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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스 아티스트 – 2000 대한민국 – 2clips music/mpia, 2000

 

 

[2000 대한민국]은 ‘한국에서 힙합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내놓은 하나의 참신한 대답이다. 작년에 그런 자의식이 뚜렷한 두 장의 앨범이 이미 나왔었다. [1999 대한민국]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한 가능성은 [blex vol.2]를 통해 제시되었다. [2000 대한민국]은 ‘한국적 힙합’이 힙합판 내에서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해내었다는 반증이자 성과이자 향후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정표다.

우선 [2000 대한민국]을 듣고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한국어를 다루는 방식이 무척이나 발전했다는 것이다. 랩은 영어로 하는 게 더 멋있는가 아니면 그래도 한국어로 하는게 좋은가에 대해 시끌시끌하지만, 어쨌거나 한국어 랩이 예전의 어색함을 벗어던지고 독창적인 라임과 플로를 이루어내고 있다. 예컨대 윤희중의 “乞(Girl)”의 한구절을 인용해보자. “많은걸 믿을 수 없는걸 그런걸 실행하는걸 / 모든걸 소유하는걸 다 마찬가진걸” 이렇듯 한국어, 한자, 영어를 교묘하게 뒤섞어서 재치있는 라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둘째, 사운드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인디/언더그라운드 힙합 ‘검은소리’의 앨범 [blex vol.2]과 비교해보면 사운드 프로듀싱이 음악에 대한 느낌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또한 [1999 대한민국]과 비교해보아도 지금 여기에서 힙합 사운드 자체가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깨닫는다.

Joosuc의 두 곡을 비교해보면 뚜렷하다. [blex vol.2]에 실렸던 “내가 누구지?(自我認識)”에서는 래핑과 사운드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주는 반면, [2000 대한민국]에 실린 “정상을 향한 독주 (It’s My Turn)”는 훵키한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백업 피아노의 바운스, 신시사이저 사운드의 긴장감, 명확한 랩, 부드러운 코러스 그리고 스크래치가 적절하게 자리잡아 훌륭한 힙합 구조물을 축조해냈다. 이 곡은 이 앨범에서도 가장 뛰어난 곡이다. 특히 Joosuc의 랩은 별다른 기교와 과장없이도 리듬과 메시지를 명확하고 훌륭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단호한 어조의 래핑 스타일은 확신과 자신감을 북돋우는 진취적 가사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긴박감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건 놀랍다.

사운드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건 DJ가 제어하는 사운드다. 특히 디제이 소울스케이프, 디제이 렉스의 스크래칭은 뻐기지 않으면서도 시기적절하게 배치된다.

셋째, 새로운 음악적 시도다. 새로운 시도는 한편으로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탐색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음악적 아이디어를 통해 드러난다. 허니 패밀리의 “風流家”는 해금, 거문고, 대금 등 전통악기를 이용했고, ‘덩기덕 쿵기 덩기덕” 등과 같은 후렴구를 차용하여 한국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물론 한국적인 것이 반드시 전통악기를 차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적 전통이 단절된 한국에서 이런 시도는 오히려 작위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허니 패밀리의 곡은 단지 색다른 시도 익살스러운 랩 스타일 자체가 이런 효과에 기여한다는 점을 보면 확실히 성과를 낳고 있다.

좀 엉뚱한 얘기지만 이 곡의 인트로를 듣고 예전에 들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힙합팀의 음악이 생각났다는 건 역설적이다. 어쩌면 전통과의 접목을 통한 음악적 시도가 훨씬 이국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전통에 대해 강박관념만 가지지 않는다면 색다른 음악적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반증 아닐까?

또한 독특한 기타 연주를 루프로 사용하여 낯설고도 참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파수꾼”(Da Crew), 플륫 사운드를 훵키한 리듬감을 강조하는 데 활용하고 있는 “Care”(Side-B) 등의 시도도 빼어나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제안. 1999년이 한국의 힙합을 ‘선언’하는 해였다면, 2000년은 힙합에 관한 모든 강박관념을 떨쳐버리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갱스터의 뻐기는 태도(단지 멋을 위한 것이라면 이제 지겹다), 사회비판에 대한 강박관념(공허하고 선언적인 얘기는 딴데서도 많이 들을 수 있다)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이제 ‘한국적’이라는 말조차 빼버리자. 이 말은 이제 ‘정통’에 대한 콤플렉스의 표현도, 혹은 과장된 자랑의 표현도 될 필요가 없다. [2000 대한민국]은 바로 지금 바로 이땅에서 젊은 힙합의 현재와 가능성 그자체이다. 경계에서 살고 있는 주변부 한국의 젊은이들의 삶의 위태로움을 드러내고, 독창적인 힙합 사운드의 시도를 이어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무슨 또다른 수식어가 필요할까. 20000201 | 이정엽 [email protected]

7/10

수록곡
1. 2000 대한민국: Intro
2. 飛上(비상)
3. 乞(Girl)
4. Care
5. 소망
6. 風流家(풍류가)
7. 정상을 향한 독주(It’s My Turn)
8. L.I.E.(Ver. 1.0)
9. Honey Style
10. Do Da Right One
11. 羅針盤(나침반)
12. 파수꾼
13. T.D.C. & Me
14. 천년의 꿈
15. End of the Beginning: Ou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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