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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최근의 할리우드가 아무리 리메이크로 먹고 산다지만 <풋루스>까지 리메이크할진 몰랐다. 케빈 베이컨이 삐딱하게 넥타이를 맨 날라리 고등학생으로 나온 이 영화는 <퀵실버>와 함께 그에게 열광하게 만든 ‘참 개인적인 추억의 영화’인데 생각해보면 까까머리 중학생 주제에 케니 로긴스의 ‘Footloose’를 찾아 동네 레코드점을 무수히 뒤지던 기억도 생생하다. 아아, 과연 록이야말로 청춘의 음악이었단 말인가. 사실이야 어쨌든 <풋루스>류의 청춘영화들에서 음악은 빠질 수 없는 요소긴 하다. 뮤지컬의 형식을 가졌든 아니든 대중음악, 특히 록 음악은 당대의 ‘청춘’이라는 감수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학생, 유색인종, 왕따 등등 아웃사이더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런 청춘영화의 마지막이 언제나 졸업파티나 농구대잔치 같은 학교 행사라는 점도 이해된다. 성공한 록 밴드는 수많은 청중 앞에서 노래한다. 그건 룰이다. 주인공이 학생이라면 전교생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최고의 무대라는 얘기다. 그래서 이 대단원의 끝에 선 주인공들은 영화 출연진 전원의 갈채 속에 좋아하던 ‘그이’와 데뷔무대를 치른다. 보통은 백 비트가 강조된 전형적인 소프트 록을 듀엣으로 부르는 장면에서 엔딩인데, 바야흐로 혈기 넘치는 스크린의 십대들은 학교 강당으로, 농구장으로, 풋볼 경기장으로, 졸업파티 무대로, 그러니까 듀엣곡을 향해 전력 질주하게 된다. 맞다. 듀엣곡이다.

HIGH SCHOOL MUSICAL 3: SENIOR YEAR

이런 청춘영화의 최신 버전은 아무래도 최근 미국에서 2주 간 박스 오피스를 점령했던 <하이스쿨 뮤지컬3: 시니어 이어>일 것이다. 2006년에 디즈니 채널의 오리지널 TV영화로 방영된 <하이스쿨 뮤지컬>은 이후 미국에서 ‘하이스쿨 뮤지컬 현상’이라고 부를 만큼 대단한 반향을 얻었는데, 얼마 전에는 <사우스파크> 12시즌에 ‘Elementary School Musical’이란 패러디 에피소드가 등장할 정도로 이 영화는 십대 초중반의 소녀들 뿐 아니라 성인들도 사로잡았다. 2002년 이후로 에이브릴 라빈과 힐러리 더프가 지배했던 이 ‘코 묻은 돈더미의 시장’은 1960년대 틴 팝, 혹은 티니바퍼가 변형된 방식으로 보는 게 정설인데, 이 어린 십대(혹은 그들 부모)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 간 건 다름 아닌 월트디즈니였다. 1편의 사운드트랙은 ‘2006년에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 되었고 2편의 사운드트랙은 빌보드, 아마존, 아이튠즈의 차트를 석권했으며 월마트에서는 DVD 합본 세트가 독점 판매되기도 했다. 디즈니의 <하이스쿨 뮤지컬>에 대한 애정은 참으로 대단해서 이 TV영화의 프렌차이즈는 콘서트 투어, 해외 스핀오프 제작, 뮤지컬 공연, 책 출간, 컴퓨터 게임 런칭, 리얼리티 쇼 제작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장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하이스쿨 뮤지컬 현상’은 디즈니의 치밀한 시장 전략의 결과이기도 한 셈이다.

디즈니는 <하이스쿨 뮤지컬>의 성공 이후 비슷한 작품도 만들었다. 최근 미국에서 십대소녀들 3명만 모이면 얘기한다는 밴드 조나스 브라더스가 출연한 <캠프록>도 그 중 하나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변주한 이 영화는 조나스 브라더스를 확고하게 아이돌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만든 작품으로 그 열기는 얼마 전 발매된 정규 2집 를 지금 가장 핫한 틴 팝 앨범으로 만들었다. 당연하게도 성공한 영화는 스타를 만든다. 잭 에프론과 바네사 허긴스, 애슐리 티스데일이 <하이스쿨 뮤지컬>이 낳은 스타라면 조나스 브라더스와 데미 로바토는 <캠프록>의 스타였고, <한나 몬타나>로 십대 소녀들의 우상을 차지한 마일리 사이러스 또한 그렇다. 그녀는 ‘미국의 국민 여동생’으로 거론될 정도로 로우-틴에이저들 사이에서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디즈니가 꾸준히 개발하고 확장하는 십대 시장의 핵심은 곧 대중음악 시장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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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전략은 간단하다. 디즈니가 매니지먼트하는 스타들은 스크린과 아이팟을 동시에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디즈니는 자사의 TV채널 뿐 아니라 할리우드 음반사도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품을 오리지널 TV영화로 제작하지만, <하이스쿨 뮤지컬>처럼 TV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 작품은 스크린용 영화로 만든다. 디즈니의 작품은 자고로 ‘중산층 가족용 드라마’를 표방하므로 내용적으로도 건전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의미의 ‘악역’이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나쁜 역할의 백인 블론드 여자애들이 여지없이 나오긴 하지만, 사실 그들이 그렇게 삐뚤어진 건 과장된 허영심이나 부모의 사랑이 부족한 까닭이다. 거의 등장하지도 않는 키스 장면이 어쩌다 나온다 해도 수 초 이상 연속되지도 않고 섹스나 마약, 총기 같은 단어나 장면은 등장할 여지조차 없다. 왕따 같은 심각한 문제도 간략하게 축소되고 학원폭력은 동네 애들이 툭탁거리는 수준이다. 이런 판타지 같은 환경에서 남녀 주인공들은 학교 행사 무대를 향해 전력 질주한다. 그러니까 듀엣곡을 향해서. 그리하여 마침내 <하이스쿨 뮤지컬>의 전시리즈에서 잭 에프론과 바네사 허긴스는 ‘When There Was Me and You’와 ‘Everyday’, ‘Right Here Right Now’를 불렀고, <캠프록>의 조 조나스와 데미 로바토는 ‘This Is Me’를 부르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런 결말이 아쉽거나 뭐 그런 건 아니다. 풋풋한 추억에 잠길 때도 있고 유치해서 손발이 오그라들 때도 있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편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이쯤에서 한국 얘기도 해보자. 한국에서도 이런 식의 아이돌 프렌차이즈가 존재하지만 미미하다. 어쩌면 한국의 아이돌 시장 전략이 미국보다 일본의 모델에 더 근접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슈퍼주니어가 몽땅 나왔던 <꽃미남연쇄테러사건>이 가장 근접한 사례일 것 같다. 동방신기가 주연했던 극장용 드라마(라는 타이틀보다는 팬 서비스라고 이해해야 할) <베케이션>도 있었고, H.O.T가 주연한 <평화의 시대>나 젝스키스가 나왔던 <세븐틴>도 있지만 대중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은 작품은 거의 없지 않나. 물론 시장의 문제가 가장 크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수용자들이 자국의 대중문화에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좀 유치하면 어때? 라는 관용적 태도가 부족한 것 같다는 얘기다. <하이스쿨 뮤지컬> 1편에 나온 잭 에프론도 만만치 않게 유치했다. 그러니까 연기 좀 못하면 어때. <캠프록>의 음악은 지독하게 전형적인 틴 팝이었다. 그러니까 노래가 별로면 어때. 물론 그 전형성마저 충족시키지 못하면 좀 곤란하지만, 어쨌든 그냥 젊은 아이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지들끼리 부딪치고 화해하고 마침내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듀엣곡을 부르면서 행복하게 웃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란 얘기다. 아이고, 그나저나 가뜩이나 팍팍한 한국의 십대(및 어른아이)들에게 그런 청춘영화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과연 나이 때문일까, 날씨 때문일까. | 차우진 [email protected] | <씨네21> 680호 2008.11.25 ~ 2008.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