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이 ‘진지한’ 담론의 대상이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길게 잡아도 10년이 채 안 된 듯하다. 물론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의 이야기다. 이제는 대부분 동의할 이야기일 듯하다. 그런데 대중음악이 진지한 대우를 받는 것이 좋은 일인가 아닌가는 좀 다른 문제다. 좋다 나쁘다라는 판단이 어떤 관점에서 나오는가도 문제일 테고. 어찌 되었든 천대받던 것이 존중받기 시작한 것을 두고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새천년 벽두이니만큼 오늘은 ‘밝은’ 면을 보면서 시작하자.

어떤 대상이 진지하게 취급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관찰할 만한 ‘데이타베이스’가 축적되었음을 전제한다. 당연히 데이터베이스는 ‘과거’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진지한 고찰은 기본적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성격을 갖는다.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언제나 필요하다.

갑자기 왜 데이타베이스 타령을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그게 요즘 대중음악에 대한 진지한 평론의 공통의 화두기 때문이다. 이미 [리뷰]라는 계간지와 [서브]라는 월간지에서 연재 형식으로 다룬 바 있고 단행본 형식의 책도 나왔다. 강헌을 중심으로 하는 [리뷰]의 편집진은 몇 년 전부터 단행본을 준비해 왔지만 아직 출간되지는 않았고, [서브] 편집장 출신인 박준흠은 [이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이라는 제목으로 197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대중음악의 연대기를 정리한 바 있다. 이런 형식의 단행본들은 대중음악이 존중받는 문화형식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현실계로부터 사이버세계로 옮겨서 진행되는 모습을 보인다. 강헌과 [리뷰]는 렛츠뮤직(letsmusic)과 손을 잡고 일을 추진하고 있으며, 박준흠도 자신의 웹진 ‘가슴’을 창간하여 비슷한 일을 시작하고 있다. 요즘 여기저기서 인터넷을 이용한 사업이 한창인데 대중음악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듯하다. 이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싹트기 시작한 이른바 ‘인디 음악’을 주 대상으로 하여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놓은 사이트들도 다수가 존재한다.

미리 말해 두면 나는 “이런 데이터 베이스 구축을 뭐하러 하는가”라고 시비걸려고 하는 건 아니다. 그건 기본적으로 좋은 일이고, 일하는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을 힘빠지게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지적할 것은 이런 데이터 베이스의 구축의 목적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서 ‘문화 선진국’의 사례를 들어보자. 인터넷 사이트에 가보면 데이타베이스를 잘 구축해 놓은 나라들이 많다. 물론 가장 잘 되어있는 곳은 미국이나 영국처럼 대중음악의 주요 수출국들이다. 그런데 공짜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 왜 이렇게 ‘잘’ 되어 있는지 의심해 볼 필요는 있다.

그건 다음 아니라 이런 사이트들이 음악산업과 잘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음악과 음악인에 대한 기초 정보를 게시하고 있는 ‘올 뮤직 가이드’는 개별 밴드들에 관한 보다 상세한 사이트를 집적해 놓은 놓은 ‘얼티밋 밴드 리스트’과 연계되어 있다. 얼티밋 밴드 리스트에 가보면 ‘Buy CD’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인터넷 CD 샵과 연결된 것이 다. 대표적인 인터넷 CD 샵인 ‘CD now’에 가면 거의 모든 음반에 대해 미국 굴지의 평론지 [롤링 스톤(Rolling Stone)]의 리뷰가 제공되어 있다. 그냥 “이거 좋아요. 지갑 여세요” 수준의 적나라한 홍보 문구가 아니라 나름의 전문가가 쓴 비평이다.

이들 인터넷 사이트들 사이의 계약관계나 이해관계가 어떻게 정비되고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특징은 검출할 수 있다. 그것은 음악과 비즈니스 사이의 연계가 그다지 노골적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순 장삿속 아냐’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음반들이 잘 전시되어 있고 오래되어 절판되었음직한 음반들도 발견하게 되니 때로는 기쁘기까지 하다.

이 모든 것이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영미권 음악산업의 전략’이라고 몰아부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남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를 돌아보자. 현재 한국 대중음악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곳을 들어가보면 ‘대중음악사의 명반들’같은 걸 찾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 아주 유명한 음반을 제외하고는 구입할 방법이 없다. 아주 유명한 음반이야 굳이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는 거라면 좀 갑갑한 일이다. 사이버 세계에서만 없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없다. 몇 년 전부터 생기기 시작한 중고 음반점을 찾아가 봐도 대부분은 없고,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이건 골동품 가격이지 공산품 가격이 아니다.

한마디로 ‘건전한’ 음악 비즈니스와 연계된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요원하다는 뜻이다. 어떤 이는 한국 대중음악사를 정리하는 작업이 ‘중고음반 가격만 올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이런 작업은 ‘사적’ 영역에서는 불가능한가. 사적으로 힘든 일이라면 공적으로라도 해야 되는 일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떠오르는 장소가 있다. 언젠가 한번 밖에서 ‘구경’만 할 수 있었던 방송국의 자료실이다. 그곳에는 이제까지 발매된 음반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 보였다. 그렇지만 그림의 떡일 뿐이다. 공공기관이므로 ‘사적 대여’는 불가능하다고 말했고, 게다가 CD가 아닌 옛날 음반들(LP나 SP)은 ‘직원’이라도 대여할 수 없다고 했다.

나의 불만은 일반인이 자료실을 이용할 수 없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자료실은 잘 ‘정리’되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검색할 수 있는 장치도 없었다. 소용이 없으니 있어봐야 뭘 하겠는가. 속마음으로는 손실되고 있는 음원을 디지틀 형태로 복제해 놓고 싶었다. 프로젝트라도 만들어서 할 수 있는 일 아닌가라는 생각도. 한때 토지 공개념이란 말이 유행했다. 음악 공개념은 없는가. 갑자기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영화 포스터를 제공했던 인물. 나는 그분을 TV 화면으로만 보았을 뿐이지만 꽤 오래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모든 ‘의미있는’ 일들은 개인이 사비를 털어야만 겨우겨우 이루어지는가 보다. 그래도 좋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주위의 시선만 사라진다면. 19991223 | 신현준 [email protected]

관련 사이트
올뮤직 가이드
http://www.allmusic.com

엇티밋 밴드 리스트
http://www.ubl.com

CD 나우: 인터넷 CD 샵
http://www.cdnow.com

레츠 뮤직: 90년대 한국 대중음악 앨범 100선
http;//www.letsmusic.com

문화/음악 웹진 ‘가슴’
http://www.gaseu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