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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어 – 고엽제(EP) – 카바레, 1999

 

 

1991년 얼터너티브/그런지 폭발, 1980년대 번드르르한 팝/메탈에 대한 전복, 펑크(의 아마추어리즘과 DIY 에토스)의 부활, 얼마 안가 하나의 장르로의 편입과 상업적 재생산, 1994년 커트 코베인의 자살과 신화화, 어쩌구 저쩌구…

그런 얘기, 이제 지겹다는 것, 인정한다. 니르바나의 “Smells Like a Teen Spirit”이 나온 후 벌써 8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이른바 얼터너티브 록이 바다 건너 한반도에 몰아쳐 일군의 청(소)년들이 밴드를 만들고 클럽이란 지하 소굴에서 그런지와 펑크를 연주하기 시작한지도 4년 여가 지났다. 내친 김에 시간을 짚어보면, 트리뷰트 앨범 붐을 타고 인디 밴드(라고 나중에 명명될 당시 클럽 밴드)들이 니르바나 헌정 음반 [Smells Like Nirvana]에 참여한 게 1997년 여름이고, 한국 인디 씬 최초의 그런지 음반인 코코어의 [Odor]가 레코드점 진열대에 깔린 게 1998년 정월의 일이다.

그런지 성향의 대표적인 밴드 코코어가 두 번째 음반 [고엽제]를 내놓았다. 인디 씬의 첫 길목부터 동행하고 있는 코코어는 클럽/인디 씬의 개화를 가능케 했던 그런지를 시종일관 고수하고 있다. 데뷔작 [Odor]에서 보여주었듯이, 니르바나를 연상시키는 이우성의 절규하는 보컬과 황명수의 일그러진 기타, 비관주의적인 노랫말과 정서, 자폐적인 이미지 등은 그런지의 전형에 가깝다.

그런 기조는 이번 음반에도 여전하다. “아무 말도 안 할래 / 아무 것도 안 할래 / 나는 그냥 있을래”(“잠수”) 혹은 “내 마음을 미워해”(“Ethyl Alcohol”)와 같은 정서를 보여준 전작의 화자는 “할 일도 없이 / 할 수도 없이 / 뜻한 바 없고 / 하지도 않고”(“고엽제”), “내 속에는 깨끗한 구석 하나 없고 / 지독하게 냄새까지 나” 심지어는 “더러운 벌레도 많이 살고 있”(“전염병”)다고 말한다. 다소 냉소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부분도 있지만 음반 전체적으로는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도저한 비관/자폐의 수사학은 조용한 분위기의 버스가 전개되다가 급작스럽게 격렬한 코러스로 이행되는 형식(이른바 ‘stop-start’)으로 형상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거친 보컬의 절규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번 코코어의 음반이 풍기는 두드러진 특징은 차분함이다. 앞서 언급한 ‘그런지표’ 사운드와 전개 방식을 따르는 곡들도 긴장감을 주는 폭발적인 이미지보다는 나른한 느낌이 앞선다. 또 양적으로 보아 포크/컨트리 스타일이 음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근래 이들이 벡, 엘리엇 스미스의 음악을 즐겨들었다는 어느 인터뷰 내용은 이 음반의 색깔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컴필레이션 [Open The Door]에 담긴 “로터리의 밤”은 이 음반의 포크적 성향을 예고한 전조였던 셈이었다. 그리고 그간 [이성문의 불만], 은희의 노을의 [Spring]처럼 포크 친화적인 음반들을 제작한 ‘카바레’ 레이블에서 녹음/제작되었다는 점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특이한 점은 컨트리의 차용이다. 코코어는 이미 데뷔 앨범에서 컨트리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바 있다(“돼지 우화”). 코코어의 컨트리에 관심이 이례적인 것은 한편으론 인디 씬의 그런지 밴드들의 지배적인 성향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컨트리의 전통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뜻 떠올려 봐도 서수남과 하청일, 강병철과 삼태기 등 손에 꼽을 정도다(게다가 그들의 음악이 어떻게 여겨졌는지 생각해 보라). 컨트리는 그 사촌 격인 포크에 비한다면 거의 찬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코코어의 컨트리/포크 차용 또한 미국 얼터너티브 록의 영향은 아닐까.

한편 그와 대조적으로, 코코어는 연주곡 “Xorproxy”에서 테크노 리듬과 전자적인 음향을 도입했고, “Hardcore Playground”에서 니르바나식 그런지/펑크에 역시 프로그래밍한 테크노 리듬을 뒤섞었다. 테크노를 그냥 한 번 건드려 본 건지, 모색해 본 건지, 또는 드러머의 부재 상황(음반 녹음에 드러머 참여 안/못했음)때문인지, 아님 그 모두 때문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이 음반이 6곡만을 담고 있는 EP란 한계도 있고.

코코어의 [고엽제]를 듣고, 어떤 사람은 다양함과 신선함을 경험할 수도 있겠고 어떤 사람은 변함없는 흐름을 느낄 수도 있겠다. 어떤 사람은 그 두 가지를 절충해서, 음악 스타일에 있어서 확장되었지만 그 외연은 여전히 얼터너티브 록의 경계 내에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얼터너티브 록에 대한 부고장이 발부된지 5년 남짓 되었다. ‘록은 죽었다’는 말이 나온 건 수십 년 전이다. 그래도 록은 살아 있고, 얼터너티브는 살아 있다. 어디에? 인기 차트에, 그리고 레코드점과 침실과 공연장에. 그런데도 록의 죽음에 대한 의문문이나 단정적 평서문이 심심하면 제기되곤 한다. 분명히 록이, 얼터너티브가 주름잡던 시대는 갔으며, 문화적으로 대세인 시대도 갔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끝일까.

한국에서 록은 ‘살았던’ 시대조차 얼마 안된다. 느닷없이 나타났다가는, 작살나거나 자멸하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얼터너티브 록은 바람처럼 지나갔지만) 아직도 록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얼터너티브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종종 코코어에게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가 갔는데, (완곡하게) 어떻게 생각하느냐” 혹은 “(직설적으로) 아직도 얼터너티브 록 하냐”라고 질문하기 때문이다. 당사자에겐 참 불쾌한 질문일 테고 본인들 말대로 ‘황당’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좋아서 하는 것일 뿐 유행에 맞춰 음악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공허하다.

어떤 것이 유행한다는 것은 ‘일정정도는’ 그 시대 대중의 감성과의 접속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이고, 유행이 지났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그 시대 대중과의 접속이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만 말하는 것은 비약이다. 하지만 유행은 쉽게 무시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이 우리에게 다가왔던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유행이었기 때문 아닌가.

한국에서 록이 자멸하였던 이유 중 하나는 유행에 대한 입장이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다. 추종하든가, 무시하든가. 그 두 가지 선택이 야기한 결과는 자명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그리 간단치 않다. 다만 그런 질문을 무시하지 않는 것, 아니 그 질문을 곱씹어 보는 걸 출발점으로 삼는 데서 실마리를 풀 수 있을 듯하다. 그런 얼터너티브를 코코어에게 바라는 건 무리일까. 얼터너티브… 하긴 이런 말도 지겨운가. 19990815 | 이용우 [email protected]

[weiv plus] 김민규: “”커트족’의 유령에서 로-파이의 영역으로, 코코어의 이동없는 여행”

5/10

수록곡 (* = 추천곡)
1. 고엽제 *
2. Xorproxy
3. 붉은 해파리 해변 *
4. 복서의 낙원
5. Hardcore Playground
6. 전염병

관련 사이트
코코어 홈페이지
http://myhome.netsgo.com/cocore

카바레 레이블의 홈페이지
http://www.cavare.co.kr

레이블 인디의 홈페이지
http://www.geocd.com/ind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