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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 Shop Boys – Nightlife – EMI, 1999

 

 

펫 샵 보이스의 [Nightlife]와 같은 앨범에 대해 글을 쓸 때가 제일 난감하다. 소위 거장의 몇 년만의 귀하신 나들이에 걸맞는 예우를 해줄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이 앨범에 대한 나의 솔직한 느낌을 내 자신도 모르겠기에 하는 말이다. 처음 몇 번을 들었을 때는 정말 리뷰만 아니라면 다시는 들을 일이 없을 앨범이었다.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샘플링한 “Happiness Is an Option”는 잘 알려진 곡의 후광을 등에 업고 한몫 벌어보자는 국내 모 작곡가의 곡인 줄 알았다. 또 빌리지 피플(Village People)의 신곡이라 우기면 다들 그렇게 믿을(물론 표절이라는 말이 아니라 분위기가 너무도 흡사하다는 의미) “New York City Boy”은 올해 최악의 트랙으로 뽑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그나마 “You Only Tell Me You Love Me When You’re Drunk”라는 긴 제목의 곡이 솔직해 보여 호감이 갔을 정도.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조금씩 앨범의 분위기에 적응해가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이들 신보에 중독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앨범의 문을 여는 첫 곡 “For Your Own Good”는 놀랍게도 하우스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육중한 애시드 하우스의 베이스라인이 이들의 감수성과 무리없이 어울리는 곡이다. 이와 연속선 상에 놓이는 두 번째 트랙 “Closer To Heaven”은 현란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팝적 감각이 가득한 곡이며, 앨범에 앞서 첫 번째 싱글로 선보인 “I Don’t Know What You Want But I Can’t Give It Any More”는 펫 샵 보이스의 트레이드마크인 창백한 디스코 리듬과 멋진 스트링 편곡에 무표정한 보컬이 잘 어우러진 곡이다. 또한 “Vampire”는 최근 다들 한번씩 건드려보는 트립합의 분위기를 도입하고 있는데, 특히 절이 반복되고 난 뒤 10초 남짓 장조로 바뀌며 “It’s a Reflex, Just a Reflex”하는 부분에 이르면 제목 그대로 목뒤가 서늘해져오는 섬찟함을 느끼게 된다. 앨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트랙인 “Radiophonic”은 전형적인 하우스 넘버로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에 바치는 곡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 앨범의 열렬한 옹호자가 된 것은 물론 아니다. 아직도 나는 펫 샵 보이스의 추종자가 되기에는 너무도 신중하고 비판자가 되기에는 너무도 호기심이 많은 게 아닐까. 다만 15년 전 “West End Girls”가 영미챠트를 휩쓸었을 때만 해도, “It’s a Sin”으로 전세계를 시끄럽게 했을 때만 해도 그저 그렇고 그런 팝 스타 중 하나로 생각했던 이들이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어느덧 일렉트로닉 팝의 거장으로 군림하게 된 배경이 흥미롭기 그지없을 뿐이다. 사실 ‘지적인 댄스 음악’이란 이율배반적인 팝의 문법을 시도한 자체만으로 놀랍지 않은가. 그것도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19991129 | 장호연 [email protected]

5/10

수록곡
1. For Your Own Good
2. Closer To Heaven
3. I Don’t Know What You Want But I Can’t Give It Anymore
4. Happiness Is An Option
5. You Only Tell Me You Love Me When You’re Drunk
6. Vampires
7. Radiophonic
8. The Only One
9. Boy Strange
10. In Denial
11. New York City Boy
12. Footste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