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 컴퓨터 통신의 음악/오디오란을 뜨겁게 달구는 주제는 힙합이다. 특히 가장 활성화되어 있고 참여하는 이들의 연령이 낮은 편인 나우누리의 오디오 게시판(go audio)에는 온통 힙합에 관한 얘기로 ‘도배’가 되고 있다. 워낙 잡다해서 정확히는 정리/파악이 되지는 않지만, “누가 최고의 힙합이냐”를 두고 시작된 것 같은 이번 논쟁은 단지 “난 누가 좋다, 누구 죽어라” 식의 다툼이 아니라, ‘한국에서 힙합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번 논쟁의 발단은 드렁큰 타이거의 팬과 와이지 패밀리의 팬 간의 대립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곧 논쟁은 (언제나 그렇듯이) 무엇이 ‘정통 힙합’인가를 두고 벌어졌다. 상업적인 것에 대한 비판, 가사를 직접 쓰지 못하는 쪽에 대한 비판, 한국어 랩과 라임의 중요성(혹은 중요하지 않음)을 두고 의견이 이어졌다. 이 논의는 한 단계 발전하여 ‘한국 힙합(k-hiphop?)’의 가능성에 대한 얘기로 이어졌다. 일단은 ‘정통 힙합’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과 정통만을 흉내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대립했고, 한국식으로 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견과, 한국식 힙합이라는 상업적 댄스가요를 가장하기 위한 방책일 뿐이라는 의견이 대립되었다.

“일단 힙합을 표방한 이상 그것이 지니고 있는 정신과 기본적인 요소들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런것들을 지키지 않고 한국적이라는 말을 씀으로써 힙합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내가 볼 때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는 여러 힙합을 표방하는 팀들은 거의 대부분 한국적 힙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힙합을 표방한 한국적 댄스 음악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suerte).

“그 녀석들하고 똑같이 꼭 해야되는 건가? 과연 된장먹고 사는 한국 놈덜이 빠다 먹고사는 녀석들하고 똑같아질 수 있단 말인가. 어차피 장르란 것은 그들이 먼저한 것이고 우리는 그들 것을 가져다가 우리식으로 재해석하는게 가장 옳은 짓이 아닐까? … 한국인이 힙합을 하는 이상 한국정서가 가미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언론탄압)

이런 식의 논쟁은 물론 일방적인 비난을 포함하기도 했지만, 예컨대 국내 최고의 댄스 가요 팀의 팬들 간의 논쟁에 비해 체계적이며, ‘한국 힙합’의 정체성이라는 쉽지 않은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20000108 | 이정엽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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