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참여해주시고 관심가져주신 여러 독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생각보다 훨씬 정성스러운 리스트에 놀랐고 또 무척이나 깊고 다양한 음악 취향에 놀랐습니다. “[weiv] 편집진보다 독자들이 훨씬더 음악을 많이 듣는거같다”는 언급이 실감났습니다. 자유게시판에 참여한 독자는 전체 [weiv] 독자의 극히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생각이 들게 해주었습니다. 지금까지 [weiv]의 편집방향이 엉뚱한 점이 많았고 좌충우돌했다는 생각도 들었고, 앞으로 [weiv]의 편집방향을 생각해보니 걱정이 앞서기도 하는군요.

아무튼 워낙 다양하고 각자 독특한 리스트라 엄두가 나지 않지만 매듭을 지어야 하겠기에 “더욱더 다양할수록 더욱더 좋다”는 말을 금과옥조 삼아 독자 참여 리스트에 드러난 몇가지 ‘경향’을 한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취향의 전성시대

무엇보다도 독자 리스트는 특별한 구심적 경향이 없어져버린 1999년의 대중음악계의 상황을 잘 반영하는 듯합니다. 도저히 하나 혹은 몇 개의 ‘구호로 정리’할 수 없는 만개된 취향을 펼쳐 보였습니다. 완전 개방형 리스트를 요구한 데다가 리스트가 열 다섯 정도로서 적기는 했지만, 서로 일치하는 항목을 찾아보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테크노

20000922121450-rbest1그 중에서도 장르로 보아 두드러진 것이 있다면, 테크노와 포크 계열의 모던 록이었습니다. 이삼년전 예측과는 달리 테크노조차 압도적인 경향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테크노(일렉트로니카)는 그런지나 브릿팝 등등처럼 다른 모든 경향을 싹쓸이해버리는 욕심쟁이가 될만한 야심이 없는 장르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다만 테크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몇몇 수퍼스타들에 대한 지지로 모아졌습니다. 케미컬 브러더스 (Chemical Brothers)의 [Surrender], 레프트필드(Leftfield)의 [Rhythm & Stealth], 뮤직(μ-Ziq)의 [Royal Astronomy], 데쓰 인 베가스(Death In Vegas)의 [The Contino Session] 등이 자주 언급된 테크노 앨범입니다.

포크계열

20000922121450-rbest2[weiv]에서도 특집을 마련한 바 있는 ‘포크 풍의 모던 록’ 경향에 대해서도 많이 주목해주었습니다. 물론 마찬가지로 야심없는 장르이니만큼 전반적인 경향을 주도하는 따위는 아니었구요. 애럽 스트랩(Arab Strap)의 [Elephant Shoe], 재발매된 벨 앤 세바스찬 (Belle & Sebastian)의 [Tigermilk] 등과 함께, 벤 폴즈 파이브(Ben Folds Five), 디바인 커미디(Divine Comedy), 하이 라마스(High
Llamas), 로(Low), 마그네틱 필즈(Magnetic Fields) 등 챔버 팝 계열이나 ‘포크 인플루언스드’까지 포함시킨다면 전체 리스트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같은 계열로 묶는 것은 무리로 보입니다만, 페이브먼트(Pavement)와 모그와이(Mogwai), 그리고 에어(Air)는 인디 밴드로서 최고의 지위를 누리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플레이밍 립스

20000922121450-rbest3포크 계열이든 뭐든 간에 인디-모던 록 계열에서는 단연 플레이밍 립스(Flaming Lips)의 [The Soft Bulletin]를 최고의 앨범으로 꼽은 경우가 세 명 중 한 명 이상이었습니다. [weiv] 편집진에서도 이 앨범을 가장 많이 꼽았다는 걸 비춰보면 어쨌든 의견 일치를 본 셈입니다. 이 앨범이 1999년 최고의 앨범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을 것같습니다.

블러와 벡

‘인디 중 메이저’로 꼽을 수 있는 뮤지션 중에서는 블러(Blur)와 벡(Beck)에 대해 언급이 많았습니다. 실망이건 만족이건 간에. 예전의 ‘치기’를 벗어던지고 거듭난 블러(Blur)에 많은 분들이 주목했습니다. 아마도 사랑스러운 “Coffee & TV”의 뮤직 비디오 덕을 보기도 한 듯합니다. 벡의 경우는 의견이 가장 극단적으로 어긋나는 경우였지만 어쨌거나 그의 재치는 인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외에도 언급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뮤지션은 신인급으로서 ‘ 잡탕식’의 음악을 들려주는 수퍼 퍼리 애니멀스(Super Fury Animals)와 베타 밴드(Beta Band)였습니다. 또한 ‘의외로’ 다분히 미국적인 베테랑 윌코(Wilco)의 이름도 언급이 되었습니다.

힙합은 없었다?

힙합으로서는 루츠(Roots)가 거의 유일하게 언급이 되었습니다. 루츠는 실제 연주를 하는 힙합 밴드로서 모던 록 팬의 구미에 가장 맞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weiv] 독자 중에 전격적인 힙하퍼는 별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따라서 국내외적으로 힙합이 가장 떠들썩함에도 불구하고 우탱 이후 ‘모던 록’ 팬들을 사로잡을 만한 힙합은 아직 없나봅니다.

한국의 인디 음악

연초에 나왔던 델리 스파이스의 [Welcome to the Delihouse]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이 꼽아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리스트에서는 델리와 더불어 스위트피, 은희의 노을과 언니네 이발관 정도만이 언급되고 있을 뿐입니다. 언니네 이발관의 두 번째 앨범이 1998년 말에 나왔음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1999년에 한국의 인디 음악판이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습니다. 은희의 노을에 대해서는 ‘뛰어나다’는 식의 찬사의 말보다는 ‘미숙하지만 편안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새로운 대안은 일본?

일본 음악 쪽에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weiv] 편집진으로서는 쏟아져 나온 일본 음악 리스트에 적지 않게 당황했습니다. 특히 일렉트로니카나 일본 특유의 ‘잡탕식’ 팝 음악에 대한 인기가 상당함을 확인했습니다. 거대한 흐름도 없고 특출난 신인도 없는 상황에서 일본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 자연스럽게도 보입니다. 어쨌거나 일본 음악에 대한 관심은 주류나 인디 할 것 없이 2000년에도 더욱 거세질 것 같습니다. 20000115 | 이정엽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