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뉴욕은 여전히 늦은 겨울의 날씨다. 차가운 바람은 한국 생각도 나게 하고 이리 저리 사람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한다. 이럴 때는 괜스레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따뜻한 음악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때맞춰 찾아온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와 빌리 브랙(Billy Bragg)의 공연은 무려(?) 50불(전자는 18불, 후자는 32불)의 돈을 과감히 투자하게 만들었다.

굳이 묶어서 이야기하자면, 알다시피 두 사람은 모두 포크와 펑크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굳이 무리하게 확장하자면)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후반에 이르는 안티포크 무브먼트(anti-folk movement)의 스펙트럼 속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공유점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두 사람은 정말 많이 다른 뮤지션들이다. 물론 빌리 브랙이 영국출신이면서 80년대부터 무대를 주름잡은 40대의 노장 뮤지션인데 반해, 엘리엇 스미스가 90년대 중반 이후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한 젊은 미국 뮤지션이라는 차이점을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비록 ‘포크’라는 하나의 이름 하에 존재하는 뮤지션들이지만, 두 사람이 이 음악을 통해 청중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상당히 다르며, 음악이 뮤지션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녀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방식 또한 현격한 차이가 난다. 2주 간격으로 찾아간 두 사람의 공연은, 물론 모처럼 (잊고 지냈던) 따뜻한 포크의 감성을 재발견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두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 것 같다.

엘리엇 스미스: Wannabe Mr. Misery

맨해튼 시내 한복판의 ‘타운홀'(Town Hall: 주로 재즈 공연이나 각종 공공 행사들이 주로 열리는 극장임)을 엘리엇 스미스가 공연장으로 정한 것은 아마 이 곳이 지정좌석이 있는 중형 극장인지라, 자신의 사운드와 메시지를 전달하기엔 시끄럽고 부산한 다운타운의 (입석) 공연장들보다 훨씬 낫다고 판단을 했던 모양이다.

20대 초, 중반의 젊은 백인남녀들로 객석을 꽉 채운 가운데, 전형적인 ‘루저(looser)’ 스타일의 4인 밴드가 8시부터 나와서 역시 전형적인 포크-펑크-사이키델릭 퓨전의 졸리는 음악을 40여분 간 연주하고 나서 자신들의 이름조차 알리지 않은 채 소리소문도 없이 무대를 내려가고, 드디어 엘리엇 스미스가 9시 정각에 어쿠스틱 기타 하나 달랑 들고, 허름한 카키 진과 티셔츠 차림으로 무대에 나왔다.

물론 백밴드는 없다. 무대 한 복판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얼렁뚱땅 인사를 하더니, “Sweet Adeline”을 시작으로 그는 거의 릴레이식으로 연주와 노래를 이어간다. 간간이 변칙 튜닝과 정규튜닝을 오가느라 기타 조율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말 한마디 없이 그는 40여분 동안 [XO]와 [Either/Or]에 실린 곡들을 중심으로 쉬지 않고 노래를 하였다. 객석의 청중들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없이 조용히 자신의 좌석에 앉은 채 그저 그의 노래와 기타소리에 빠져있다.

간간이 [XO]의 “Waltz #1”, 영화 [Good Will Hunting]의 “Miss Misery”, “Between the Bars”, “Angeles”(물론 뒤의 두 곡은 원래 [Either/Or]에 들어있던 곡들이다)같은 나름의 히트곡들을 부를 때는 몇몇 팬들의 환호성이 있었고, 막판에 “Baby Britain”을 부를 때에는 그의 목소리가 갈라져서 가뜩이나 그의 여린 목소리에 가슴이 메어지던 몇몇 팬들이 안타까운 탄성을 지르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이렇게 조용한 공연은 개인적으로 미국에서는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Independence Day”를 끝으로 몇 마디 감사의 인사를 중얼거린 뒤 그가 무대를 내려가면서 본 공연은 끝이 났다. 그러자 그 동안 침묵을 지켰던 객석에서 갑작스레 열화와 같은 앵콜 요청이 터져 나왔고, 그는 두 차례나 무대에 재등장하여, 역시 관중들이 요구한 “Okay”, “Tomorrow Tomorrow” 같은 곡을 30여분간 들려준 채 10시 15분 경에 완전히 무대를 떠났다.

사실 메이저 레이블 드림웍스(Dreamworks)를 통해 발매되었던 [XO](1998)는, 물론 낙오자적 정서의 가사, 특유의 부드러운 선율을 구성하는 감각, 그리고 어쿠스틱 기타가 주조를 이루는 사운드가 여전하지만, 동시에 비교적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과 풀밴드 스타일의 보다 풍부해진 소리의 질감 때문에 적잖은 그의 골수 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었다. (그러한 당혹감은 이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셀린 디옹(Celine Dion)과 트리샤 이어우드(Trisha Yearwood) 같은 각 장르의 여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공중파 방송에 데뷔할 때부터 시작되긴 했지만.) 하지만 이날 그의 모습은 [Smith]나 [Either/Or] 시절의 엘리엇 스미스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엘리엇 스미스는 오리건(Oregon)주의 중소도시인 포틀랜드(Portland)에서 80년대에 사춘기를 통과하고 90년대 초반에 청년기를 보낸, 현재의 젊은 미국 백인의 몇 가지 전형 중 하나에 포함되는 뮤지션이다. 그 당시 중소도시, 혹은 대도시 교외의 미국 중하층 백인 청(소)년들에게 분명 레이건과 부시의 미국은 장래의 개인적 성취를 위한 든든한 터전이 되었지만, 동시에 그러한 성장 위주의 사회문화적 풍토는 그들의 현실과 감성에 다양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들을 남기고 지나갔다. 그의 음악은 자신과 자신의 동시대 혹은 다음 세대의 미국 청년들의 그러한 일상생활과 경험, 느낌들을 고스란히 담고자 한다. 비록 사회의식적, 목적지향적인 포크 음악은 아니지만, 그의 가사와 멜로디에는 사회로부터 좌절하고 낙오되고 일탈되고 모멸감 속에 사회에 대한 냉소만이 남아있는 젊은이들의 느낌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동시에 따뜻하게 감싸안으려는 의지가 녹아 들어가 있다.

물론 이날 공연에서 그는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청중들에게 절대 강요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저 청중들과 여러 생각들을 공유하고 싶어하고, 한번쯤 그들이 지나온 혹은 지금 겪고 있는 고통들에 대해 성찰해 보기를 권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여린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는 역설적으로 그러한 그의 생각과 의지를 무대에서 호소하고 전파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되었고, 공연이 끝난 한참 뒤에도 묘한 감흥을 남겼다.

빌리 브랙: Wish Woody Was Here

나에게 보다 인상적인 공연은 사실 엘리엇 스미스보다는 빌리 브랙의 공연이었다(물론 한국에 있을 때부터 줄곧 빌리 브랙의 팬이었던 게 편견으로 작용하기는 했지만). 빌리 브랙 역시 그의 공연장을 다운타운이 아닌 미드타운에 있는 ‘심포니 스페이스(Symphony Space)’로 정했다. 이곳 역시 좌석지정의 극장이고 보통 민속, 혹은 전통적인 음악, 영화, 연극, 춤 공연을 위주로 하는 장소이다(터키 전통무용 공연, 스페인 영화제, 아프리카 구술경연 같은 행사들을 생각하면 된다). 물론 그가 이곳을 공연장으로 선택한 것은 단순히 조용한 좌석극장 공연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아마 그는 미국 포크 음악의 원류인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와 청중들을 매개하기에, 이 극장의 독특한 성격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20대 중,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이르는 근래 보기 드문(?) 높은 연령층의 백인 관객들로 극장이 꽉 찬 가운데, 8시 30분 정각에 빌리 브랙이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 속에 무대에 등장하였다(오프닝 밴드는 아예 없었다). 무대에는 이미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기타가 한 대씩 준비가 되어 있었고, 수수한 ‘아저씨 캐주얼’ 차림의 빌리 브랙은 마련된 의자에 앉더니 몇 마디 소개 인사를 하고 [Mermaid Avenue](1998)에 수록된 “The Unwelcome Guest”로 공연을 시작하였다.

공연은 오프닝 곡을 끝내면서 예상치 않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즉 노래를 부르는 공연이라기보다는, 빌리 브랙의 토크쇼에 노래들을 약간 곁들인 방식으로 진행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토크쇼의 주제는 철저히 ‘우디 거스리’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10여분 동안 이야기를 하고 1-2분 동안 노래를 하는 식으로 1시간 30여분 동안 공연을 진행하였다. 따라서 90여분간 그는 노래라고는 고작 8곡만을 불렀고, 나머지 시간은 우디 거스리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알다시피 그는 재작년에 ‘얼터너티브 컨츄리록 밴드’ 윌코(the Wilco)와 함께 [Mermaid Avenue]라는 앨범을 내놓았었다. ‘머메이드 애브뉴’는 2차 대전 이후 우디 거스리가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정착하여 살았던 뉴욕, 브루클린(Brooklyn)의 코니 아일랜드(Coney Island)에 있는 거리 이름이다. 그리고 이 앨범은 우디 거스리가 남겨놓은 무수한 미발표 글들 중 발췌한 가사에 빌리 브랙이 곡을 붙여 재창조된 음반이다.

사실 우리에게 우디 거스리는 철저히 반항적이고 사회의식적인 포크가수로 알려져 있다. ‘This Land Is Your Land’로 대표되는 그의 노래들은 1차 대전 이후 2차 대전에 이르는 시기의 미국의 하층계급의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을 까발리고 기득권 층에 대한 반감과 저항을 호소하는 가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빌리 브랙은 이날 공연에서 우디 거스리가 지닌 또 다른 면들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투사적인 면모로 포장되어 간과되었던 인간, 우디 거스리의 고뇌와 일상적인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들을 청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는 열변을 토하였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그가 왜 [Mermaid Avenue]라는 우디 거스리에 대한 앨범을 90년대 후반에 뜬금없이 세상에 내놓았었는지에 대한 뒤늦은 해명이기도 하였다.

[Mermaid Avenue]의 곡들은 모두 우디 거스리가 그 거리에 정착하고 나서 죽을 때까지 썼던 가사들 중에 선별된 곡들로 채워져 있다. 사실 우디 거스리는 머메이드 애브뉴에 정착한 1946년 이후, 레코딩 활동을 완전히 접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후 세상을 뜰 때까지 거의 20여년 간 쉬지 않고 글들을 썼다. 그리고 놀랍게도, [Mermaid Avenue]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 가사들은 민중의 투쟁을 선동하는 내용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의 일상적인 애환들에 대한 감상과 자신의 고민과 일상적인 느낌들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들로 채워져 있었다. 빌리 브랙은 이날 그러한 가사들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사회문화적 맥락, 우디 거스리의 개인사가 교차하는 지점들을 재치와 유머 넘치는 특유의 언변으로 풀어나갔다(특유의 영국적인, 그것도 소위 말하는 젠틀맨(gentleman)의 악센트가 아닌 투박하고 거친 악센트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말솜씨와 유머감각은 이미 미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어 공중파 방송의 여러 토크쇼에서 그를 게스트로 부르고 있다).

Billy Bragg, “Ingrid Bergman”(live)

[Mermaid Avenue]에 수록되었던 곡 중에서는 “Ingrid Bergman”, “She Came Along To Me”, “Eisler On The Go”, “I Guess I Planted” 등이 곡에 얽힌 사회문화적 맥락과 우디 거스리의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노래되었고, 앨범에 수록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우디 거스리의 가사에 곡을 붙인 노래 두어 곡이 더 연주되었다. 사실 우디 거스리의 딸, 노라 거스리(Nora Guthrie)가 자신이 뉴욕에서 운영하는 ‘우디 거스리 아카이브’에 보관된 가사들을 빌리 브랙에게 5년 전에 건네주었을 때, 그는 천여 개에 이르는 미발표 가사 중에 어떤 것을 골라야 할 지 상당히 고민을 했다고 한다.

하여튼 “Ingrid Bergman”에서 우디 거스리는 당대 할리우드의 여왕에 대한 흠모를 수줍게 고백하고 상상 속에서 그녀와의 사랑을 펼치고 있으며(물론 이를 할리우드의 문화산업에 대한 냉소적 비판으로 뒤집어 무리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Eisler On The Go”에서 이 용감한 투사는 동료 좌파 송라이터,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처럼 정부로부터 불법 행위로 소환될 경우 어떻게 자신은 행동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하고 속앓이하고 있다. 빌리 브랙은 우디 거스리의 이러한 여린 감성과 번뇌가 현재의 자신의 위치와 미래의 방향에 대한 고민과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는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빌리 브랙은 사실 엘리엇 스미스와 같은 뮤지션과는 전혀 상반된 위치에 있는, 철저히 사회의식적인, 음악을 정치적 실천의 무기로 생각하는 포크뮤지션이었다. 그는 음악 활동을 하는 내내 영국을 근거지로 하면서, 특히 80년대 동안 급진적 좌파 성향의 음악과 사회활동들을 통해 영국의 대표적인 ‘운동권 가수’로 낙인찍혀 왔었다. 예쁜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재주와 특유의 유머와 위트는 간과된 체, 급진적이고 과격한 가사와 직선적인 목소리, 투박하고 거친 리듬의 일렉트릭 기타가 이 좌파 운동권 가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으며, 급기야 대쳐 정권이 가장 귀찮아하는 대중문화계의 인사가 되었다. 영국에서 활동하며 영국 민중의 고민과 문제들을 노래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의 저항적인 면모는 미국의 어느 포크 뮤지션보다 투사로서의 우디 거스리의 원형에 근접해 있었다.

Talking With The Taxman About Poetry](1986), [Workers’Playtime](1988), [The Internationale](1990)에서 그는 하층계급의 분노와 애환, 노동조합의 힘을 영리하고 지적인 가사로 표현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데올로기의 허상적 위력에 대해 신랄하고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영국을 떠도는 운동권 가요들을 정리, 규합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90년대와 함께 세상은 변하고 그의 음악 내에도 어느 정도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가 새롭게 내놓은 [Don’t Try This At Home](1991)은 보다 정리되고 풍성해진 사운드로 채색되어 있었으며(이제 그는 더 이상 일렉트릭 기타 하나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이 사운드는 그의 예쁜 선율을 만들어내는 탁월한 재주를 드디어 빛을 보게 만들었다. 가사 또한 여전히 신랄하고 사회비판적이지만, 보다 사회에 대해 냉소적인 면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그의 가사가 지닌 또 다른 측면들인 따뜻하고 세밀한 감성과 인간적인 위트들이 더욱 강조되기 시작한다.

앨범은 영국 내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데, 그는 이 지점에서 고민에 빠진다. 자신의 음악이 여전히 적극적이고 사회의식적, 실천적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변화된 사회 속에서 보다 일상적이고 세밀한 인간적, 개인적 고뇌들에 대해 광범위한 대중들에게 이야기를 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러한 고민은 아마 그에게 이후 5년여의 공백기를 제공해 준 것 같은데, 그 기간에 그가 우디 거스리의 딸, 노라 거스리로부터 우디 거스리의 미발표 가사들을 건네 받은 것은 그의 입장을 후자 쪽으로 정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우디 거스리 또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했음을 그의 4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고, 자신의 변화에 대한 어떤 정당성을 확보했던 것 같다. [William Bloke](1996)는 이런 맥락에서 세상에 나왔으며, [Walking and Talking](1996)과 같은 어찌 보면 너무도 평범한 젊은 남녀의 우정과 사랑에 대한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거리낌없이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이런 맥락이다(사실 한국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여기 저기서 튀어나오는 그의 노래들에 적잖이 당황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마침내 [Mermaid Avenue](1998)는 그의 변화된 입장을 ‘우디 거스리’라는 또 다른 자신의 자화상을 통해 정리하는 공간이 되었다.

하여튼 이 공연에서 빌리 브랙은 이러한 자기자신과 우디 거스리의 모습을 동일시 하고자 애를 쓰면서, 동시에 두 사람 모두 고민해왔던, 혹은 전자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진행중인 고민인 ‘사회 속에서의 뮤지션의 실천’이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한 자기 나름의 정리된 입장을 청중들에게 보여주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빌리 브랙과 그의 팬들은 우디 거스리를 매개로 성공적으로 이 자리에서 서로를 교감할 수 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I Guess I Planted”를 끝으로 무대를 떠난 그를 관객들은 열화와 같은 앵콜 요청으로 다시 불러내었고, 그는 이번에는 우디 거스리의 딸, 노라 거스리를 동반해서 무대에 나왔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과정과 노라 거스리의 아버지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에 대해 10여분간의 대화가 오간 뒤 노라 거스리는, 쓰여진 시기가 자신이 태어난 지 한달 후였던 걸로 보아 자신의 탄생과 미래를 위해 아버지가 쓴 곡이었을 것이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동요 같은 예쁜 노래를 한 곡 솔로로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디 거스리의 오클라호마(Oklahoma)에서의 어린 시절에 대한 환영을 담은 내용의 노래인 “Way Over Yonder In The Minor Key”를 두 사람이 함께 불렀다. 원래 앨범에 실린 곡이 빌리 브랙과 나탈리 머천트(Natalie Merchant)의 듀엣이었기에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노라 거스리는 얘기했지만, 그녀의 노래 솜씨 또한 나탈리 머천트 못지 않게 근사했다. 이 노래를 끝으로 열화와 같은 박수와 환호 속에 공연은 아쉽지만 완전히 막을 내렸다.

최근에 미국에서 봐왔던 공연들과 변별되는 엘리엇 스미스와 빌리 브랙의 공연은 필자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사뭇 다른 감성과 음악에 대한 태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음악을 통해, 남녀간의 사랑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또 다른 다양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번뇌와 고민들을 고백하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따뜻하게 감싸안을 수 있는 게 음악이라고 두 사람은 자신있게 말한다. 하여튼, 너무 감상에 빠져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공연은 대중음악이 왜 대중의 음악인지에 대해 고민하던 나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였고, 여전히 그런 고민이 풀리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음반을 사서 듣고 있는 요즘의 나 자신을 다시금 추스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20000327 | 양재영 [email protected]

관련 글
벨 앤 세바스찬 vs 엘리엇 스미쓰 – vol.1/no.6 [19991101]
포크, 네멋대로 해라: 빌리 브랙 vs 미셸 쇼크트 – vol.1/no.4 [19991001]

관련 사이트
엘리엇 스미스 드림웍스 공식 사이트 The Take A Nap
http://members.tripod.com/Takeanap/
헤이든, 하위 벡, 엘리엇 스미쓰, 라이사 제르나모 등 내성적인 아티스트 데이터 베이스

빌리 브랙 공식 홈페이지
http://www.billybragg.co.uk

빌리 브랙 비공식 홈페이지
http://www.lilypad.demon.co.uk/bragg/
http://www.bigfoot.com/~petecr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