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Blackstar]는 거대한 죽음이다. 타이틀 곡 “Blackstar”는 그가 마지막으로 토해내는 음악적 사자후와 같으며, “Lazarus”는 처연한 유언장이고, “Dollar Days”는 비산하는 색소폰 소리와 함께하는 장송곡이다. 아마 1월 11일 이전이었다면 나는 ‘이 영감님이 켄드릭 라마에게 정말 깊은 인상을 받았나 보구만’라는 감상을 트위터에 남기면서 이 재즈 익스페리멘탈 프로그레시브 팝을 흥얼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건 불가능하다. 가능은 하지만, 결코 진심이 될 수는 없다.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동시대’를 체감하지 못했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전성기 – 7, 80년대 – 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상상해 본다. 드레스를 입고 세상을 팔아제낀 남자, 화성인 지기 스타더스트, 번개 얼굴을 한 알라딘 세인과 말라깽이 백인 공작, 지구(베를린)에 떨어진 사나이에 고블린의 왕. 어떤 사람은 그를 미쳤다고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런 그에게 열광했을 것이다. 그의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왜 자신이 그런 컨셉질 때문에 부끄러워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었던 사람도 물론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보위는 의연하게, 마치 그런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페르소나를 하나하나씩 쌓아나갔다.

아마 그것이 우리가 지금 보위의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면서도 그가 자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의연하게 이야기하는 이유일 것이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개념조차도 보위의 앞에서는 그저 또 하나의 페르소나처럼 보일 뿐이다. 지금까지와 같이, 그리고 그보다 앞서 이곳을 떠났던 수많은 거장들과 같이, 그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죽음을 뛰어넘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Blackstar]에서 이 한 곡을 꼽는다. 생애 마지막 앨범의 마지막 곡이 이토록 스트레이트하고 눈부시다는 건 무모하리만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다 줄 수는 없어 (I can’t give everything away)’ 라고 꺼져가듯이, 그러나 확신에 차서 노래하는 보위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지게 된다. 전주에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하모니카 소리가 77년작 [Low]의 “A New Career In A New Town”에서 따온 소리라는 걸 알게 되면 슬며시 웃음이 배어 나온다. 이 빛나는 의연함의 순간을, 보위를 기억하는 이들 모두가 건네받을 수 있기를. | 정구원 [email protected]

 

David Robert Jones AKA David Bowie
1947 – 2016
안녕.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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