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이먼 없는 가펑클’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전설의 포크 록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에서 가펑클의 비중을 양으로 따지면 이름처럼 절반 이하라는 점에서 그 말은 맞다. 가사와 멜로디를 창작하고, 기타를 연주하고, 대부분의 리드 보컬을 담당한 것은 사이먼(Paul Simon)이다. 파마 머리를 한 키 큰 청년 가펑클은 작은 키의 재주꾼 사이먼의 옆에서 고음의 배킹 보컬(backing vocal)을 해주는 음악적 조력자 정도로만 보였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주옥같은 노래들로 얻은 저작권 관련 수입에서 가펑클이 차지한 것은 사이먼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음악의 배후에 대한 지식을 동원할 때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냥 음악이 연주되는 순간만을 생각해 보자. 아마도 가장 적절한 작품은 1981년의 9월 19일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열렸던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Concert in Central Park]의 비디오일 것이다. 혹시나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설명한다면, 듀오가 해체한 뒤 10년 넘는 시간이 흐른 뒤에 재결합하는 순간의 기록이다.


Simon & Garfunkel – The Concert in Central Park, NEW YORK, 1981 (FULL VER.)

50만명이 모였다는 이 공연의 레퍼토리에는 듀오의 전성기 시절의 곡들 뿐만 아니라 1970년대 폴 사이먼의 솔로 시절의 히트곡들도 들어 있었다. “American Tune”, “Me and Julio Down by the Schoolyard”, “Kodachrome”, “Late in the Evening” 등이다. 단지 가펑클의 목소리가 얹혀졌다는 이유만으로 이 곡들은 전혀 다른 곡으로 재탄생한다. 그리고 몇몇 곡들은 이 라이브 버전이 폴 사이먼의 스튜디오 버전보다 더 좋다. 가펑클이 단지 사이먼이 시키는대로 노래만 부르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징후다.

공연이 절정을 향해 가면서 어떤 곡이 끝날 무렵, 사이먼이 무대 뒤로 뻘쭘하게 모습을 감추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나서 등장하는 피아노 연주는 다름 아닌 “Bridge over troubled Water”다. 1970년의 오리지널 레코딩에는 사이먼의 목소리가 조금 들어가지만, 이 무대에서는 이 부르기 어려운 곡을 가펑클 혼자의 목소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너끈하게 담당한다. 곡이 가수에 최적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가수가 곡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이다(폴 사이먼이 라이브 무대에서 솔로로 이 곡을 부르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노래 망치고 있네”라고 말할 것이다. 창작자가 자기 곡을 망칠 수 있다니!). 이 곡 다음으로 폴 사이먼이 솔로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빌보드 차트 1위에 빛나는 “Fifty Ways to Leave Your Lover”를 가펑클 없이 불렀지만, 이 곡이 끝난 뒤의 청중의 박수소리가 “Bridge over troubled Water”가 끝났을 때의 박수소리와 비할 수는 없다.


Simon & Garfunkel – Bridge Over Troubled Water | Central Park Concert, 1981

한 가지 예가 더 있다. 사이먼 앤 가펑클 시절의 레퍼토리 “For Emily, Wherever I May Find Her”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Greatest Hits](1972)에 수록된 버전으로 더 유명할 것이다. 이 곡의 스튜디오 레코딩이 그들의 세 번째 정규 앨범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1968)에 버젓이 실려 있음에도 말이다. 그 이유는 1968년 이 곡을 런던에서 연주했을 때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던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때 그는 오리지널 레코딩보다 음정을 2도 높여 부른다). 그러니 아트 가펑클을 무대에서 음반과 똑같이 부를 수 있는 가수로만 부르는 것은 오히려 부당하다. 무대에서 그가 부르는 노래가 음반에서 부르는 노래보다 훨씬 감정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Simon & Garfunkel – For Emily, Wherever I May Find Her (3:51) | Greatest Hits (1972)

후문에 의하면 사이먼과 가펑클은 이런저런 의견의 불일치로 수차례 싸웠다고 한다. 사이먼 앤 가펑클이 성공적 공연 이후에도 끝내 온전한 재결합을 하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 역시 가펑클이 단지 수동적인 조력자 이상이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 그는 왜 사이먼 앤 가펑클 시절에 별다른 창의성을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하지만 그가 창작자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사이먼 앤 가펑클 시절 그는 창작자로서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 같지만 조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대위법으로 진행되는 “Scarborough Fair/Canticle”에서 “Canticle”의 작사는 그가 공헌한 것이다. 다른 곡들에서도 그는 보컬 하모니의 편곡에 상당부분 관여했고 그래서 “The Boxer”의 편곡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Bookends”에 등장하는 노인 목소리의 오디오 몽타주도 그의 공헌이다. 그러니 1981년 듀오로 재결합하려던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불화로 인해 끝내 새 앨범을 발표하는 데는 이르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이런 몇 가지 단편적 사실이 음악 창작자로서 그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1989년 82편의 시를 담은 시집 [Still Water]를 발간하기도 했다는 사실에서 보듯 그가 시인이라는 데 토를 달 수는 없다. 이보다 조금 더 알려진 사실이라면 2002년 발표한 그의 솔로 앨범 [Everything Waits to Be Noticed]의 대부분의 곡들이 다른 작곡가와 협업한 그의 ‘자작곡’들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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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라면 빵모자… 82편의 시를 담은 시집 [Still Water] (1989)

이런 이야기들은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들에 홀려서 두 사람의 궤적을 끝까지 따라가려고 했던 사람들 몇몇만 아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단지 그의 문학적·예술적 소양이 남달랐다는 것만을 확인하면 족할 것이다. 가펑클은 몸과 머리에 담긴 풍부한 소양이 가수의 목소리로 나타나는 보기 드문 예다. 사이먼 앤 가펑클 시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의 뛰어난 가창을 모아 놓은 베스트 앨범의 타이틀이 아주 담백하게 [The Singer](2012)인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사족이지만, 그냥 어떤 가수(a singer)가 아니라 바로 그 가수(the singe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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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가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두 개 더 하고 싶다. 그의 가장 최근의 정규 앨범 [Some Enchanted Evening](2007)은 미국인들이 ‘위대한 아메리카 노래책(Great American Songbook)’이라고 부르기 좋아하는 1920-50년대의 팝 음악의 정전(canon)들을 커버(리메이크)했다. 이 음반에서 그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노래를 부르면서 개인사를 정리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는 그저 한 개인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역사처럼 들린다. 그래서 이 음반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그가 젊었던 시절의 ‘흑역사’를 찾아 보게 된다. 사이먼 앤 가펑클로 데뷔하기 전인 고등학생 시절 아티 가르(Artie Garr)라는 이름으로 녹음한 “Beat Love”나 “Dream On”에서 마치 크루너(crooner)같은 그의 노래 말이다. 로이 오비슨(Roy Orbison)같기도 하고, 심지어 냇 킹 콜(Nat King Cole)같기도 한 노래들이다. 아마도 이런 곡들을 이번 서울 공연에서 들으면 재미없어 할 한국 팬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런 팬들 가운데 하나다. 그렇지만 물리적으로 칠순을 넘긴 그가, 목소리의 톤이 이전보다는 굵어진 그가 무슨 곡들을 어떻게 노래할지는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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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펑클 할아버지의 ‘흑역사’를 찾아보세요

바라건대 사이먼 앤 가펑클 시절의 주옥같은 곡들은 물론이고 그것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Down in the Willow Garden”, “I Only Have Eyes For You”, “Bright Eyes” 등의 1970-80년대의 솔로 히트곡도 넣었으면 좋겠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팬일 뿐만 아니라 아트 가펑클의 팬인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만 알아차리더라도 미국 대중음악의 비사(秘史)를 전하는 숨겨진 보석 같은 명곡의 리메이크를 해줬으면 좋겠다. 설사 그 곡을 미리 들어보지 않았더라도 현장에서 처음 듣고도 감동하는 순간을 전달해 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이미 오래 전이지만 1988년 평범하고 ‘뽕끼’ 가득한 팝송 “When A Man Loves a Woman”을 절절하면서도 절제되게 불렀던 것처럼 말이다. 가평클의 이름은 천상의 목소리의 예술, 즉, ‘아트’다. | 신현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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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에서 아트 가펑클은 50년 음악 인생을 노래하며 한 곡 한 곡에 담긴 사연과 추억을 소개할 예정이다. 특히 폴 사이먼, 랜디 뉴먼 등 그와 함께했던 작곡가, 프로듀서들과의 음악 이야기도 들려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트 가펑클은 한때 성대결절로 음악활동 중단 선언도 했었지만, 끊임없는 재활과 노력으로 다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월드투어의 일환으로 2014년 5월 전미투어를 시작해 9월 영국, 12월 일본 공연을 마치고 이제 한국에서의 무대를 준비한다. 2015년 2월 14일(토), 잠실 실내체육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