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Thornapple) |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 | Square Record, 2010

 

한국 인디록의 어떤 생태계

이 앨범에 대한 인상은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누군가, 관련된(혹은 영향받았음이 분명한) 음악들이 계속 떠오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신선하게 들린다는 점이다. 레퍼런스에 대해서라면, 사운드에 있어서는 [아주 보통의 존재]의 언니네 이발관이, 가사에 있어서는 [비선형]의 못(MOT)이, 창법과 스타일에 있어서는 [Hunch]의 아침이 특히 떠오른다. 곡에 따라 넬이나 피터팬 컴플렉스가 소환되기도 하는데 이런 언급이 이제 막 데뷔한 밴드의 등에 ‘아류’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레퍼런스에 대한 이런 환기는 이 밴드, 쏜애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 입장에선 그게 꽤 중요하다.

얼마 전까지(혹은 지금도) 대부분의 한국 밴드들은 해외의 스타일을 자신의 레퍼런스로 삼아왔다. 그래서 비판받기도 했고 그래서 추앙받기도 했다. 그런데 쏜애플은 자신들의 레퍼런스가 국내의 인디, 그것도 2000년 이후에 활동한 밴드를 표본으로 삼고 있음을 의식/무의식적으로 반영한다. 아무래도 이게 오해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런 식의 반영이 가능해진 건 어째서일까.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르는데, 일단 그만큼 한국 인디 록의 역사가 깊어졌고 그 안에서 반영과 재현이 이뤄진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요컨대 한국 인디 록의 생태계에서, 특히 사운드에 있어서 자가순환구조가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리란 얘기. 적어도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레퍼런스들은 이런 짐작에 대한 긍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 앨범은, 무엇보다 이런 레퍼런스를 불현듯 무시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꽤 매력적이다. 수록곡의 면면에서 기타 톤은 자신이 규범으로 삼은 어떤 틀을 순간적으로 찢어버리고(특히 “빨간 피터”의 드라이브, “아가미”의 루핑, “도룡뇽”의 그루브, 그리고 “매미는 비가 와도 운다”의 인트로), 자의식 가득한 가사는 문학소년의 감수성을, 그야말로 용감하게 드러낸다. 혹자는 이 강렬한 인상: 자의식 강한 가사와 레퍼런스로 충만한 사운드를 근거로 쏜애플을 ‘허세 밴드’로 낙인찍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 이들은 올해 가장 인상적인 데뷔를 거둔 인디 록 밴드 중 하나다. 이 복잡한 레퍼런스의 그물이야말로 사운드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깊이에 비례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게다가 창작자라면 당연히 허세마저 자기 스타일로 체화하는 방법적 고민과 고집을 부려야한다. 요컨대 오리지널리티는 우연한 발견과 그에 대한 의도적 자기계발로 구성된다. 그 점에서 일단 이들의 다음을, 지켜보고 싶다.  | 차우진 [email protected]

rating: 3/5

수록곡 

1. 피어나다 
2. 오렌지의 시간 
3. 빨간 피터 
4. 아가미 
5. 도롱뇽 
6. 청색증 
7. 너의 무리 
8. 플랑크톤 
9. 이유 
10. 매미는 비가와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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