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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포켓 – Hip Pocket – 청개구리/대영에이브이, 1999

 

 

1990년대, 메탈 출신 뮤지션은 무엇으로 사는가? 1990년대 전반기까지만 해도 상당수의 메탈 뮤지션들은 쓰래시 메탈 / 데스 메탈 / 블랙 메탈의 형태를 고수했지만,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 ‘세칭’ 하드코어로 음악적 이동을 보였다. 콘, 림프 비즈킷,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등의 음악은 그들에게 하나의 지표가 된 듯하다. 얼터너티브 메탈 혹은 핌프 록이라고도 부르는 이 음악 스타일을 구사하는 밴드들은 메탈, 힙합 등의 요소들을 뒤섞어 하드하지만 리듬감이 살아 있는 음악을 들려주면서 인디 씬의 한 축을 이루었다.

1997년 결성된 힙포켓의 멤버들 역시 메탈 출신이다. 기타를 맡고 있는 노병기는 게임 오버, 드럼의 김상윤은 노 웨이 출신이다. 그런 이력을 훑어보지 않아도 힙포켓의 음악을 들으면 메탈의 영향을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특히 리더인 노병기의 기타 연주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힙포켓은 앞서 말했던 음악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고, 비슷한 경향의 밴드들 중 가장 인기 있는 편이다. 이들은 랩과 메탈과 테크노의 ‘요소’들을 혼합해서 헤비하면서 그루브 넘치는 음악을 빚어낸다. 어떻게?

‘비비스 앤 벗헤드’ 스타일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눈에 확 들어오는 데뷔 앨범의 첫 곡 “Hiptro”는 이들의 음악적 성격을 함축한다. ‘힙포켓의 인트로’란 의미의 조어를 제목으로 한 이 곡은 훵키한 베이스 연주, 메탈적이지만 이펙트를 사용해 기계적인 음색을 띄는 기타 리프, 간단한 래핑을 결합한다. 여기 나온 기타 리프는 세 번째 트랙인 “머리독”의 주요 리프의 변주이다. 학원 문제(체벌과 폭력과 돈)를 다룬 “머리독”은 이미 클럽 롤링 스톤스의 컴필레이션 [The Restoration](1998)에 실려 인디 씬에서 히트한 바 있는 이들의 대표곡이다. 이번에 실린 버전은 [The Restoration] 버전에 비해 주 기타 리프가 다소 키가 높아졌고 기타 연주라는 느낌이 덜해졌으며, 래핑의 발음이라든가 운을 짚어주는 것이 분명해져서 의미 전달이 극대화되었다.

전체적으로 음악들은 로킹하면서 댄서블하다. 노병기의 기타는 와미 페달을 비롯해 여러 이펙트를 사용해 다양한 소리를 들려주고, 백중현의 베이스는 훵키한 그루브감과 긴장감을 잘 살리고, 드럼은 본격적으로 테크노 리듬을 쓰지는 않지만 때로는 록적인 때로는 댄스적인 리듬을 만들어내고, 보컬 또한 래핑과 샤우팅, 날 목소리와 토크 박스를 사용한 변형한 목소리를 오간다. 이들의 음악은 메탈, 힙합, 하드코어, 트립합, 훵크 / 퓨전 재즈, 포크 등 여러 요소들을 혼융한다. 이들은 어느 포지션을 막론하고 많은 이펙트를 사용하여 톤을 다양하게 만들어 변화무쌍한 소리들을 주조한다. 이들의 음악에서 (몇몇 곡의 래핑을 제외하면) 미숙하단 느낌은 없다. 오히려 자신들의 음악적 역량(중에서 테크닉)을 과시한다(혹은 드러난다).

그런데 빠른 템포의 곡을 제외하면, 어떤 곡은 서태지와 아이들 / 사이프레스 힐이 떠오르고, 어떤 곡의 래핑은 김진표(노바소닉) / 공일오비가 떠오르며, 어떤 곡의 기타 연주는 탐 모렐로(RATM)가 연상된다. 또 버스 부분에서 랩이 흐르다 멜로디컬한 코러스나 메탈 식 ‘떼창’이 느닷없이 등장하는 예가 종종 있는데 좀 안어울린다는 느낌이다. 사운드가 너무 깔끔하다거나 대중성을 많이 의식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하는 쪽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관이 뚜렷하고 건강한 가사, 탄탄한 연주 실력을 자랑하는 힙포켓의 데뷔 앨범은 (1980년대) 메탈에 영향받은 음악이 1990년대와 성공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비교적 성공적인 사례로 보인다. 그런데 힙포켓의 음반에 담긴 노래들의 반이 방송 금지 당했다 한다. 그래서 다시 녹음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그래서일까. 여담 한 마디 보태자면, 신촌 홍대 지역의 큰 레코드점에도 없어서 음반 구입에 애를 먹어야 했다). 아뿔사, 그런데 지금은 1999년이 아닌가. 19991201 | 이용우 [email protected]

5/10

수록곡
1. HIPTRO
2. ROAD RUNNER
3. 머리독
4. PUMP IT UP
5. D-DAY
6. 모든 것이 잘 될거라…
7. 악마의 인형 (새벽 3시)
8. TO GO OR NOT TO GO
9. HAPPY
10. CAFFEINE
11. EVERYBODY TO DIE
12. MART에 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