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내 │ 야생의 밤 │ 푸르내, 2016

푸르내 │ 야생의 밤 │ 푸르내, 2016

 

찰랑거리는 쓸쓸함

안타깝게도, 둔촌동 주공아파트 단지 화단에 심드렁하니 예쁘게 핀 민들레 같았던 얄개들은 2013년에 해체했다. 2011년 1집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를 중심으로 2010년대의 청춘을 들려 준 얄개들은 뿔뿔이 흩어져 무려 3개의 밴드가 되었다. 민들레 씨앗이 흩어지는 것처럼 각기 다른 곳으로 멀리멀리 날아간 이 밴드들은 밤신사, 파라솔과 푸르내다. 해체 직후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천천히 결과물을 내고 있다. 파라솔은 작년 여름에, 밤신사는 연말에 정규 1집을 냈다. 그리고 2016년 3월, 이번에는 푸르내가 [야생의 밤]이라는 꽃을 피웠다.

푸르내에는 얄개들의 인상적인 기타 톤을 만들어낸 유완무와 이경환이 있다. 게다가 유완무는 특유의 무덤덤한 보컬이기도 하다. 이 라인업에 정원진이 있었지만, EP [시장속으로]에만 참여하고 파라솔로 가버렸다. 유완무와 이경환의 또 다른 친구인 김성준이 베이스로 들어오고 동시에 보컬에도 참여하면서 [야생의 밤]이 완성되었다. 얄개들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청명한 기타 톤은 더 스미스나 스톤 로지스 등 80년대 영국의 인디 록 밴드들이 떠오르게 한다. 이 톤이 한국적인 멜로디와 함께 만나 “불구경”이나 “꿈이냐”, “산책 중에 우연히 마주친 외할머니” 같이 인상적인 곡들이 만들어졌다. 얄개들의 핵심적인 소리를 담당한 인물이 둘이나 들어간 푸르내도 여타의 밴드들보다 얄개들의 음악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음악을 들려준다. 그럼에도 다른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푸르내 또한 무조건 얄개들의 범위 안에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야생의 밤] 오히려 특유의 감성으로 얄개들의 바깥으로 향한다.

첫 곡 “겨울남자”의 찰랑거리는 기타 톤은 유완무가 아닌 김성준의 목소리가 들어왔지만, 아직까지는 어쩔 수 없이 얄개들이 생각난다. 무언가 나른하고, 무덤덤한 음악이 얄개들의 특징이었다. 밤신사는 조금 더 숨 가쁘게, 파라솔은 조금 더 깔끔하게 이를 씻어내고 새로운 특징을 만들어냈지만, “겨울남자”에서까지는 아직까지 푸르내의 특징이 그렇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라고 중얼거리는 무기력한 청춘의 모습은 ‘나는 쉬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안전한 곳을 향하여’라 중얼거리는 채로 여전히 담겨 있다. 푸르내의 본격적인 변화는 다음 트랙인 “유령”에서부터 선명하게 들린다. 드럼이 밑에서 잘게 리듬을 쪼개놓으면 두 대의 기타가 그 위에서 자유롭게 속도감을 내며 빠르게 진행된다. 유완무의 보컬이 들어왔음에도 얄개들의 무덤덤함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있을까. 세 번째 곡이자 타이틀곡인 “아주 먼 곳”은 톡톡 튀었던 “유령”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80년대의 쓸쓸함으로 보내버린다. 어떤날이나 동물원, 시인과 촌장 같이 80년대 말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떠오르는 이 곡은 고전적이라면 고전적인 이별의 순간들을 담았다. 80년대스러운 감성을 쏟아내면서도, 30년 전에 비하면 많이 세련됐지만 좀 더 시니컬해진 2010년대의 감성 또한 미묘하게 잡아낸다. 얄개들에게서 느껴졌던 청춘의 무기력/쓸쓸함이 이별의 감정들과 맞닿아서 그런 것일까. 이별마저도 무덤덤하게 담아내는 김성준과 유완무의 목소리는 유재하나 조동익 같이 무덤덤한 80년대의 목소리들이 생각나게 한다.

[야생의 밤]은 위트 있게 첫 세 곡을 얄개들스러운 곡으로, 개성 넘치게 톡톡 튀는 곡으로, 앞의 둘을 모두 벗어나 쓸쓸한 감성을 들려주는 곡으로 구성하면서 듣는 이들을 얄개들의 세계에서 서서히 푸르내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아주 먼 곳”의 후반부 기타 리프와 ‘언젠가 나도 남겨질 테니’하는 노랫말이 그 문일 것이다. 그 문을 통과하며 시작되는 음반의 중반부는 “아주 먼 곳”의 서정적인 쓸쓸함과 함께 이어진다. “유소년의 비애”도 비슷한 지점에 놓인 곡으로 “아주 먼 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찰랑거리는 기타 톤과 쓸쓸한 분위기를 담았다. 어떻게 보면 그 지극히 내면적이고 쓸쓸한 감성과 멜로디가 서로를 보강하는 느낌이 든다. 음반의 정중앙에 수록된 “밤공기”에서 “아주 먼 곳”에서부터 이어져온 쓸쓸한 감정은 최대치를 찍는다. 이즈음에서 푸르내의 음악이 얄개들의 음악과 달라지는 지점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얄개들은 청춘의 무기력함을 불구경에 빠진 연인의 이야기로, 여기저기에서 사랑을 나누는 꿈을 꾸는 이야기로, 산책 중에 우연히 마주친 외할머니의 이야기로 이리저리 풀어냈다. 특유의 기타 톤은 무심하게 찰랑대면서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청춘들의 마음을 만만세, 하고 담아냈다. 반면 푸르내는 그런 무기력함을 떠나 오히려 더욱 진중한 쓸쓸함을 담는 것에 이전에 무기력함을 담아낼 때 썼던 청명하고 맑은 톤을 이용한다. 언뜻 들으면 얄개들의 노래 같이 들릴 수도 있는 “밤공기”가 “겨울남자”와는 다르게 완전히 푸르내의 것으로 느껴지는 건 음반 초반부에서의 쓸쓸한 감정선을 지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푸르내는 그들의 쓸쓸한, 그럼에도 무덤덤한 음악을 들려준다. 곡은 장장 6분이 되는 시간동안 느릿느릿하게 ‘너’를 그리고 지우는 이야기를 중얼중얼 담은 뒤 “야생의 밤”에서 다시금 80년대스러운 감성을 담는다. 이전의 느낌보다 좀 더 밝아진 “야생의 밤”은 무려 ’욕망을 킨’ 이야기다. “아주 먼 곳”에서 이별하고 “밤공기”를 받으며 떠난 이를 그리워하다가 결국 욕망으로 꽉 찬 거리에 나가는 것일까. 미묘하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야생의 밤”은 오히려 차분하고 밝은 기분으로, 새롭다 할 수 없을 ‘새로운 맘’을, 욕망을 켠 채로 야생의 밤에 뛰어드는 마음을 들려준다. 역설적인 곡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준의 무덤덤한 보컬, 알맞은 비트감, 그리고 인상적인 리프들과 함께 푸르내는 야생의 밤으로 풀쩍, 뛰어든다. 음반의 후반부가 다가온다.

어떠한 80년대스러운 이별을 지나온 푸르내는 야생의 밤으로 뛰어든 다음 완전히 달라진다. 야생의 밤이란 이런 것인가, 싶은 곡들로 가득 찬 후반부의 마지막 세 곡이 이어진다. 그 첫 주자인 “꽃”은 여전히 80년대 가요가 떠오르게 하는 ‘그 날 속에 앉아 있는 내 모습만 남아있네’의 멜로디와 함께 야생의 밤을 톡톡 튀어가며 헤엄친다. 경쾌해진 기타 톤 속에서 어떻게든 야생의 밤을 즐기는 것만 같았던 화자는 어느 순간 다시 떠난 이를 그리워하고, 빠른 템포의 곡은 그 순간 반전되는 분위기와 함께 느려진다. 무덤덤한 유완무의 목소리는 이 화자가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주 먼 곳’으로 가버린 이를 정말로 견뎌냈는지 알 수 없게 한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음반 내내 들려온 쓸쓸함만큼은 “꽃”의 경쾌함 속에서 모순처럼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어, 이전까지의 분위기와는 살짝 다른 “마음”의 첫 리프가 울려퍼진다. 쓸쓸함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무언가 의뭉스러운 분위기와 모순적으로 밝은 분위기를 오가는 리프는 EP [시장속으로]와 다르게 살짝 빨라진 드럼과 함께 진행된다. ‘잣대는 너의 마음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화자의 ‘마음’에는 정말 무엇이 있을까. [야생의 밤]은 이렇듯 무언가 의문만 불러오는 쓸쓸함으로 가득 차 있다. 정말로 이 음악을 부르는 이가 신이 나서 경쾌하게 노래하는지, 정말로 욕망과 함께 야생의 밤으로 뛰어들었지 궁금하게 한다. 더욱 더 인상적인 후반부의 강렬한 리프와 함께 [야생의 밤]은 쓸쓸하고 경쾌하며 청명하게 마지막으로 달려간다.

이별과 그 쓸쓸함 속에서 야생의 밤을 잔뜩 헤맨 음반의 마지막은 놀랍게도 “사탄”이다. ‘유령’은 그렇다 쳐도, ‘사탄’이라니. 더군다나 이 곡은 연주곡이기도 하며, 여태까지의 곡들 중에서 가장 경쾌한 합을 들려주는 곡이기도 하다. 이 곡만을 따로 들었다면 “산책 중에 우연히 마주친 외할머니”의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야생의 밤] 안에서 “사탄”은 여태까지의 80년대스러운 쓸쓸함과 찰랑거림과 함께한 이들의 입장에서는 ‘석연치 않은 결말’ 같은 곡이다. 그럼에도, 3분도 안 되는 짧은 길이에서 어떠한 합만으로도 깔끔한 분위기를 불러오는 “사탄”은 이러한 ‘석연치 않은 결말’로는 가장 적절한 선택일 것이다. 푸르내의 스타일을 만든 유완무의 담담함이나 얄개들의 무기력함이 없어도 “사탄”은 충분히 푸르내의 음악이 어떤 음악인지를 들려준다. 깔끔하고 맑은 연주의 짧고 굵은 마무리와 함께 [야생의 밤]은 뚝하고 끝난다.

파라솔의 [언젠가 그 날이 오면]은 강렬한 연주력과 불안한 가사로, 밤신사의 [실화를 바탕으로]는 카세트테이프와 원 테이크 특유의 날 것의 감성으로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의 무기력을 벗어났다. 그리고 [야생의 밤]은 모순된 쓸쓸함으로 얄개들의 범위를 벗어난다. 시종일관 슬픈지, 기쁜지 모를 김성준과 유완무의 일관된 덤덤함은 얄개들에서만 해도 청춘의 무기력함을 들려주는 데 쓰였지만, 푸르내에서는 알 수 없는 그 쓸쓸함을 드러내는 데에 탁월하게 쓰였다. 8090 영국 인디 록 스타일을 떠오르게 하던 이경환과 유완무의 기타 톤은 8090 한국 가요에 와 닿아 이 알 수 없는 쓸쓸함에 뭔지 모를 익숙함을 더한다. 그렇기 때문에 [야생의 밤]의 쓸쓸함은 [언젠가 그 날이 오면]의 불안함이나 [실화를 바탕으로]의 날 것보다 변화를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어떤 사람에게는 많은 지점에서 얄개들이 더욱 많이 떠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음반이 진행될수록 야생의 밤에서 허우적대는 화자의 이야기와 그 속의 쓸쓸함은 얄개들을 멀어지게 한다. 이 쓸쓸함은 푸르내만의 쓸쓸함이고, 푸르내만의 깔끔한 청량감이고, 푸르내만의 알 수 없는 무덤덤함이다. 그래서 [야생의 밤]은 얄개들의 다른 씨앗들에 비해서는 늦게 핀 꽃에 속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어떠한 생생한 날 것의 기운보다는 정제되고 감성적인 기운을 들을 수 있다. 이 찰랑거리는 밴드들의 정규 음반을 오가며 들을 수 있는 그 미묘한 차이 속에서, [야생의 밤]의 쓸쓸함이야말로 찰랑거리는 기타 톤과 분위기를 어울리게 하는 데에는 최고일 것이다. 처음에는 그 해체가 무척이나 아쉬웠던 얄개들의 씨앗들은 이제 그 원천과는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개성을 가진, 특별한 꽃이 되어 오히려 마음 한 쪽을 차오르게 한다. 그 넓은 꽃밭에 이제 푸르내도 당당히 그들만의 색깔을 들려준다. | 나원영 [email protected]

* 필자의 불찰로 [야생의 밤]에서 대부분의 노래를 부른 김성준 님의 보컬이 유완무 님의 보컬로 표기되었습니다. 사실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로 글을 올린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김성준 님께서 보컬로 참여하신 곡은 “겨울남자”, “아주 먼 곳”, “밤공기”, “야생의 밤”, “마음”이고, 유완무 님께서 보컬로 참여하신 곡은 “유소년의 비애”, “유령”, “꽃”입니다. 오기된 정보는 수정되어서 리뷰에 반영되었습니다.

 

Rating: 8.5/10

 

수록곡
1. 겨울남자
2. 유령
3. 아주 먼 곳
4. 유소년의 비애
5. 밤공기
6. 야생의 밤
7. 꽃
8. 마음
9. 사탄

 

 

“야생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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