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v] 2/13호에서는 영화 <모듈레이션> 개봉에 즈음하며 테크노에 관한 글들로 꾸며봤습니다. 거창한 플랜 하에 기획된 글들은 아니고, 한국 테크노 음악의 전반적인 흐름을 개괄하는 글과 영화에 관한 글, 테크노 뮤지션의 인터뷰, 앨범 리뷰로 구성했습니다. 특히 달파란과 트랜지스터헤드의 인터뷰는 기승전결의 격식을 갖춘 인터뷰라기보다 테크노 전반에 관한 생각을 자유롭게 나눈 자리였습니다. 인터뷰한 시기가 좀 지났는데 핵심적인 이야기만 정리했습니다. 인터뷰(볼빨간)와 앨범 리뷰(DJ Krush, Ken Ishii), 그리고 몇몇 글들은 다음 호에도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정의와 기원을 따지는 일은 늘 어렵다. 한국 테크노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기원은 항상 정의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테크노 음악을 음향적으로 사고하자면, 어쿠스틱 사운드를 전적으로 배제한 음악을 한국에서 처음 시도한 이는 윤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넥스트의 데뷔 앨범 [Home] (1992)을 한국 최초의 테크노 앨범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들을 수 있는 이박사류의 뽕짝도 넓은 의미의 테크노라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그 범위를 잡아 늘리면 한국 최초의 랩 음악이 서수남과 하청일의 ‘시골영감’이라는 식의 주장과 흡사해진다. 그 음악이 진정한 테크노인가 아닌가의 물음을 제쳐두자면 ‘테크노’라는 화두를 대중음악계에 가장 먼저 던진 이들로 신해철, 공일오비, 윤상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신해철은 앞서 말한 넥스트의 [Home] (1992)에서 록 음악의 영향을 받은 강하고 빠른 비트에 문명 비판적인 메시지라는 정형을 확립했으며, 윤상과 함께 작업한 [노땐쓰-골든힛트-일집] (1996)과 솔로 프로젝트 [Crom’s Techno Works] (1998), 그리고 모노크롬이란 밴드의 이름으로 낸 [Monocrom] (1999)까지 이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무한궤도에서 갈라져 나온 또 다른 밴드 공일오비는 6집 [The Sixth Sense] (1996)에서 그 동안의 가볍고 대중적인 취향을 벗고 신해철 식의 테크노에 합류했으며, 장호일은 공일오비 시절의 곡들을 1980년대 팝송의 감수성으로 편곡하여 [테크노 제너레이션 vol. 1] (1998)에 담았다. 하지만 이런 음반들은 전자 악기가 부분적으로 사용되었을 뿐 ‘본격적인’ 테크노 음악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 전자 악기를 사용했다고 테크노로 부를 수 없는 것이 실은 가요와 록 음악의 어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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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겨울, 우리는 낯선 음반 한 장을 만나게 된다. 삐삐밴드 출신인 이윤정의 [진화]라는 앨범이 그것인데, 이 앨범은 록의 관습에서 벗어난 본격적인 테크노 앨범으로 삐삐밴드의 2집 [불가능한 작전] (1996)에 부분적인 영향을 받았다(사실 이 음반의 실질적인 주체는 이윤정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곡의 작곡과 편곡을 맡은 오세준이다). 이어 1998년 초 모하비의 [테크노전자음악잡동사니=타나토스]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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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홈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이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자 악기로만 된 최초의 앨범으로, 당시로서는 극도로 낯설고 실험적인 음향(장르로는 앰비언트 테크노)을 담고 있었다. 삐삐밴드의 브레인이었던 강기영은 달파란이란 이름으로 앨범 [휘파람별] (1998)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휘파람별’이라는 가상 혹성을 컨셉트로 하고 있으며, 하우스, 드럼앤베이스, 앰비언트 테크노, 인더스트리얼, 록 등 다양한 스타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특히 복고적인 뽕짝 멜로디를 샘플로 사용한 시도는 테크노 앨범은 아니지만 볼빨간의 [지루박 리믹스 쑈] (1998)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런 앨범들이 발표될 무렵 홍대 앞 클럽에는 테크노를 즐기려는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상수도’와 ‘M.I.’는 국내에 테크노 음악을 선도적으로 보급한 클럽이며, 압구정동과 이태원에도 테크노 클럽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아갔다. 특히 ‘마스터플랜’은 본격적으로 테크노 라이브 액트를 무대에 올려 테크노 매니아들의 발길을 끌었다. PC통신 하이텔의 테크노 음악 동호회 ’21세기 그루브'(go groove)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테크노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들도 생겨났다. 1998년 가을에는 테크노 문화를 다루고 있는 책 [입 닥치고 춤이나 춰] (한나래)가 출간되었고, 같은 해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는 테크노 음악의 역사를 추적한 영화 <모듈레이션>이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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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은 테크노 ‘문화’가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해라고 할 수 있다. ‘펌프기록’이라는 기획사가 국내 최초의 레이브 파티 ‘문스트럭 99’를 개최했고 이어 많은 레이브 파티들이 이어졌다. 테크노 전문 레이블인 ‘DMS Trax’도 등장했고, 이는 하이텔의 동호회 ’21세기 그루브’와 함께 한국 최초의 테크노 컴필레이션 음반 [[email protected]] (1999)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데이트리퍼, 프랙탈, 세인트 바이너리, 트랜지스터헤드 등 언더그라운드의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그리고 이 앨범의 성과는 한일 공동 테크노 컴필레이션 음반인 [PLUR] (1999)로 이어졌다. 이에 앞서 세인트 바이너리는 드럼앤베이스 스타일로 된 EP [Milim] (1999)을 발표했다.
한편 테크노 뮤지션이 아닌 이들도 신서사이저와 샘플을 사용하는 테크노의 방법론을 새로운 작업 방식으로 택하는 예가 늘어갔다. 델리 스파이스(윤준호, 김민규)와 노이즈가든(윤병주), 황신혜 밴드(김형태)의 멤버들은 1998년 무렵 밴드 활동과는 별도로 클럽에서 테크노 라이브 액트를 보여주었다. 옐로 키친은 컴퓨터를 들고 공연장을 오고 갔다. 언니네 이발관의 2집 [후일담] (1999)은 데이트리퍼의 도움으로 앨범 곳곳에 테크노적인 감성이 배어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인디 씬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강산에는 이미 4집 [연어] (1998)에서 전자 악기들의 과감한 사용으로 새로운 변화를 보여준 바 있지만, 리메이크 앨범 [하루아침] (1999)에서는 아예 트랙의 절반을 달파란에게 맡겨 몽환적이고 최면적인 사운드풍경을 선보였다. 자우림의 2.5집 [비정규작업] (1999)도 앨범의 반 가량이 테크노 스타일로 되어 있다. 테크노와는 왠지 거리가 멀 것 같은 이적의 솔로 앨범 [막다른 길] (1999)과 한영애의 5집 [난다 난다 난·다] (1999)도 몇몇 트랙들에서 빅비트, 드럼앤베이스, 트립합 등 테크노의 장르를 차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일반인들에게 테크노의 존재를 각인시킨 계기가 된 것은 1999년 중반 도리도리 춤으로 촉발된 ‘테크노 논쟁’이었다. 댄스 가수 채정안과 이정현의 음악이 테크노로 소개되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를 둘러싸고 테크노 매니아와 평론가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테크노의 진정성을 둘러싼 논쟁은 신해철의 음악을 두고 PC통신에서 벌어진 적이 몇 번 있지만, 일간지와 TV 연예 프로그램에서까지 진지하게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번 논쟁은 뚜렷한 입장 차이를 가진 양 진영간의 ‘설전’이 아니라 한쪽의 오해를 지적하고 정정하는 ‘소동’에 가까웠다. 어쨌든 테크노는 세기말과 맞물리면서 ‘기계적인 안무로 무장한 대중 음악의 첨단 조류’로 일반인들의 의식에 고정되었다. 테크노 소동 이후 채정안과 이정현은 댄스 가요의 스타들답게 일년도 지나지 않아 발빠르게 2집을 들고 나와 ‘예정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룰라도 ‘한국적 테크노’라는 화두로 이에 가세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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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주류의 화려한 성공과는 별도로 테크노 문화 정착에 대한 언더그라운드의 진지한 모색 역시 계속되고 있다. 모하비는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처음으로 ‘2집’ [Mo Beats Album]을 발표했다. 여전히 지적이고 낯설지만 훨씬 복고적이고 다양해진 음반이었다. 트랜지스터헤드는 엄밀하고 차가운 데뷔 앨범 [Housology]를 통해 본격적인 하우스 음악을 선보였다. 레이브 파티들은 점차 국제적인 양상을 띠어, 캐나다, 영국, 일본 등지에서 활동하는 DJ들을 초청하는 자리가 늘어갔다. 1999년 10월에는 독일 출신의 테크노 뮤지션 폴 반 다이크(Paul Van Dyk)가 한국을 다녀갔고, 얼마 전인 5월말에는 일본의 세계적인 테크노 뮤지션 켄 이시(Ken Ishii)가 내한하여 파티를 주재했다. 펑크가 그랬고, 힙합이 그랬지만, 테크노는 더더욱 다면적이다. 저마다 이야기하는 테크노가 모두 다르다. 테크노는 말이 없지만 테크노를 둘러싼 말들은 무성하다. 이를 종합하자면 테크노는 ‘사운드’이자, ‘이미지’이자, ‘액트’이자, ‘문화’이자, ‘운동’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테크노는 항상 어떤 식으로든 새로움과 결부된다는 점이다. 즉, 테크노는 새로운 사운드,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액트, 새로운 문화, 새로운 운동이다. 새로움에 대한 추구가 인간의 영원한 욕망임을 생각할 때, 테크노 음악에 대한 연대기 역시 계속 이어질 것이다. 20000630 | 장호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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