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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 – 13 – EMI, 1999

 

 

두 달 전쯤 모 주간지에 블러의 6집에 관한 리뷰를 쓴 적이 있다. 그 당시 리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브릿팝으로부터의 ‘대탈출’을 감행한 전작의 실험성을 계승하면서 이를 좀더 극단적으로 몰고 가, 전반적인 분위기는 한층 어둡고 무겁고 침울하며, 가사는 개인적이고 추상적이다. 유머와 풍자는 거의 느낄 수 없으며, 데이먼(보컬)의 개인적인 시련의 상처가 앨범 곳곳에 묻어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브릿팝과 함께 성장해온 세대의 자화상과 같은 앨범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촉박한 날짜 때문에 앨범을 충분히 들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쓴 데다, 앨범을 공짜로 얻었다는 점이 어떤 식으로든 글에 작용했는지 썩 유쾌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하긴 자기 글에 만족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후 두 달 동안 나는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한 번도 이 앨범을 듣지 않았다. 나는 브릿팝이나 모던록의 매니아까지는 안되더라도 애호가 정도는 된다. 또한 그간 내가 특별히 음악 듣기를 소홀히 했던 것도 아니며, 들을 앨범이 정신없을 정도로 쌓여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블러의 이 앨범에는 더 이상 손이 가질 않았다. 대신 노이즈/스페이스 록 계열의 음반과 록과 일렉트로니카의 크로스오버 앨범들, 그리고 윌리엄 오빗(William Orbit)이 프로듀스한 음반들을 들어보았다. 그리고 지금 블러를 다시 들어보니, 의외로 이 앨범은 유쾌하고 현란한 프라이멀 스크림이나, 장대한 스케일의 극적인 모과이, 또 난해한 시카고 쪽의 포스트 록 밴드들보다 예전 블러의 모습과 더 닮아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연한 건가? (베쓰 오튼이나 마돈나의 앨범과는 확실히 비슷한 점이 있었다.)

시간에 쫓겨 들을 때에는 낯설고 생소한 부분만 귀에 들어왔지만, 시간을 두고 들으니 역시 블러는 블러일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비난의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확실히 이 앨범은 사운드면으로는 노이즈 드림팝과 포스트 록에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브릿팝의 어덜트 버전에 가깝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처음 씨디피에 걸었을 때 마치 새옷을 입은 마냥 뭔가 어색하고 거북한 느낌은 여전히 계속 남아있다. 그리고 왠지 이런 어색함은 쉽게 지워질 것 같지 않다.

분명 이번 앨범은 밴드에게는 자연스러운 변화이며, 본인들은 앨범 작업을 충분히 즐겼을 것이다. 그럼 팬들은? 블러의 기존 골수 팬들이라면 기꺼이 이를 받아들이겠지만, 새로운 팬을 확보하기는 좀 어려워 보인다. 하긴 그럴 필요가 있을까. 19990701 | 장호연 [email protected]

[weiv plus] 장연주: “5집 [Blur]가 블러의 디스코그래피에 대한 자기적 회의에 의한 결과물이라면 이번 [13]은 데이먼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바이오그래피(연인 저스틴과의 결별)에 대한 성찰(또는 센티멘탈)정도로 옮겨진 듯이 보인다. 불쌍해”

5/10

수록곡 (* = 추천곡)
1. Tender *
2. Bugman
3. Coffee & T.V.
4. Swamp Song
5. 1992
6. B.L.U.R.E.M.I.
7. Battle
8. Mellow Song
9. Trailerpark
10. Caramel
11. Trimm Trabb
12. No Distance Left to Run
13. Optigan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