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v]의 이번 기획은 ‘지역의 음악 씬’이다. 보통 한국의 ‘인디 록’은 ‘홍대 앞’이라는 공간과 연관되어 사용되지만, 이미 다른 지역에서도 다양한 음악적 실천들이 수시로 벌어졌고, 또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인디 록이란 홍대 안에 있는 게 아니라 홍대 앞으로 집중된 결과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서울 이외의 도시와 그 음악적 경험과 실천 들을 포괄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이번에는 1980-1990년대에 ‘메탈의 도시’라고 불렸던 인천과 부산을 비롯해, 대전과 제주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다. 이외의 다른 지역들도 차차 정리하도록 애쓸 것이니, 지역 음악 씬에 대한 글을 쓰고 싶거나 정보를 제공할 분들은 연락을 부탁드린다. 이를 통해 지역 씬과 음악 팬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차우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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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앞 클럽 인터플레이

 

1980년대 헤비메탈의 메카, 부산

부산의 인디 씬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이 시기에 ‘인디’라는 말은 없었지만, 이후 인디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80년대의 부산은 배재범, 임덕규 등으로 대표되는 속주 기타리스트들과 이들이 속했던 밴드인 디오니소스, 스트레인저, 아마게돈, 프라즈마 등으로 인해 명실 공히 한국 헤비메탈 씬의 메카로 인정받았다. 이들은 음악을 대단히 학구적이며 진지한 자세로 대했으며 특히 기본기와 테크닉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1990년대 중반 부산지역에서 활동했던 인디 1세대 밴드들도 대개 이러한 전통을 어느 정도 체화하고 있었다. 이는 90년대 중반의 부산 지역 밴드들이 그 결성과 활동 모습에서 타 지역 밴드들과 차이를 갖는 부분이기도 하다.

부산 밴드 스트레인저

80년대 당시 밴드들이 현재와 비교해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그들이 특별히 서울로 진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앨범은 대부분 서울에 위치한 메이저 레이블인 서라벌레코드를 통해 발매되었지만 방송 홍보보다 현장 공연을 중시하는 록 밴드의 특성상 굳이 서울로 올라가서 활동해야 할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이었다. 또한 주류 대중음악과 구분되는 그들만의 시장,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씬과 팬들이 당시만 해도 확연히 존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헤비메틀의 쇠퇴와 1990년대 초의 새로운 흐름

인천과 함께 한국 헤비메틀의 양대 축으로 군림하던 부산 지역의 록 씬은, 1992년이 되면서 서서히 와해된다. 그 결정적 요인으로는 우선 헤비메틀의 쇠퇴라는 세계적인 음악 트렌드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80년대 말 헤비메틀 씬이 쇠퇴하면서 90년대 초중반 부산 지역 록 씬은 주로 부산대학교 앞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나타난 부산 지역 밴드들은 이전과는 달리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모두 얼터너티브나 네오펑크, 훵크, 레게 등 90년대 록 씬에 큰 영향을 끼친 미국 록 씬의 새로운 흐름들에 깊은 영향을 받으면서도 80년대 말의 부산 헤비메틀 씬의 전통에도 어느 정도 따르는 경향을 보이며 각자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그들의 활동은 선배 뮤지션들에게는 진지함이 결여된 음악으로 비춰졌으나 후배 뮤지션들에게는 테크닉보다 정서를 우선하는 감각적인 음악으로 주목받았다.

1995~2000년, 부산 인디 씬의 전성기

부산에서 활동하던 밴드 중 몇몇은 홍대 앞에서 불기 시작한 인디에 대한 매스컴이나 사회적 관심의 영향을 받아 부산을 벗어나 서울이나 다른 지방에서의 공연도 시작하게 된다. 이때 타 지역에서도 그 인지도가 컸던 부산 출신의 대표적 밴드로는 레이니 선(rainy sun), 에브리 싱글 데이(every single day), 앤(Ann), 피아(pia), 헤디마마(Heady mama), 타부(Taboo)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수차례의 서울 공연을 통해 인디 록 씬 내에서조차 존재하는 지역적 차별의 극복과 밴드간의 우의를 다지기 위해 ‘갈매기 공화국’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함께 공연을 기획하거나 팬진을 발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은 여전히 하나의 집단적 일체감을 이끌어내기에는 그 공동체적 기반이나 공간, 정서적 분위기에 있어 많은 한계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 중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거나 인지도를 갖게 된 밴드들의 대부분은 인디 씬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과 홍대 앞에 조성된 공동체적 조류에 이끌려 아예 부산을 떠나 서울로 갔으며 따라서 열악한 부산 지역의 인디씬은 더욱 열악해지는 악순환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밴드 쥬드 

부산 인디 씬의 쇠퇴

1998년과 1999년을 기점으로 이렇듯 부산 지역의 많은 밴드들이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서울로 진출했고 이런 이유로 서울의 홍대 씬을 중심으로 한 인디 씬이 가장 활기를 띠며 수면 위로 부상하던 시절, 역설적으로 부산은 이미 서서히 내리막길로 접어들기 시작하며 인디 문화에 관해 쏟아지는 각종 매스컴의 관심과는 상관없는 더욱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98년에서 2000년까지의 약 2년 정도의 시기에 부산 지역 인디 밴드들은 이미 전업으로서의 음악과 취미로서의 음악,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갈림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는 한편으론, 물적 토대를 상실한 문화적 독립이 얼마나 치열한 고민을 요구하는가를 목격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현재 부산 지역은 클럽이나 밴드, 레이블 등 그 어떤 인프라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있으며 생산자와 수용자를 연결하는 매개 영역도 거의 전무하다 할 수 있다. 소수의 스튜디오가 있긴 하지만 재정적으로 열악한 데다 음반을 제작, 기획할 수 있는 회사도 거의 전무하며, 서울에서처럼 클럽 등지에서의 자유로운 음반의 유통이나 팬진(fan-zine)의 발행 등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한편 지역 사회의 문화적 기반 확충을 위한 행정기관의 정책적 지원이나 문화적 관심도 보잘 것 없어 부산 지역에서의 다양한 문화적 실천을 더욱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구나 서울에서의 인디 담론과는 달리 지역적 차원에서의 인디는, 취약한 기반에 보수적인 사회구성원들의 정서적 분위기 등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다른 영역들과의 유기적 생성이 차단되고, 그저 산발적이고 부분적인 몸짓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부산에서 록 페스티벌을 많이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역시 무대에 오르는 기회는 서울 밴드들에게 더 많이 돌아간다”는 지적 역시 이러한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 차원에서의 사회구성원들이 체화하고 있는 이러한 이중적 억압구조는 비단 인디 문화에 국한된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부산에도 오랜 시간, 꿋꿋하게 자신들만의 음악세계를 지켜오며 활동 중인 실력 있는 밴드들이 여전히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히 그들 자신의 힘과 신념으로서 가능했던 일일 뿐이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인디씬에 대해 얘기하자면… 부산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 장현정_밴드 앤(보컬), 부산 노리단 대표, 지역문화지 [안녕광안리]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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