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은 비틀스를 위시한 ‘영국의 침공’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던 때였다. 1965년 저항적 메시지를 설파하던 포크의 기수 밥 딜런(Bob Dylan)이 전기 기타를 메고 포크 페스티벌에 나온 ‘사건’이 발생했다. 청중들은 비난을 보내며 그에게서 등을 돌리는 듯 했다. 하지만 사태는 역전되었다. 버즈(Byrds)는 딜런의 곡 “Mr. Tambourine Man”를 앞세우고 ‘새로운 음악’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으며, 포크의 배반자 딜런은 곧 포크 ‘록’의 선각자로 복권되었다. 더불어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 소니 앤 셰어(Sony & Cher)의 노래가 빌보드 차트 1위에 등극했고, 1966년까지 마마스 앤 파파스(Mamas & Papas), 러빙 스푼풀(Lovin’ Spoonful), 도노반(Donovan) 등이 정상의 인기를 차지하였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음악, ‘포크 록’의 시작이었다.

포크: 진실, 순수, 자연스러움의 상징

“모든 음악은 포크이(었)다”라는 생각은 포크의 원초적 의미가 바로 각국의 ‘민요’를 뜻한다는 전제로부터 비롯된다. 하지만 보다 역사적이고 엄밀한 의미에서, 포크는 기록되지 않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혹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 내려오는 음악에 적용된다. 이처럼 구전 전통에 입각한 포크 음악은 예술 음악처럼 작곡되는 것이 아니라, 전승된 곡이 연주자의 스타일에 따라 변주되는 것을 특징으로 삼는다. 때문에 구체적인 주제는 시대마다 변화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포크가 보통 사람의 경험과 관심을 반영하는 ‘진실의 노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제 전세계 포크 음악이 아니라 영미 포크에 우리의 시선을 한정시키자. 그리고 우리의 관심은 아주 먼 옛날이 아니라 1960년대 전후(이것도 좀 먼 이야기이긴 하다)의 포크 및 ‘포크 록’에 있다. 포크 록은 문자 그대로 포크와 록의 만남에 의한 하이브리드(hybrid)이다. 즉 단순하고 직접적인 포크 음악의 곡 스타일에, 로큰롤의 백 비트(back-beat)가 결합한 음악으로서, 기타 훅(hook)과 깨끗한 보컬 하모니가 그 핵을 이룬다. 어쿠스틱 악기에 기반하여 보컬 가사를 강조하는 포크의 음악 스타일은 청중과 뮤지션 간의 투명한 의사소통을 지향한다. 이 사실은 포크가 록이 혼합되었을 때에도 불변의 전제가 되었으며, 여기에는 순수성과 자연스러움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함축되어 있다.

어렵고 따분한 원론적 이야기는 일단 이쯤에서 접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들과 함께 건너와 자리잡은 아메리칸 포크 음악부터 시작해보자. 트래디셔널 포크는 1930년대에 아메리칸 포크의 아버지 피트 시거(Pete Seeger), 우디 거스리(Woody Gurthrie)에 의해 모던 포크로 가다듬어졌다. 선동적인 그들이 활동했던 이야기나, 매카시 선풍에 의해 탄압받던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하자. 이후 1950년대 말에 일어난 포크 송 리바이벌도 존 바에즈(Joan Baez)나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 Mary) 같은 이름을 기억하는 선에서 일단락짓기로 하자.

트래디셔널 포크, 그리고 이를 상업적으로 부흥시킨 포크와는 다른, 또 하나의 포크가 1960년대에 접속되었다. 그것은 바로 흔히 프로테스트(protest) 포크라 불렸던 음악이다. 당시 포크는 베트남 전쟁 반대나 흑인 인권 문제와 결부되어 토피컬 송(topical song), 혹은 프로테스트 송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톰 팩스튼(Tom Paxton), 팀 하딘(Tim Hardin), 필 오크스(Phil Ochs) 등이 그 주역들이다.

그 누구보다 포크 (록) 역사 속에서 잊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그의 이름은 밥 딜런(Bob Dylan). 저항과 인권을 노래하는 전도사. 그가 그의 연인과 함께 바람 부는 뉴욕 거리를 걷고 있는 2집 앨범 [Freewheelin’ Bob Dylan] 재킷은 마치 그 시대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초상화 같았다. 딜런의 낮은 웅얼거림과 질질 끌리는 듯한 목소리는, 모호하지만 보편적인, 때로는 시적인 가사와 만나게 되었고, 이로써 포크 록의 새로운 경지가 열렸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듯 딜런의 생각과 음악은 계속 변했다. 그는 통기타와 하모니카만으로 복잡한 생각과 강한 소리를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임을 깨달았다. 비틀스를 비롯한 ‘영국의 침공’은 그를 변하게 하는데 결정적이었다.

포크와 록의 만남: 딜런의 자식들

20000926090307-folk1사진설명:밥 딜런의 [The Freewheelin’ Bob Dylan] 커버

밥 딜런의 변화는 전기 장비를 도입한 다섯 번째 앨범 [Bring It All Back Home]을 시초로 하여, 전기 악기를 들고 나온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그리고 [Blonde on Blonde], [Highway 61 Revisited] 앨범에서 만개했다. 당시 어쿠스틱 기타 중심의 순수 포크에 대한 통념을 깬 딜런에 대해 많은 이들이 야유와 비난을 퍼부었지만, 변화의 바람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곧 그에 대한 모방자와 추종자들이 나타났다. 버즈는 딜런의 곡 [Mr. Tambourine Man]을 12현 기타의 쟁쟁거리는 소리와 보컬 하모니가 어우러진 곡으로 탈바꿈시켰고, 포크 록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출현을 알렸다. 이로 인해 그들은 ‘딜런화된 비틀스'(혹은 ‘비틀스화된 딜런’)라는 칭호를 선사받기도 했다. 뉴욕에서는 사이먼 앤 가펑클과 러빙 스푼풀이, L.A에서는 마마스 앤 파파스, 터틀스(Turtles), 소니 앤 셰어 등이 이 시대에 히트를 기록했다.

20000926090307-folk2사진설명: 포크 록을 대중화시킨 버즈

한편, 비슷한 시기, 영국 포크도 포크 클럽과 정기적 대규모 페스티벌을 통해 전성기를 구가했다. 리차드 톰슨(Richard Thompson)과 샌디 데니(Sandy Denny)가 속한 페어포트 컨벤션(Fairport Convention), 그리고 인크레더블 스트링 밴드(Incredible String Band) 등이 대표적인 밴드인데, 이러한 브리티시 포크 록 음악은 아메리칸 포크 록 보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영향이 더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들은 ‘일렉트릭’과 ‘어쿠스틱’, 모던 컴포지션과 트레디셔널 넘버들, 다시 말해 ‘포크’와 ‘록’을 조화롭게 혼합했다고 평가된다.

그 누구보다도 도노반(Donovan)과 닉 드레이크(Nick Drake)가 대표적인 영국의 포크 록 뮤지션으로 꼽히는데, ‘영국의 밥 딜런’으로 불린 도노반은 잔잔한 사운드에 감성적인 목소리를 보여주었고, 닉 드레이크는 어둡고 내성적인 스타일의 음악을 드러내주었다.

이처럼 상업적인 성공을 기록한 1965-66년의 포크 록 전성기는 곧 하향곡선을 타는 듯 했다. 그러나 포크 록의 영향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으며,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포크 록의 서자와 적자가 배출되었다.

20000926090307-folk3사진설명: Nick Drake Files 사이트(http://www.algonet.se /~iguana /DRAKE/DRAKE.html)의 대문 사진

고독한 내면의 독백: 싱어송라이터

종전과 더불어 1970년대로 넘어오면서 1960년대에 발발한 좌절, 혼란의 시대를 벗어나는 듯했다. (알타몬타 페스티벌의 비극, 3J — 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 의 죽음은 혼란한 시대, 그리고 유토피아적인 꿈에 대한 종언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는 나직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불과 비(Fire and Rain)’로 표현했다. 이제 60년대와는 다른 새로운 뮤지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단순성과 솔직함의 모습을 가진 음악적 페르소나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딜런의 또 다른 적자들은 딜런에 대한 직접 모방을 끝내고,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노래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밴드 형태보다는 기타나 피아노로 연주하는 솔로 형태가 이러한 자기 고백적 형식에 더 적합했다.

그들은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로 명명되었다. 문자적 개념으로 보자면, 싱어송라이터는 노래부르는 사람과 연주자가 작곡자와 분리되지 않고 자신이 쓴 곡을 직접 연주하며 부르는 뮤지션들을 지칭하는 의미가 되겠지만(이 의미에서는 비틀스가 그 시초일 것이다), 이 개념은 특히 1970년대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포크 록 정신을 계승한 이들에 국한된다(물론, 그 이후 80-90년대 뮤지션이라도 이런 태도를 가진 이들에 대해서는 싱어송라이터로 분류한다).

싱어송라이터 군(群)은 틴 팬 앨리로부터 비롯된 음악과, 포스트 딜런 포크 음악으로 분류될 수 있다. 전자에는 캐롤 킹(Carole King), 랜디 뉴먼(Randy Newman), 로라 나이로(Laura Nyro)가, 후자에는 조니 미첼(Joni Mitchell), 제임스 테일러, 잭슨 브라운, 레너드 코언(Leonard Cohen), 닐 영(Neil Young)이 속하며, 폴 사이먼(Paul Simon)은 두 부류에 다 속했다. 또한, 영국의 싱어송라이터들로는 로이 하퍼(Roy Harper), 앨 스튜어트(Al Stewart), 캣 스티븐스(Cat Stevens)등이 꼽힌다.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은 반전이나 인권 문제에 대한 가사는 거의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메시지가 부재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치적인 이슈 대신에 개인 내면의 감정과 관련된 내용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으며, 때로는 그 당시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아내기도 했다. 이로부터 뮤지션 개인의 생각과 관심의 표현이 많은 사람들의 정감을 효과적으로 반영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

이런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적 양상은, 60년대와 차별적인 지점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포크 정신이 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뮤지션과 청중 간의 소통이 직접적이고 투명하게 전달된다는 전제가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싱어의 감정이 고스란히 청자에게도 반향을 일으키는 포크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고수되었기 때문에 싱어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울고 웃는 현상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후적인 평가이지만,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말로 그들을 옹호하기에는 지나치게 내면으로 잦아들어 내성적인 통찰로만 고개를 숙였던 것 같다. 때문에 자아에만 전념하는 유아론자들이라는 딱지를 그들에게서 떼어내기 힘들 듯하다.

이후, 싱어송라이터들은 때로 어쿠스틱 기타를 버리고 신시사이저의 소리 속으로 융합하기도 했고, 때로 현대의 전자 악기들의 소리를 거부한 채 고고하게 자신만의 영역을 고수한 이들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싱어송라이터 계보는 1980년대 들어 큰 흐름을 형성했다고 말하기 힘들 것 같다. 매끄러운 촉감의 목소리를 가진 트레이시 채프먼 및 수잔 베가가 포크 전통에 입각한 1980년대의 유일한 싱어송라이터 ‘스타’ 디바들이었는데, 이들이 가진(혹은 가지려했던) 신실함(sincerity)의 목소리는 상업성의 그물 속에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진정성(authenticity)과 인공성(inauthenticity) 사이의 이러한 간극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좀 다른 통찰이 필요했다.

포크 록에 대한 새로운 접근들

이와 같은 문제는 기존의 포크 록에 대한 거부, 즉 포크 음악이 소통되는 주류 시스템에 대한 거부를 통해서 해결되었다. 이 흐름은 ‘안티포크 무브먼트’라고 불렸다. 안티포크는 미국 동부의 작은 씬이었지만, 그 의미는 작다고 폄하될 수 없을 것이다. 미셸 쇼크트(Michelle Shocked), 아니 디프랑코(Ani Difranco) 등을 안티포크 뮤지션으로 꼽을 수 있는데, 그들은 주류의 생산 및 유통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레이블을 설립하거나 직접 판매하는 방식 등으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는 인디 에토스를 분출시켰다. 펑크(정신)와 만난 포크(음악)는 그 태도 면에서 70년대의 내면적인 싱어송라이터보다 프로테스트 포크 전통에 더 맞닿아 있다.

이제 포크 (록) 음악은 구전 음악이나 어쿠스틱 악기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순수나 저항으로만 설명되지도 않는다. 맑고 자연스러운 목소리와, 이를 거스르지 않는, 아니 오히려 강화하는 기존의 반주 형식도 새로운 형식과 만나게 되었다. 다른 식으로 느슨하게 말하면, 특정 사회집단 내부에서 생산되고 소통되는, 국지적이고 ‘정서적인’ 공동체에서 소통되는 음악, 그것이 포크 (록)인 것이다.

포크 록 스타일은 컬리지 록 혹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인 알이엠(REM), 텐 사우전드 매니액스(10,000 Maniacs), 레몬헤즈(Lemonheads) 등등의 뮤지션에서도 읽혀지며, 세바도(Sebadoh), 포크 임플로전(Folk Implosion), 헤이든(Hayden) 같은 로파이(lo-fi) 인디 록과도 접속되었다. 안티포크나 로파이 계열에는 벡(Beck)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는 전자 사운드와 포크 록을 뒤섞는 실험을 통해 포크 록의 새로운 통로를 열었다. 벡이나 베스 오튼(Beth Orton) 같은 이들은 포크가 고집했던 순수의 시대가 갔음을 인식하고, 다른 종류의 이질적인 음악들을 포크 속으로 영입한 것이다. (사실 1960년대에 포크가 록과 만난 것부터 이미 포크의 순수성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포크가 록을 만나 포크 록이라는 하이브리드 장르를 형성했듯, 포크 록은 일렉트로닉 사운드들과 교배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포크 록의 계보에서 느닷없이(!) 출현한 서정적인 목소리의 주인공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나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도 빼놓을 수 없는 뮤지션이며, 다른 한편에는 빌리 브랙(Billy Bragg)과 같이 프로테스트 전통을 이어받은 성채를 지켜나가는 뮤지션도 있다. 이처럼 포크 록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사되면서 그 영토의 확장에 나서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1990년대 포크 록 음악의 현주소인 것이다. 19991101 | 최지선 [email protected]

참고 문헌
Katherin Charlton, Rock Music Styles A History, Brown & Benchmark, 1994.
The Rolling Stone Illustrated History Of Rock & Roll.
신현준, 록 음악의 아홉가지 갈래들, 문학과 지성사, 1997
김지영, 이상의 시대 반항의 음악: 60년대 미국사회와 록음악, 문예마당, 1995.
서동진, 록, 젊음의 반란, 새길,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