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앞을 어슬렁거리다 보니 전에는 못보던 중고 음반 취급점이 눈에 띄었다. 그냥 지나갈 수 있나… 들어가서 요리조리 뜯어보았더니 레퍼토리도 그저 그렇고 가격도 신품과 별반 차이가 없고… 그래서 나오려다 한켠에 쌓아둔 낡은 LP가 눈에 밟혀서 또 짓주물러 있었다.

김민기 음반이 보이고 산울림 음반이 보이고 mbc 대학가요제 음반이 보이고 결정적으로 따로또같이 음반이 보이더라. 흐뭇한 표정으로 음반들을 쓰다듬고 있으려니까 쥔아저씨 왈, “이쪽에 있는 음반들은 비싼건데요.” 나는 건성으로 “그래요, 얼만데요” 하고 물어봤더니 세상에나 마상에나 2만원 이상을 줘야 한단다.

참지 못하고 “이런거 1~2천이면 살 수 있지 않나요?” 했더니 예의 그 아저씨 딱하게 내려다 보시며 “4월과 5월 알아요? 장미 있는 그 음반 그런것도 2만원씩에 팔려요.” 꾸웅~~ 언제부터 지구 레코드 산 국산 LP판이 상한가를 기록했었나?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정선 70년대 음반 2천원 주고 샀었는데… 누구는 산울림 음반 거져 줏었다는데…

햐아~~ 아무래도 이것은 전 S모지 P기자의 ‘한국 명반’ 어쩌구 하는 특집 기사의 위력 내지는 K모지에 ‘포크 명반’ 어쩌구를 연재하는 K모 평론가의 공으로 돌려야 할 것같다는 나름대로 명쾌한 결론을 내리고 매장을 나왔다. 이제 눈 먼 음반 헐값에 손에 쥐고 ‘웬 떡이야’ 하며 히죽거리던 호시절도 지나가고 있다는 감을 퍽퍽 느끼며.

물론 한때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장악했던 노래가 고전의 반열에 들며 수집의 대상이 되는 것을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무한 승리를 구가하는 이 때에 LP의 투박함이 더벅머리 청년의 풋풋함(촌스러움이라 해야 마땅할)과 어울려 뒤늦게 상종가를 때리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순간 나는 왜 황당해했는지 모르겠다. 김민기 데뷔 음반이 10만원을 홋가하던 시절에 살았던 내가, ‘역시 가끔은 비닐판 긁어대는 소리로 들어야…’ 어쩌구 하던 내가, 꽤 그럴듯한 복고 취미에 이렇게 어이없이 버벅거리다니…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묘한 여운을 남긴 오후의 해프닝을 겪으며, 우리의 기호라는 것이 사실은 무수한 대립항들의 경계 위에 서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테크노 바 대 미사리 라이브 카페, 인터넷 쇼핑몰 대 황학동 벼룩시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든 생각. 집에 남아있는 LP 판 잘 보존하고 있어야겠다는… 그리고 나에게 고귀하신 명반을 껌값에 넘겨준 노점상 아저씨들에게 애도를 표해야겠다는… 19990915 | 박애경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