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첫째 주 한겨레 신문에 실린 문화 연예 관련 기사의 제목을 보자. 문화퇴행, 안전하고 쉬운 돈벌이의 유혹이다. 자극적이다. 내용은 최근의 가요,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의 대중문화는 자극적인 후렴구, 가족관계의 퇴행에 대한 집착 등으로 찍어내 듯 만들어내며 ‘막장화’와 ‘퇴행’으로 치닫고 잇다는 준엄한 비판이다. 자극적인 대중문화가 문제라면 이 기사 제목과 내용 또한 무척이나 자극적으로 독자를 끌고 잇다. 물론 네이버나 다음의 대문에 떡하니 게시되기 좋은 기사였다.

일견 그럴 듯하게 들린다. 사실 ‘값싼’, ‘싸구려’등으로 대중문화만큼 두들기기 좋은 것도 없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고 나의 ‘전문’ 분야인 대중음악에만 한정해보자.

아래 부분이 기사 중에서 대중음악에 관한 내용이다.

“퇴행의 징후는 ‘30초 음악’들이 석권한 대중 음악계에서 분명하게 감지된다. ‘30초 음악’은 ‘싸비’나 ‘훅’이라 불리는 중독성 짙은 후렴구로 무장한 가벼운 댄스곡이다.
30초 음악은 2007년 ‘원더걸스(사진) 신드롬’을 몰고 온 <텔미>에서 시작됐다. 박진영이 작곡한 이 노래는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기존 노래 형식을 과감히 포기하고, 인상적인 후렴구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중독 시켰다. 이후 ‘싸비’의 반복으로 곡을 단순화한 작곡가 ‘용감한 형제’가 곡을 쏟아내면서 30초 음악은 보편화됐다. 지난 한 해 동안 그의 손을 거쳐 손담비의 <미쳤어>, 빅뱅의 <마지막 인사>,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어쩌다> 등이 성공을 거뒀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시장 구조의 변화가 있다. […] 디지털 음악 소비자들은 ‘벅스뮤직’ 등 음악 사이트에서 무료 ‘30초 듣기’를 통해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10곡정도 일관된 흐름을 가진 앨범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3~4분짜리 싱글, 그 안에서도 30초 정도의 후렴구로 음악의 가치가 판단되는 매우 부정적인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실력 있는 뮤지션들은 정규 음반을 포기하고, 3~4곡을 묶는 미니음반이나 싱글 음반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 문화퇴행, 안전하고 쉬운 돈벌이의 유혹 (한겨레, 2009년 1월 8일, 길윤형, 하어영 기자, 김학선 객원 기자)

 

대중음악과 중독성

그러나 이렇게 묻고 싶다.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한번 들으면 청중을 확 휘어잡는 ‘훅’이나 ‘리프’나 후렴구가 뛰어나지 않은 대중음악이 얼마나 되냐고. 반대로 “3분짜리”라는 비난과 한탄은 50년 전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스에 쏟아졌던 것이다. 또, 기승전결이 정말 대중음악의 지배적 양식이었는지 묻고 싶다. 그 반대로 대중음악의 지배적 양식은 버스-코러스(verse-chorus)였다. 또한 따라 부르기 좋은 코러스는 언제나 대중음악의 미덕이었고, 강력한 리프와 훅은 대중음악의 중독성 원천이었다(물론 모든 대중음악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또한 그런 음악이 모두 좋은 대중음악이라는 것도 아니다).


10초짜리 강력한 후렴구가 반복되는 3분짜리 팝송을 수없이 만들어 부른 비틀스.
이들에겐 어떤 잣대를 들이댈 것인가 


기사는 ‘퇴행’이라는 규정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에서 창작의 꽃이 만발하던 명확한 전성기가 있었던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과연 언제가 그런 시절이었는지 묻고 싶다. 물론 개인적으로 언제가 전성기였다는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의 글은 논리상 아주 가까운 과거에 현재와 확연히 구분이 되는 어떤 시기가 있었다는 것처럼 들린다. 오히려 2008년 주류 음악계에서 나온 음악은 훨씬 질이 높아지고 ‘들을 만’해졌다는 의견도 있다.

한 평론가의 말을 인용해보자.

“개인적으로 올해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노는 음악’의 약진과 ‘인디의 분화’다. 다른 이들이라고 크게 달리 생각할 것 같지는 않다(오히려 내가 뒷북을 치고 있는 것일 게다). 주류 댄스음악이 그동안 축적했던(훔쳐왔던) 노하우를 제대로 다루는 법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동방신기, 브라운 아이드 걸스, 카라 등의 아이돌 댄스 음악이 올해처럼 그럴듯하게 들린 적이 언제였을까. ‘월드 스타’의 현란한 비트와 ‘문화 대통령’의 정교한 사운드가 시대에 뒤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말이다.”
– 최민우(daft)의 블로그 (2008년 12월 26일)

그에 의하면 2008년의 주류 댄스 가요계는 그동안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럴 듯한 댄스 음악을 내놨고, 따라서 더 이상 외국의 최신 유행 스타일을 열심히 흉내내거나 적용하는 데 재빨라왔던 서태지 같은 이들의 시도가 완전 시대착오적으로 들릴 정도였다고 말한다. 물론 모두 이 말에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주류나 인디 모두 최소한 외국 최신 스타일을 베끼는 수준에서 한 걸음 올라섰다는 진단은 많이 듣는다.

 

과연 한국에 일관된 컨셉트의 앨범이 존재했었나

원더걸스. 30초짜리 싸구려 음악이라고 비난받아 마땅한가 

사실 위의 기사와 같은 비판이 나온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다. 앨범이 아니라 곡, CD가 아니라 개별 곡 다운로드가 대중가요의 존재론적 기반이 되었고, 이와 같은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변화를 악용하려는 얄팍한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특히 한국에서, 그것도 주류 음악계에서 ‘일관된 컨셉트를 가진 앨범’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한 가치를 차지했던 것처럼 말하면서 아쉬워하는 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노스탤지어를 보이는 것과 같은 희극의 연출이다.

기사의 취지와 묘사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일면 수긍을 할 수 있지만, 기사가 기반하고 있는 과장과 허구적 이분법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 논리를 그대로 따르자면 글 처음에 이야기했듯 선정적이고 자극적이기 그지없는 이 기사 자체가 바로 한국대중문화의 문제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난 그렇게 비난에 시간과 열정을 기울이는 대신, ‘30초 짜리’라는 저주받은 형식에 제대로 적응하거나 그 형식을 영리하게 이용하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가요가 나오기를 내심 바라는 편을 택할 것이다. | 이정엽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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