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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슬래커 루저 인디 칼리지 록에 일찌기 취미가 없던 나는 이번 심(Seam)의 공연이 몇몇 지역 평론가들의 찬사와 더불어 무료공연이라는 천혜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갈까말까 잠시 망설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갔더라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했다.아니다. 안갔더라면 아마 절대 후회할 일 없었겠다. 왜냐면 걔들이 그렇게 잘하는 줄 아예 몰랐을테니까. 공연 전에 사전 정지작업 삼아 심의 최근 앨범 [Are You Driving Me Crazy?]를 두어번 들었지만, 여전히 흥이 안났다. 그러나 나는 갔다. 왜냐고? 달리 특별히 할일도 없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라고? 그래, 그래, 박수영이란 친구도 한번쯤 보고 싶었다. ‘한핏줄’이란 이다지도 무서운가보다 — 아아 무슨 헛소리냐, 공연장 얘기나 하자.

무료인 대신에 노숙자들을 위해 상하지 않는 식료품을 기부해달라는 주최측의 부탁 말씀이 있었던 관계로, 손에 수프 깡통 하나를 달랑 들고 평소에 식당으로 쓰이는 학생회관 한 구석에 찾아갔다. 요즘 들어 기억력이 급감한 만큼 오프닝을 맡은 동네 밴드의 이름을 주워섬기지는 못하겠으나, 재미있게도 그 밴드의 보컬 또한 아시아계였다. 사운드를 잘 뽑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너무 지겹지 않을 정도로 늘어지는 기타의 드론(dron)에 키보드까지 가세하니 마치 도어즈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뽐내는 듯하고 영웅적인 짐 모리슨과는 정 반대풍의 보컬이 그래도 시대가 시대임을 알려주긴 했지만.

오프닝이 끝나고 사람들이 꼬여들기 시작할 무렵, 머리를 박정희 시절 고딩어마냥 거칠게 박박 밀고 (그때 그 시절 말로는 ‘스포츠형’이라고 해야 하나) 폼 안나는 안경에 검은색 티셔츠 (벤쳐 캐피탈이 어쩌구 저쩌구라고 씌어 있었던 것 같다)를 입은 한 친구가 나와서 기타를 만지작거리는 폼이 나를 심히 불안하게 했다. ‘쟨가…근데 왜저리 어려보이는겨…’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박수영군은 리즈 페어(Liz Phair)양의 대학시절 동급생으로서… 따라서 커트 코베인(Kurt Cobain), 빌리 코간(Billy Corgan) 등과 더불어 67년생 근방으로 알고 있는디.

나의 불안한 예측을 확인이라도 해주듯, 그 친구가 마이크 앞에 서서 말하기 시작했다. 늦어져서 미안하고, 기타가 잘 말을 안들어서 그랬다는 둥 공연을 곧 시작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는 곧 앞서 오프닝때 그랬던 것처럼 의자에 축 늘어져서 음악을 감상할 자세를 갖추었으나, 웬걸, 초장부터 로킹(rocking)하는 게 장난이 아니잖은가! 속았다! 싶은 순간 이미 앞자리는 다 뺏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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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시간 반여를 지속된 공연은 대단히 차분하면서도 강렬한(intense), 참 드문 경험이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기억이 짧아진 데다 원래 심의 음악을 열심히 들어오지 않았던 탓에 무슨 곡은 어땠고 저땠고 식의 자세한 감상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 심히 안타까울 뿐이다.
다만 전반적인 느낌은, 이 친구들의 노래가 전형적 록 ‘문법’을 크게 벗어나는 것도 아닌데 그와는 굉장히 다르게 들렸다는 것이다. 훅이 없지만 멜로딕하고, 리프는 없지만 드라이빙감이 있다고 하면 될런지. 업비트의 곡은 흥겨우나 몰아지경의 헤드 뱅잉에 이르지 않고, 다운비트의 곡은 과장된 멜랑콜리로 빠져들지 않는. 정교한 두 대의 기타 와 파워하우스 드럼에 묻혀 그다지 귀에 띄지는 않았으나, 박수영의 약간 쥐어짜낸 듯한 거친 보컬은 코베인의 자학적인 절규나 코간의 위선적/위악적인 고함과는 또 다른 맛을 보여주었다.

신모 평론가로부터 전해들은 얘기지만, 여가수 줄리아나 해트필드(Juliana Hatfield)는 인디 록은 90년대 미국 대학생들의 포크 송이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이런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 참 맞는 말 같다. 얘네들은 이렇게 캠퍼스 내 작은 공간에서 열리는 인디 록 공연에 삼삼오오 모여, 별로 술도 마시지 않고, 날뛰지도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음악을 듣고 간다. 마치 포크 공연 분위기다. 그럼 ‘진짜’ 통기타 포크는 어디로 갔을까? 카페에 있다. 주로 여성들이 한다. 요즘 포크 하면 전투적인 여성 페미니스트를 떠올리는 건 꼭 아니 디프랑코(Ani DiFranco)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페미니즘 전문 서점 겸 카페 같은 데서 그녀와 비슷한 여성 포크 싱어를 보는 건 그리 힘들지 않은 일이다. 물론 이것도 대(학)도시에서나 하는 얘기지만.

심 얘기로 다시 되돌아가 보자면, 이렇게 음악 잘 하는 친구들을 주변 가까운 데서 볼 수 있다는 건 일종의 행운이다. 그들에게는 이 대학가 회로(circuit)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게 족쇄같을 수도 있겠지만, 거기서 벗어난다는 건 또 무얼 의미할까? 19990701 | 김필호 [email protected]

관련 사이트
심 공식 홈페이지
http://www.southern.com/southern/band/SEAM

심 팬 사이트
http://members.xoom.com/seam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