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WAVE] 바로 지금의 젊은 흐름, 실리카겔의 김한주

새 코너 “영 웨이브(YOUNG WAVE)”는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음악가를 소개하는 기획 인터뷰다. 앞으로의 흐름이 될, 지금부터 주목할 만한 음악가를 소개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밴드 실리카겔에서 보컬이자 신디사이저, 프로그래밍을 맡은 ‘김한주’다. | 글, 사진: 두은정 [email protected]  진행: 정은정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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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카겔’은 20대 초중반의 멤버들로 구성된 밴드다. 2015년 여름에 첫 EP를 발매하고 레이블에 소속되지 않은 채 오로지 본인들의 힘으로 굳건하고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독특한 패키지의 앨범을 제작한 패기만큼 에너지 넘치는 연주를 선보인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단단한 연주력은 물론이고, 라이브 브이제잉(VJing)을 통해 공연마다 색깔 있는 무대를 연출한다.

김한주는 현재 실리카겔을 비롯해서 3호선 버터플라이와 솔루션스, 이채언루트에서 객원 키보디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방준석, 백현진 듀오 ‘방백’의 새 앨범에도 참여하며 음악가로서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중이다. 소년 같은 얼굴에서 툭 튀어나오는 저음의 목소리만큼이나 놀라웠던 건 인터뷰 내내 진중한 태도로 대답하는 모습이었다. 뷰파인더 너머의 섬세한 눈빛 또한 내가 직접 촬영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시작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스물셋의 이 음악가를 ‘바로 지금의 젊은 흐름’으로 명명한다.

두은정: 음악은 언제 처음 시작했나요?
김한주: 여덟 살 때요. 사실 저는 클래식을 전공했어요. ‘진지하게 음악을 시작하게 된 시기’라고 하긴 어렵지만 시작은 또래 아이들처럼 교양 삼아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거였어요.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는 케이스는 다들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학생들보다 진도도 빨리 나가고 재미를 느끼고. 저 역시 빠른 진도에 자신감이 붙어서 어린 마음에 나중에 커서 작곡가가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운이 좋아서 콩쿠르에도 나가고 좋은 결과도 얻었어요. 그게 촉매가 되었고 중학교 진학을 위해 입시 공부도 했어요. 그래서 예원학교의 음악과 작곡 전공으로 입학했어요.

두은정: 예원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어떤 음악을 들었나요?
김한주: 클래식 전공이지만 밴드 음악을 많이 접했어요. 중학생 시절에는 주위 사람들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들었는데, 특히 밴드 음악을 듣는 게 멋있어 보였어요. 그 당시에 제가 라디오를 굉장히 즐겨 들었는데 외국 채널도 가리지 않았어요. 영어를 잘 알아듣진 못했지만, 평론가 같은 사람들이 추천하거나 설명해주는 곡도 열심히 찾아 들었어요. 그런 음악을 듣는 게 너무 좋았거든요. 정말 닥치는 대로 들었어요. 클래식에서 작곡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보통 현대음악을 전공해요. 저도 클래식을 했고 작곡 전공이지만, 현대 음악은 그거대로 좋아하면서 밴드 음악도 많이 찾아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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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은정: 그럼 언제 밴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가요?
김한주: 제가 중학생 때부터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곡가인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을 무척 좋아했어요. 작곡가로서 모리스 라벨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밴드 음악으로 전향하고 싶은 생각이 없을 때였죠. 그런데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밴드 음악에 관한 관심이 커졌어요. 음악 선생님도 “너는 대중음악의 길을 가는 게 더 맞을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고, 저도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거든요. 고등학교 1학년 2학기에 학교를 자퇴하고 열여덟 살에 검정고시를 봤어요. 열아홉 살, 그러니까 1년 일찍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입학해 그곳에서 실리카겔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두은정: 클래식과 실용 음악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김한주: 신체를 사용하는 게 무척 달라요. 쉬운 예로는 피아노는 손으로 연주하니까 펀치감이 크고요. 대중음악은 리듬이 일정하게 있는 편인데 흔히 클래식이라고 일컫는 순수음악 계열은 BPM이 일정하지 않아요. 리듬이 심상에 따라 늘어질 때도 있고, 타악기가 전면에 나서는 음악도 아니거든요.
순수음악을 작곡할 때는 말 그대로 악보를 하나하나 그려야 해요. 러프하지 않은 음악이기도 하고, 러프하면 안 되는 방식을 써야 하는 음악이기도 하거든요. 정말 세세하게 신경 써서 촘촘하게 담아야 해요. 그런데 대중음악은 한꺼번에 많은 걸 표현하려고 하면 전달하고자 하는 게 정말 흐려지더라고요. 욕심을 버리는 법을 터득하는 게 어려웠어요. 물론 욕심을 버린다고 해서 대충 한다는 건 아니고요. 대중음악을 작곡할 때는 쿨한 태도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느꼈어요.

두은정: 실리카겔의 곡을 들으면 가사의 심상을 어떻게 얻는지 궁금해요. 가사가 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단어의 나열 같기도 하거든요.
김한주: 작사 방식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에요. 곡마다 달라요. 멜로디가 먼저 나와 있는 상황에서 가사가 없을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는데 예를 들어 음이 ‘도레미파솔’이고 ‘빠라두라바’라는 가사가 있다고 했을 때, 입에서 자연스럽게 ‘빠’라고 나올 때가 있어요. 그렇게 처음에 입에 붙는 발음으로 시작해서 단어나 문장을 계속 연상해요. 머릿속에서 계속 피드백을 주고받아요. 주제가 먼저 있을 때도 있어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 때는 소스가 되게 좋은 경우예요. ‘눈알’이라는 단어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꼭 가사에 활용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3호선 버터플라이의 남상아 씨가 피처링한 “II”라는 곡에 실제로 ‘눈알’이라는 단어를 등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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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은정: 실리카겔 멤버들 모두 대학 동문이지만 각각 전공이 달라요. 팀이 결성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김한주:  2013년에 디지털아트과가 수업의 일환으로 평창비엔날레에 제안서를 냈어요. 학생들이 퍼포먼스 부문에 참여해서 전시를 기획하는 거죠. 이 수업에서 드럼 치는 김건재 씨와 VJ 멤버인 이대희 씨, 강동화 씨, 김민영 씨가 팀을 결성해서 전시를 기획하며, 추가로 음악을 담당할 멤버를 모으고 있었어요. 당시에 저는 실용음악과에서 기말고사 작품 발표회를 했어요. 슈게이징이었는데 신스팝 같은 걸 재미삼아 만들었어요. 처음으로 전자 음악을 라이브로 공연했는데 건재 씨가 이걸 좋게 봤나 봐요. 이후에 제게 먼저 다가와 대화해보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함께 작업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베이시스트인 구경모씨와 기타리스트 김민수씨는 원래 건재 씨와 친분이 있던 사이라 자연스럽게 합류했고요. 그렇게 해서 뭉친 게 실리카겔.

두은정: EP에는 한주 씨와 민수 씨가 쓴 곡이 수록되어 있지만, 최근의 공연에서는 다른 멤버들이 작곡한 곡도 들려주고 있어요. 멤버 전원이 작곡하는 팀은 흔치 않죠.
김한주: 요즘은 다양한 그룹이 있는 만큼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도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음악적 축을 담당하는 사람이 한 명인 그룹도 있고, 작곡 과정부터 멤버들과 함께하는 그룹도 있습니다. 실리카겔은 연주하는 멤버 각자가 재밌는 아이디어를 많이 갖고 있어서 곡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합주나 점심 메뉴를 정하는 것까지 모든 게 흥미로워요. 함께 곡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공연장에서 합을 맞출 때가 최고예요. 공연에서 개개인의 능력이 빛나고 영상과 함께 그것이 서로 뒤엉키는 느낌이 정말 좋거든요. 멤버들에 대한 자부심은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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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은정: 첫 EP [새삼스레 들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가지 시각]은 두 명의 멤버(김한주, 김민수)가 작곡했는데, 트랙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작곡할 때 어떤 대화 방식을 통해 합의점을 찾았나요?
김한주: 1번 트랙인 “INTRO”와 2번 트랙인 “HRM”은 민수 씨가 만든 음악이에요. 사실 처음 작곡했을 때는 둘을 한 곡처럼 붙여서 연주하곤 했어요. 그리고 3번 트랙인 “II”와 4번 트랙인 “SISTER”는 제가 쓴 음악이에요. 네 곡 모두 평창국제비엔날레에서 연주하기 위해 만든 곡이에요. 트랙은 음악의 이어짐과 이야기의 전개 등을 고려해서 배열했어요.
사소한 이야기를 하자면 “HRM”을 실제로 연주할 때 마지막으로 끝나는 코드가 A예요. 그리고 “II”를 연주할 때 첫 코드가 D입니다. A 코드는 D 코드로 가기 전에 자주 사용하는 코드예요. 음반에는 “HRM”의 끝 부분이 페이드 아웃이라 A 코드로 진행하는 마무리는 들을 수 없지만요. 이런 이론적인 설계를 떠나서도 작곡할 당시에 민수 씨 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나눈 진지한 대화와 잡담이 알게 모르게 연결고리를 만들었어요.
민수 씨와 음악을 만드는 것에 관한 의견을 나누다 보면 서로의 방식이 달라서 재밌는 시도를 하게 돼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하는 과정을 계속 거치면서 순간의 목적에 몰입해요. 다른 멤버들도 아이디어를 던지기 시작하면 이때는 더욱 미치도록 재밌어지는 거죠.

두은정: 많은 수의 구성원이 3년 넘게 함께할 수 있는 이유, 그렇게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김한주: 실리카겔은 영상을 담당하는 멤버까지 포함해서 총 8인조 그룹이에요. 최근에는 세컨드 기타와 키보드를 연주하는 최웅희 씨까지 합류했어요. 구성원이 많아서 연락을 주고받거나 이견을 조율하는 게 어려울 때가 있어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하지만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는 차원으로 생각해요. 구성원들의 태도 또한 그렇고요. 그래서 매우 고맙습니다.

두은정: 2015년 6월에 EP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했어요. 공연을 직접 진행했는데, 구성 인원이 많다 보니 어려운 점도 있었을 텐데요.
김한주: 누구는 포스트 록을 가미하고 싶어 하고 반대로 누구는 사이키델릭을 가미하고 싶어 했어요. 저는 각각 요구하는 지점에서 좋은 요소를 뽑아서 작곡하려고 해요. 쇼케이스 때의 셋 리스트가 여기에 해당하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쇼케이스 공연에서 전반부와 후반부의 느낌이 좀 달랐거든요. 전반부는 어두우면서 무겁고, 후반부는 좀 더 밝은 경향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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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은정: 쇼케이스 얘기가 나온 김에 질문할게요. 오프닝 게스트가 ‘모임 별’이었어요. 모임 별은 음악뿐 아니라 디자인 작업까지 함께 하는 팀이에요. 이 점에서 실리카겔이 모임 별과 비슷한 궤도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한주: 벤치마킹한 건 아니에요. 다만 실리카겔이 음악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분야도 폭넓게 아우르며 활동하고 싶다고 가정을 했을 때, 훌륭한 선례를 보여준 팀이에요. 일단 저희는 모임 별의 팬이죠.

두은정: 한주 씨는 공연할 때 몸짓이 큰 편이에요. 특히 실리카겔의 공연 때면 훨씬 표현이 풍부해지죠. 곡이 끝날 때 건반을 쾅 치면서 넘어지는 몸짓에는 혹시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김한주: 제가 베토벤을 존경하지만 베토벤을 추모하기 위해서 퍼포먼스를 한다고 말할 순 없잖아요(웃음).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 대로 하는 거예요. 어떤 몸짓을 하면 공연장 분위기가 더 들뜨겠다고 계산하며 움직이는 건 아니에요.

두은정: 팀에서 외교를 담당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 역할이 본인이 말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게 된 계기이기도 한가요?
김한주:  일종의 ‘사회 생활’은 제가 세션으로 속해 있던 팀들을 통해서 많이 배웠어요. 음악 씬 안에서는 아직 어디를 가도 저보다 어린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워요. 상대적으로 저와 나이 차이가 꽤 나는 3호선 버터플라이, 넘버원코리안의 세션으로 활동하면서 좋은 대화법을 많이 배웠어요. 그 팀과 이야기하다 보면 상대방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저절로 깨닫게 되더라고요. 타인의 기분을 고려하는 태도는 여자친구한테 많이 배웠어요.

두은정: 3호선 버터플라이와 넘버원코리안의 세션으로  참여하는 것 이외에 개인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김한주: 세션은 물론이고 영화 음악과 무용 음악도 하고 있어요. 영화 <워킹걸> O.S.T.에 참여했고요. 지난 해 중반부터 ‘솔루션스’와  ‘이채언루트’의 세션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레이지본’과 ‘이채언루트’의 지난해 앨범에서 레코딩 세션 및 편곡 작업도 했어요. 최근에는 방준석, 백현진 듀오인 ‘방백’의 새 앨범 [너의 손]에서 신디사이저, 멜로트론 연주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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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은정: 실리카겔의 김한주는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나요?
김한주: 정말 고민했어요. 구성원들의 음악적 성향이 다양하고 뚜렷하기 때문에, 저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 요구와 요소를 조화롭게 버무리려고 노력했어요. 그럴 때마다 80~90년대의 밴드 음악이 저에게 대안과 힌트를 제시해줘요. 저는 콕트 트윈스(Cocteau Twins)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과거의 드림팝과 슈게이징에서는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구사하는 밴드가 있는가 하면, 작곡적인 부분에서 이야기와 선이 명확한 멜로디를 가진 밴드도 있어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생각이 정리되거나 방향이 잡혀요.
제가 실리카겔로서, 실리카겔에서 연주하고 싶은 곡은 선이 아름답되 굵직한 음악이에요.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고수하면서 그 안에 리듬감을 넣는 거죠. 실리카겔에서 저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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