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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OST는 2014년 말, 카세트테이프로 한정 발매될 예정이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여러 면에서 흥미진진했다. 이제까지의 슈퍼히어로와 다른 전개와 설정이 그랬고, 성공하는 블록버스터의 공식 바깥에서 만들어졌음에도 선전했다는 점이 그랬으며, 카세트테이프의 추억(과 호기심)을 동시대 사람에게 던져줬기 때문에 그랬다. 영화에 등장하는 카세트테이프에는 ‘죽이는 믹스테잎(Awesome Mix, Vol. 1)’이란 제목이 ‘검은 사인펜’으로 씌어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 속 소품이 실제로 판매된다는 점이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이미 전세계에 CD, 디지털 음원, LP로 발매됐지만 11월 17일에는 카세트테이프로도 발매되고 연말 미국에서 열리는 ‘블랙 프라이데이 레코드 스토어 데이’에서 한정판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며칠 전에는 세계 최대의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를 카세트테이프와 플레이어로 들을 수 있는 장치가 화제가 됐다. 올 초 유튜브에 업로드된 이 영상은 NFC(Near Field Communication)라는 근거리 무선통신 모듈과 라스베리 파이라는 초소형 컴퓨터를 활용해 만든 것이다. 외양은 1980년대에 흔히 볼 수 있던 카세트 플레이어와 같은데 NFC로 만든 테이프가 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트가 돼 음원을 재생하는 방식이다.


Raspberry Pi + Spotify Media Server

이를 보면서 디지털 시대에 역설적으로 LP가 화제가 되는 최근의 현상과, (거창하고 대담하게도) 카세트테이프의 부활을 다룬 기사들이 떠오른다. 이런 흐름을 ‘디지털 대 아날로그’의 구도로 볼 수도, ‘향수’의 관점에서 살필 수도, 그걸 기반으로 한 트렌드와 산업을 조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이제까지 그런 글을 많이 썼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실제로 여기에 관심을 가지는 세대는 버튼식 음악 재생장치에 대한 ‘기억’이 없는 청년들이다. 요컨대 ‘정체불명의 향수’다. 점점 그 영향력이 확대되는 아날로그 정서가 디지털 환경(의 피로감)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디지털의 반대가 아날로그지만, 실제로 그걸 움직이는 건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다. 경험 없는 것이 그립고, 모르는 것에 애틋하다. 누군지도 모를 당신이 무심코 그리운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노스탤지어인가. 알지 못하는 것,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그러므로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감각은 향수 이전에 호기심일 것이다. 이 호기심은 향수와 닮았고 그 둘은 슬쩍 겹친다. 이제까지의 나는 이 두 개의 감각이 겹쳐지는 그림자를 미처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향수와 호기심에 걸쳐진 것은, 일종의 상실감이 아닐까. 1990년 이후 태어난 청년들과 아이들은 의외로 이전 시대의 것들에 더 많이 노출된다. 인터넷 환경이 오래된 것들을 끊임없이 헤집어 놓기 때문이다. 유튜브와 SNS와 매거진과 방송 프로그램들이 ‘근사한 옛날 것들’을 계속해서 발굴하는 것이 21세기다. 1960년대 영국의 쿨한 스타일, 흑백 사진 속 고궁 앞에서 단단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할)아버지 세대의 포트레이트, 노이즈가 섞인 마이클 잭슨의 라이브, 지나치게 젊고 압도적으로 섹시한 데이비드 보위의 과장된 화장 같은 것들이 유튜브와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발굴되고 또 발굴되어 순환적으로 유통된다. 여기엔 오리지낼리티처럼 보이는 아우라가 존재한다. 그게 실제로 ‘오리지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보인다는 게 중요하다. ‘지금 가장 핫한 게 알고 보니 50년 전 이미 나왔던 거라니’의 정서는 거기서 생긴다. LP라든가 카세트테이프라든가 종이로 만든 독립잡지라든가 필름 카메라 같은 것들이 이 시대에 다시 회자되는 건 바로 이런 소외감(혹은 박탈감)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는 산업의 균열(혹은 확장)은 마케팅이나 비즈니스 모델 같은 문제가 아닌 바야흐로 세대의 문제일 것이다. 산업이 복잡해지면서 뭔가 만드는 사람들은 혼란을 느낀다. 제품보다 권리 그 자체가 수익모델이 되고(21세기는 제조업이 아닌 권리산업의 시대다), 기능과 정서가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중요해지면서 실재하는 물건이 점차 사라지는 위기를 극복할 단서는 바로 지금을 살고 있는 세대의 복잡성과 상실감을 이해하는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음악이든 출판이든 미디어든 이 급변의 충격에서 멸종하지 않으려면 ‘새것(new)’이 아닌 ‘다시(re)’의 관점이 필요할지 모른다. LP를 비롯한 카세트테이프 같은 ‘구시대’의 물건이 환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질문이다. | 차우진 [email protected]

note. [한국일보](2014-10-24)에 실린 글을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