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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락왕에 붙어 있는 [붕가붕가 전국시대] 포스터

지역 음악 씬은 존재하는가? 무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붕가붕가 레코드의 레이블쇼 전국투어인 [붕가붕가 전국시대]에 대한 취재 이야기가 들어왔을때 머릿속에 처음으로 떠오른 질문이었다. 물론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다양한 음악적 실천이 이루어져 왔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움직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것을 ‘실감’하는 것은 확연히 다른 성질의 이야기다. 25년 동안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 살아 본 적이 없으며,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 공연 비슷한 것도 본 경험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지역 씬’에 대한 이러한 인상은, 그러나 아마도 수도권 주민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홍대 앞 음악’이 한국의 인디 음악을 대표하는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 인디 씬은 그 시작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아마도 멀지 않은 미래까지도) 홍대 앞이라는 공간에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활동의 영역, 대중의 관심, 레코딩의 숫자 등 모든 면에서 지역 음악 씬은 서울의 그것에 비해서 뒤쳐진다. 물론 이것은 비단 음악만의 문제는 아닌 전 사회적 영역에 걸친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지역 음악가에 대한 정부나 자치단체의 후원을 촉구하기? 지역방송국에 인디 음악을 틀어 달라고 요청하기? 물론 그런 방법도 훌륭한 참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거창한 일보다, 수용자의 입장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은 직접 확인해보는 것이 아닐까. 지역에 어떤 음악가가 있는지, 어떤 공연장에서 어떤 공연을 하는지, 앨범은 무엇이 나왔는지를 보고, 듣고, 확인하는 것. 결국 모든 종류의 현상은 직접 행동하는 것으로부터 구체화되고, 힘을 얻는다. 이 글은 그러한 확인을 조금이나마 도와 줄 간략한 기록이다. 이것을 읽고 나서 직접 확인하는 것은, 이제 여러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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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클럽 락왕. 락왕이 이전하기 전에는 인디야라는 이름이었다

대구 락왕은 여러 가지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쉴새없이 뿜어져 나오는 드라이아이스, 구석에 조촐하게 갖춰진 바, 어두컴컴한 조명, 인디 음악이 처음 나왔을 때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홍대 앞의 클럽들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조금은 낡은 풍경의 이 클럽은,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를 되찾았다. 서정적이면서도 멜로디컬한 포스트록 밴드 노벰버 온 어스(November On  Earth)의 첫 순서를 지나, 블루지하면서도 위트가 넘치는 인디록을 들려주는 찰리 키튼(Charlie Keaton), 멜로디컬한 개러지 펑크가 인상적인 플라스틱 키즈(ThePlastic Kiz)로 이어지는 대구 밴드의 순서는 붕가붕가 레코드의 순서가 오기도 전에 공연장을 뜨겁게 달궈놓았다. 비록 세 밴드밖에 없긴 했으나, 그 세 밴드의 성향이 완전히 다르면서도 모두 수준급의 무대를 보여줬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대구 씬에서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들은 상당히 다양한 장르에 걸쳐서 활동하고 있다. 어느 정도 알려진 이름부터 살펴보자면, 우선 작년 말 첫 정규앨범을 발매하고 꾸준하게 활동중인 노이즈 펑크 밴드 도그스타(Dogstar). 올해 초 7년만의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 중견 밴드 아이러닉 휴(Ironic Hue). 포크 음악가 아마추어 증폭기 또는 일렉트로닉 음악가 야마가타 트윅스터로 종횡무진하는 아티스트 한받이 있을 것이다. 그 이외에도 도노반과 제3행성, 마쌀리나 등의 어쿠스틱 밴드, 강렬한 포스트펑크를 들려주는 질바플라나, 이센스(E-Sens)가 활동한 것으로 유명한 크루이자 클럽 헤비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되었던 힙합 기획공연 힙합트레인(Hiphoptrain) 등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장소가 이곳 대구 씬이다.

이는 공간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대구 지역 씬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클럽 헤비를 중심으로, 라이브인디, 락왕 등의 라이브 중심 클럽, 쟁이, 어반, 뮤직트리, 꼬뮨 등의 소규모 바/카페 겸 공연장들이 동성로와 계명대, 경북대 등지에 산재해 있다. 클럽 헤비는 1996년 첫 공연을 시작으로 현재까지도 매주 대구 씬의 아티스트들을 중심으로 한 기획 공연을 선보이고 있으며, 2013년에는 17주년 기념 컴필레이션 앨범인 [17]을 제작하여 대구 씬의 음악을 소개하는 등, 지역 예술가들의 산실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장소이다. 대구의 음악 씬은 공간적인 측면, 다양한 시도에서의 측면 모두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활발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물론 대구 씬에 있어서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구 씬에서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그리고 기획자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씬에 대한 관심’에 대한 부분이었다. 플라스틱 키즈의 기타리스트 이창민은 “학원에서 기타를 가르치고 있는데, 많은 학생들이 인디 음악은 서울에서만 하는 줄 알아요”라고 말한다. 관객들이 단순히 ‘지역 음악 씬은 서울보다 못할 것이다’라는 편견이나 무시를 가지고있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지역 씬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경우가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주류 미디어 역시 대구 씬에 대한 관심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고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페스티벌, 버스킹 등 더 많은 대중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은 여러 가지로 모자라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최소한 오늘 대구에서 만난 기획자들과 음악가들은 결코 비관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대구 지역의 독립문화예술단체 인디053의 대표 이창원은 “음악가와 그 음악가가 만든 창작물을 알리고 전달하는 채널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씬’이 만들어지는 것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스타급 아티스트나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는 페스티벌이 아닌,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의 상호관계의 연속이다. 대구 씬을 꾸려나가고 있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정확히 인식하고, 또 고민하고 있다. 아마도 그 지점이, 이들이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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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믹스페이스의 전경

대전에서 처음 느낀 감정은 압도감이었다. 이번 [붕가붕가 전국시대]의 대전 공연장인 믹스페이스(Mixpace)는 이번 공연이 개관 공연이라고 했다. 새로 지은 공연장다운 깔끔한 분위기와 잘 갖춰진 음향시설은 물론이고, 최대 8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가 특히 인상적인 공연장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공연장은 서울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규모가 아니기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공연장을 연신 두리번거리며 이곳저곳 살펴보았다. 이렇게 큰 공연장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겠다는 걱정을 하면서.

이윽고 관객들이 공연장을 채워나가기 시작했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 시작 전에 가졌던 걱정은,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대전 출신의 두밴드 메카니컬 사슴벌레와 에이프릴 세컨드(Apri 2nd), 그리고 청주에서 온 밴드 그래비티(Gravity)의 무대는 에너지가 넘쳐났다. 그래비티는 콜드플레이(Coldplay), 시규어 로스(Sigur Ros)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사운드스케이프를 펼쳐 보였고, 에이프릴 세컨드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통통 튀는 신스 사운드를적절하게 혼합한 모던 록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대단했던 무대는 메카니컬 사슴벌레였는데, 첫 순서였음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무대 매너로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신중현과 엽전들, 산울림 등의 70, 80년대 한국 록 사운드가 포스트펑크와 결합한 듯한 음악 역시 독특하게도 잘 어울렸다.

‘대전 밴드’ 하면 보통 마하트마, 버닝햅번, 뉴크 등의 하드록/메탈 밴드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오늘 본 밴드는 모두 헤비니스와는 거리가 먼 음악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현재 대전 씬에는 헤비니스 말고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하는 아티스트가 늘어나고 있다. 오늘 공연에 참가한 메카니컬 사슴벌레와 에이프릴 세컨드 이외에도 재즈풍의 멜로디가 특징인 어쿠스틱 밴드 개인플레이(Gainplay), 보컬의 블루지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포크 밴드 어쿠스틱 머신, 밴드 포맷을 갖춘 힙합 팀 개떼들 등이 있다. 또한 대전 사운드 페스티벌, 카이스트 아트 앤 뮤직 페스티벌(KAMF) 등 로컬 음악가를 중심으로 한 페스티벌들 역시 매년 개최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활동들이 대전 씬이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로 봐도 되는 것일까. 최소한, 현재 대전에서 씬을 일구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긍정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모양새였다. 대전궁동에 위치한 클럽 하울 앳 더 문(Howl At The Moon)의 김태림 대표는 “페스티벌 등의 큰 행사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외연의 확대가 씬이 갖춰졌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대전을 토대로 한 자생적인 움직임이 지난 몇 년 간 많이 사그라들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비티의 보컬 한상주 역시 “청주에는 음악적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다”라고 잘라말했다. 청주 씬을 대표했던 하드코어/펑크 레이블인 MF 크루의 해산 이후, ‘청주 씬’이라고부를 만한 흐름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서울과대전 사이의 멀다면 멀지만, 가깝다면 또 가까운 거리감 역시 대전의 로컬 씬 형성에 긍정적인 요소로는 작용하지 않는 듯하다. 로컬 씬에서의 활동보다는 서울로의 ‘입성’을 노리게 되는 위치라고나 할까.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동시에 아쉬운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씬의 부침은 그것이 어느 씬이든 간에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과정이다. 활발하게 움직이며 주목할 만한 결과물들을 내놓는 시기가있는가 하면, 그 기세가 조금은 주춤하는 시기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지역’이 남아 있는 한, 그러한 흐름이 완전히 끊어져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 믹스페이스를 나서면서, 이 공연장이 오래오래 있으면서 대전 씬을 지켜봐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소’에는 힘이 있는 법이니까. | 정구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