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단선율에 대한 얘기를 잠깐 꺼냈었는데, 실은 ‘단선율’이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추어 음악 평론가가 잘 모르고 구사한 어설픈 용어 쯤으로 생각해주기 바란다. 뜻은 간단하다. 화음이 복잡하지 않고 주 멜로디와 거의 유니즌으로 흐르는 선율을 그렇게 불러본 거다. 점차 모노폰(monophon)의 위력이 폴리포니(polyphony)의 화려함을 압도할 것이다. 지난 번에 무슨 일 때문에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프리 재즈의 거장 강태환 씨로부터 ‘요즘 음악은 피아니시모(작은 소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동감이다. 단선율에 관한 생각과 피아니시모가 사라지고 있다는 정황과는 맞물리는 지점이 있다.

화려함은 이제 극대치에 달해 더 이상 화려할 수 없을 정도다. 음악이 그렇게 된 건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내 생각으로는 바그너에 이르러 서양음악사가 도달할 수 있는 화려함이라는 건 완성이 된 것 같아 보인다. 그 이후로는 화려함의 ‘재배치’나 다름이 없다. 최근에 보면 더 화려하기 위해 사운드를 모으기보다는 좌우로, 앞뒤로 펼친다. 이른바 서라운드 사운드이다. 그리고 저음의 이퀄라이저는 저음대로, 고음의 이퀄라이저는 고음대로 자극적인 부위를 ‘불린다’. 테크노의 가슴을 울리는 비트가 그렇고 록의 하이햇 심벌 소리가 그렇다.

그런데 이젠 그런 화려함들이 좀 지겹다. 테크노의 강렬한 비트와 리프, 그리고 귀를 애는 금속성들이 점점 싫어진다. 오히려 모노톤, 즉 단조롭고 조용한 것들이 그리워진다. 실은 테크노도 되게 단조로운 음악이긴 하다. 어느 시대의 음악이 그렇게 반복적일 수 있으랴. 이미 테크노가 단조로움의 시대를 예견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라. 요즘 음악들 가운데 ‘감동적’인 음악들이 어떤 건. 대개는 조용하고 거의 음악 같지도 않은 단순한 소리들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대표적인 예가 강태환의 프리 재즈이다. 그의 프리 재즈는 물론 강력한 소음적 요소를 동반하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은 12음의 힘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시리얼리즘 이후의, 아니 미분음까지를 사용하는 그 더 이후의 음악이 갖는 복잡한 화음 구성을 따라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매우 단순한 선적 구조로 펼쳐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올올히 끄나풀이 펼쳐지는 실타래 같이 우리 귀로 천천히, 느슨하게 들어 온다.

단조로운 음악이 갖는 최대의 힘은 ‘집중력’이다. 복잡하고 화려한 건 집중적일 수가 없으나 단선율은 집중적일 수 있다. 집중적인 건, 뭐든지 거울이 된다. 안쪽을 비추는 거울 말이다. 그렇다고 ‘참선’ 쪽으로 가자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어쨌건 그런 집중력들이 좀 아쉬운 시대이니 그쪽의 음악들이 그립다. 느릿 느릿 펼쳐지면서 저 깊은 곳 어딘가로 우리를 안내하는 오솔길 같은 음악들 말이다. 20000112 | 성기완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