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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바람이 거세다. 4월의 변덕스러움은 한낮의 기분 좋은 나른함과 해진 후의 스산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날씨 좋다. 봄은 봄이로되… 이런 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이때, 아날로그 초기 시대에나 어울림직한 ‘시’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은 어떨까?

‘인간의 정서를 운율 있는 언어로…’ 아마도 제도 교육의 착실한 전수자였던 시절에 배웠던 아니 외웠던 시에 대한 정의는 대체로 이 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평범하다 못해 진부한 시론(?)을 보면 정서, 운율 있는 언어… 이 두 구절이 포착된다. 자고로 인간의 정서를 다루지 않은 문학. 예술이야 무엇이 있겠느냐만은 유독 여기에서 ‘정서’가 문제되는 것은 가공되지 않은 마음의 즉흥성 그리고 자유로운 연상을 드러내려 한 것일게다.

그리고 또 하나 ‘운율 있는 언어’ 이것은 시가 음악과 친연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운율 즉 리듬은 일정한 주기를 두고 되풀이되는 말의 패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라임을 따라 입으로 발음하고 그것이 입에 붙는 동안 말의 덩어리는 굴곡 있는 그루브(groove)를 만들기도 하고 라인(line)을 만들기도 한다.

사실 시는 음악과 한 몸이었다. 칠현금의 음유시인은 시와 음악이 만나는 가장 자연스러운 접점이었다. 근대 이후의 역사는 시와 음악을 분리시키고 리듬을 사상시킨 ‘산문의 역사’였다. 최근 조용하게 나온 한 음반은 시와 음악이 본래 한몸이었음을, 그리고 음악에 지속적인 영감을 주는 존재였음을 새삼스레 알려주고 있다.

안치환의 비정규 앨범은 고인이 된 시인 김남주를 위한 헌정 음반이다. 생전에 시인이라기보다는 전사로 불리기를 원했던 그의 단호함이 그를 통해 노래의 원천을 얻고자 했던 가객의 목소리로 환생하고 있다. 날이 선 섬뜩함같다던 시인의 정서를 어떻게 이해하는 가는 전적으로 보고 읽는 이의 기호와 가치에 달려 있다.

출옥 후 어느 시 낭송회에서 보았던 시인의 모습은 무시무시한(?) 시와는 달리 따듯한 눈빛을 지닌 중년의 아저씨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자작시와 프란츠 파농의 시를 암송했었다. 그리고 우연히 뒤적거렸던 시집에서 ‘산국화’라는 시를 보고 시대를 잘 만났으면 썩 괜찮은 서정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다지 화제가 될 거같지는 않고 방송에서 각광 받을 일은 더더욱 없을 것같은 음반이지만 혹 자신의 삶이 권태롭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시인의 육성과 안치환의 음악적 방향을 바꾸게 했던 ‘자유’가 오버랩되는 음반이 아주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노 뭐 노스탤지어’라고 일갈하거나, 음악적 한계를 이러한 우회로로 비껴간다고 쫑알거려도 좋고, 그냥 잊어도 좋다. 그래도 여전히 봄날은 가니까… 20000408 | 박애경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