에서 컷 케미스트가 단연 돋보이는 것 같았다. 여러 디제이들이 함께 데크에서 연주할 때는 역시 주거니 받거니 솔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단연 압권인데, 그럴 경우 컷 케미스트의 손가락놀림이나 다양한 소리들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다른 두 사람(디제이 애나(DJ Ana)와 디제이 시그니파이(DJ Signify))을 압도하는 것 같았다.

9시 40분쯤 되자 이들의 공연은 끝이 났고, 드디어 기다리던 키드 코알라가 혼자서 다시 무대에 등장하면서 본 공연이 시작되었다. 귀여운 용모의 키드 코알라는 경쾌하고 힘찬 목소리로 공연의 시작을 알리고 이어서 정규앨범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곡(뭐, 알다시피 디제이들의 공연에서 곡 제목을 알아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을 솔로로 연주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곡은 처음부터 관객들을 완전히 압도하였다. 그는 네 개의 턴테이블을 종횡무진 오가면서, 역시 쉬지 않고 각 턴테이블의 판들을 바꿔가면서, 동시에 무지막지한 손놀림으로 변화무쌍하고 파괴력있는 가공할 사운드의 ‘턴테이블 훵크’를 10여분간 퍼부어 대었다. 힙합과 훵키 비트의 자유자재의 변형 속에 그는 스크래칭으로 얼마나 다양한 소리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오프닝으로 나왔던 컷케미스트의 손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인 그의 테크닉에 귀와 눈을 내맡긴 채 완전히 넋이 빠져있는데, 어느새 두 곡의 메들리가 끝이 났고 이어서 흥겨운 재즈 연주가 이어졌다. 이 또한 놀라운데, 생각해 보라. 턴테이블 위의 바늘을 뒤틀고 긁어서 유려한 관악기 소리를 낸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지…

Kid Koala, “Untitled”(solo playing)

이 곡이 끝나자 그는 자신의 밴드를 불러냈다. 사실 디제이가 자신의 밴드를 거느리고 라이브 음악을 바탕으로 판을 긁어대는 것은 그다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하여튼 그는 훵키한 비트의 밴드 연주와 자신의 절묘한 디제잉이 결합된 5개의 곡을 들려주었는데, 이들 곡은 “Music For Morning People”, “Fender Bender”, “Roboshuffle”, “Barhopper 2” 등 그의 정규앨범에 수록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앨범에서의 실험적인 사운드의 느낌을 져버리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앨범에서는 다소 눌려있던 듯한 그의 가공할 턴테이블 테크닉들까지 선보이면서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Kid Koala, “Music For Morning People”(with his band)

이 곡들의 연주가 끝난 후 밴드가 잠시 들어간 사이, 키드 코알라와 비슷한 체형의 동양계 DJ 한 명이 대신 무대에 등장하였다. 키드 코알라는 그를 뉴욕시 출신의 디제이 피로(DJ P Law)라고 소개하였는데, 이들 두 사람은 함께 그 동안 소문으로 듣던 [스크래치크래챠래챠치] 믹스 테이프에 수록된 곡들을 재현해 주었다. 이 친구 역시 뛰어난 턴테이블 테크닉을 지니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함께, 혹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6개의 턴테이블을 오가며 신기의 경연을 벌였다. 철저하게 테크닉적인 요소들만 보여주는 곡도 있고, 오리엔탈리즘에 매혹된 이들을 잡아당기는 감칠맛 나는 곡도 있다.

DJ P Law(왼쪽)와 함께 대결을 벌이고 있는 키드 코알라

Kid Koala, “Untitled”(duet with DJ P Law)

다시 밴드가 나와서 이제 이들 두 디제이와 함께 10여분간의 잼 세션을 벌인다. 디제이 피로우, 기타리스트, 드러머, 베이시스트, 타악기 주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키드 코알라가 돌아가면서 솔로 연주들을 들려주고 마지막으로 합주를 하면서 10여분 짜리 마지막 곡이 끝이 났고 이들은 무대를 떠났다. 그리고 열광적인 앙코르 요청 속에 키드 코알라가 혼자서 무대에 재등장하여, 2개의 턴테이블을 통해 전형적인 재지(jazzy)하고 칠아웃(chill-out)한 닌자튠 스타일의 앱스트랙트 힙합 곡을 들려주면서 그의 공연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그런데 관객들이 한번 더 앙코르를 요청하려는 순간 키드 코알라는, 자신은 들어가고 이제 제3부 공연이 시작될 거라는 멘트와 함께 닌자 튠의 또 다른 간판스타 중의 하나인 아몬 토빈(Amon Tobin)을 소개하는 게 아닌가? 이 때는 이미 11시쯤 된 것 같았는데, 기대치 않았던 아몬 토빈의 등장은 또 다른 재미를 선보일 거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키드 코알라가 퇴장하고 곱상한 외모의 백인 디제이 아몬 토빈이 무대에 등장하면서 예상대로 공연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나이트 클럽의 그것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알다시피 그의 음악은 키드 코알라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다.

그저 묵묵히 판만 돌려대는 아몬 토빈.

아몬 토빈은 시작 곡부터 특유의 파괴적인 비트의 전형적인 드럼앤재즈(drum’n’jazz) 혹은 드럼앤베이스(drum’n’bass) 사운드를 들려주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키드 코알라와는 극단적으로 다른, 스크래칭이나 잔재주 없이 철저히 판만 돌리는, 말 그대로 밤샘 댄스파티 디제이였다. 그는 말 한마디, 잠시의 휴식도 없이 묵묵히 고개 숙인 채 쉬지 않고 혼자서 오로지 여러 장의 판을 바꿔 끼우고 사운드 믹싱을 하는 데에만 집중하였다. 전형적인 유럽의 나이트클럽의 일렉트로니카 밤샘 마라톤 댄스파티를 그는 뉴욕 한복판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것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석은 마리화나와 담배 냄새로 뒤덮인 광란의 댄스파티장으로 변해버렸고, 아몬 토빈 또한 입에 마리화나 물고 고개 숙인 채 쉬지 않고 음악만을 틀어주었다. 결국 1시쯤 되자 다음날 아침에 수업이 있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공연장을 빠져 나와야 했는데, 이미 그때는 관객의 40% 정도가 공연장을 떠난 뒤였다. 하지만 남은 관객들과 아몬 토빈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밤샘 파티를 할 것처럼 보였다.

디제이 씬의 새로운 대안적 가능성?

앞에도 언급했지만 디제이 씬의 전면적인 부상과 몇몇 스타들의 나이트클럽에서 라이브 공연장으로의 공간이동은 최근 몇 년간의 대중음악 계의 고무적인 현상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들이 과연 록 뮤지션들과 같은 대중적인 스타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의문부호를 달고 있다. 그들의 공연장에서의 공연방식이나 음반 마케팅 방식은 연주자로서의 디제이들 자신을 부각시키기에는 뭔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컷 케미스트나 아몬 토빈의 공연 모습은 이러한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턴테이블리즘의 마술사로 꼽히는 컷케미스트지만, 무대 한 켠에서 판만 돌려대는 그에게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았다. 드럼앤재즈의 귀재, 아몬 토빈은 어떤가? 관객들은 그가 들려주는 음악을 나이트 클럽에서 춤을 추기 위한 배경음악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그의 연주하는 모습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공연장에서의 디제이들의 존재감의 부재는, 나이트클럽에서 라이브 공연장으로의 공간이동이 말 그대로 장소만 옮긴 것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물론 어떻게 이런 장소 옮기기라도 가능해졌는지를 여기서 설명하는 것은 피하기로 하자. 이는 현재의 클럽 컬쳐와 대중음악산업 지형의 변화과정을 말해야 하는 또 다른, 커다란 주제의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키드 코알라의 공연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소문대로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으로서 신기에 가까운 턴테이블리즘을 과시하였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솔로 앨범에서 보여주었던 실험적인 사운드의 향연도 동시에 펼쳤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공연에서 돋보인 것은 그의 대중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흡수하여 창조해낸 자신만의 사운드는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귀에 척척 감기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힙합을 바탕으로 재즈와 팝, 록의 친근한 사운드를 섞어대는 능수능란한 솜씨, 그리고 때로는 색소폰 소리나 다른 악기의 소리를 손재주를 통해 재현해내는 일종의 ‘묘기대행진’은 관객들이 잠시도 자신의 귀와 눈을 그로부터 뗄 수 없게 만드는 묘한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동시에 밴드와 함께 연주하는 장면 또한 여느 록밴드 못지 않은 특유의 생동감으로 인해 관객들의 시각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제공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과 자신의 데크가 전면에 나서고 밴드는 오히려 뒤로 물러서는 무대 세팅을 통해 디제이가 단순히 ‘그림자’ 밖에 될 수 없다는 우려(디제이 섀도!) 또한 성공적으로 피해간다.

디제이 씬의 단순한 공간적 확장을 넘어, 사운드나 비즈니스 측면에서 디제이 음악 자체의 질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출중한 능력을 지닌 새로운 스타 디제이, 키드 코알라의 앞으로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그 행보를 지켜보는 것은 이번 공연 못지 않은 즐거움을 앞으로 필자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해 줄 것 같다. 20000512 | 양재영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