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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스님윤키 – 관광수월래 – 카바레, 2000

 

 

랩 없는 힙합, ‘컷 앤 믹스’의 향연

첫인상부터가 심상치 않다. 앨범 표지에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설치 작품 <자전거 바퀴>처럼 전혀 연관성 없는 두 개의 이미지–이름 모를 여자에 공룡 머리?–가 합성되어 있고, 수록곡들의 제목 또한 낯설다. ‘곤충’, ‘스님’, ‘윤키’라는 단어들 또한 마찬가지다(본명은 김윤기라고 하는데…). 불교 신자들이 들으면 발끈하지 않을까. 제목들을 보니 뭔가 심각한 의미의 가사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기도 하다. 혹시 시인 이상(李想)의 ‘아방가르드’한 시들로 랩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앨범 제목은 ‘관광수월래’라고 써 있는데, 그렇다면 혹시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는 이박사?

무척이나 떨리는(?) 마음으로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첫 곡 “회전 시작”은 “많이들 오셨네요”라는 너스레(추임새?) 외에는 별다른 가사 없이 시작한다.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제목의 두 번째 곡 “계절별 눈 화장법”은 황당하게도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를 느리게 돌리는 듯한 연주에 약간의 ‘염불’과 효과음이 더해질 뿐 연주곡이다. 이후 세 번째 트랙부터 삼십 번째 보너스 트랙까지는 정말 다양한 음원들–동요, 올드 팝, CF, 뉴스, 도큐멘터리, 심지어는 염불 소리까지–에서 채집한 샘플의 컷 앤 믹스(cut’n’mix)의 연속이다. 이 사람이 누굴 놀리나?

찬찬히 정리 좀 해 보자. 우선 음악의 기본 컨셉은 ‘랩 없는 힙합’이라고 해야 할까. 리듬의 기본 패턴은 표준적인 힙합에 가깝다. 거기에 엄청난 양의 ‘효과음’들을 덧입혀 가히 (한 번 더 써먹자면) ‘컷 앤 믹스’의 향연이라 할 만하다. 원본으로부터 ‘컷’된 음향의 조각들은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그냥’ 한 것인지 여하튼 계속 반복, 변조된다. 제목과 연관해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던 처음의 의도는 무력화된다. 의미가 없으면 어떤가?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요즘 세태에 재미있으려면 이렇게 엽기적이면 그만이고.

솔직히 말해서 이 앨범의 리뷰는 딴지일보의 필진들이 훨씬 더 잘 써줄 것 같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엽기’의 최정상을 달리는 ‘딴지일보’의 필체를 한 번 상상해 보시고, 본 필자는 그런 것을 어설프게 따라하다 망하느니 그냥 나름대로 ‘범주화’시키는 선에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학술 용어가 나오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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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현대 철학자이자 요즘 인기있는, 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해체론’의 창시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방법을 빌면, 곤충스님윤키의 음악은 한마디로 관습적인 의미의 해체이다. 고전적인 예술, 보통의 록 음악을 생각해 보면 모든 구성 요소들은 하나의 주제로 응집되는 것이 정상이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포크는 심각한 메시지를 밝고 낭랑한 음성으로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반주 악기와 코드를 최소화하며, 펑크는 반사회적 메시지를 위해 사운드, 태도, 외모 등 모든 것을 집중시킨다. 곤충스님윤키는 그러나 이러한 각종 구성 요소들을 ‘무의미하게’ 혼합함으로써 하나의 주제를 지향한다는 관념을 해체시켜 버린다. 현대의 문화 예술에서 각광받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해체의 미학에 기반한 작업들인 것 같다. 말하자면 ‘아무렇게나, 그냥 한 번 해보는 식으로’의 작업 방식이 새로운 창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곤충스님윤키는 이처럼 정말 쉬워 보이는 작업을 ‘홈 레코딩’을 통해 해냈다. 그렇지만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작품이 훌륭한 이유는 바로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도 안 한다는 데 있지 않을까. 20000729 | 이정엽 [email protected]

7/10

수록곡
1. 회전 시작
2. 계절별 눈 화장법
3. 느린 서울
4. 우주 태권도 사범의 갑작스런 습격
5. 산책1 – 우유를 곁들인 초코칩 쿠키
6. 페달 로보트를 작동시키는 일
7. 바다 거북을 한국식으로 포위하기
8. 립튼사의 복숭아맛 아이스티
9. 쿠바 태생의 공장 근로자
10. 내부순환도로의 순환 않함
11. 무릅음악
12. 툭툭 털어냄
13. 교회 주변 풍경
14. 책받침 싸움
15. 액체식 풀의 대안으로서의 딱풀
16. 산책2 – 즐기세요
17. 산책3 – 자스민차를 곁들인 던킨도넛
18. 아가미 호흡
19. 달러환율의 아름다움
20. 롯데월드를 방문할 적절한 시기
21. 회전 끝

관련 사이트
카바레 레이블 홈페이지
http://www.cavar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