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난 아닐 걸” “아마 맞을 걸” – “첫 사랑니”, 에프엑스(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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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리 있게 노래하는 f(x)

2013년에 발매된 이 곡은 여러 가지 특징을 보인다. 에프엑스의 행보를 지켜보던 이가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인상적인 점은 어쩌면 가사였을 것이다. 당혹스러운 표현들로 난해한 맥락의 실을 잣던 기존의 곡들(“Nu ABO”(2010), “Hot Summer”(2011))과는 달리, 전간디의 작사인 이 곡은 비교적 정제된 은유와 선명한 맥락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니의 고통을 첫사랑의 위태로움과 아픔으로 비유한 이 곡은, 도입부에서 자기소개의 형식으로 소재를 제시하고 (“안녕, 한 번쯤은 날 들어봤겠지 / 너의 사랑니”) 사랑니와 첫사랑이 자리잡는 맥락을 은유적으로 보여준 뒤 (“다른 애들을 다 밀어내고 자리를 잡지”) 후렴에서는 그에 관한 내면을 토로한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플 걸 / 잠도 오지 않을 걸”, “새로운 경험”) 이후 2절에서는 비뚤게 자란 사랑니와, 사랑니 적출 이후를 노래하여 변주를 시도했다가 후렴으로 돌아온다. 브리지부터의 가사는 여태까지의 가사 중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반복하며 감상을 심화하는 구조이다. 전통적인 가사의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하겠다.

동시에, 기승전결을 따진다면 그 결론이 명확한 가사는 아니라는 점에서 그간의 가사 실험을 반영하는 측면도 있다. 또한 2절에서 “아마 난 아닐 걸” – “Yeah!” – “아마 맞을 걸”의 세 가지 목소리가 한 마디 안에 몰려들어가 있는 양상이나, 돌림노래의 형식을 도입한 부분, 또한 반주에 극적인 변화를 주며 “쉿, 둘만의, 쉿”을 통해 아주 짧은 순간 야릇한 분위기를 삽입하는 방식 등은, 특히 SM 엔터테인먼트가 주도하고 있는 뮤지컬적 대화형 가사의 예로 볼 수 있다.

 

2. 곡 구조 분석

Intro [4마디] A (Verse 1-1) [8마디] “안녕 한 번쯤은…”
A’ (Verse 1-2) [8마디] “Attention boys…”
B (Pre-chorus) [8마디] “네 맘 벽을 뚫고 자란다…”
C (Chorus) [9마디] “아야 머리가 아플 걸…”
간주 [1마디] A (Verse 2-1) [8마디] “이거 어쩌나…”
A” (Verse 2-2) [8마디] “이렇더라 저렇다…”
C (Chorus) [9마디] “아야 머리가 아플 걸…”
간주 [3마디] B’ (Bridge) [11마디] “네 마음 벽을 뚫고 자라난다…”
C (Chorus) [9마디] “아야 머리가 아플 걸…”
C’ (Post-chorus) [12마디] “진짜 네 첫사랑”+”특별한 경험 Rum pum pum pum” (반복)


작사 전간디 / 작곡 Erik Lewander, Sten Iggy Strange Dahl, Ylva Anna Birgitta Dimberg, Anne Judith Wik | 2013년 7월

정리해 보면 간결한 편인 구조의 이 곡이 일견 혼란스럽게 들리는 것은, 곡을 이루는 여러 개의 모티프들이 변주되고 반복되는 방식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프리코러스인 B가 2절에선 사라져버렸다가 브리지에서 변주되고 있는 점이다. 보통 2절에서 프리코러스가 사라지면 후렴으로 급히 달려가는 인상을 주기 쉬우나, 이 곡은 2절에서도 안정적으로 후렴이 흘러나온다. 오히려, 브리지가 1절에 재차 삽입된 것 같은 인상마저 준다.

이는 A’와 A”가 갖는 복잡성 때문이다. 각각 1절과 2절을 담당하는 이 파트들은 A의 테마를 사운드적으로는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맘 속 깊은 곳에 / 아주 은밀하게”의 멜로디 역시 사실상 A 파트의 “안녕, 한 번쯤은”과 백업 보컬 “아아아 아”를 간단히 변주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랩과 보컬이 교차되고 있어 사뭇 다른 감상을 준다. 특히 “Attention, boys”라는 랩의 첫 마디가 인상적이기에 더욱 분위기를 환기한다. 내부 구조는 첫 네 마디를 랩이 담당하고, 이후는 보컬과 랩이 한 마디씩 번갈아 대화하고 있다. 또한, 사실상 효과음처럼 사용되는 이 랩의 가사는 “Pu rum pum pum pum”인데, 이는 B와 C’에서 보컬이 담당하는 가사이기도 하다.(“Rum pum pum pum”)

이 곡은 아기자기한 퍼커션 배치도 흥미롭지만, 악기가 드럼만 남거나 스네어롤이 등장하는 부분들도 인상을 남긴다. 그에 해당하는 부분은 B(단, 베이스는 남아있다), B’의 마지막 두 마디, 그리고 C’이다. 또한 곡의 전반부를 리드하는 시타르 연주는 크게 두 가지의 패턴을 보이며 적재적소에서 등장하거나, 딜레이를 추가하거나 제거해서 리듬감에 변화를 보인다. 특히 2절의 B’는 두 마디 단위로 시타르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곡의 흐름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며, 마지막엔 짤막한 기타 연주가 느닷없이 삽입되기도 한다.

이렇듯 이 곡은 여러 개의 작은 모티프들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은 마지막 C’로서, “새로운 경험”, “Rum pum pum pum”, “진짜 네 첫사랑”, 백업 보컬, 시타르 루프, 스네어 롤 등이 기존의 맥락과 조금씩 차이를 보이며 재조합되고 있다. 특히 첫 박을 쉬고 나오던 “진짜 네 첫사랑”은 두 박자 앞으로 당겨졌으며, 그에 따라 백업 보컬 (“오오오 오오오 오오”)과 결합하는 위치가 크게 달라졌다. 결국 C’는 네 마디를 기준으로 진행하던 후렴 C의 요소들을 뽑아와, 보다 짧은 세 마디 단위로 빙글빙글 돌아가며 곡을 마무리하게 된다.

 

3. ‘모달(modal) 아이돌팝?’

곡의 시작부터 등장하는 시타르는 그 소리만으로도 이국적이지만, 연주하고 있는 멜로디도 이색적이다. 근음(B)에서 한 옥타브를 지나 반 음(단9도)을 더 올라가는 라인이기 때문이다. 큰 폭의 음정 차이만으로도 낯선 느낌을 주기 쉬우나, 하필 두 음정의 관계가 단9도에 해당하기 때문에 더욱 불안정하게 들린다. 그런데 멜로디는 팝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신비한 느낌을 낸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시타르와 보컬 멜로디의 음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곡 전체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는 음정들을 모아보면 B, C, D#, E, F#, G, A로서, B를 근음으로 하는 프리지안 도미넌트(Phrygian Dominant) 스케일임을 알 수 있다. (B’ 파트에서는 보컬 멜로디가 아예 이 스케일을 그대로 멜로디화하고 있다.) 프리지안 도미넌트는 ‘집시 스케일(gypsy scale)’이라고도 하는데, 플라멩코 스케일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 서양음악에서 흔히 사용되는 메이저/마이너 스케일과는 큰 차이를 보이며, 사뭇 이국적인 향취를 내는 스케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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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이 곡에서 여러 개의 스케일이 번갈아가며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A 파트의 “안녕 한 번쯤은 / 날 들어봤겠지”는 프리지안 도미넌트, “너의 사랑니 / (아아아 아)”는 같은 B를 근음으로 하는 내추럴 마이너 스케일(Natural minor scale, 나단조)이다. 각각 두 마디씩 두 스케일이 대구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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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A’는 시타르 반주 위에 랩이 진행되어 스케일이 없으며, “맘 속 깊은 곳에”는 다시 프리지안 도미넌트를 유지하는 듯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여기서 사용되는 보컬의 음정은 모두 B 메이저 스케일에도 해당한다. “아주 은밀하게”가 유난히 명랑하게 들린다면 그 탓일 것이다. A’가 노골적으로 나장조(B 메이저)에 해당하는 B 파트를 이끄는 역할이라 한다면, 여기서는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이라 보기보다는, 프리지안 도미넌트와 메이저가 공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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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보본의 B에는 조표를 그려넣었다. 그것은 화성적으로 걸리적거리는 C 음을 포함하고 있는 시타르가 사라지고 드럼만 남은 위에, 보컬이 지정하는 음정들이 전부 나장조의 음정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장조의 I도 화성인 B7을 벗어나지 않는다. (B, D#, F#, A) 오직 E가 추가로 등장하지만, 이는 경과음(passing note)인 동시에 B7의 sus4에 해당하기에 화성적인 문제가 없다. 아울러 I도 화성의 기본음만을 사용해 멜로디를 진행하고 간단하게 화음을 얹기 때문에, 무척 명랑하고도 동요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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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C 파트는 다시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로 돌아온다. 같은 스케일을 따르는, 노골적으로 ‘이국적인’ 멜로디의 백업 보컬이 이를 선언적으로 단정한다. 그리곤 마지막 “Rum pum pum pum”의 화음은 다시 B7(sus4)의 보이싱으로 이뤄져 쾌활한 나장조의 마무리를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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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 곡은 B 프리지안 도미넌트와 B 내추럴 마이너, B 장조가 번갈아가며 등장해 곡의 분위기를 수시로 전환한다. 그것도 모자라 A”의 마지막 마디는 D를 베이스로 단3도 음정을 빠르게 쌓아올리며 또 한번 순간적으로 공기를 바꿔놓은 뒤 후렴으로 돌입하기도 한다.

다양한 스케일을 바탕으로 한 모달(modal) 음악은 1950년대 후반 재즈맨들에 의해 대중음악의 세계로 들어왔다. 이 작법은 서너 개의 코드를 반복하며 장/단조의 틀 속에서 판에 박힌 멜로디를 연주하게 되는 기존 서양음악에 대한 대안으로서, 더 풍성한 음정의 세계를 탐험하고 더 자유로운 구조의 곡을 구사하는 방법론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자칫 ‘너무 재지’하거나 어렵고 낯선 느낌을 주는 탓에, 팝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형태는 아니라 하겠다.

그러나 에프엑스의 경우 이미 기존의 앨범 수록곡에서 부분적으로 모달을 시도하곤 했다. Hitchhiker 작곡의 “빙그르”(‘Pinocchio’, 2011), “지그재그”(‘Electric Shock’, 2012) 등이 그렇다. 또한 “첫 사랑니”가 수록된 ‘Pink Tape'(2013) 앨범에도 Kenzie 작곡의 “시그널”에서도 과감한 화성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대중적으로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음악성을 인정 받는 음악가들도 기피하기 쉬운 작법을 아이돌팝이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유난히 소란스럽고 유치한 색채를 유지하는 에프엑스가 그런 음악적 진보를 선보인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작사 김부민 / 작곡 Hitchhiker | 2011년 4월

“첫 사랑니”는 스케일의 변화 속에서 화성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음정 악기의 수가 제한되고 타악기와 보컬 위주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이 곡은 이 과감한 작법 앞에 몸을 사리기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동요적이고 유치한 멜로디와 화성을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스케일의 변화에 임팩트를 주고, 그로 인해 더욱 ‘팝’한 멜로디를 선보인다. “빙그르”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는 에프엑스가 갖는 ‘유치한’ 이미지 덕분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어려운 듯, 우아한 듯 애매한 균형을 찾기보다, 차라리 지나치게 명쾌한 멜로디를 사용함으로써 모달 음악이 (팝에서) 갖는 약점을 정면돌파한 것이다. 이제, 누가 아이돌팝을 유치하다 말할 수 있을까. 더구나, 유치하다고 해도 그것을 단지 단점이라 할 수 있을까. | 미묘 [email protected]

* 채보 : 미묘 / 검수 : 배선희, 고권도
* 이 곡의 가사와 무국적성에 관해서는 [차우진의 워드비트] 마술적 내러티브와 장소 없는 감수성: f(x) “첫 사랑니”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