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자 칼럼니스트, 웹진 <아이돌로지>의 운영진과 [weiv] 필자 등으로 활약하고 있는 미묘가 연간기획으로 아이돌 담론에 관한 새 연재를 시작한다. 한국 아이돌의 활동 양태와 아이돌 팝의 특성이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특수성과 여건, 아이돌의 근본적인 조건 하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변천해왔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기획이 될 것이다. | [weiv]

 

2007년의 2차 아이돌 붐

“방금 한 건 알지만 또 한 번, 텔 미.” – “Tell Me”, 원더걸스, 2007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세계 이후 몇 년, 우리의 관심사는 많이 달라졌다. 일본에서는 아이돌이 침체되는 시기를 두고 ‘아이돌의 겨울’이라 부른다고 한다. 시각에 따라서는 한국에 진정한 ‘아이돌의 겨울’이 존재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인 아이돌 댄스’에 염증을 느낀 대중은 가창력이 강조된 음악을 원했고, 박효신, 브라운 아이즈, SG 워너비가 그 자리를 파고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정신 차리고 보니 우리는 모두 어깨를 흔들며 “테엘미, 테엘미”를 부르고 있었고, 이후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아이돌 붐’이었다. 1997년의 ‘1차 아이돌 붐’ 이후 꼭 10년, 2007년이었다.

 

idollab-1-400x420<Idol Almighty> (부분), 장안나, 2013, http://kkanna.me

 

2007년의 소리

네이버 뮤직은 과거의 국내 음원 차트 아카이브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국내에 존재하는 차트들은 각자의 편중성이 있어 완벽한 지표가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자료 참조의 편의성을 위해 이 아카이브를 이용하기로 한다. 적어도 탑 100까지의 순위에 언제 어떤 곡들이 포함되었는지를 살피는 수준의 느슨한 참고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네이버 뮤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차트는 2007년 5월이다. 이 시기부터 2008년까지의 순위를 살펴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점들이 눈에 띈다. 우선 R&B, 발라드 계통의 제목들이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1. 사랑계
사랑 그게 뭔데, 사랑의 인사, 사랑이 그래요, 사랑 하나면 돼, 사랑을 잃고 난 노래하네, 사랑도 이별도, 사랑을 외치다, 사랑한 만큼, 여자는 사랑을 먹고, 그깟 사랑, 사랑과 전쟁 등

2. 눈물계
눈물, 눈물로, 투명한 눈물, 울어도 괜찮아, 눈물은 모르게 등

3. 슬픔계
가슴이 슬퍼, 슬픈 발걸음, 슬픈 바보, 슬픈 다짐, 슬픔 활용법,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등

4. 가슴계
가슴아 그만해,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 미련한 가슴아, 가슴으로 외쳐, 어느 날 가슴이 말했다 등

5. 의료계
통증, 사랑앓이, 사랑에 미치면, 미워도 좋아, 미워도 사랑하니까 등

제목만 늘어놓고 보아도 어느 정도 일관된 정조가 느껴진다. 박효신 등에 의해 주도된 중저음 위주의 호소력 있는 보컬, 브라운 아이즈가 촉발한 미디움 템포 R&B의 유행, 그리고 왁스가 가히 선구적으로 도입한 ‘신파 리얼리즘’ 가사. 이 세 개의 지류는 모두 강렬한 신파라는 거친 강물을 향해 흘러들어 갔다(물론 신파를 반드시 부정적인 것으로 판단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그 속에는 의외의 이름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2007년 상반기의 이효리에 이어서, 하반기에는 토니 안(H.O.T.), 데니 안, 손호영(이상 god), 김동완, 이민우, 신혜성(이상 신화), 바다(S.E.S.), 은지원, 제이워크(이상 젝스키스), 간미연(베이비 복스) 등이 연이어 신곡을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듬해에는 강타와 신화의 신곡도 이어졌다. 거기에 김조한, 박진영, 토이는 물론이고 코요태, 터보, 쿨에 이르기까지, 과거 영광의 이름들이 줄줄이 솟아오른다. (거기에 서연도 “여름 안에서”를 비롯한 90년대 히트곡 리메이크를 잇달아 발표해 꾸준한 ‘중박’을 기록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의 이야기라고는 해도, 시간 감각을 의심하게 될 정도의 목록이다. 이들의 이름은 마치 이제부터 펼쳐질 아이돌의 세계를 예고하는 징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선왕의 유령이 나타나 햄릿을 일깨우듯, 혹은 해적왕 로저가 “이 세상 모든 것을 그곳에 두고 왔다”고 외치듯 말이다.

 
2007년의 풍경

잠시 타임라인을 그려보자. 1996년 H.O.T.의 데뷔로 1차 아이돌 붐이 생겨나고, 1997년 12월 한국은 IMF 구제금융 사건을 맞이한다. 2006년 빅뱅, 2007년 원더걸스의 뒤에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세계 금융위기가 있다. 한국의 아이돌이 세계 금융위기를 불렀다고 주장한다면 좋게 보아도 농담 이상은 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설을 세워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 상황과 아이돌 붐 사이에 간접적인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경제위기의 직전은 거의 항상 경제 호황이 있고, 그 속에는 늘 우려가 있다. 뉴스를 검색해보면 2007년의 뉴타운 재개발 광풍 속에 우리 사회의 부동산 버블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지표들도 있을 것이다. 당장의 경제적 악조건을 표현하진 않더라도, 다가올지 모르는 경제 불황을 생각하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지표들 말이다.

소득분배의 불균형을 나타내는 ‘지니 계수’도 그 중 하나다. 통계청의 조사에 의하면 2008년을 정점으로 하여, 2006년부터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소득 수준별로 모든 가구를 5개의 분류로 나눠 소득 불평등을 산출하는 ‘5분위 배율’도 살펴보자. 역시 2006년에서 2007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표1

자료 출처: 소득 분배 지표, 통계청

 

1차 아이돌 붐과 IMF 외환위기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1997년에 아이돌을 소비한 계층은 주로 10대였고, 이들 또한 경제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고는 하나 그 직접적인 연관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 아이돌 붐은 다르다. 1997년의 10대 소년, 소녀들은 20대가 되어 각박한 사회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때 우리 대중들은 빅뱅과 원더걸스의 데뷔를 보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믿고 싶지는 않은 불안과 이미 몸으로 느껴지는 삶의 고단함. 우리는 ‘어떤 세계’에 대한 갈증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가설에 불과하지만, 버블 붕괴를 앞두고 양극화가 심해지던 당시의 경제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위로를 찾도록 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때마침 등장한 것이 아이돌이었다고 말이다. 위에 인용된 곡목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그에 비해, “산소 같은 너”(샤이니, 2008년 9월)를 외치고 “어머나”라며 애정을 확인하는(“Tell Me”, 원더걸스, 2007년 9월), “너무 반짝반짝 눈이 부신”(“Gee”, 소녀시대, 2009년 1월) 세계는 얼마나 유혹적인가. 또한 카라의 “Break It”(2007년 3월)과 아이유의 “미아”(2008년 10월)가 들려주는 굵고 호소력 있는 보컬과, 그들의 흥행을 이끌어낸 “Rock U”(2008년 8월)와 “마쉬멜로우”(2009년 11월)의 가녀린 소녀 목소리의 간극을 보자. 이는 당시의 아이돌팝이 기존의 R&B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대두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그렇다면 1세대 아이돌들의 대거 복귀도 우연한 일만은 아니다. “많은 말을 뒤로 한 채” “단지 널 사랑해, 그렇게 말해”주고 (“캔디”, H.O.T., 1996) “오렌지의 향기로 살며시 미소 지을 땐 너의 웃음이 모든 걸 다 잊게 해”준 (“너를 사랑해”, S.E.S., 1998) 이들이었다. 그 추억이 지시하는 것은 다름 아닌 청춘의 이미지로 가득한 인공의 이상향이었던 것이다.

 
2007년의 손

경제학자 우석훈은 저서 <문화로 먹고 살기>(2011, 반비)에서, 몰락하는 음반 시장이 ‘막판 대바겐세일’을 하듯 아이돌을 출시했다고 말한다. 시사하는 바가 큰 지적이다. 그러나 지난해 초 ‘블락비 사태’와 관련해 스타덤 엔터테인먼트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이 기획사는 2011년 6월 수지로 “수익 33여만원 대비 지출 8천여만원”을 기록했고, 1장의 싱글과 3장의 미니 앨범(리패키지 포함), 1장의 정규 앨범을 위해 제작 및 홍보비로 16억원 이상, 이에 따른 활동비로 2억원 이상을 지출했다고 한다. 대표성을 갖는 사례는 아니나, 오로지 시장의 몰락만을 이유로 삼기에는, 아이돌은 돈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정말로 ‘사장님이 미친’ 게 아니라면, 적어도 수요 없이 창출되는 시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돌은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그들을 호출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대중 자신이었다. 다른 선택지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돌의 도피 세계와 사뭇 유사한 성격을 지녔던 윤하, 서태지도 같은 시기에 활발하게 활동했고, 김동률마저 “다시 시작해 보자”를 발표했다. 영민한 상업적 감각의 기획사인 코어 컨텐츠 미디어는 씨야와 다비치에게 R&B 발라드와 상큼한 댄스 튠을 겸업하게 하기도 했다. 그 뒤섞임 속에서 대중은 다른 음악을 지지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능동적으로 아이돌이라는 핑크빛 공을 꺼내 든 것이다. | 미묘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