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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도 – 완전힙합 – 예당, 2000

 

 

이현도를 말할 때 자연스럽게 두 가지 면이 따라다닌다. 하나는 1990년대 초중반 듀스 시절 한국에 본격적으로 힙합을 소개하고 대중화를 이끌어냈다는 ‘한국 힙합 1세대’로서의 면모이고, 또 하나는 1990년대 후반 룰라의 4집과 지누션의 데뷔 앨범, 유승준의 3, 4집을 프로듀스한 음반제작자로서의 면모이다. 그 가운데 솔로 뮤지션으로서의 그의 존재는 상대적으로 잊혀졌다. 이번은 벌써 그의 세 번째 홀로서기 앨범이다.

먼저, 힙합에 대해 한 마디. 나는 힙합을 어설프게나마 ‘인위성과 자연성의 기묘한 공존’이라 정의하고 싶다. 문화적 함의를 갖는 힙합의 주요 구성 요소로서, 호소력 있는 보컬 멜로디도 멋진 기타 연주도 없이 중얼거리는 랩이라는 형식은 상당히 인위적이다. 랩이 일상 언어와 별반 다르지 않은 미국에서의 흑인 커뮤니티가 아니라면 말이다. 대신 가사는 어떤 음악보다도 사회 비판적인 성격이 강해,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생생하게 (때로는 과도하게) 담아낸다. 이현도의 이번 앨범에도, 조PD 만큼의 비아냥과 재미는 없지만, “돈이 Money?”(“가진 자들은 떡하니 돈이 더 돈을 버니, 그럼 나머지 나머진 뭐니? 어쩌니?”)나 “비틀린 세상”(“이 사회는 놀랍게도 많은 모순들에 이대로 돌아가네”)을 보건대 ‘힙합 전사’로 불려지기엔 손색이 없다.

하지만 비판적 메시지 만큼이나 랩에서 중요한 것으로 ‘라임’이라는 것이 있으며, 운에 맞춰 가사를 배치하고 여기에 적절한 강세를 주어 리듬감을 만든다. 따라서 순수 한국말뿐만 아니라 영어나 한자도 혼용해서 많이 사용된다(“서로를 믿고 따라야만 꽃은 피지. Cheesy하게 생각하면 그건 지지. See me?”, “Party” 중에서). 그런 점에서 볼 때,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 앨범의 제목이 [完全HIPHOP]인 것은 흥미롭다.

이처럼 힙합은 양식적인 면과 사실적인 면이 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듣는 이에게 ‘유희’하는 즐거움을 준다. 그래서일까? 힙합은 주류/언더 구분 없이 한국 대중 음악계에서 이미 나름의 입지를 굳힌 지 오래고, TV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안전한 웃음의 소재로 자리잡았다. (또 [힙합]이란 이름의 만화도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라고 한다. 이 앨범에도 이와 관련된 곡이 하나 수록되어 있다.)

그럼, 앨범을 찬찬히 들어보자. 힙합 앨범이 대개 그러하듯, 자신을 소개하는 곡으로 앨범을 시작하고 있는데, 특히 관우, 유비, 공명, 장비 등 삼국지의 인물을 빌어 뻐기듯 소개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수록곡 중 방송에서 열심히 홍보하고 있는 곡은 “삐에로”이고, 힙합 매니아들에게는 “흑열가(黑熱歌)”가 일차적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샘플한 것으로 시작하는 “삐에로”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적절히 조화시키고 있다는 앨범에 대한 전반적인 평을 그대로 보여주는 곡이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사이프러스 힐(Cypress Hill)의 괴상한 피리 소리와 스크래치, 귀를 잡아끄는 후렴구의 멜로디, 변화하는 래핑 스타일, 교훈적인 메시지, 위트와 유머 등을 모두 맛볼 수 있다. 특히 ‘이겼어’, ‘지녔어’, ‘이루게됐어’, … , ‘활짝폈어’, ‘했어’ 등 ‘ㄱ’에서 ‘ㅎ’까지 한글자음을 차례로 이용하여 재치있게 라임을 맞춘 가사는 숨겨진 또 다른 재미를 전해준다. “흑열가(黑熱歌)”는 앨범 발매전 MP3를 통해 미리 공개된 적이 있는 곡으로, 조PD, Drunken Tiger, DJ Wreckx, 윤미래 등 무려 10명의 힙합 뮤지션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탱 클랜(Wu-Tang Clan) 류의 절도있고, 신비롭고, 동양적인 사운드 위에 차례대로 하고픈 말을 돌아가며 하는(freestyle), 힙합에 대한 일종의 혈맹식 내지 프리메이슨 회합과 같다.

전반적으로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는 곡들이 중심을 이루지만(“Party” 같은 곡은 방송용으로도 손색없을 듯), 그렇다고 상업성의 혐의를 둘 만큼 노골적인 정도는 아니다. 또 “삐에로”에서 보았듯이 사운드와 라임을 세세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다만 그의 솔로 1, 2집이나 김진표 등 다른 관련 앨범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해 비교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에게는 시선을 잡아끄는 카리스마가 여전히 남아있다. 20000301 | 장호연 [email protected]

6/10

수록곡
1. DISATER`S ORBIT
2. 삐에로
3. 투혼
4. PARTY!
5. 비틀린 세상(COLD WORLD)
6. BEAT BOX & FREE STYLEZ
7. 힙합
8. LIFE TIME
9. 돈이 MONEY?
10. GOODY 구리
11. KING WITH NO CROWN
12. DJING
13. 이면(異面)
14. 흑열가(黑熱歌)

관련 사이트
이현도 공식 홈페이지
http://www.dowor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