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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닐(Vinyl) – Estrogenic Vibe – 인디, 1999

 

 

훵크가 머야, 펑크(punk) 아냐?

한국인에게 ‘훵크(funk)’는 가장 생소한 음악 중 하나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음악 팬 중에서조차 훵크 팬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1970년대 한국의 음악 팬은 대개 록 매니아였고, 1980년대는 대개 헤비 메탈 교의 신도였다. 1990년대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열혈 펑크 키드’는 흔해도 ‘골수 훵크 신도’는 그다지 많지 않다. 바이닐의 데뷔 앨범 속지에 언급된 소울, 훵크, 재즈 뮤지션들 중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진 이들은 별로 없다. 그중에서 고작해야 스티비 원더는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의 맹인 가수로, 다이애너 로스 “Endless Love”의 여가수로, 마빈 게이는 평론가들이 꼽는 명반 목록에서 ‘이름만’ 알려져있는 정도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제대로된’ 훵크의 감각을 추구하는 밴드가, 그것도 ‘인디=록/펑크’라는 등식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인디 씬에서 등장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인의 정서는 ‘한’이기 때문에 흑인 음악의 정서와 통한다’는 통념과는 달리, 실제로 ‘팝(pop)화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흑인 음악 사운드가 한국에서 인기를 끈 적은 전혀 없다(~커녕 제대로 소개된 적조차 거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훵크 음반은 어디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온’ 것일까. 지금부터는 순전히 개인적으로 추측이다. 현재 한국에서 힙합과 알앤비(R&B)는 1980년대의 헤비 메탈이나 1990년대의 펑크 이상으로 열성적인 지지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여기서 한 번 비약해본다.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미국의 힙합 세대가 P 훵크(Parliament Funk)를 재발견했듯이, 여기의 흑인 음악 팬도 거슬러 올라가 70년대의 훵크(와 소울)를 재발견한 것은 아닐까.

또하나의 실마리는 흑인 음악 자체가 갖는 의미다. 록은 음악 자체보다도 음악을 둘러싼 진지하고 심각한 ‘담론’이 과잉된 음악이다(펑크가 바로 그 절정이다. 이는 한국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이 록 음악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흑인 음악이 주는 ‘신체의 순수한 쾌락’은 종종 그에 대한 해독제로서 제시되어왔다. 그래서 영국의 ‘록’ 사회학자 사이먼 프리쓰(Simon Frith)는 “나는 프로그레시브 록보다 디스코가 더 흥미롭다”고 너스레를 떨었던 것이다. 과잉 담론에 대한 반발로서 훵크의 적나라한 에너지를 추구하게 되었으리라고 내 맘대로 해석해본다. 물론 이런 소리 늘어놓으면 장본인들은 “음악이나 듣고 몸이나 흔들고 바이브나 느껴라” 라고 면박을 줄테지만.

이상의 추측이 꼭 맞는 것은 아닐지라도, 어쨌거나 바이닐과 마찬가지로 사후적으로 훵크를 ‘복습’한 나같은 사람에게(만?) 바이닐이 훵크 사운드를 얼마나, 어떻게 ‘따라잡았는지’는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바이닐의 훵크는 섹스의 에너지가 넘쳐흐르는(한국인의 정서에 부담스러웠다면 바로 이런 점?) ‘지저분한’ 훵크도, 앙상하고 황량한 사운드의 실험적 훵크도 아니고, 듣는 이를 짜릿짜릿하게 전율시키는 아찔한 디스코 스타일의 훵크도 아니다. 바이닐은 보다 고급스럽고 세련되고 부드럽고 여성적인(앨범 제목을 보라!) 훵크를 지향하는 듯하다. ‘애스드 훵크/애시드 재즈’라는 이름이 이런 성격을 잘 요약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훵크 흉내내기’는 아니라는 점에서(물론 따라하기조차 쉽지는 않다) 장점이다. 이는 여성 보컬의 ‘특징’을 고려한 음악적 선택으로 보인다(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루브의 송가 “Vinyl Song”에서 들을 수 있듯이 유은정의 보컬은 둔중한 베이스와 훵키한 기타와 구식 신시사이저 사이에서 하늘하늘 사뿐사뿐 건너 다닌다. 물론 그렇다고 알앤비 풍의 ‘부드러운’ 가요 스타일도 아니다. 훵크의 오래된 악기와 복고적 사운드에 대한 고집이 만들어낸 독특함이다.

다만 바로 이러한 선택이 훵크의 고유한 ‘에너지’를 반감시켰다는 점이 딜레마다. 많은 곡에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건 단지 녹음 상의 문제뿐만은 아니다. 이번에도 역시 ‘문제’는 보컬이다. 여성 보컬은 고혹적이기는 하지만 ‘순수한 그루브의 쾌락’에 청자를 초대하기에는 덜 유혹적이다. 예컨대 여리여리한 보컬은 이 앨범의 핵심, “Welcome! Feel the Vibe!”의 ‘거부할 수 없는’ ‘바이브’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들린다. 19991001 | 이정엽 [email protected]

6/10

[weiv plus] 신현준: “Hello, Hello, Yellow Negro” (5/10점)

수록곡
1. Vinyl March
2. Vinyl Song
3. 일몰
4. 랄랄라
5. 아름답게 간직해
6. 밤새도록
7. 중독
8. Soul 76
9. Welcome! Feel the Vibe!
10. 모두 (featuing 가리온)
11. Wharever You Need
12. 그는 내안에 왔지
13. 내맘은
14. Estrogenic V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