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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에 – 하루아침 – 나비/서울음반, 1999

 

 

강산에는 가수다. 1990년대의 대표적인 포크 록 가수다. 이렇게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이미지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한국적’이란 수식어로 요약된다. 그 수식어의 모호한 개념은 일상을 질박하게 표현한 그의 ‘노래’에 힘입어 하나의 구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강산에를 따라 다니는 또 다른 이미지는 자유롭고 반항적인 로커이다. 무대 위에서 청중에게 반말 짓거리 하는 독특한 공연 양태나, “삐딱하게”, “태극기”를 노래하는 선동적 태도 같은 것은, 긴 머리 나풀거리는 그의 분방한 모습을 훔친 어느 청바지 광고가 말해주듯이, 그를 ‘로커’의 전형 중 하나로 지목하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 1995년에 서울과 베이징을 오가며 가진 추이지앤(崔建)과의 조인트 공연은 그 두 가지 이미지의 중첩된 양상을 집약한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에 강산에는 달라졌다. 그간 자의반타의반 얻게 된 한국적 로커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예컨대 4집 [연어](1998)는 전작 [삐따기](1996)와 마찬가지로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찌 히로후미를 프로듀서로 끌어들여 제작한 것이었는데, 두 음반의 음악적 방향은 서로 상이한 모습이었다. [삐따기]가 대체로 서두에서 언급한 초기 이미지를 종합하고 록의 진정성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것이었다면, [연어]는 전통적인 록이나 포크의 어법에서 상당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드럼 머신의 대폭적인 사용이라든지, 힙합비트, 트로트, 디스코, 민요 등 다양한 요소의 활용, 그리고 다채로운 타악기 및 전자음악의 도입 등을 통해 [연어]는 강산에의 새로운 모색을 드러냈다.

강산에가 이번에 낸 [하루아침]은 일종의 정거장 같은 음반이다. 음반 전체를 리메이크 곡으로 꾸민 점이나, 2년 주기로 음반을 발표하던 그가 4집 발매 이후 1년만에 낸 음반이란 점이나, 스스로 ‘vol. 4/5 zip’이라 이름 붙인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그런 표면적인 요소보다는 실제로 이 음반이 담고 있는 음악적 측면(리메이크의 대상과 그 결과)에서 그렇다.

[하루아침]에는 민요와 1970·80년대 포크가 실려 있다. 특이한 점은 두 명의 프로듀서가 상이한 경향으로 노래옷을 입혔다는 사실이다. 이정선의 “우연히”, 한대수의 “하루아침”과 “물 좀 주소”, 조동진의 “제비꽃”과 같은 포크 음악은 하찌 히로후미가 프로듀서를 맡았다. 그가 프로듀스한 노래들은 강산에 특유의 건들거리는 보컬이 돋보인다. 여기에 아코디언이나 프로그래밍한 올갠 음이 양념처럼 곁들여져 흥겹고 복고적인 색깔을 띠기도 하고(“하루아침”, “물 좀 주소”), 힙합비트나 1980년대 뉴 웨이브 스타일의 연주와 전자음이 가미되어 다소 색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우연히”, “제비꽃”). 하지만 선곡된 노래들이 강산에의 성장기와 백마, 신촌 등지의 카페에서 노래 부르던 무명 시절의 정서를 대변할만한 곡이서인지, 포크 곡의 리메이크 버전은 원곡을 강산에 스타일로 변형했다는 느낌이 지배적이다.

이와는 달리, DJ 달파란[강기영]이 작업 전반(연주, 프로그래밍, 어레인지, 믹싱, 프로듀스)에 걸쳐 주도한 “쾌지나 칭칭 나네”, “도라지” 같은 민요와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원곡과는 판이하게 다른 느낌이며, 기존의 강산에 스타일과도 거리가 있다. 자칫 소재주의로 그칠 수도 있었던 민요 리메이크는 달파란의 손을 거치면서 온전한 테크노 넘버가 되었으며, 이는 ‘리-메이크’란 명칭에 값할만한 성과다. 앞서의 포크 노래와 대조적으로, 달파란이 프로듀스한 곡들에서 강산에는 목소리의 힘을 빼고 노래를 부른다. 그는 때로는 허밍 그리고 가성을 구사하여 공기를 부유하듯, 때로는 감정이입을 절제하고 담담하게 보컬을 흘리며, 그의 보컬을 둘러싸는 달파란의 연주는 앰비언트 테크노에서 업템포의 하우스 리듬까지 변화무쌍하게 소리의 스펙트럼을 구성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빠른 곡에서조차 플로어 지향적이지는 않으며, 몽환적이고 최면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러한 테크노 경향의 리메이크 곡의 특징은 달파란의 DJ 데뷔앨범 [휘파람 별]을 언뜻 떠올리게 하는 미니멀한 재킷 디자인에서도 드러난다. 물론 최근 몇 년간 나온 강산에의 ‘음반’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달파란이 노래옷을 입힌 테크노 곡들에 당혹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하루아침] 이 아주 낯설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연어]에 이미 전자음악적인 징후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가 변화의 단초를 남겨놓았던 것은 사실 그 이전이다. 그는 컴필레이션 [도시락 특공대](1997)에 참여하여 찌그러지고 일그러진 보컬을 담은 “코메디”를 통해 예사롭지 않은 조짐을 흘린 바 있다(이 곡은 재녹음되어 [연어]에도 실렸다). [도시락 특공대] 작업, 그리고 그 과정에 만난 사람들과의 접촉을 계기로 그의 변함없는 화두 ‘자유’는 더 넓어지고 여유로워졌으며, 포크 록의 테두리는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

강산에의 [하루아침]에는 포크에서 시작해 포크 록으로 진행된 [삐따기]까지의 경향과 그 이후의 전자음악적 시도가 절충적으로(혹은 어색하게) 갈무리되어 있다. 그 점에서 리메이크 음반이란 포맷 또한 상징적이다. 하긴 그(의 노래)는 늘 절충적이었다. 그를 ‘뜨게’ 만든 “라구요…”의 신선함도 시대착오적인 트로트를 패러디하여,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감성을 끌어낸 결과였다. 따지고 보면 그런 예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심지어 그는 ‘U2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이유 있는 평가 또한 일면적이라 인정해야 할 듯하다. 어쨌든 ‘자유를 얘기하지만 심각해 보이지 않고, 놀자고 얘기하지만 경박해 보이지 않는 것’이 강산에의 이미지다. 그런 그가 1990년대 후반에 새롭게 추가한 장자(莊子)의 이미지 혹은 일종의 구도자 이미지는 일렉트로니카의 세계를 탐색하고 있는 그의 음악적 변화와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그가 절충적인 다시 부르기 음반을 낸 이유는? 이른바 ‘한국 (록) 뿌리 찾기’ 또는 ‘계보 만들기’에 편승하기? 본격적인 음악적 변화를 앞두고 가진 숨고르기? [하루아침]은 간접적인 증언만을 해줄 수 있을 뿐이다. 19990701 | 이용우 [email protected]

[weiv plus] 김민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강산에의 디스코그래피. 그리고 그가 하찌, 달파란과 함께 한 ‘앰비언트+테크노+하우스+포크’ 리메이크 앨범”

5/10

수록곡 (* = 추천곡)
1. 우연히
2. 갑돌이와 갑순이
3. 하루아침 *
4. 물좀주소
5.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
6. 제비꽃
7. 쾌지나 칭칭나네
8. 도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