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 guid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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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기를 만들어 팔면서 면도날을 만들어 팔지 않는다면 바보다. 이걸 최대한으로 악용하는 회사가 휼릿 패커드(HP)다. 프린터는 싸게, 프린터 잉크는 비싸게. 일본에서 CD 플레이어는 무지하게 싸지만 CD는 무지 비싸다(대신 CD 대여점이 있다). 워크맨보다 싸게 파는 정책을 취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음악 만드는 회사가 음악 듣는 기계도 함께 만들기 때문이다(바로 소니가 그렇다. 혹은 도시바-EMI처럼 제휴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개의 AV 쪽 세상에서는 이 뻔한 사실을 알면서도 잘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회사가 현재의 소니처럼 소프트웨어/하드웨어 회사가 통합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필립스가 폴리그램을 분리하여 유니버설에 팔아먹음으로써 더욱 그렇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예컨대 1970년대 말 발명된 베타 비디오와, 1980년대 발명된 DAT(Digital Audio Tape)나 DCC(Digital Compact Cassette)가 재미있는 예다.

소니에서 개발한 베타 비디오는 VHS보다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에서 패배하여 자취를 감추었다. 헐리우드 영화계가 소프트웨어(비디오 테입)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 이때 얻은 뼈저린 교훈으로 소니는 컬럼비아 영화사를 인수해버리는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소니에서 개발한 DAT나 필립스에서 개발한 DCC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CD에 비해 불편한 점이 많이 있었지만, 쓰기가 가능하여 ‘불법 복제’를 막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레코드 회사에서 소프트웨어를 지원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는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면도날없이 면도기만 있어도 뿌듯해하던 때가 있었다. 1930년대 미국에서는 가전회사가 레코드회사나 영화회사의 주인이었고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특히 축음기)를 팔아먹기 위한 도구 정도로만 생각했다. 물론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그랬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까지는 전축은 ‘오디오’라기보다는 가정의 경제적 지위를 표시하는 가구 혹은 장식품이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아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에 대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음악에 있어서 가전회사보다는 레코드 회사가 협상에 있어서 유리하다는 건 상식에 비춰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서 양상이 더욱 복잡해진 것은 가전회사와 레코드 회사뿐만 아니라 컴퓨터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회사 그리고 인터넷 서비스 회사까지 이해당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물론 소비자는 여전히 협상의 주체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바로 이들이 SDMI(Secure Digital Music Initiative)라는 디지틀 음악 표준을 정하는 길고 지루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재작년 가을, ‘리오 500’이라는 휴대용 mp3 플레이어를 내놓아 mp3 논쟁에 불을 붙였던 회사가 바로 다이어먼드 멀티미디어라는 회사다. 오늘 소개할 리오포트(RioPort.com)는 바로 이 회사의 자회사다. 이 사이트에서는 ‘면도기를 만들어 팔았으니 면도날을 제공한다’는 바로 그 이치에 따라 갖가지 mp3/wma 파일을 제공한다. 또한 “불법 mp3 유통을 조장한다”는 레코드 업계의 비난에 대해 휘파람을 불며 여유있게 “난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는 사이트다. 레코드 회사가 mp3를 합법적으로 제공하는 데 소극적이자 직접 나선 경우이기도 하다. 리오포트는 인터트러스트(Intertrust) 사와 제휴하여 카피 프로텍션 시스템을 구축하여 무료 파일인 경우에도 복사하는 데는 제한이 있는 경우가 있다(따라서 자기 컴으로 복사한 이후에 사용 제한이 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길 바란다).

그러면 리오포트에는 어떤 ‘면도날’이 준비되어 있을까. 지난 1999년 10월에 오픈한 리오포트는 mp3와 윈도우스 미디어 오디오(wma) 파일을 중심으로 다양한 음악을 (거의 대부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무료로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물론 리오 500을 팔아서, 그리고 나스닥 주가가 폭등해서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유니버설, 드림워스, TVT, 서브 팝, MTV 등과 제휴했기 때문이다. 리오포트에서는 여러 레코드 레이블 소속의 기성/인디 뮤지션 음악을 찾아볼 수 있다.

스윽 둘러보니 음악 소개도 충실하고 갈끔한 페이지 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컨텐츠의 규모로 봐도 ‘법적으로 올바른’ 음악 파일 사이트 중에서 거의 제일 큰거 같다. 20개 장르로 구분된 페이지를 슬쩍 둘러보니,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TLC, 아이스 티(Ice T), 헨리 롤린스(Henry Rollins), 머드허니(Mudhoney), 벅체리(Buckcherry), 유리스믹스(Eurythmics), 식스펜스 넌 더 리처(Sixpence None The Richer) 등이 눈에 띈다. 다른 데에서도 다 있는 거라고? 그렇지만 랜디뉴먼(Randy Newman), 디제이 바딤(DJ Vadim) 등의 무료 mp3은 다른 데서는 못봤던 거 같다. 그리고 거개의 인터넷 음악 싸이트가 그렇듯이 (유망한) 무명 뮤지션의 음악도 제공한다.

그런데 진짜 리오포트의 비장의 무기가 있다. ‘스포큰(Spoken Word)’이라는 섹션에는 시, 소설, 스포큰 워드, 교육용 자료, 뉴스 등 갖가지 파일이 있다. mp3으로 음악만 들으라는 법 있나? 내가 보기에 지하철에서 워크맨 끼고 있는 사람 중에 절반은 영어 공부하는 사람이다. 어떤 미국의 티벳 불교도는 휴대용 mp3 플레이어를 끼고 지하철에서 리오포트에서 다운받은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을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케팅이나 처세술 파일 갖다가 영어공부해도 되겠다. 어쨌든 리오포트에서 제공하는 코미디, 오디오 북, 옛날 라디오 프로그램 등은 꽤 많은 편이다. 하지만 명작 문학 작품의 오디오 북을 제외하고는 영어를 잘못하는 우리에게는 낯선 것이라 아쉽다. 헨리 롤린스(Henry Rollins), 닉 케이브(Nick Cave) 등 낯익은 뮤지션의 스포큰 워드(spoken word)가 가끔씩 눈에 띄는 것이 위안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20000112 | 이정엽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