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세상이다. ‘살다가 살다가’ 낙타 때문에 공포를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정작 공포를 느끼는 것은 낙타가 아니라, 겨우 ‘낙타를 피하는 방법’을 예방법이라고 내놓는 국가에 대한 공포일 게다. 한국어 인사가 서로의 안녕(安寧)을 묻는 것이라는 점이 새삼스럽다. 국가는 우리의 안녕에 관심도 없고, 도움을 줄 능력도 없다.

그럴수록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어야 한다. 밥을 먹고 다니는 것이 요즘처럼 쉽지 않았던 시절에는, 밥은 먹었느냐고 묻는 것이 서로의 안녕을 묻는 것을 대신했다. 요즘 이른바 쿡방(Cook+방송)이 장안의 화제인데, 쿡방의 인기와는 상반되게도 끼니를 제때 챙겨먹는 사람의 수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라고 한다. 식사는 하셨냐고 묻는 광고 멘트가 등장하는 것도 그리 느닷없는 일은 아닌 셈이다. 살림살이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세계 최정상급의 노동 시간과 OECD 최하위급의 최저임금을 자랑하는 국가에서 제때 ‘아침 점심 밥 좀 챙겨 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그저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같이 섭취하자는 말이 아니듯,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저 생존을 위한 방편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정서적인 행동이다. 그런 점에서 “꺼내 먹어요”의 가사는 Zion.T가 탁월한 스토리텔러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양화대교”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소소해서 더 다정한 위로가 되는 가사이다.

한때 ‘힐링’이라는 단어가 대유행을 하면서,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위압적인 태도로 답을 제시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책과 강연이 얼마나 큰 경제적 이익을 창출해냈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 모든 것들에 위화감만 느꼈을 뿐이다. “꺼내 먹어요”에서 Zion.T는 섣불리 ‘힐링’을 들먹이지도, 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집에 가고 싶죠?/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 거야’라고 노래한다. 그 가사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렇다고 대답해버렸다.

그래, 우리 ‘피곤해도 아침 점심 밥 좀 챙겨 먹’기로 하자. 그리고 주위의 사랑하는 이들이 밥은 먹었는지 묻기로 하자. 물론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아침 사과처럼 꺼내 먹’는 것도 잊지 말기로 하자. | 주민혁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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