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GMF는 성공적이었다. 관객도 3만명을 기록했다. 그 중 유료관객도 꽤 많다고 들었는데 작년과 올해의 호응 자체가 굉장히 다르다는 인상이 있다.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별 일 없었다. 다만 이런 공연을 필요로 해온 사람들이 이미 많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도 별 관심없고, 주말 저녁 홍대 클럽 공연도 굳이 찾아보지 않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홍대 앞의 음악이 궁금하거나 소문으로 접하거나 간접적으로 접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미디어에 의해 검증받은 일부 밴드들을 통해 ‘인디’를 접한 사람들은 어쩌면 ‘라디오 프렌들리’하면서도 TV의 예능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는 사람들과 겹친다고 본다. 이른바 하나의 취향으로 규정되지 않는 사람들. 그런데 사실 대부분 그렇다. 아무도 단일한 취향을 가지지 않는다. 그 취향이 동일한 정체성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그런 충돌이 궁금했다. 그리고 이번 GMF를 보면서 당분간 이 공연이 그런 사람들과 취향의 집합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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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잔디밭에 알록달록한 돗자리와 담요가 펼쳐진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이 가방에서 꺼내는 건 샴페인과 바게트, 그리고 얇은 책 같은 것들이다. 그 사이를 카메라를 들고 걷는 사람들도 있고 미니벨로를 타고 온 사람들도 보인다. 혼자 온 사람들도 제법 많다. 1년 전과는 좀 다른 풍경이다. 두 번째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GMF)이 열리던 올림픽공원의 풍경이다. 나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거기 있었다. 미선이의 재결성 공연이 있던 금요일에는 가지 못했지만 친구의 휴대폰으로 ‘시간’을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지독하게 사적인 경험이다. 공연이나 페스티벌은 그걸 여러 사람들과 동시에 공유하는 과정이다. 공감의 힘은 쎄다. 이 음악을 좋아하는 게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말고 이상한 사람들이 더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일종의 위로이자 집단 치유의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GMF의 성공은 꽤 의미심장하다. 이 공연의 뿌리가 홍대 앞에서 심심치 않게 열리던 ‘민트 페스타’에 있다는 건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GMF를 주목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공연 3일의 라인업을 대부분 국내 음악가로 채우고, 또 그들 거의가 홍대 앞 클럽에서 공연하는 인디 밴드들이라는 사실은 지난 10여 년간 홍대 앞에서 자력갱생한 씬의 성과를 가늠하게 만든다. 홍대 앞이 변했다, 씬이 죽었다고 해도 어쨌든 그 동안 그곳에는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과 그걸 향유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자생적으로 발생한 음악 씬이 대규모 페스티벌을 기획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게다가 그 페스티벌은 도심 한 복판에서 열린다. 입장권도 금요일 티켓은 3만원 수준, 토요일과 일요일은 각각 6만원 수준이고, 2일 관람은 9만원, 3일 관람권은 10만 원 수준이다. 매일 오후 1시부터 밤 11시까지 진행되는 시간을 감안하면 합리적이다. 여기에 ‘록 페스티벌’이 아니라 ‘소풍같은 페스티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인다. 장르가 아니라 감성을 앞세우는 건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언니네 이발관과 토이가 같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10여 년간 홍대 앞에서 벌어진 변화는 장르보다는 감성의 변화였다. 90년대 후반, 홍대 앞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나 ‘펑크 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2000년 이후부터는 ‘산책하기 좋은 공간’이나 ‘예쁜 카페가 많은 공간’으로 변화했다. 주말마다 댄스 클럽 앞에 상주하는 사람들만 있던 게 아니었다. 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개인 블로그에 올리고 작은 카페들과 그 메뉴들을 인터넷에 소개하는 행위가 문화적인 행위로 인식되는 시대가 왔고 그 중심에 홍대 앞과 그 향유자들이 있었다. GMF는 그들, 혹은 그들처럼 되고(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공연이다. 주말이면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샴페인과 바게트를 내놓는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연이고 마이 앤트 메리와 언니네 이발관과 토이가 그 배경음악이다. 자, 여기가 중요하다.

감성적인 캐치프레이즈를 걸었지만, GMF는 본질적으로 인디 록 페스티벌이다. 여기서 인디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GMF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말했듯 ‘인디=홍대 앞’이라는 수식이 10여 년 전의 평가였다면 지금은 ‘인디=감성’이라는 게 일반적이다. 장르도 아니고 태도도 아니고 시스템도 아니다. 인디 감성이라는 건 그가 인디펜던트 시스템에 속하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마스터플랜 그룹의 이종현 대표가 기획한 GMF에 김민규(문라이즈 대표)와 이한철(튜브 앰프 대표)을 비롯해 정동인(안테나뮤직 대표) 등이 수퍼바이저로 참여한 건 의미심장하다. 특히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시장을 담보하고 있는 안테나 뮤직의 참여는 GMF를 ‘보다 유연한 정체성의 페스티벌’로 만드는데 일조한다. 물론 인디 순수주의자들이 진정성을 언급할 수도 있고, 쁘띠 부르주아의 감성을 위한 장식이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들 멋대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놀 뿐이다. 그렇게 노는 걸 보고 정리하는 게 비평이다. 노는 것보다 그걸 정리하는 게 더 재미있을 리 없다.

이제 공연에 대한 감상을 좀 해보자. ‘일기는 일기장에’란 말을 들을지 몰라도 이 얘기는 해야겠다. 공연은 세 개의 무대에서 진행되었다. 넓은 잔디밭(88마당)에서 열린 메인 무대는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였고 거기서 5분 정도 거리의 호수 옆에는 ‘러빙 포레스트 가든’이 있었다. ‘블로썸 하우스’는 잔디밭 뒤쪽에 설치되었는데, 메인의 소리가 자꾸 이 공연을 간섭했다. 내년에도 이러면 곤란하다. 하지만 에바 캐시디의 노래를 부른 이하나는 좋았다. 무대에선 수줍게 웃던 그녀가 무대 밖에서 펑크 락커처럼 걸어서는 아니다. 임주연과 오지은의 공연이 인상적이었고 몽니도 좋았다. 전자양 또한 근사했다. 홍대 앞에서 세션을 자급자족할 정도로 씬이 커졌다는 인상도 받았다. 메인 무대와 가장 잘 어울리던 마이 앤트 메리와 시종일관 기타로만 말하던 이능룡(언니네 이발관)도 훌륭했다. 잠깐 음향 사고가 있었음에도 죽여주던 건 욜라 텡고였는데 직접 들을 수 있었던 ‘Mr. Tough’와 ‘Story Of Yo La Tengo’뿐 아니라 대책 없는 노이즈-인디-록을 서울 한 복판에서 울려 퍼지게 한 주최측에 고마웠다. 유희열도 고마웠다. GMF를 마침내 <열린 음악회>나 라디오 공개방송처럼 만든 그의 농담 덕분에 우리 모두 낄낄거리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차우진 [email protected] | <씨네21> 676호 (2008.10.21 ~ 2008.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