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5년 10월 22일 목요일
장소: 홍대 한잔의 룰루랄라
질문, 정리: 정구원 [email protected]

안개와도 같은 목소리. 작년 이맘때쯤 김사월X김해원의 EP를 통해서 김사월의 노래를 처음으로 들은 뒤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이었다. 1년 정도가 지난 지금, 그녀는 희뿌연 모호함이 감도는 데뷔앨범 [수잔]을 지닌 채로 돌아왔다. 다의적이면서도 소박한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 균형 잡힌 사운드가 공존하는 [수잔]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청자의 가슴 속으로 스며든다.

앨범 발매를 맞아 [수잔] 창작의 주체이자 공동 프로듀서인 김사월과 김해원을 만나보았다. 수줍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자신의 음악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밝히는 김사월과 진중한 목소리로 음악의 작은 요소까지 세심하게 설명하는 김해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잔]의 매력이 단단하고 구체적인 제작 과정에서 비롯되었음을 새삼 느꼈다. 음악적 레퍼런스에 대한 이야기부터 “젊은 여자”에 얽힌 에피소드까지, 직접 읽어보도록 하자.

* 본 인터뷰는 네이버 뮤직 스페셜에 실린 인터뷰를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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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원: 반갑습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사월: 안녕하세요. 정규앨범 [수잔]을 얼마 전에 발매한, 김사월X김해원의 김사월이라고 합니다.
김해원: 김해원입니다. 이번에 김사월 솔로 1집 [수잔]에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고요. 김사월X김해원의 듀오로, 그리고 영화음악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정구원: 김사월X김해원 듀오로 작업하셨던 [비밀 EP]를 통해 지난 2월 2015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 최우수 포크 앨범 부문을 수상하는 등 많은 찬사를 받으셨습니다.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있으셨는지 근황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김사월: 한국대중음악상 수상이 2월달이었었고, 그 이후에 저희 음악에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신 것 같아요. 크고 작은 공연들이 많이 있었고, 그런 공연들에 열심히 참여해 왔습니다.
김해원: 제 경우에는 3월에 제가 작업한 영화 <소셜포비아> OST가 발매되었고, 나팔꽃이라는 듀엣의 [진미 (眞味) EP] 프로듀싱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김사월 앨범을 7월 이후, 본격적으로는 8월 정도부터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계속 김사월X김해원 공연이 있었고요.
김사월: 김사월X김해원의 음반이 나온 이후에 주변 친구들이나 동료들이 잘 들었다는 얘기를 해 주시거나 공연이 많이 잡히는 등 체감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런데 여러 비평 매체에서 저희를 언급해 주시고 한국대중음악상도 수상하고, 이런 것들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그러한 반응들을 통해서 올해 활동을 하는 데 되게 많은 힘을 얻었어요. 기획사나 매니지먼트 등을 통해서 홍보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저희한테는 없었으니까요. 서울재즈페스티벌, 사운드홀릭 페스티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등의 대형 무대 같은 데 서게 된 것도 그런 반응들을 통해서 가능하게 된 거라고 느꼈고요. 그런 점에 되게 감사해하면서 올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정구원: [비밀 EP]가 분기점이 되셨던 거군요.
김사월: 그렇죠. 약간 다른 삶을 살게 된 것 같습니다. (웃음) ‘음악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됐으니까요.

정구원: 솔로 활동으로는 이번이 첫 작업이신데, 사실 두 분 모두 솔로로 활동하셨던 건 듀오로 활동하셨던 것보다 더 이전이시잖아요. 그래서 어찌 보면 순서가 뒤바뀐 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 어떤 느낌이신지가 궁금합니다.
김사월: 저희가 사실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제가 해원 씨께 제 솔로 앨범 프로듀싱을 부탁하고 싶어서 만나게 된 것이거든요. 그러다가 김사월X김해원 싱글을 내고, EP가 나오고, 이런 식으로 듀오로서 활동을 하게 된 상황인데, 그렇게 활동을 하고 나서 다시 제 앨범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작게든 크게든 제가 듀오로 활동을 하면서 경험이 쌓였고, 더 잘하고 싶은 부분과 더 잘하게 된 부분들이 생겨났다고 느껴졌어요.
김해원: 저도 비슷한 상황인데, 구원 씨께서 말씀드린 대로 어떻게 보면 거꾸로 된 거잖아요. 근데 거꾸로 된 과정에서 얻는 게 되게 많았던 것 같아요.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재밌게도 [수잔]이 [비밀 EP]보다 더 큰 앨범이라고 느껴져요. 왜냐면 사월 씨가 개인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했던 기간이 더 길었고, 그 때부터 쌓여 왔던 노래들을 어떻게 보면 ‘정리’를 한 번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음악적으로 가지고 있는 스펙트럼은 어떻게 보면 더 넓기 때문에. 그래서 더 큰 앨범을 준비하는 느낌이었어요. 만약 [수잔]이 [비밀 EP]보다 더 먼저 나왔다면 지금 같은 앨범이 나오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비밀 EP]에서 함께 많은 작업을 경험했고, 서로에 대해서 깊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좋은 면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김사월: [비밀 EP]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가지고 있는 자원 안’이라는 좁은 범위 내에서 많은 것을 시도했던 앨범이라서 저희가 성취할 수 있었던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보컬도 그렇고, 표현하는 방식도 그렇고. 그런 성취를 경험하고 나서 개인적인 이야기로 돌아가니까 오히려 잘 할 수 있던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앨범 컨셉을 만들거나, 보컬에 접근하는 등의 방식에서 그 전보다 더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해원: [비밀 EP] 안에서 ‘에센스’를 찾는 프로세스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티스트가 솔로 작업을 처음 만들게 되면 아무래도 굉장히 힘을 많이 분산시키거나, 아니면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저희는 미리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더 효율적인 방식을 택할 수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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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원: [수잔]의 제작 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어떤 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나요?
김사월: 제가 2012년도부터 음악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때 해원 씨도 아마 활동은 하고 계셨을 텐데, 이전의 많은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그냥 지나가면서 아는 사람 정도였고… [수잔]은 2012년 당시부터 김사월X김해원 활동 때까지 썼던 곡들을 실은 앨범입니다. 송라이팅은 과거에 이루어졌지만 구체적인 앨범 컨셉은 김사월X김해원 활동하면서 잡았고요. 듀오 활동과 솔로 앨범 작업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듀오로 활동하면서 ‘김사월 솔로 앨범에 써도 되겠다’ 라고 느꼈던 레퍼런스들도 차곡차곡 모아 두었고… 그런 식으로 해서 해원 씨나 저가 작업이 가능하다고 느꼈던 시기가 올해 8월 즈음이에요. 그리고 내면적으로 ‘너무 겨울에는 앨범을 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스케줄을 타이트하게 잡고 10월에 앨범이 나오게 됐죠,.

정구원: 그러면 [수잔]에 실려 있던 곡들은, 송라이팅 자체는 김사월X김해원 이전에도 존재했던 곡들이라고 보면 될까요?
김사월: 네. 구조를 말씀드리자면 앨범의 첫 곡 “수잔”과 마지막 곡 “머리맡”이 있는데요, 그 두 곡은 앨범의 처음과 끝을 엮기 위해서 김사월X김해원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만들었던 곡이에요.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곡들이 2012년, 혹은 그 이전으로부터 시작해서 김사월X김해원 활동 전까지 썼던 제 과거 곡들이에요. “수잔”이라는 사람이 겪는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머리맡”으로 결말이 지어지는 구조죠.
김해원: 2번 트랙부터 10번 트랙까지는 과거에 이미 만들어져 있던 송라이팅이 많았어요. 곡이 만들어진 시기도 매우 다양했고.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올해는 꼭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음악가의 생각이나 상태라는 것이 계속 변화하잖아요. 그런데 음악가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이, 꼭 정해져 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나중에’ 이야기하는 것 또한 좋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정구원: 과거에 경험했던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거죠.
김사월: 네. 최근에 솔로 공연에서 곡을 연주할 때도 그런 지점들을 좀 느끼곤 했었거든요. 듣는 분들은 다 처음 들으시는 곡이겠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그 전’의 기록이다 보니까 지금의 저로서는 부르기 애매한 지점이 자꾸 생기더라구요. 근데 그런 노래들을 들려주고 싶은데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그걸 부르기 어렵다는 건 너무 아쉽게 느껴졌어요.
김해원: ‘느끼는 시간’이라는 게 되게 상대적인 것 같아요. 제가 바라봤을 때는, 예를 들어 “존”이라는 노래를 썼을 때의 김사월 씨와 “수잔”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김사월 씨, 그리고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사월 씨, 그 셋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그런데 그 노래를 직접 쓰고, 부르는 사람에게는 그 시점과 경험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특히 사월 씨한테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많은 변화의 한가운데를 겪고 있는 사람 같기도 했어요. 어떤 순간이나 곡에 대한 감정적인 집중의 정도, 또는 ‘몰입’이 굉장히 강한 거죠. 그 시기를 굉장히 분절적으로, 세밀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구원: “접속”, “꿈꿀 수 있다면 어디라도”, “젋은여자”, “콧바람” 등 데모 음원이나 라이브 무대 등을 통해서 과거에 들을 수 있었던 곡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고 달라진 부분도 있는데, 이러한 트랙들을 앨범 단위로 레코딩하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가장 중시하셨나요?
김사월: 곡을 만드는 프로세스를 말씀드리자면… 우선 처음으로 곡을 만들면 사운드클라우드에 자주 올리곤 했어요. 뭔가 정식으로 발표한다는 느낌으로라기보단, 곡이 떠올랐을 때 생각났던 아이디어를 그냥 저장하기 위해서 곡을 만들 때마다 순차적으로 올려놓았던 거에요. 로직으로 만들기도 하고, 급작스럽게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아이폰으로 녹음하기도 하고. 지금 앨범에 들어가 있는 곡들도 사실은 다 사운드클라우드에 있는 곡들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앨범에 들어갈 곡으로 다시 만들어낼 때, 그 곡들을 어떤 사운드로 하고 싶은지, 어떤 느낌으로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레퍼런스를 같이 공유했죠.
김해원: 저는 제가 프로듀서로서 부여받은 자료가 두 가지라고 느꼈어요. 하나는 앨범이 어떤 사운드였으면 좋겠는지, 어떤 흐름이었으면 좋겠는지, 개개의 곡들은 어떤 느낌이었으면 좋겠는지, 그에 대한 레퍼런스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정리했었고 그 자료를 저랑 공유했었어요. 그것이 1차적인 자료였고, 또 하나는 사월 씨가 사운드클라우드에 대해서 자기가 기록을 하거나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했었는데, 그 데모 상태, 혹은 가이드 상태의 노래 역시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자료였어요. 일종의 ‘출발점’이라고나 할까요? 전자는 구상의 지점, 후자는 처음 곡이 쓰여졌을 때의 느낌, 이 두 개의 자료가 작업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했죠.

정구원: 앨범 제목이자 첫 번째 트랙인 “수잔”은 누구인가요? ‘수잔’이 겪는 이야기, 라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혹은 어떤 화자를 상정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사월: 일종의 ‘페르소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무엇이라고 규정하기 어렵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런 사람, 혹은 캐릭터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더 어렵고, 드러낼수록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 빠지게 되는 사람. 그렇게 되는 이유는 수잔 자신의 본연에 많은 것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텅 빈 삶이었지’라는 가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말이죠.
김해원: 사월 씨가 밀접한 감정 상태로 썼던 곡들이 하나의 스토리를 가지고 만들어져 있는 셈인데, 그래서 ‘수잔이 누구냐’라고 하면 김사월일 수도 있고, 아니면 컨셉화된 캐릭터라고 볼 수도 있는 거죠. 중의적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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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원: “김사월X김해원”으로서의 작업과 “김사월”로서의 작업은 분명 다르고, 실제로도 앨범에서 그러한 차이가 확실히 드러난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해원 씨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만큼 어느 정도는 듀오 활동의 연장선상 안에 있는 것도 사실이죠. 듀오 작업에서 어떤 지점을 그대로 가져가고, 또 어떤 부분에서 차이를 드러내고자 했는지 알려주세요.
김사월: 차이점은 우선… 서로의 자작곡에서 같이 부를 수 있는 곡이 있고 그렇지 못한 곡이 있다고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는데요. [수잔]에 들어간 곡들은 같이 부를 수 있는 장면이 있는 곡은 아니었어요. 어떤 개인의 기록이니까. 그런 점이 송라이팅에서의 차이도 불러왔다고 저는 느꼈어요.
가져온 부분에 대해서는… 김사월X김해원 앨범을 들어보시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먼저 들리는’ 목소리가 제 목소리에요. 그렇게 제 목소리를 먼저 들리게 만들기 위해서 조성된 세팅이 있는데, 그게 제 목소리에 굉장히 잘 맞는 세팅이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앨범에서도 많이 참고했어요. 예를 들면 목소리의 질감을 내는 데 필요한 음량이라든가 앰프 톤이라든가, 김사월X김해원 작업을 하면서 제 목소리에 잘 맞는 세팅을 체득화시켜 놓았다고 해야 할까요. 다른 세팅을 찾아 본 적도 있지만 김사월X김해원 때만큼 잘 어울리는 것이 많지 않더라구요.
김해원: 결국 이 앨범에 들어 있는 노래들은 ‘김사월에 의한, 김사월을 위한’ 노래라고 느껴져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음악적 요소들이 김사월이라는 솔로 아티스트를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운드적인 요소, 곡의 전개, 작업의 방식, 판단의 근거 같은 모든 것들이.

정구원: 사월 씨의 노랫말을 보면 따뜻한 부분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서늘하고 쓸쓸한 부분도 존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온도차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이 김사월, 그리고 김사월X김해원의 음악을 많은 사람들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은데요. 가사를 쓰는 데 있어서 어떤 부분에서 영향을 받으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김사월: 영향을 받는 데에는 다양한 매체가 있을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노랫말을 쓰시는 모든 분들이라면. 우선 일차적으로 문학적인 것들에 영향을 많이 받겠죠. 제가 좋아하는 취향의 가사라든가 소설, 시. 문자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것들에도 영향을 받고… 그리고 ‘현대 서울에 살고 있는 여성’이 가지는 일반적인 감정들이 또 있을 것이고요. 그런 많은 요소들이 섞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솔직하게 쓰려고 했던 가사라고 생각해요 (웃음)
김해원: 그런 ‘결’들이 입체적일 수 있는 이유는 사월 씨가 순간순간에 집중함으로써 그 때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싶어요. 아까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앨범 안에 ‘연대기’가 담겨 있다고나 할까요? 단 한 순간에 써내려간 가사가 아니라, 여러 순간들의 감정이 담겨 있는 연대기가. 뭔가 너무 거창한 얘기일지도 모르겠는데,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사월 씨가 그때그때의 삶에 충실했던 것 같다는 이야기에요. (웃음)
김사월: (웃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제가 그런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 왔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제 가사에는! 저의 연대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기가 되게 어려운 지점이 있죠.
김해원: 그렇기 때문에 수잔이 존재하는 거고요. (웃음)
김사월: 네, 그래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이 감정들이 다 오롯이 내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지점들이 있으니까요 (웃음)

정구원: 가사들이 단순히 가사 자체로만 매력있는 것뿐만 아니라 사월 씨의 목소리에 의해서 비로소 온전한 힘을 가지게 된다고 봅니다. 부연설명을 드리자면, 저는 사월 씨의 가사가 그렇게 어려운 표현이 있거나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게 아니잖아요. 일상어에 가까운 문장이나 단어들로 가사를 구성하는데, 그것이 그냥 그대로 흘러가버리는 게 아니라 목소리에 의해 커다란 힘을 가지게 된다고 느꼈거든요. 노랫말을 목소리로 ‘옮기는’ 데 있어서 어떤 생각, 혹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아니면 테크닉적인 측면에서 설명해 주셔도 되고요.
김사월: 저는 가사를 쓸 때 감정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라임도 신경쓰려고 하고, 단어들을 읽었을 때 더 예쁜 느낌이 나는 단어들이 있는지, 아니면 조금 재미있는 ‘오해’가 있는 단어가 있는지를 찾아봐요. 그런 개인적인 선별을 통해서 만든 단어들이 가사 곳곳에 존재하죠. 그리고 그것을 부를 때 목구멍과 혀가 닿는 소리나 입 앞쪽에서 나는 소리를 신경쓰는데, 이런 소리들이 제가 독특한 발음을 낼 수 있는 지점이에요. 그래서 그런 것을 일부러 주의해서 부르려 하기도 해요. 기본적으로 저는 성량이나 그런 게 충분한 사람은 아니라서 좋은 톤을 가질 수 있는 목소리가 매우 얇아요. 호흡을 잘 하려고 노력하긴 하지만 어쨌든 목소리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죠. 그 ‘한정된 자원’ 안에서 좋은 노래를 하려면 되게 여러 가지 힘들을 써야 하는 것 같아요. 소리를 깊게 내야 할 때도 있고, 밝게 내야 할 때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가사에서도 적용이 되는 것 같고요.
김해원: 이런 이야기가 어떤 테크니컬한 부분을 얘기한 거잖아요. 근데 제가 보기엔 사월 씨가 ‘기능적으로’ 노래를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기술적인 방법론이 목소리에 배어 있는 보컬은 아니라는 거죠. 사월 씨의 목소리는 기능적이라기보다 자신의 결이나 감정에 몰입해서 가지고 있는 본연의 톤을 표현하는 쪽에 가깝다고 보고 있거든요. 기술적으로 완벽했느냐가 기준이 되는 게 아니라 곡의 감정을 잘 표현했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기준이 되는 보컬이죠.
사실 보컬 녹음이 많이 어려웠어요 (웃음). 보컬 녹음을 잘 못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녹음을 할 때 스무스하고 편안하게 갔으면 다른 결과물이 나왔을 것 같거든요. 예를 들자면, 누군가의 곡에 참여를 해야 한다고 해서 녹음실에 가서 테이크를 넣었는데 ‘아,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라고 판단하고 녹음을 끝낼 수 있단 말이죠. 저희끼리는 그런 게 없었어요. ‘이건 정말 좋다’라는 판단을 부르면서 바로 내리거나, 아니면 제가 ‘아 이건 잘 불렀네’라고 바로 얘기해 주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부분들이 결과적으로는 이 앨범에 담긴 김사월 보컬에서의 정체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들으시는 분들에게도 그것이 느껴질 거라고 보고요.

정구원: 원래 곡 질문은 안 드리려고 했었는데, “젊은 여자”라는 곡에 대해서는 꼭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저는 “젊은 여자”가 앨범 내에서 가장 ‘구체’에 닿아 있는 트랙이라고 느꼈고, ‘서울에 살고 있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트랙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곡을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김사월: 곡 자체를 쓴 거는 정말 예전인 것 같아요. 11~12년도 정도? 그 때는 되게 직관적으로 쓴 노래였어요. 처음 기타를 잡으면서 노래를 쓰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좀 이상하고 재밌는 것들이 나오는 시기도 있거든요. 노래를 만드는 데 익숙해져서 ‘이런 풍을 만들고 싶어’ 하면서 만드는 게 아니라 나오는 대로 뱉는 거 있잖아요. (웃음) 그런 부분이 직관적인데, 에센셜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어요. 이 앨범에 그런 곡들이 굉장히 많고 (거의 대부분이라고 보시면 되고) 이 노래는 그 중에서도 정말 그런 노래에요. 너무 직관적이고 순간의 감정에 너무 욱해서 썼던… (웃음) 원래 가사도 진짜 더 괴팍했었고요.
김해원: 데모를 들었을 때, 일단 전 노래에 굉장히 힘이 있다고 느꼈어요. 근데 그 에너지는 제가 생각했을 땐 흔히 볼 수 있는 에너지가 아니거든요. 본인이 느끼기엔 부끄러운 내용일지도 모르겠으나 (김사월 웃음) 제가 생각했을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게 의식적으로 쓴 가사가 아니라는 걸 보는 순간에 느꼈어요. 그런데 이런 날것의 느낌이 존재하기 쉽지 않고, 노랫말과 멜로디, 리듬 등을 음악으로 들었을 때 너무 매력적이고 힘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다’ 같은 생각을 한 거라기보다는 너무 노래 자체의 힘이 강하게 느껴졌던 거죠. 저는 “젊은 여자”의 내용이 되게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봐요. 청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힘을 지닌 노래죠.
그리고 전체 앨범의 구성 면에서 봤을 때에도 이런 트랙이 있어야 될 것 같았어요. 약간 대담한 느낌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떻게 봤을 때 굉장히 유아적인 느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런 부분이 이 앨범에 있다는 게 좋은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사월: 그 당시에는 제가 정말 젊은 여자였어요. 그런데 곡을 쓴 이후에는 스스로 “젊은 여자”에서 기록했던 이런 감정을 더 이상 느끼지 않는다고, 잘못된 감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싶어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공연에서 부르지 않았어요. 그런데 해원 씨는 이 노래에 훅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이 노래는 꼭 넣었으면 좋겠다고 몇 번씩 강조를 하시더라구요.
앨범 컨셉을 정하면서 “젊은 여자”가 트랙리스트에 포함되었는데, 앞서 말씀드렸던 감정들로 인해서 보컬 녹음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트랙 중에서 가장 날것에 가까운 스타일인데 진실되게 부르기가 힘들었죠. 그 때, 내가 아직도 “젊은 여자”에서 말하는 감정들을 겪고 있고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이 노래를 부르기 어려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그것이 지금의 내 상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 그걸 부끄러워한다는 것도 알았고요. 그렇다면 어쩌면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그 때의 생각들을 편하게 기록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생겨났어요. 그래서 녹음을 잘 진행할 수 있었고요.
앨범이 “머리맡”까지 진행되며 수잔이 다른 사람이 되어 앨범을 빠져나간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저의 바램이고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요. 그렇지만 [수잔]에서 예전의 괴로움을 제가 아닌 수잔이라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제 자신을 위로하는 작업을 몰래 해 왔다고 생각해요. “젊은 여자” 같은 트랙도 그런 작업의 일환이고요. 과거의 감정들을 아직까지도 겪고 있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제가 이러한 기록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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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원: [수잔]은 [비밀 EP] 때에 비하면 보다 조용하고 미니멀한 사운드 운용법을 보여줍니다. 솔로 작업이니만큼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속”과 “머리맡” 등의 곡에서 들리는 현악 세션처럼 여러 가지 악기의 활용이 돋보입니다. 사운드를 어떤 식으로 구성하셨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김사월: 저희가 사운드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점은, 일단 제 목소리가 가장 잘 들리고, 그 다음으로 곡을 쓸 때 사용했던 기타 소리가 잘 들리는 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두 소리를 중심으로 다른 요소들이 감싸 들어오는 것을 상상했던 것 같아요.
김해원: 사월 씨가 연주하는 “접속”을 맨 처음 들었을 때 현으로 이루어진 풍경이 사악 하고 펼쳐지더라고요. 통기타로 공연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죠. 그래서 사월 씨의 음악에서 감정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현악기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보통 대중가요나 영화음악을 들어 보면 현악기는 감정을 극대화하거나 서정성을 확보하는 데 많이 사용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저희는 현악기를 그렇게 사용하고 싶진 않았어요. 감정을 ‘강화’하는 데 현악을 쓰지는 말자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접속”의 경우에도 편곡하는 데 있어서 현악 사운드가 더 많이 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많이 절제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정구원: 작업을 하면서 참고가 되었던, 레퍼런스 역할을 한 음악을 꼽아 주실 수 있으신가요?
김사월: 저희가 작업을 하면서 어떤 레퍼런스를 공유할 때는 앨범 전체에 대한 레퍼런스, 사운드적으로 시도하고 싶은 레퍼런스, 이 당시에는 곡을 썼을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는지에 대한 레퍼런스 등으로 세부적으로 나눠서 공유하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전반적인 영역에 전부 걸쳐 있는 레퍼런스는 70, 80년대 여자 솔로 싱어송라이터였는데요,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coise Hardy)라든가 니코(Nico), 린다 퍼핵스(Linda Perhacs) 등의 아티스트가 있죠. 이들은 저희 두 명이 무척 좋아하는 뮤지션들이기도 하고요. 레퍼런스를 이런 식으로 디테일하게 나눴던 이유는 저와 해원 씨가 앨범의 지향점을 의논하는 과정에서 ‘언어가 아닌’ 방식 중 가장 구체적으로 서로간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다행히 저희 두 명의 취향이 비슷한 편이라 서로에게 거론되었던 많은 레퍼런스들에 대해서 동의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앨범 편곡을 시작하면서도 이러한 레퍼런스들이 처음의 방향을 잃지 않도록 좋은 참고점이 되어 주고, 안심하면서 작업을 진행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김해원: 그런 레퍼런스들을 통해 여러 가지 악기의 활용 같은 부분에 대해서 참고했고요.
김사월: 오히려 걱정을 했던 건 이 앨범에 베이스나 저음 쪽 리듬악기가 거의 안 들어가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렇게 되리라고 어렴풋이 예상은 했었던 게, 데모를 만들고 편곡을 위해서 가녹음을 했을 때 저음 쪽 악기가 제 목소리랑 안 맞는 경우가 많이 있더라고요. 처음 앨범을 만들 때부터 저음 쪽은 많이 안 들어갈 가능성이 높겠다, 그리고 현악 같은 경우 이 부분에는 꼭 들어가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좁혀 놓았던 부분은 있다고 생각해요.
김해원: 앨범 작업 초반의 구상 단계에서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앨범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사운드도 지금보다 훨씬 크거나, 아니면 리듬악기가 막 들어가 있거나. 이런 식의 구상까지도 했었는데, 실질적으로 사운드를 구성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사월 씨의 목소리를 실제로 중심축에 세워놓고서 작업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그렇게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소리를 구성해서 편곡을 실질적으로 확정해 나가는 단계에서는 ‘이 앨범은 결국에는 포크 앨범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고요.
김사월: 앞서 해원 씨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처음 데모 때에 형성했던 레인지 이상의 것을 더 표현하기에는 곡의 이미지 등 여러 부분들이 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런 편곡으로 서서히 자리잡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사월  – “머리맡”

 

정구원: 정규 앨범 이외에도 “레코드폐허”에서 판매했던 에코백 음반, EP의 작업기록인 ‘비밀 노트’ 등 다양한 포맷의 작업물들을 선보이고 계신데, 앞으로도 이런 방식의 ‘규격 외’ 작업물들을 만드실 계획이 있으신지 알 수 있을까요?
김사월: 듀오 작업과 솔로 작업을 나눠서 설명드라자면, 일단 ‘김사월X김해원’으로서는 작은 단위의 굿즈나 다운로드 코드가 포함된 CD 포맷 이외의 작업물을 계속 만들어보고 싶어요. 에코백이나 비밀 노트를 만들면서 예상치 못한 곳에 있는 팬들을 만나게 된 경우도 있었거든요. CD 포맷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지점들을 다른 방식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어요. 그리고 꼭 그런 부분이 아니더라도 중간중간마다 저희가 보여드리고 싶은 음악을 자유롭게 선보이고 싶어요. 어떤 기획사 같은 데 속해 있는 게 아니라 저희가 자체적으로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으니까요. ‘김사월’로서는 아직 생각은 안 해 봤는데, 비슷하지 않을까요? (웃음) 그치만 김사월은 아마 앨범 단위의 작업을 위주로 하는 뮤지션이 될 것 같습니다. 자잘한 것을 계속 만드는 것은 김사월X김해원이 더 맞다고 봐요.
김해원: 내용과 형식은 서로 뒤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여드리는 방식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야기에 부합하는 형식을 계속 고민하고 탐구해야죠. 새로운 이야기를 할 거라면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나가야 하니까요.

정구원: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사월: 제비다방에서 11월 말에 단독 공연이 잡혀 있습니다. 솔로 활동은 혼자서 활발하게 공연을 다닌다기보단 바이올린, 첼로 등의 현악 소편성, 건반 소편성, 이런 식으로 소편성 유닛을 만들어 나가면서 차분하게 공연을 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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