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라지 밴드(garage band)라는 말은 1960년대 특히 각 지역에서 번성하던 풋내기 밴드들을 일컫는 말이다. 비틀스(Beatles)를 앞세운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 이후 미국의 젊은애들은 너도 나도 4인조 혹은 5인조 밴드를 짰다. 대부분 별 볼일 없는 수준이었고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반짝 히트(one-hit wonders)’ 정도였지만, 미국의 스탠덜스(Standells), 일렉트릭 프룬스(Electric Prunes), 카운트 파이브(Count Five), 영국의 트록스(Troggs) 같이 비교적 오래 활동한 밴드도 배출했다. 대개 시끄럽고 조야한 사운드였지만, 일렉트릭 프룬스, 블루스 마구스(Blues Magoos), 초컬릿 워치 밴드(Chocolate Watch Band) 등 몇몇 밴드는 프로그레시브나 사이키델릭으로 발전하기도 했고, 트록스 등은 나중에 프로토펑크(protopunk)로 인정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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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간에 이런 거라지 밴드가 나름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거라지(차고)나 지하실에서 푼돈 모아 산 악기, 특히 드럼을 마음껏 두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밑바탕을 생각해보면 거라지 밴드는 정말로 미국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수많은 풋내기 밴드가 처음 음악을 뚱땅거리는 공간이 거라지나 지하실임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뮤지션 지망자에게는 또 하나의 공간이 제공되었다. 지난 10월 개설된 garageband.com이라는 웹 사이트이자 레이블은 바로 풋내기 밴드들을 위한 ‘사이버 거라지’이다. 전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멤버였던 제리 해리슨(Jerry Harrison)이 개설한 이 사이트는 “팬과 신생 뮤지션, 산업이 동등하게 만나는 공동체이며, 일정 기간 동안 뮤지션이 올린 음악을 평가하여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뮤지션과 25만 달러의 레코드 계약을 맺는다”고 한다. 이 25만 달러는 상금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레코드를 팔아서 돈을 벌게 되면 garageband.com에 되갚아야 하는 돈이다.

제리는 데모 테입은 넘쳐나지만 정작 레코드사 관계자들조차 그걸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 사이트를 착안했다. 이른바 ‘A&R(Artist & Repertoire)’라는 음악 비즈니스의 전통적인 과정을 인터넷을 통해 민주적으로 개방해보자는 취지다. 누구라도 리퀴드 오디오나 mp3 포맷을 이용해 이 사이트에 음악을 올릴 수 있고, 누구라도 리뷰와 평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런 움직임은 garageband.com처럼 ‘벤처’ 식으로 이루어지는 정도가 아니다. garageband.com이 설립된지 한달쯤 후, 세계 최대의 레코드사인 유니버설 뮤직 그룹이 새로운 온라인 레이블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스타메이커’라는 거창한 구호, 그리고 ‘차세대 엔리케 이글레시아스’나 ‘차세대 U2’가 인터넷을 통해 등장할 것이라는 조금 과장된 설명이 뒤따랐다.

유니버설의 CEO들의 이름을 따 ‘지미와 덕의 팜 클럽(Jimmy and Doug’s Farm Club)’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레이블이 돌아가는 방식은 이렇다. 우선 무명 뮤지션들이 자기 음악을 올린다. 일반 음악 팬들이 이 음악을 평가하도록 한다. 레이블은 최고의 뮤지션과 계약을 하면 된다.

이 과정은 이제 이미 ‘기발한’ 생각은 아니다. 그렇지만 garageband.com과 다른 점이 있다면, 메이저 레이블인만큼 든든한 홍보와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매주 최고의 뮤지션은 이 레이블에 지분을 투자한 USA 네트워크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Farmclub.com”에 출연하게 되며, 역시 이 레이블에 지분을 가지는 MTV, AOL, 소닛넷(SonicNet)를 통해서도 적극적으로 홍보된다. www.farmclub.com 사이트와 레이블은 12월에 공식으로 발족되고, 텔레비전 쇼는 내년 2월에 처음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이전의 A&R 과정과는 다른, 웹을 통한, 팬에 의한 A&R이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A&R 분야에서는 이전처럼 지역의 클럽을 뒤지고 군소 레이블의 일단 ‘검증된’ 뮤지션과 계약을 맺는 등의 일이 중심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A&R의 통로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팬들은 이전처럼 단지 음악 산업이 제시하는 생산물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팬들이 아니라 음악의 생산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팬들이 된다. 물론 이런 인터액티브가 ‘대중의 평균적인 취향’이라는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귀결될 수도 있고, 보다 소수적이거나 창조적인 음악이 활성화되는 계기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19991114 | 이정엽 [email protected]

관련 사이트
거라지밴드
http://www.garageband.com

팜클럽
http://www.farmclu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