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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쿠스틱에서 일렉트릭으로, 다시 일렉트로닉으로 이어지면서 알아야 할 것이 많아졌다. 어쿠스틱 음악은 느긋하게 그 울림을 음미하고 느끼면 그뿐이었다. 일렉트릭 음악은 적어도 사용되는 이펙트가 뭔지는 알아야 했다. 일렉트로닉 음악의 경우, 아날로그와 디지틀의 구분부터 시작하여 무그, TR-808, TB-303 등 신서사이저 종류는 물론 샘플러니 루프니 패드니 하는 생경한 용어와 만나게 된다. 여기에 디트로이트 테크노, 하우스, 앰비언트, 트랜스, 드럼앤베이스, 빅 비트, 트립합 등 테크노의 악명 높은 ‘수많은’ 하위 장르들과도 씨름해야 한다.

한편에서는 테크노에 관한 담론이 무성하다. 사실 테크노는 록보다도 더 과잉담론적이기 마련인데, 본질적으로 인디적이고, 개인적이고, 실험적이고, 테크놀로지 친화적이라 할 말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모든 것을 잊고 그저 무한히 반복되는 비트에 몸을 맡기라고 한다. 테크노는 소리와 나, 자연과 기계가 하나되는 ‘체험’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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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라 리(Iara Lee) 감독의 [모듈레이션 Modulations](1998)은 이러한 일렉트로닉 음악의 역사를 거슬러 가는 여행이면서, 동시에 테크노 문화에 대한 보고서의 성격을 갖는 도큐멘터리 영화이다. 1998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 소개된 후 2년 만에 정식으로 일반인들에게 개봉되는 셈이다(비록 일반 상영관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유명한 테크노 뮤지션들을 비롯해서 저널리스트, 작가, 학자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과의 인터뷰 및 공연 장면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그럼 영화가 이끄는 대로 한번 따라가 보자.

영화는 오케스트라 연주, 새들의 비상, 농장, 구름 등 자연 풍경이 일그러지면서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효시인 제니시스 피오리지(Genesis P-Orridge)의 디지틀 철학으로 시작한다. 제목이 올라가면 일렉트로닉 음악의 기원과 정의, 디트로이트 테크노, 정글, 디스코와 하우스로 숨가쁘게 이어진다. 이어 애시드 하우스와 레이브 파티, 앰비언트, 턴테이블리즘을 거쳐 행복하게 춤추는 홀거 츄카이(Holger Czukay)의 모습으로 영화가 끝난다. 영화 내내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테크노에 관한 생각을 듣게 된다. 감독은 카메라 뒤에 서서 이들의 생각을 묵묵히 전달할 뿐이다. “무언가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말하는 것보다 언제나 질문하고 의심하는 태도가 더 마음에 든다”는 감독의 태도가 확인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각자의 관점들 사이로 일관되게 흐르는 사상의 궤적을 자연스레 따라갈 수 있도록 각 장면들이 논리적으로 배치되며, 이는 이 영화가 갖는 가장 큰 장점이다. 잘 만들어진 도큐멘터리 영화가 그렇듯이, [모듈레이션]도 감독의 주관이 부각되지 않고 주제에 대한 과도한 몰입 내지 낭만화를 피하면서 무언가 생각할 것을 던져준다. 특히 테크노 음악의 주요 작업 방식인 콜라주 방식에 따른 편집(영화 중에 “우리는 뮤지션이 아니다. 콜라주 아티스트다”라는 말이 나온다), 영화 필름과 비디오 필름의 교차, 저속 촬영, 간간이 보이는 디지틀 그래픽 화면은 주제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미적 성취를 배가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주로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들이다. 테크노 음반을 사 모으고 레이브 파티를 찾아다니는 이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고작해야 마약 단속을 나온 경찰에 의해 파티가 취소된 데 대한 레이버의 투덜거림, 그리고 상업화된 파티에 대한 탄식만 들릴 뿐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테크노를 왜 창작하는가에 대해 관심이 있을 뿐 사람들이 테크노를 듣는 이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다. 150명으로 시작된 독일의 ‘러브 퍼레이드’ 행사가 8년 만에 150만 명으로 늘어난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 새로운 음악(현상)에 나름대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어떤 점이 사람들을 매혹시키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파노라마 같은 영화이다. 유명한 뮤지션들의 테크노에 대한 철학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어떤 이는 이를 조직화된 소음이라 했고, 다른 이는 이를 기계음을 통한 영혼의 표현이라고, 또 다른 이는 환경에 대한 반응이라고 했다. ‘모든 음악은 본질적으로 사이키델릭하다’는 표현도 있다. 하지만 파노라마는 그 광경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추억과 즐거움을 주지만 여행객에게는 순간의 인상만을 남긴다. 테크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친숙한 뮤지션과 음악이 나올 때마다 반가운 마음을 숨길 수 없겠지만, 여기에 관심이 없는, 아니 (관심이 없다면 굳이 이 영화를 보러 오지 않을 테니까) 관심은 있지만 잘 모르는 이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여전히 어렵고 낯선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모듈레이션]은 그런 영화다. 20000627 | 장호연 [email protected]

관련 사이트
이아라 리 영화주간 공식 사이트
http://www.artsonje.org/theater/0006_iara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