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 〈프로듀스 101〉의 주제곡이었던 “Pick Me”는, 단정하건대 바보 같은 곡이었다. 무작정 유니슨으로 일관하는 보컬, 아무튼 반복하고 보는 멜로디, EDM이라고-불리는-장르를 아이돌에 이식하는 기존의 숱한 시도들을 전부 무시한 듯한 단순 접목, 웬만한 기획사라면 ‘픽미'[pɪkmi]로 디렉팅 했을 ‘Pick me’를 ‘핑미'[piŋmi]로 녹음한 것까지. 노렸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곡은 유치하고 ‘저렴’했다. 치졸할 정도로 걸그룹 컨벤션을 겉핥기 한 가사(‘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 ‘Can you touch me’ 등)까지 본다면, 메이저 아이돌 씬보다는 차라리 (미안하지만 종종 조금 어설픈) ‘행사용 걸그룹’ 씬을 레퍼런스 삼은 듯한 모습이었다.

결과론적으로 말해 흥행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곡의 퀄리티를 입증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수일 것이다. 반복 효과와 ‘병맛’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고, 마침 필터를 서서히 열며 다가오는 ‘핑미핑미’의 지박령 같은 질감은 방송의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써먹기도 좋은 것이었다. 그러니 이 곡을 평한다면 독립된 트랙으로서의 가치와 방송용 캠페인 송으로서의 가치를 분리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 곡을 총선 캠페인에 채택한 새누리당이 그것을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이 곡을 작업한 마이더스-T(Midas-T), DJ 쿠(DJ Koo), 맥시마이트(Maximite)에 대한 평가가 이 곡의 음악적 가치와 조금은 별개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 역시 그곳에 있다. “Pick Me”가 보여준 ‘중독성’에 고무된 것일까. 엠넷은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곡을 맡겼다. 그리고 세 명의 프로듀서는 보다 도발적이고 과감한 시도를 통해 “Pick Me”의 완성형으로서의 “24시간”을 내놓았다.

 

 

어쨌거나 아이돌 선발 방송에 사용된 곡이니 “24시간”이 ‘아이돌 팝’으로서 유효한가 하는 점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곡은 현재의 아이돌 팝과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같은 EP에 수록된 “Yum Yum”, “Fingertips”가 과감한 보컬 화성을 쌓는 걸그룹 팝의 추세를 충실하고 섬세하게 반영하는 것과 달리, 이 곡에는 보컬 화성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사실 음정과 박자를 틀리지만 않는다면 보컬리스트가 (무대 뒤의 DJ와 함께 들썩이는 것 외에) 별달리 할 일도 없어서 곡의 주인공이 되지도 않는다. “같은 곳에서”가 (여자친구 등을 참조한 듯) 열혈 아이돌의 에너지와 아스라한 감성을 가요적으로 감싸 안는 것과도 거리가 있다. EDM이라고-불리는-요소와 아이돌 팝의 요소를 덧대어 놓은 점은 “Pick Me”의 기조와 동일하다. 다만 보컬의 적극적인 유도(‘You and me you and I’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너와 나 24시간’)에 의해 빌드업이 이뤄지는 점은 보다 매끄러운 접목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형식적인 측면이 그렇다고 할 때, 내용은 사뭇 다른 질감을 보인다. 보다 멜로디컬해진 “24시간”의 보컬 파트는 완연히 90년대 ‘뽕 댄스’ 그 자체를 구현한다. 출연진도 ‘뿜게’ 만든 ‘너랑 나랑 애인하자’라는 가사가 색정적이고 이국적인 ‘야이야이야이야’로 이어질 때면, 미사리 라이브 카페와 트로트를 향해 밀려나던 ‘아저씨’ 정서가 박미경 등을 위시한 90년대 김창환 사단의 향취에 실려 부활하는 것이다. 뒷박에 강세를 둔 피아노에 우악스러운 브라스 루프가 깔리는 것은 그런 이 곡이 ‘웃긴다’는 것을 본인들이 알고 있다는 방증에서 더 나아가 차라리 자기 희화화처럼 들리기도 한다. 결국 이 곡의 멜로디 파트는 김창환 사단을 살아낸 이들의 ‘아재 개그’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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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아재 팬’이 많은 것으로 화제가 된 강미나

 

상큼한 웃음과 함께 ‘안 보면 보고 싶고 떨어져선 못 살겠고’란 트로트 가사를 구성지게 훑으며 ‘어서 빨리 내게 다가와’라 손짓하는 귀여운 소녀들, 혹은 소녀들에게 그런 행동을 시키는 것, ‘아재 문화’의 정수로서 이보다 선명한 게 어디 있을까. 그러나 ‘아저씨’의 자아가 아이돌 팝에 반드시 배치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유감스럽게도 아이돌 걸그룹의 장르적 현실에는 ‘소녀들’을 이용한 ‘아저씨들’의 로망 실현이라는 측면이 도도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야말로 지금 아이돌 씬의 한 핵심을 꿰뚫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24시간”은 간단히 웃어넘길 수 없는 무서운 곡이 된다. 국내의 진지한 일렉트로닉 음악 담론에서 종종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은, 본시 일렉트로닉 문화는 진지한 음악광의 그것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음악보다 ‘물’이 좋아야 하는 손님들이 ‘부비부비’를 하러 가는 공간과, 그에 걸맞은 ‘쌈마이 댄스’는 클럽 음악의 큰 축이다. 비록 그 경계가 분명하지는 않고 때론 한 공간에서 겹쳐지기도 하지만, 유흥 문화와 아티스트십 중 어느 한 쪽을 제외하고서는 일렉트로닉을 온전히 말하기 어렵다. ‘EDM’이라는 바보 같은 조어가 미국에서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헤게모니를 일궈낸 것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24시간”은 그야말로 ‘K-EDM’이다. 보컬 파트가 끝나고 드롭이 시작되면 무대 위의 소녀들은 날뛰기 시작한다. 정해진 안무이긴 하지만 그것은 아이돌적으로 꽉 짜여진 안무가 아니다. 오히려 힙합 아이돌이나 록 뮤지션이 선보이는 것처럼 기세로 몰아붙이며 관중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유형의 동작들이다. 미국의 EDM이 페스티벌 무대를 통해 (관객과 DJ 사이의 수평적 관계가 아닌) 록 뮤지션와 유사한 수직적 존재감을 아티스트에게 부여했다면, “24시간”은 아이돌(지망생)을 활용해 같은 효과를 성취한다. 거기에, 국내 일렉트로닉이 좀처럼 이뤄내지 못했던 ‘쌈마이’ 씬과의 관계 역시 ‘밤과 음악 사이’의 ‘아저씨’ 정서를 통해 정립한다. 이것은 EDM의 직접 번역어이자, 아이돌 씬과 〈토토가〉가 존재하는 한국에서만 가능한 번역이다. 김창환 사단이 자부하며 말하던 ‘K-EDM’은 ‘케이팝이 뜨니까 우리도 한번’을 넘어서, DJ 쿠가 ‘Let’s go!’라고 외치던 순간, 정말로 실체를 획득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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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닥터 옥토퍼스가 탄생하는 순간처럼…

 

긍정하든 부정하든 ‘K-EDM’은 이제 존재한다. 오히려 미국의 EDM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앞으로 이 ‘장르’를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아저씨의 질척질척한 로망이 소녀들의 웃음과 육체에 뒤엉키는 이 놀라운 혼종의 드롭이, 더구나, 엠넷의 화면을 통해 그 파괴력을 성공적으로 입증해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부비부비’처럼, K-EDM을 제3세계 특유의 ‘변질’로 치부하고 외면한 채 국내 일렉트로닉을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앞으로 이런 음악을 더 만나게 될 것이고, 이들은 엠넷의 리얼리티처럼, 가증스럽지만 외면하기 어려운 존재감을 뽐내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 미묘 [email protected]

 

3 Responses

  1. 베림볼로

    국내 일렉트로닉의 부흥을 소원하지만 현재와 같은 뽕짝+아이돌 일렉의 행태는 증오하는 태도가 보이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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